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에 톰 크루즈가 있다면, 홍콩에는 유덕화가 있다. 데뷔 이래 급속도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현재까지 단 한 번도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팬서비스로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두 사람 모두 각각 영화와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1981년에 데뷔했다는 것도 닮았으며, 나이는 1962년생 톰 크루즈보다 1961년생 유덕화가 한 살 많다. 현재 환갑의 나이를 넘겼음에도, 40년 넘게 활력 넘치는 ‘청년’의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대중과 소통하며 근사하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배우’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오토바이와 청재킷’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평행이론을 가지고 있다. 당시 전세계적인 메가 히트작 <탑건>(1986)의 톰 크루즈는 ‘질주하는 청춘’이라는 컨셉을 공유하며 <천장지구>(1990)의 유덕화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그 이미지가 한국으로 들어와 <비트>의 정우성이 됐다. 그 또한 단 한 번도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왕가위의 데뷔작 <열혈남아>(1989)에서 유덕화가 장만옥을 만나러 란타우섬에 가게 되면서, 바로 그 <탑건>의 주제곡인 ‘Take My Breath Away’의 광둥어 번안 버전이 흐르는 가운데 공중전화박스에서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한편으로 ‘윗사람 말 잘 안 듣는’ 점도 닮았다. 나이로는 톰 크루즈와 동갑인 양조위가 <탑건>이 홍콩 박스오피스를 점령했던 그때, 관금붕 감독의 <지하정>(1986)에서 ‘침잠하는 청춘’을 연기했다는 점을 떠올려 봐도, 양조위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그처럼 양조위와 비교해 유덕화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캐릭터였다는 점이다. 무례하고 자기중심적인 캐릭터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할 말 하지 않고는 잠시도 못 견디는 진취적인 캐릭터였다는 얘기다.


<무간도> 이전 유덕화와 양조위의 절묘한 호흡을 보여줬던 <오호장>(1991)에서 두 사람은 공금을 횡령한 다섯 경찰 중 막내들로 나왔다. 나중에 문제가 불거지면서 사건을 해결해야 할 시점에 양조위가 “캐나다에 있는 동생에게 돈을 보내줘야 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울먹이는 반면, 유덕화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내가 다 책임지면 될 거 아냐!”라고 일단 내질렀다. 물론 <오호장>을 포함해 여러 영화에서, 그는 진짜 다 책임지는 남자이긴 했다. 앞서 <열혈남아>(1989)에서는 또 어땠나. 의리와 사랑 앞에 일단 저질러놓고 보는 삼합회의 혈기왕성한 조직원으로 큰 인상을 남겼다. 아끼는 동생이나 형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거나 잔뜩 얻어맞고 돌아오면, 그는 자초지종을 듣기도 전에 일단 병이나 칼을 들고 적진으로 달려갔다.


주윤발과 장국영, 그리고 양조위와 비교해 유덕화가 월등한 무언가를 성취한 배우였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홍콩영화 안에서 하나의 ‘장르’가 된 사람은 아마도 그가 유일할 것이다. 앞서 줄곧 얘기한 것처럼, 그는 홍콩 누아르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서 청재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탄 삼합회의 잘생긴 똘마니 혹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반항적 터프가이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열혈남아>에서 비 오는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돈 없는 신랑인 후배(황빈)의 장인어른과 싸우기까지 하는 창파(장학우)의 눈물겨운 허세를, 마치 그가 자신의 친동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품어주는 아화(유덕화)는 유덕화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대표적인 캐릭터다. 왕가위가 벼르고 벼르던 데뷔작이었던 만큼 명장면도 즐비하다. 유덕화와 장만옥의 풋풋한 첫 번째 데이트가 벌어지기 직전 부상을 당해 들이닥친 창파의 복수를 위해, 유덕화가 포장마차로 들이닥쳐 벌어지는 아수라장 액션신은 단연 압권이다. 유덕화의 눈빛 클로즈업과 건달(진지회)이 희롱하는 고양이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섬뜩한 칼의 섬광과 건조한 형광등 불빛이 비닐 포장마차 안을 휘젓는다. 설명하기 힘든 자극과 흥분으로 얼얼해진다. 홍콩영화에 대한 연구서 「플래닛 홍콩」을 쓴 데이비드 보드웰은 <열혈남아>에 대해 “포스트모던한 홍콩의 도시 문화와 1997년 반환 이전의 아노미 상태가 조화를 이룬 매력적인 작품”이라며 “이때부터 왕가위는 홍콩에서 가장 모험적이고 예술적인 작가였다"라고 썼다.

<열혈남아>와 <천장지구>같은 대표작을 지나 <지존무상>(1989), <정전자>(1989) 등에서도 유덕화는 무모하리만치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삼합회 조직원으로 큰 인상을 남겼다. 게다가 그는 언제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아우라를 드러냈다. 실질적인 영화 데뷔작이나 다름없는 허안화의 <투분노해>(1982)에서도 죽고 <복수의 만가>(1989), <천여지>(1994) 등을 비롯해 세월이 흘러 <무간도> 시리즈에서 죽었다. 돌이켜 보면 그는 언제나 죽음을 예감하고서도 의리와 사랑을 위해 결코 뒤돌아보지 않고 들이대던 ‘죽어야 사는 남자’였다. 이른바 ‘고혹자’(古惑仔, 건달) 스타일의 원형이 된 배우로서, 그렇게 홍콩영화 안에서 ‘유덕화’라는 하나의 장르가 생겨난 것이다. 역시 그 최고봉은 아무래도 <천장지구>다. 일단 OST로 관객의 감각을 ‘압살’한다. 홍콩을 대표하는 록밴드 ‘비욘드’의 ‘칠흑적공간’(광동어 버전은 ‘회색궤적’)이 유덕화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옥상에서 맥주를 마실 때, 역시 비욘드의 ‘단잠적온유’(광동어 버전은 ‘미증후회’)가 연애를 반대하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유학을 떠나려는 오천련의 집 앞으로 유덕화가 등장할 때, 원봉영의 ‘천약유정’이 오천련과의 성당 즉석 결혼식을 막 끝내고 복수를 하기 위해 센트럴의 가스등 계단을 거슬러 올라갈 때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OST와 서사의 정서가 결합하는 극락의 경지를 맛보게 된다.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인 2000년대 들어서도, 유덕화는 <무간도> 시리즈를 비롯해 계속 승승장구했다. 펑샤오강의 <천하무적>(2004)에서는 유덕화가 더벅머리로 출연해 마치 무협영화를 보는 듯 신기에 가까운 소매치기 기술을 선보였다. 홍콩 최고의 백만장자 사업가로 출연한 <라스트 프로포즈>(2009)에는 세련된 신사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어쩌면 당시 <무간도> 이후 그의 최고작이라 부를만한 <문도>(2007)에서는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마약 조직의 보스로 나왔다.(국내에는 <무간도>의 인기에 힘입어, 전혀 관계없는 영화임에도 <무간도4-문도>로 개봉했다) 온통 백발을 해서는 가족과 조직 사이에서 고뇌하는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과거 홍콩 무협영화의 전설 장철 감독의 <자마>(1973)를 리메이크한 진가신의 <명장>(2007)에서는 사랑하는 여인을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도적단의 우두머리가 된 남자를 역시 탁월하게 연기해냈다.

조자룡을 연기한 이인항의 <삼국지-용의 부활>(2008)에서는 주변의 반대를 만류하고 와이어 없이 거의 모든 액션을 소화했고, 서극의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2010)은 실존인물인 적인걸이 ‘뚱보’였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멋진 ‘중국판 셜록 홈스’로 변신했으며, 허안화의 <심플 라이프>(2011)에서는 평소의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의 영화제작자로 등장했다. 영화 속에서 한 여자가 허름한 점퍼를 걸친 그를 보고서 에어컨 수리공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유덕화가 짧게 등장하긴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 유덕화의 마누라가 되는 게 꿈이었던 소녀 린전신(송운화)과 학교를 주름잡는 소년 쉬타이위(왕대륙)의 사랑을 그린 <나의 소녀시대>(2016)도 기억해 둘 만하다. <천여지>의 보통화 주제곡이었던, “철없는 시절 꿈을 쫓길 사랑했고, 단지 앞을 향해 날아가고 싶어 했지”라고 노래하는 유덕화의 노래 ‘망정수’(忘情水)를 통해 대만에서 유덕화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게 된다. 여기서 오토바이를 탄 왕대륙의 모습은 영락없이 유덕화에 대한 오마주다.


더 나아가 <나의 소녀시대>는 유덕화의 팬들에게는 감동의 도가니였을 것이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유덕화는 영화의 마지막이면 언제나 죽어 없어지는 존재였는데, <나의 소녀시대>에서는 마지막에 가서야 등장했기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다. 지난 시간 그 수많은 영화 속 죽음을 딛고 성장하여 기어이 살아남은 중화권 최고의 배우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바로 지금 <골드핑거>의 유덕화에게도 이어진다. 언제나 영화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워커홀릭 캐릭터였던 그가 ‘일시 멈춤’ 한다. <골드핑거>는 양조위의 변신만큼이나 유덕화의 변신으로도 가슴 뭉클하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와 함께 40여 년의 세월을 행복하게 살았다.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