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있다.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이들을 위해 쓴다. ‘씨네플레이’는 10년 전, 20년 전 이맘때 개봉했던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재개봉하면 당장이라도 극장으로 달려가서 보고 싶은 그런 영화들을 선정했다. 이름하여 ‘씨네플레이 재개봉관’이다.

페이스 오프
감독 오우삼 출연 존 트라볼타, 니콜라스 케이지 개봉 1997년 8월 상영시간 138분 등급 15세 관람가

페이스 오프

감독 오우삼

출연 존 트라볼타, 니콜라스 케이지

개봉 199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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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촬영현장의 니콜라스 케이지(왼쪽), 오우삼 감독(가운데), 존 트라볼타(오른쪽).

새삼 신기하다. 20년 전 영화 <페이스 오프>를 다시 봐도 재밌다. 단순히 추억의 영화라서 그런 걸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페이스 오프>를 최고의 액션·오락영화라고 부를 수 있는 요소를 찾아봤다.

할리우드로 진출한 오우삼 감독
이제는 오우삼이라는 이름이 조금 낯선 이들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는 오우삼, 해외에서는 존 우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그가 바로 <페이스 오프>의 감독이다. 오우삼 감독은 홍콩 액션 누아르의 ‘지존’ 같은 인물이다. <영웅본색>, <첩혈쌍웅>, <첩혈가두>, <종횡사해> 등이 과거 홍콩 액션 누아르 전성기를 대표하는 오우삼의 영화들이다. 1980~90년대 국내에서 홍콩 액션 누아르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는 ‘국민 스타’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사실 오우삼 감독의 영화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흥행작이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당연히 그를 주목했다. <페이스 오프>는 오우삼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가운데 가장 성공한 영화다. 오우삼표 액션 스타일이 할리우드 시스템에 가장 잘 녹아든 영화이기도 하다. 흥행 규모만 따졌을 때는 <미션 임파서블 2>가 더 성공했지만 <페이스 오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으로 믿는다. <미션 임파서블 2>는 약 5억 4630만 달러, <페이스 오프>는 약 2억 456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비둘기와 쌍권총
오우삼 감독의 액션을 논할 때 비둘기와 쌍권총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장엄한 음악과 슬로모션도 추가해야 한다. <페이스 오프>에서도 그만의 스타일은 고수된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쌍권총은 서부극에나 가끔 등장했다. <페이스 오프>에서 니콜라스 케이지의 쌍권총은 유난히 눈에 띈다.

특히 <페이스 오프>는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과 유사한 액션을 선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테러리스트 캐스터 트로이가 존 트라볼타가 연기한 FBI 요원 숀 아처를 저격하는 장면, 영화의 후반부 성당에서의 총격전이 매우 유사하다고 언급된다. 특히 후반부 성당 총격전의 경우 오우삼 감독의 전형적인 액션 스타일을 볼 수 있다.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주인공, 끊임없이 등장하는 비둘기, 슬로모션 등이다. 느린 화면으로 한 마리의 비둘기가 성모 마리아 벽화를 지나면서 총격전이 시작된다. 오우삼의 액션 스타일은 ‘시적 폭력 미학’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비장미가 가득하다. 오우삼을 전혀 모르고 <페이스 오프>를 본다면 이런 액션이 조금 유치해보일 수도 있겠다. 그럴 때는 <영웅본색> 시리즈를 먼저 보길 추천한다.

할리우드의 스케일
<페이스 오프>에서 오우삼의 홍콩 냄새가 강하게 나는 건 사실이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서 가능해보이는 폭약도 많이 사용됐다. <페이스 오프>는 시작부터 소형 제트기 하나를 박살내고 시작한다. 홍콩 액션 누아르라면 이 정도의 스펙터클은 기대하기 힘들었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이륙하려는 제트기를 막아서는 초반 액션 장면은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데 성공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제트보트 추격 시퀀스가 등장해서 다시 한번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과시한다. 이 대목이 사족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할리우드 스케일에 녹아든 오우삼의 스타일을 볼 수 있어서 재밌는 장면이기도 하다. 트로이와 아처가 각각 보트를 타고 추격전을 벌이다가 하나의 보트가 폭파된다. 트로이를 쫓는 아처는 맨몸으로 질주하는 보트에 매달려 수상스키를 연상시키는 액션을 선보인다.

원수의 얼굴, 죽이고 싶은 얼굴

<페이스 오프>의 재미는 액션에만 있지 않다. 어쩌면 황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얼굴을 바꾼다는 설정이 큰 재미를 만들어낸다. FBI 요원 아처는 자신을 암살하려던 미치광이 테러리스트 트로이의 총에 아들 마이키를 잃었다. 8년 간 그를 쫓던 아처는 결국 트로이를 체포한다. 트로이는 체포과정에서 의식을 잃고 식물인간이 된다. 체포의 기쁨도 잠시, 아처는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진다. 트로이와 그의 동생 폴럭스(알렉산드로 니볼라)가 생화학폭탄을 LA 시내에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아처는 결국 결단을 내린다. 최신 성형 기술을 이용해 트로이의 얼굴을 이식한 뒤 감옥에 있는 폴럭스에게 접급해 폭탄에 대한 정보를 빼내려 한다. 트로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자신이 이 위험한 위장 작전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문득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정보기관 IMF의 에단 헌트(톰 크루즈)라면 아주 간단히 문제를 해결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에단 헌트는 고무 가면 하나로 완벽하게 타인으로 위장할 수 있지만 <페이스 오프>에서는 어려운 선택을 하게 만든다.

문제는 트로이가 의식을 되찾으면서 시작된다. 그는 병원에 남겨져 있던 아처의 얼굴을 이식했다. 그리고는 아처의 위장잠입을 알고 있는 동료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트로이 얼굴을 한 아처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이제 없다. 테러리스트 트로이는 FBI 요원 아처로 살아가고, 아처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의 얼굴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트로이를 연기하는 아처를 연기하는 니콜라스 케이지
얼굴을 바꾼다는 <페이스 오프>의 설정은 사실 크게 새롭지 않다. 할리우드를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몸이 바뀌는 바디체인지 영화는 많다. 남자와 여자(<체인지> <너의 이름은.>), 어른과 아이(<빅>), 혹은 노인과 젊은이(<수상한 그녀>), 또는 엄마와 딸의 영혼(<비밀>)이 바뀌는 등 바디체인지 영화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페이스 오프>에서 이 설정이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이다.
 
니콜라스 케이지와 존 트라볼타는 <페이스 오프>에서 2개의 인격을 연기해야 했다. 얼굴을 바꾼 다음 두 사람이 보여주는 연기변신이 놀랍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극악무도한 테러리스 트로이를 연기하고 있었다. 얼굴이 바뀌면 그는 트로이의 얼굴을 한 아처를 연기한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 거친 욕설을 하며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아처의 고뇌를 보여준다. 또 마약을 하고 의식이 혼란한 상태에서 거울을 보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거울 속에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 트로이의 얼굴이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총을 뽑아든다.

거울을 마주한 두 남자
거울은 <페이스 오프>에서 중요한 요소로 쓰인다. 거울을 이용한 총격신은 <페이스 오프>의 명장면이다. 감옥을 탈출한 (트로이 얼굴의) 아처는 자신 행세를 하고 있는 (아처 얼굴의) 트로이와 만난다. 두 사람은 양면 거울(!)을 가운데 두고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은 분명 두 사람이 죽이고 싶어하는 얼굴이지만 지금 그들의 얼굴이기도 하다. 이때 오우삼 감독은 잠시 관객에게 시간을 준다. 영화 속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는 일종의 딜레마를 관객들도 체험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한 성당 총격전에서도 거울을 마주하는 장면과 비슷한 양상이 펼쳐진다. 이때는 주변 인물들이 개입한다. (트로이 얼굴의) 아처와 (아처 얼굴의) 트로이가 마주 보고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트로이의 애인 사샤(지나 거손)는 아처의 얼굴을 한 트로이를 겨눈다. 진짜 트로이가 누군지 아는 트로이의 부하들은 트로이의 얼굴을 한 아처에게 권총을 들이댄다.

방아쇠가 당겨지면 오우삼 스타일의 편집이 빛을 발한다. 클로즈업된 총구에서 발사되는 총알, 트로이의 얼굴, 총알에 맞아서 깨지는 꽃병, 아처의 얼굴, 푸드득 거리며 날아가는 비둘기, 총을 쏘는 사샤, 쓰러지는 트로이의 부하 등이 느린 호흡으로 순서대로 분절된 컷으로 이어진다. 요즘 액션만큼 화려하진 않지만 오우삼만의 액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홍콩+할리우드’의 성공
20년이 지나도 <페이스 오프>가 재밌는 이유를 찾아봤다.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번째는 액션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우삼 스타일의 액션이다. 오우삼의 홍콩 액션 누아르가 할리우드와 절묘하게 조우한 영화가 바로 <페이스 오프>다. 두번째는 얼굴을 바꾼다는 설정을 유치하지 않게 만들어준 배우들의 연기다. 존 트라볼타도 훌륭하지만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그냥 혀를 내두르게 된다.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이 정도로 연기를 잘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1990년대 말, 홍콩의 감독과 할리우드의 배우들의 만남은 절묘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오우삼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할리우드는 ‘명성(Fame), 자본(Money), 권력(Power)’으로 굴러갑니다. 홍콩은 감독들이 중심이 돼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만드는 데 반해 할리우드에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야만 하죠. 편집할 때도 내 버전과 스튜디오 버전이 함께 존재했어요. <페이스 오프>의 엔딩 신을 촬영할 땐 스튜디오와 의견차가 있었는데 존 트라볼타가 내 편을 들어줬어요. 다행히 제대로 먹혔죠.(웃음)”

홍콩과 할리우드의 만남은 일종의 이종교배 같은 느낌인데 이런 식으로 제작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가운데 <페이스 오프>만큼 재밌게 잘 만들어진 영화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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