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만에 200만. 취향 타는 장르인 줄로만 알았던 오컬트 영화가 이렇게나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으랴. 오컬트 외길을 걷는 장재현 감독이 만든 <파묘>는, 잘 만든 영화에는 취향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몸소 증명하는 것마냥 점차 가속도를 붙이며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히 ‘화림’ 역 김고은의 대살굿 장면, 그중에서도 얼굴에 검은 숯을 칠하는 장면은 영화를 관통하는 시그니처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직접 김고은 배우를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극장 상황이 좋지 않은데도, <파묘>는 개봉하자마자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어요. 요즘 기분이 어떠세요.
너무 감개무량합니다. <파묘>로 무대인사를 다니면서, 매 관이 꽉 차 있는 걸 보니까 좋은 걸 넘어서 뭉클하기도 하고. 예전에 극장이 붐볐을 때가 생각이 나요. 하루에 17관을 돌기 때문에 힘든 부분은 있지만, (최민식을 비롯한) 선배님들도 그렇고, 감독님도 그렇고 워낙 유머러스하시고, 또 버스 안에서가 워낙 재밌기 때문에 힘든 걸 모르고 열심히 하게 돼요. 그리고 스코어적으로도, 처음 듣는 숫자들을 듣게 되니까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파묘> 영화에 대한 반응만큼, 힙하고 젊은 무당 ‘화림’ 캐릭터에 대한 반응이 뜨거워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와, 영화 완성본을 봤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요.
시나리오에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포스가 있는 캐릭터였어요. 그래서 포스, 아우라를 어설프지 않게 표현하고픈 욕심이 있었고요. 칭찬 등의 반응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어요. <파묘>는 시나리오부터 상상을 계속하면서 읽었는데, 감독님의 전작을 좋아했기 때문에 감독님의 손길을 거치면 좋은 장면이 탄생할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리고 나온 영화를 보니까 감독님이 디테일이 좋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고요. 긴 러닝타임인데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화림' 캐릭터는 무당이고, 다소 센 캐릭터에요. 처음 <파묘> 제안을 받았을 때, 두려움이나 거부감도 있으셨나요.
전혀 없었고요, 개인적으로 오컬트를 좋아합니다. <심야괴담회> 열심히 보고요. (웃음). 오히려 이런 역할을 저에게 제안해 주셔서 반가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무당 연기를 위해 많은 연습을 하신 걸로 알아요. 실제 굿을 참관하기도 하고, 무속인 분의 집에 찾아가서 자문을 구했다고 들었는데요. 화림을 연기하며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저는 사실 그런 포스, 아우라는 사소한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굿과 같은 퍼포먼스를 잘 해내는 것도 중요했지만, 디테일한 동작들을 잘 준비하려고 했어요. 무속인들이 굿을 준비할 때 몸을 살짝 떤다거나, 목을 살짝 꺾는다거나, 칼을 집는 동작이라거나, 깃발을 뽑는 자세라던가. 그런 것들이 제가 무속인분들의 굿을 보러 다니면서 관찰했던 부분이에요. 또, 그분들을 보니까 휘파람을 부시더라고요. 그래서 화림이가 휘파람을 부는 장면은 원래 (시나리오 상에는) 없었는데, 제가 넣어보면 어떻겠냐고 현장에서 의견을 내서 추가하게 됐어요. 그런 사소한 디테일들에 집중을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촬영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선생님들(무속인)을 만나서 얘기를 듣고, 동작들을 배웠어요. 무속인이 신을 받았을 때마다 다른 동작을 하거든요. 장군 신을 받았을 때는 말을 타듯이 다그닥다그닥 뛴다든지 하는. 그런 행위들의 의미에 대해서 더 알려고 했어요. 굿을 하다가 칼로 긁는 이유, 피를 먹는 이유에 대해 알려고 했고. (얼굴에 검은 숯을 칠하는 장면은) 그게, 신을 받으면 불속에 손을 집어넣어도 상처가 나지 않는다는 위용을 보여주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도 많이 봤어요. 대살굿 같은 터프한 굿은 실제로도 잘 안 한다고 들어서, 실제로 볼 수가 없으니까.

또, 무속인의 개인 번호를 받아서 지속적으로 연락을 했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주로 어떨 때, 어떤 자문을 구하셨나요?
선생님들이 워낙 바쁘신 분들이라, 모든 현장에 계속 나와 계실 수는 없었어요. 굿이나 경문 외는 장면 등 큰 장면을 제외하고는 현장에 안 계셨는데, 제가 혼자 해야 됐을 때 불안한 순간이 찾아오면 무조건 전화를 했어요. (앞서 말한 휘파람 장면에도) 무속인분들마다 휘파람을 부는 방식이 다른데, 저는 귀쪽을 잡고 조금 더 집중하는 느낌을 내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게 괜찮은 건지를 전화로 확인했어요. 영상통화를 하기도 하면서, 아주 사소한 것들을 다 물어봤어요.

이도현 배우가 연기한 ‘봉길’ 캐릭터는 장재현 감독이 <사바하> 촬영 중 만난 무속인으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렇다면, ‘화림’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있을까요?
(제가 지도를 받은) 고춘자 선생님의 며느님인 다영 선생님을 바탕으로 (화림 캐릭터를) 잡으셨다고 들었어요. 저도 다영 선생님을 제일 많이 관찰했고, 퍼포먼스를 많이 참고하려 했어요. 고춘자 선생님은 훨씬 동작도 간결하고, 예스러운 부분이 많아요. 반면 다영 선생님은 저와 나이대도 비슷하고요.
대살굿을 하는 김고은 배우의 연기를 보고 ‘정말 접신한 거 아냐?’라는 반응도 있었어요.
(부끄러워하며) 너무 기분이 좋고 다행스러워요. 어색하게 표현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 안도감이 들어요. 그리고 실제 연기하면서 접신했다는 느낌보다는, 흥을 받게 되더라고요. 징이나 북을 쳐주시는 분들이 점점 더 세게 쳐주시고, ‘받아라 받아라!’하는 게 있는데 실제로 그러면 힘이 나고 파이팅이 되고, 흥분이 되더라고요.
무속인 분이 “김고은 씨는 우리 류는 아니다”라고 했다던데. (웃음)
저도 (촬영 전에는) 실제 굿이고, 경문도 진짜 경문이니까 정말 신을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요. 또 제가 <심야괴담회>를 좋아해가지고, 그런 걸 보면 사람들이 너무 쉽게 귀신을 보잖아요. 그래서 저한테도 그런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했는데, (무속인 분들이) '걱정할 거 전혀 없다, (너는) 못 볼 거야' 그러셨어요. 그리고 현장이 너무 유쾌해가지고, 촬영하면서 무서웠던 순간은 진짜 없었어요. (대살굿 장면에서) 돼지를 실제로 그렇게 본 적이 없으니까 신기하다, 이런 거였지.

‘혼 부르기’ 장면에서 화림이가 외는 경문은 3~4장에 달하는 분량이었다고 들었는데요. 경문은 어떻게 외우셨나요.
경문을 보면 스토리가 있어요. 자세히 보면, 처음에는 이제 여기가 어디고 이렇게 주소 이런 거 얘기하고 어디 박 씨가 어쩌고저쩌고 얘기를 하다가, 오소 오소 떠들지 말고 오시라 오시라 뭐 때문에 못 오시냐 신발이 없어서 못 오시는 거냐 목이 말라서 못 오시는 거냐, 이런 식으로 그거에 대해서 막 나열을 해요. 물론 어려웠습니다.
화림이는 경문을 외울 때 마치 노래를 하는 듯, 음을 붙여서 부르잖아요. 실제로 김고은 배우가 노래를 할 때와는 다른, 매우 허스키한 음색이 나와서 놀랐어요. 이 장면은 어떻게 준비하셨나요.
사실 그 장면이 처음부터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 장면이에요. '여기서 어설프면 진짜 끝이다'라는 생각으로.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촬영이 잡히면 미뤄졌으면 좋겠고, 도망치고 싶고, 그랬던 장면이에요. 실제로 무속인들이 퍼포먼스를 하기 전에 경문을 쫙 읊는 것을 봤을 때 정말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음 타는 것 하며, 목소리 톤 하며. 그런데 (저렇게 읊는 건) 정말 내공인데, 내가 아무리 연습한다고 될까 싶었어요. 실제 무속인 분들은 경문을 읊을 때마다 음도 다 다르게 타세요. 그게 애드립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 애드립이 아무리 연습해도 도저히 안 돼서, 선생님께 부탁을 드렸어요. 경문을 통째로 외우는 것을 녹음해달라, 그러면 제가 그 음을 노래처럼 외우겠다, 해서 통째로 외워서 불렀어요.
<파묘>를 찍기 전과 후, 무속신앙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나요?
굿은 한 번에 4~5시간 동안 퍼포먼스를 해요. 그런데 영화는 테이크로 찍으니까, 저는 몇 분 정도 그렇게 퍼포먼스를 하는 데도 너무나 숨이 차고 어질어질했어요. 그런데 (제가 배운) 고춘자 선생님은 연세가 있으신데도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시거든요. 그래서 무속인 분들이 정말 ‘찐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파묘>의 주인공 4인방은 ‘묘벤저스’라고도 불릴 만큼 그 케미가 인상적인데요. 영화 촬영 현장에서 최민식, 유해진, 이도현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괜히 하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파묘>의 주요 배경이 된 묘터가 기장이어서, 기장에서 두 달간 촬영을 했는데, 마치 여행 간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많이 웃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정적이 있는 순간이 없었어요. 티키타카가 굉장히 잘 됐고, 감독님을 포함해서 다들 유머에 자부심이 있으셔서 배가 찢어질 정도로 많이 웃었어요. 또 해진 선배님도 그렇고 민식 선배님도 그렇고, 제가 테이크를 한번 할 때마다 모니터를 보면서 뭐가 좋았고, 이게 좋았고 등등을 매 테이크마다 해주셨어요. 제가 더 과감한 연기를 할 수 있게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어요. 봉길 역의 이도현 배우와는 촬영 전부터 무속인 선생님 집에서 (이도현 배우와) 같이 연습을 했기 때문에, 친해진 상태로 촬영할 수 있었어요. 화림이가 말하지 않아도 봉길이가 알아서 해주는 그런 지점들이, 분명 사전에 대화를 나눈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자연스럽게 붙었던 것 같아요.
<파묘>의 후반부, 병실에서 봉길이를 두고 굿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화림이와 함께 굿하는 무당으로 등장하는 김선영, 김지안 배우도 만만치 않게 신들린 연기를 펼치는데요. 실제로 두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요.
그 장면을 찍을 때는 쾌감이 있었어요. 선영 선배님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거였는데, 서로 물리듯이 연속적으로 (굿을) 하는 게 흥분될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그 장면에서 사투리를 썼어야 했는데, 마침 다영 선생님이 그쪽 사투리를 쓰셔서 전화로 코칭을 받았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은 영화나 드라마 속 연기에 대한 반응을 항상 마주하고, 항상 결과물에 대한 평가를 받는 입장이잖아요. 김고은 씨에게,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서 감사해요. 꼭 배우이기 때문에 항상 결과물에 대해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든 직업이 평가를 받으니까요. 당연히 좋은 평가를 최선을 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많은 분들이 모여서 한 작품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요.
김고은 배우는 멜로부터 오컬트, 뮤지컬까지 필모그래피의 장르가 굉장히 다양해요. 이렇게 본인의 연기 폭이 넓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더 다양하게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단정 짓지 않는 게 큰 것 같아요. (어떤 작품을 선택할 때) 뭐는 아니고, 안 하고 싶고, 그런 게 없어요. 모든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비슷한 결의 작품이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보이지 않은 모습을 끄집어내는 도박 같은 선택을 잘 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현실도 그런데, 내 안에서도 한계를 지으면 정말 한정적인 작품만 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와 <검은 사제들> 그리고 <파묘>까지, 장재현 감독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인기를 끌며 ‘장재현 유니버스’를 부르짖는 팬들도 많아졌어요. 만약 화림이가 <사바하>나 <검은 사제들> 속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으세요?
장재현 감독님의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했던 <사바하>의 박정민 배우는 어떨까요. 그리고 <검은사제들>의 사제 팀이랑 같이 퇴마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요?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