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메인 예고편

데이빗 린치를 그린 다큐멘터리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와 그의 대표작을 모아 상영하는 특별전이 한창 열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독창적인 감독이라는 수식이 손색이 없을 만큼 매 작품마다 범접할 수 없는 이미지를 쏟아부었던 린치의 작품 세계를 다시 한번 곱씹을 기회다. 별안간 찾아온 '린치 시즌'을 기념하며, 영화만큼이나 독특한 그의 개인사를 정리해봤다.

데이빗 린치 특별전 / <트윈 픽스: 파이어 워크 위드 미> 포스터

어릴 적엔 화가를 꿈꿨다. 당시엔 기관단총을 주구장창 그렸다고 한다. 잭 케루악의 일대기를 그린 <하트 비트>(1980)에서는 화가를 연기해, 자기 그림을 영화에 제공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간 여러 개인전을 열고 내로라하는 미술관과 재단에서 그의 그림을 소장해, 화가로도 두터운 명성을 떨치고 있다.

Man Throwing Up(1968)
All I Want For Christmas Is My Two Front Teeth (2012)


소설가 J.G.발라드는 <블루 벨벳>에 대해 "프란츠 카프카가 각본 쓰고, 프란시스 베이컨이 미술을 맡은 <오즈의 마법사> 같다"고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린치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어두컴컴한 분위기와 뒤틀린 공간, 일그러진 얼굴 등 베이컨과 린치의 세계는 확실히 닮았다.

프란시스 베이컨 <Seated Figures>.
베이컨의 그림과 린치의 영화의 유사성을 짚어주는 영상 <Francis Bacon & David Lynch: La anomalía orgánica>

데뷔작 <이레이저헤드>를 만드는 데 5년이나 걸렸다. 자기 돈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주로 밤에 촬영을 진행하고, 낮에는 <월스트리트 저널> 등 신문 배달을 하며 제작비에 보탰다. 아버지와 동생이 찾아와 와이프와 딸을 위해 직업을 구해야 하지 않겠냐고 충고한 적도 있다고.

<이레이저헤드>를 만들던 당시의 린치(가운데)

80년대 초반, 스탠리 큐브릭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이레이저헤드>를 언급했다. 우디 앨런은 1986년 <블루 벨벳>을 그해 최고 영화 중 하나로 선정했다. 샘 멘더스, 데이빗 O. 러셀, 앤드류 도미닉 역시 <블루 벨벳>을 최고의 영화로 추켜세운다.

이레이저헤드 / 블루 벨벳

조지 루카스에게 직접 <스타워즈 에피소드 6: 제다이의 귀환>을 맡아달라는 청을 받았다. 린치는 "당신이 연출해야 한다. 이건 당신 영화다"라며 거절했다. 그리고 SF영화 <듄>(1984)을 연출했다. 청춘 코미디 <리치몬드 연애소동>(1982) 역시 그에게 연출 제의가 들어왔다. 알다시피 거절했다. 린치 영화 속 피비 케이츠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제다이의 귀환 / 리치몬드 연애소동

1983년부터 1992년까지 <빌리지 보이스>와 <로스앤젤레스 리더> 등에 만화 <세상에서 가장 성난 개>(The Angriest Dog in the World)를 연재했다. "아주 화가 난 개는 움직일 수 없다.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없고, 겨우 으르렁거릴 수 있을 뿐이다. 긴장과 분노에 묶인 채, 사후경직의 상태로 나아간다"는 늘 따라붙었다.


<블루 벨벳>의 주연 이자벨라 로셀리니와 연애했다. 1986년부터 5년간 만났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대신 저렇게 근사한 초상을 남겼다.


<블루 벨벳>을 보면 잊을 수 없는 노래가 있다. 로이 오비슨의 'In Dream'이다. 오비슨은 처음에 자신의 노래가 <블루 벨벳>에 쓰인 걸 탐탁찮아했다고 한다. 감미로움 그 자체인 노래가 하필 싸이코패스 프랭크(데니스 호퍼)를 더욱 미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설득 끝에 영화를 한번 더 본 후부터는 오히려 음악을 사용한 걸 감사해했다고.


<광란의 사랑>(1990) 보도자료 속 감독 소개에 “Eagle Scout, Missoula, Montana”라고만 적었다. 린치의 트위터 계정 프로필에도 "Filmmaker. Born Missoula, MT. Eagle Scout"라고만 적혀 있다. 몬태나주 미술라시는 린치의 고향이라 그렇다 치고, '이글 스카우트'는 무엇일까. 영화 안에 별별 걸 다 숨겨놓는 린치다 보니 그마저도 의도가 있어 보인다. 오랜 친구 토비 킬러가 <광란의 사랑>의 의미에 대해 묻자 "1시간 45분에 관한 영화"라고 대답하기도.


린치는 늘 셔츠 단추를 맨 위까지 잠근다. 단추를 다 잠그지 않으면 연약해 보이기 때문이라고. 음.. <친절한 금자씨>가 떠오른다. “왜 늘 셔츠 단추를 다 잠그고 다녀?” “연약해 보일까봐.”


<트윈 픽스>에서 로라 팔머 역의 배우 셰릴 리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매디 퍼거슨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셰릴 리를 시리즈로 부활시켰다. 정작 그 다음 린치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았다.

로라 팔머
매기 퍼거슨

<블루 벨벳>과 <트윈 픽스>에서 노래를 불렀던 가수 줄리 크루즈의 1,2집 제작과 노랫말을 담당했다. 음악 프로듀서는 린치의 음악 파트너 안젤로 마달라멘티. 그는 드문드문 싱글에다 2011년 첫 앨범 <Crazy Clown Time>을 발표하고 듀란 듀란, 모비 등의 리믹스를 내놓는 등 뮤지션으로서 행보를 보여주다가 2년 후 2집 <The Big Dream>까지 선보였다. 영화감독의 취미 정도로 치부하기엔 음악이 꽤 준수하다.

줄리 크루즈의 'Falling' 라이브
David Lynch - Crazy Clown Time (Official Video)

린치의 영역을 '장편 극영화'로 한정해서 보면 과작의 작가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반경을 넓히면 그의 왕성한 창작력을 확인할 수 있다. 단편영화는 물론 TV 시리즈(<온 디 에어>, <호텔 룸>, <덤 랜드> 등), CF ('조르지오 아르마니', '캘빈 클라인', '플레이스테이션 2' 등), 뮤직비디오(X재팬, 람슈타인, 모비, 나인 인치 네일스 등) 다방면에 걸쳐 자기만의 이미지를 선보이고 있다. 아,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광고 영상 역시 린치 작품이다. 무엇을 보든 대번에 린치의 작품임을 알아챌 수 있다.

마이클 잭슨 'Dangerous' 광고
1992년 조르지오 알마니 CF
나인 인치 네일스의 'Came Back Haunted' 뮤직비디오

린치는 카프카의 <변신>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를 써놓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돈은 많이 드는데, 돈을 벌 만한 작품은 아니라" 결국 제작이 성사되지 않을 거라고 내다봤다. 그 밖에 제작되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많은데, 그 가운데 <보빈의 꿈>(Dream of the Bovine), <침 한 방울>(One Saliva Bubble)이라는 코미디 영화도 있다.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신봉자다. 40년 넘게 수행을 이어오고 있다. 분노를 떨쳐내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고. 그런데 영화가 그렇게 무시무시하단 말야?  2002년, 초월명상 창시자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와 함께하는 지지자 모임에 참여해 100만 달러를 지불한 걸로 알려졌다. 요기와는 영상으로만 소통했다고. 데이빗 린치 재단은 미국 전 학교가 초월명상을 정규 교육과정으로 지정하도록 하기 위한 70억 달러 모금 운동을 펼치고 있다.

린치가 말하는 초월명상

커피 마니아다. 데뷔 초기에 해당하는 1976년부터 1984년까지 LA의 식당 '밥스 빅 보이'에서 초콜릿 셰이크와 설탕이 잔뜩 든 커피 여러 잔을 매일같이 마셨다고 한다. 린치는 그걸 "당분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음, 독보적인 이미지를 매시매초 궁리하기 위해선 어마어마한 당분이 필요할 것 같긴 하다. '데이빗 린치 시그니처 컵'이라는 유기농 커피 브랜드를 런칭하기도 했다. 패키지만 봐도 정신이 바짝 난다.

데이빗 린치 시그니처 컵

<멀홀랜드 드라이브>(2000)와 <인랜드 엠파이어>(2006)의 DVD에는 ‘장면 선택’ 기능이 없다.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한다는 린치의 고집 때문이다. 영화를 말로 설명하기를 꺼리는 그가 오디오 코멘터리를 녹음했을 리도 없다. 대신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DVD 패키지에는 영화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는 단서들을 공개했다. 하지만 그걸 읽으면 더 미궁에 빠진다는 게 함정.


한때 유튜브 채널과 홈페이지를 통해 날씨 안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창 밖을 보며 날씨를 묘사하고 날짜, 화씨/섭씨를 일러주는 30초 가량의 비디오였다. 기괴한 가면이나 풍선으로 얼굴을 가린 채 멀뚱히 앉아 있는 때도 있었다.

David Lynch weather report from Halloween 2008

미국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더 클리브랜드 쇼>에서 캐릭터 '바텐더 거스'의 목소리를 맡았다. 위로 솟은 잿빛 머리칼에서 영락없이 그의 모습을 본따 만든 캐릭터란 걸 알 수 있다. 거스의 바 화장실엔 부비 트랩이 설치돼 있다.


휴대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에 대한 린치의 일갈. “지금 휴대폰으로 영화를 틀고 있다면, 당신은 앞으로 1조년 동안은 절대 영화를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험했다고 생각할 테지만, 결국 속고 말 테죠. 그 망할 전화기로 영화를 봤다고 생각하는 건 슬픔 그 자체입니다. '진짜'를 잡으세요.”

David Lynch on iPhone

오디션을 보고 배우를 뽑지 않는다. 과거 작품을 살펴본다거나 하는 과정 없이 얼굴 사진만 보고 배우를 고른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나오미 왓츠와 로라 해링 역시 마찬가지. 린치의 전처이자 편집자였던 메리 스위니는 "캐릭터를 만들 때 특정한 배우를 염두에 둔 적이 없고, 오직 그의 사진만 보고 캐릭터의 감정을 매칭"시키는 방식을 취한다고 말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나오미 왓츠, 로라 해링

로라 던은 카일 맥라클란과 함께 린치 영화에 수차례 캐스팅된 몇 안 되는 배우다. <블루 벨벳>, <광란의 사랑>, <인랜드 엠파이어> 등 20년 넘게 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인랜드 엠파이어>를 발표한 당시 로라 던을 오스카 후보에 올리라며 할리우드 한복판에서 캠페인을 벌였다. 로라 던이 찍힌 현수막과 젖소를 양 옆에 두고 감독 의자에 앉아 있는 퍼포먼스와 함께. 로라 던은 그해 오스카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MTV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디지털로 작업한 <인랜드 엠파이어> 이후 다시 필름 작업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필름영화는커녕 11년째 새 극영화를 내놓지 않고 있는 상태다.

인랜드 엠파이어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재밌으셨나요? 아래 배너를 눌러 네이버 영화를 설정하면 영화 이야기, 시사회 이벤트 등이 가득한 손바닥 영화 매거진을 구독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