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가장 큰 목표는 아마 아카데미(오스카)의 최고상인 작품상 수상작을 배출하는 것일 터다.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독일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가 작품상 후보로 지명되어 큰 기대를 걸었으나, 아쉽게도 작품상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돌아갔다. 2022년에는 넷플릭스 영화 <파워 오브 도그>가 작품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됐으나, 아쉽게도 애플tv+ <코다>에게 자리를 내줬다. 따라서 ‘OTT 플랫폼 최초 아카데미 작품상 배출’이라는 타이틀은 애플tv+에 돌아간 상태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올해도 여전히 OTT 플랫폼 중 가장 많은 아카데미 후보작을 배출하며 할리우드 영화 스튜디오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작품상 후보작은 물론, 주연상·촬영상·애니메이션상 등 다양한 부문의 후보작을 배출했으니, 지금 바로 집에서 넷플릭스로 감상할 수 있는 오스카 후보작들을 만나보자. 3월 10일 아카데미 시상식 전까지 모두 감상한 후, 나만의 수상작을 뽑아보는 것도 좋겠다.
마에스트로 번스타인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촬영상, 분장상, 음향상 후보

올해 아카데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될 넷플릭스 작품은 단연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이다. 작품상을 포함해 무려 7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브래들리 쿠퍼가 감독과 각본, 주연, 제작을 겸한 <마에스트로 번스타인>은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삶을 담은 작품이다. 영화는 흑백과 컬러를 교차하며 레너드 번스타인의 청년 시절과 노년 시절을 담아냈는데, 실존 인물과 유사한 모습으로 분장한 브래들리 쿠퍼의 호연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브래들리 쿠퍼는 남우주연상 후보로, 레너드 번스타인의 아내 펠리시아 몬테알레그레 콘 번스타인 역을 맡은 캐리 멀리건은 여우주연상 후보로 나란히 지명되며 올해 넷플릭스 작품 중 과연 최고의 아웃풋을 뽐낸다.
러스틴
남우주연상 후보

<러스틴>은 오바마 부부의 프로덕션 하이어 그라운드가 제작한 작품이다. (후에 언급할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작품 <아메리칸 심포니> 역시 하이어 그라운드가 제작했다.) <러스틴>은 인권운동가 베이어드 러스틴의 삶을 극화한 영화로, 그가 마틴 루터 킹과 함께 1963년의 워싱턴 행진을 이끌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베이어드 러스틴은 미국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라며 “그가 없었다면 나는 대통령을 할 수 없었다”라고 러스틴에 대한 존경을 밝힌 바 있다.
베이어드 러스틴을 연기한 배우 콜맨 도밍고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콜맨 도밍고는 베이어드 러스틴과 뛰어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데, 그가 러스틴의 영상을 보며 연구한 덕분이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
여우주연상 후보, 여우조연상 후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감동적인 영화는 여우주연상 후보와 여우조연상 후보를 나란히 배출했다. ‘나이애드’를 연기한 1958년생 아네트 베닝과 ‘보니’를 연기한 62년생 조디 포스터가 그 주인공이다. <나이애드의 다섯 번째 파도>는 60이 넘은 나이애드가 쿠바에서 플로리다까지, 무려 약 180km의 거리를 수영으로 횡단하기를 도전하는 이야기인데, 실화의 감동만큼이나 나이애드와 그의 코치 보니의 관계가 뭉클함을 자아낸다. 실제로 60대 중반이 된 아네트 베닝은 나이애드를 연기하기 위해 1년 동안 하루 8시간씩 수영 훈련을 받았다고 하니, 그의 삶과 영화의 내용이 꼭 일치하는 셈이다.
공작
촬영상 후보

흑백 영화 <공작>은 촬영상 부문 후보로 지명되었다. 칠레 출신의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공작>은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한데, 영화는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를 뱀파이어에 빗대어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다.
<공작>의 촬영감독은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 <파 프롬 헤븐> <캐롤> 등을 촬영한 에드워드 래크먼이다. 애드워드 래크먼과 파블로 라라인 감독은 <공작>이 고전 뱀파이어 영화와 같은 느낌이 나길 원했고, 독일의 아리(ARRI) 사에서 맞춤 제작한 ALEXA 모노크롬 시네마 카메라를 사용했다. <공작>에는 사람의 심장으로 스무디(!)를 만드는 장면 등 고어 요소가 많아 쉽사리 도전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흑백 화면인 덕에 고어에 익숙지 않은 관객들도 ‘찍먹’ 해볼 법하니, 아카데미 시상식 전 넷플릭스에서 감상해 보자.
아메리칸 심포니
주제가상 후보 – ‘It Never Went Away’

전통적인 클래식의 영역이었던 교향곡에 도전하는 재즈 아티스트, 그리고 암에 걸린 그의 젊은 아내. 극영화의 플롯 같지만, 미국 인기 아티스트 존 바티스트(Jon Batiste)의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심포니>의 내용이다. 존 바티스트는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소울>의 사운드트랙으로 음악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이는 흑인 작곡가가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두 번째 사례다.
존 바티스트는 그의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심포니>의 주제가 ‘It Never Went Away’로 두 번째 아카데미 수상을 노린다. 그는 이 주제가를 암 투병 중인 그의 아내 슐라이저를 위해 만들었는데, 노래의 가사는 다큐멘터리의 주제와 일맥상통한다. 존 바티스트는 작은 하루의 조각들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인생이 된다는 믿음으로, 마치 하나의 교향곡을 만드는 것처럼 살아간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분장상, 국제영화상 후보

또 하나의 실화 기반 넷플릭스 영화가 아카데미 수상을 노린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스페인 작품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영화상과 분장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는 1972년 안데스산맥 비행기 추락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데, 사고 72일 후에도 탑승자 45명 중 16명이 생존해 ‘안데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사건이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은 <얼라이브> 등으로 이미 영화화된 적 있는 이 사건을 다시 영화화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갈등과 내면, 연대를 담아냈다. 또, 시체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아카데미 분장상 후보에 오르게 되었다. 영화의 제작 과정은 넷플릭스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그 산의 우리는 누구였을까?>에 담겨 있다.
니모나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

개성 있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싶다면, <니모나>가 제격이다. <니모나>는 애니메이션의 영웅 서사에 대한 일종의 반기로 탄생한 듯, 주인공 ‘니모나’는 빌런이자 히어로다. 또, 중세와 미래를 합친 듯한 배경이 독특하고 펑키해 보는 맛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니모나의 발랄한 매력에 빠져 영화를 어느새 다 감상하고 나면 은근히 묵직한 주제가 와닿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포인트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단편영화상 후보

2023년, 웨스 앤더슨은 로얄드 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단편 4개를 연달아 공개했다. 4개의 단편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백조> <쥐잡이 사내> <독> 중 아카데미 시상식의 단편영화상 후보에 오른 작품은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인데, 단편치고는 조금 긴(혹은 중편이라고 말하는 게 더욱 적절한) 37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그러나 37분의 러닝타임은 단 1초의 낭비도 없이 빼곡한 대사와 기상천외한 미쟝센으로 가득하니, 마치 할아버지에게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오롯이 빠져들어 보자.
디 애프터
단편영화상 후보

압축적인 서사의 파괴력이 빛나는 <디 애프터>는 짧기에 더 여운이 큰 작품이다. <디 애프터>의 주인공 다요는 눈앞에서 딸과 아내를 잃고, 택시를 운전하며 잠잠히 슬픔을 삭인다. 18분의 러닝타임이 서사에 이입하기에 짧은 시간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주연 데이빗 오예로워의 연기가 모든 것을 납득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