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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와 유덕화의 40년, 〈골드핑거〉가 그려내는 홍콩영화의 화양연화

주성철편집장

 

<골드핑거>의 가장 중요한 감상 포인트는 <무간도>(2003) 이후 양조위와 유덕화의 20년 만의 만남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무간도>에서 두 배우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안에서 별로 마주치지 않았다. <무간도> 1편의 진영인(양조위)과 유건명(유덕화)은 초반부에 레코드 샵에서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채금의 ‘피유망적시광’(被遺忘的時光)을 나란히 앉아 함께 들었다. 중반부에 서로 쫓기고 쫓길 때도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마지막에 이르러 경찰서에서 만나게 될 때도 일단 서로 모른 채 만났다. 그 두 사람이 앞서 레코드 샵에서 만난 적 있다는 사실도 오직 관객만 알았다. 그로부터 훨씬 더 이전, 어린 진영인(여문락)과 유건명(진관희)이 경찰학교에서 만날 때도 시선만 교환했을 뿐 서로의 정체를 몰랐었다. 피유망적시광은 ‘잊혀진 시간들’이라는 뜻으로 그처럼 서로 모른 채 경찰과 삼합회 조직원이라는, 원치 않는 다른 이의 삶을 살면서 살아온 허무한 시간을 의미한다.

 

〈오호장〉(1991)
〈오호장〉(1991)
〈무간도〉(2003)의 양조위와 유덕화
〈무간도〉(2003)의 양조위와 유덕화

 

<골드핑거>는 <무간도>의 설정을 뒤집으며 시작한다. <골드핑거>의 장문강 감독이 맥조휘(<무간도> 삼부작 감독)와 더불어 과거 <무간도> 시리즈의 공동 각본가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운 대목이다. 어쨌건 오래도록 홍콩영화에 애정을 가져온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유덕화가 뜨거운 불처럼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다혈질의 배우라면, 양조위는 잔잔한 물처럼 말을 아끼고 가만히 관찰하는 소심한 배우다. 가령 <무간도> 이전에 두 배우가 함께 출연한 <오호장>(1991)에서도 그들은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천숙(양가인), 아화(묘교위), 아방(황일화)를 비롯해 경찰 막내 동기인 자명(유덕화)과 두피(양조위)가 포함된 다섯 명의 경찰팀이 한 범죄자의 돈을 몰래 횡령하면서 위기에 처한다. 발각될 위기에 처해서 다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성질 급한 유덕화는 마땅한 대책도 없으면서 “내가 다 책임질게!”라며 나서고, 양조위는 “캐나다로 떠난 동생에게 보낼 돈이 필요했어”라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특유의 슬픈 표정부터 짓는다. 그 두 배우는 홍콩영화 안에서 오랜 시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골드핑거>는 기존의 두 배우 캐릭터를 완전히 뒤집어 캐스팅한 것이다.

 


 

<골드핑거>는 홍콩의 1980년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청이옌(양조위)은 홍콩 경제를 주무르는 황금제국 ‘카르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카르멘 방역회사, 카르멘 부동산, 카르멘 여행사, 카르멘 운수, 카르멘 제지 등 카르멘이라는 이름으로 수십 개의 회사를 만들어 막강한 부를 축적한다. 류치위안(유덕화)은 그동안 자행된 카르멘 그룹의 불법적인 일들을 수사하는 염정공서, 즉 홍콩 반부패수사국의 수사관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홍콩 정재계에서 카르멘의 뇌물을 받아먹지 않은 이들이 없기에, 20여 년의 세월 동안 여러 번 법정에 세우는 데도 청이옌은 매번 무죄로 풀려난다. 그처럼 2조 홍콩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수사가 계속되고, 청이옌과 류치위안의 물고 물리는 관계는 오랜 시간 계속된다.

 

 

일단 양조위의 팬이라면, 첫 장면부터 감격스럽다. 바로 영화가 양조위의 독백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치 <대부2>(1978) 도입부에서, 어린 비토 콜레오네(로버트 드 니로)가 시칠리아에서 뉴욕으로 오면서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며 미래를 꿈꿨던 것처럼, 청이옌은 “난 이곳에 내 운을 맡겨보기로 했다”라며 ‘기회의 땅’ 홍콩으로 배를 타고 온다. <중경삼림>(1995), <해피투게더>(1998), <화양연화>(2000), <일대종사>(2013) 등 양조위가 주연을 맡았던 왕가위 감독의 걸작들은, 언제나 양조위의 그 담담하고 근사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했다. 그처럼 <골드핑거>에서도 맨 처음 홍콩에 도착한 양조위는 얼마간 우리가 아는 그 양조위로 생활한다. 하지만 그가 ‘돈의 맛’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바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씨클로>(1995), <암화>(1998), <상성>(2006) 등 양조위는 지금껏 몇몇 작품을 통해 악역을 연기한 바 있지만, 아마도 <골드핑거>의 양조위야말로 빌런 중의 빌런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밝히는 그는 자신의 악행에 무감한 인물이다. 마치 서커스단의 동물처럼 팔과 허리에 쇠사슬을 감은 채 체포되는 모습은, 양조위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충격적인 이미지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그를 조사하기 위해 선발된 113명의 회계사들을 양옆에 두고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지나가는 모습, 상대를 속이기 위해 자해공갈까지 하는 양조위의 모습까지 그야말로 충격의 연속이다.

 

 

유덕화라고 해서, 양조위와 달리 악역을 가끔 연기했던 것은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단 하나의 공통점은 있다. 바로 그는 언제나 영화에서 바빴다는 것. 양조위와 달리 유덕화에게 기다림은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면 (물론 ‘넘사벽’ 장국영을 제외하고 그 둘만 놓고 보면) 왕가위 영화에서 유덕화가 떠나고 양조위가 기회를 얻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것일지 모른다. 그렇게 유덕화는 좋은 역할일 때도 바쁘고 나쁜 역할일 때도 바쁘다. 심지어 영화 안의 캐릭터도 바쁘고, 영화 밖의 자연인 유덕화도 너무너무 바쁘다. 동세대 배우들 중 홍콩과 중국 본토를 오가며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하고 있기도 하고, 대만 영화 <나의 소녀시대>(2016)에 특별 출연한 적도 있으며, 가수 활동은 또 어떤가. 게다가 ‘중국판 틱톡’ 더우인(Douyin)에서 3천만 명 넘게 시청한 ‘라방’을 통해 1백억 원에 가까운 수익을 올릴 정도로 그는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골드핑거>의 수사관 유덕화도 부지런하기 이를 데 없다. 양조위를 체포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하던 중 모처럼 시간을 내서 아내와 만나게 되는데, 그때도 계속 그를 호출하는 삐삐가 울려 어쩔 수 없이 아내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안은 채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런 유덕화가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가장 차분하고 냉철한 모습으로 출연한 영화가 <골드핑거>다. 얼핏 <무간도>에서도 그런 모습이었으나, 어느덧 자신의 본체를 버리고 경찰이 되고자 했던 유건명(유덕화)은 이중인격자의 전형이었다. <골드핑거>에서 유덕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무선호출기의 배터리를 빼내고 아내와 외식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드디어 그가 일손을 놓고 가족과 함께 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 영화의 또 다른 감동적인 서사가 완성된다. 왜냐하면 <천장지구>(1990)가 대표적인데, 유덕화는 ‘내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며 가족과 친구의 만류도 뿌리치고 ‘생즉사 사즉생’의 태도로 언제나 영화의 마지막에 죽어 없어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가족을 위해, 내 고향 홍콩을 위해 살고자 결심한다. 지난 시간 그 수많은 영화 속 죽음을 딛고 성장하여 기어이 살아남은 화어권 최고의 배우가 거기 있다.

 

 

<골드핑거>에서 홍콩 역사상 가장 중요한 분기점으로 묘사되는 때가 바로 1982년이다. 우리가 모두가 알고 있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라는 거대한 사건, 바로 그 영국과 중국의 홍콩반환 협상이 재개된 해가 바로 1982년이다. 바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운명을 결정지은 해였다고 할 수 있다. 홍콩 최대의 영국계 기업은 회사 이전을 결정했고, 홍콩의 항셍지수가 폭락하고 홍콩달러의 가치도 폭락하면서 여러 은행이 도산했다. 어쩌면 왕가위 감독이 <화양연화>(2000)로 묘사했던 1960년대 이후 초고속 성장을 해오던 홍콩이 기나긴 침체의 길목으로 접어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팽배했던 때였다.

 

〈83 신조협려〉의 유덕화(왼쪽)와 〈86 의천도룡기〉의 양조위
〈83 신조협려〉의 유덕화(왼쪽)와 〈86 의천도룡기〉의 양조위

 

공교롭게도 1982년은 바로 양조위와 유덕화가 데뷔한 해이기도 하다. 유덕화는 허안화 감독의 <투분노해>(1982), 양조위는 TVB TV시리즈 <천룡팔부-허죽전기>(1982)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한 살 많은 1961년생 유덕화가 TV 시리즈 <83 신조협려>, 그리고 친구인 주성치를 따라서 방송국 오디션을 보러 갔다가 탤런트가 된 1962년생 양조위는 <86 의천도룡기>를 통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처럼 홍콩의 위기가 언제 시작됐나, 라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조망하는 영화에서 1982년은 위기의 시작이라기보다는 홍콩영화 최전성기의 서막을 연 해라고도 할 수 있다.(홍콩영화 역대 박스오피스 최강자라 할 수 있는, 홍콩영화의 전과 후를 완전히 바꿔놓은 영화라 할 수 있는 <최가박당> 시리즈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듬해인 1983년이다) 그러한 테마는 유덕화와 양조위가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실제 1982년에 데뷔한 두 배우가 무려 40년의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났다. 보잘것없던 신인 배우 두 사람이 40년 뒤의 이런 모습을 감히 상상할 수나 있었을까. 그렇게 그들은 열심히 멋지게 살아왔다. 말하자면 <골드핑거>는 유덕화와 양조위가 지금도 최고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성립하는 영화다. 이 어찌 감동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유덕화와 함께라면, 그리고 양조위와 함께라면, 홍콩은 여전히 홍콩이다.

 


〈골드핑거〉촬영지 타이퀀 센터 (예고편 캡처)
〈골드핑거〉촬영지 타이퀀 센터 (예고편 캡처)

<골드핑거> 속 홍콩, 센트럴 타이퀀 센터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골드핑거>에는 故 장국영을 떠오르게 하는 만다린오리엔탈호텔부터, 1985년에 노만 포스터의 설계로 지어진 외형 노출 양식의 홍콩상하이은행(HSBC) 본사가 청이옌(양조위)이 일하는 사무실 창밖으로 보인다. 그만큼 그가 승승장구하며 단숨에 센트럴 중심가에 진입해 홍콩의 유력 인사가 됐다는 얘기.

 

홍콩상하이은행과 오른쪽 만다린오리엔탈호텔의 낮과 밤
홍콩상하이은행과 오른쪽 만다린오리엔탈호텔의 낮과 밤

 

영화에서 더 눈에 띄는 건물은 바로 센트럴의 타이퀀 센터다. 우리가 교도소를 ‘큰 집’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홍콩도 그렇다. 큰 집이라는 뜻의 대관(大館), 즉 타이퀀(Tai Kwun) 센터는 1850년대 홍콩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중앙경찰서, 빅토리아감독, 법원 등의 관공서를 한데 모아놓은 곳으로, 오랜 시간 사용되지 않다가 1995년 문화재로 지정된 후 2008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키자는 홍콩정부의 결정에 따라 10년간 리모델링을 거쳐 재탄생했다. 아마도 이 기간 중 홍콩 센트럴을 찾은 사람들이라면 굳게 닫혀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이곳이 내내 궁금했으리라. 지은 지 170여 년이 지났지만 경찰서 본관을 비롯해 부속 건물들 대부분이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도시재생사업의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1995년 문화재 지정 이전에도 수많은 홍콩영화에서 경찰서로 등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영웅본색>(1986)에서 장국영이 근무하던 경찰서가 바로 이곳이었다.

 

샤넬 제니가 내려다보고 있는 타이퀀 센터
샤넬 제니가 내려다보고 있는 타이퀀 센터

<골드핑거>에서는 유덕화가 일하는 반부패수사국(ICAC)이 1974년 설립된 것으로 나오는데, 그 ICAC 건물 장면을 바로 현재의 타이퀀 센터에서 촬영했다. 홍콩 내에서 일종의 ‘범죄와의 전쟁’이 강력하게 시행되고 삼합회 조직원들이 이곳을 찾아와 무력시위를 벌이는 장면이다(위 예고편 캡처 장면 참고). 타이퀀 센터 자체가 워낙 넓어서 마당 뒤편의 골목, 그러니까 본관에서 교도소로 넘어가는 길목과 뒤뜰에서 시위 장면이 촬영됐다. 여기서 류치위안(유덕화)은 “평화 시위로 돌아서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며 삼합회와 맞선다. 만약 과거의 타이퀀 센터였다면, 조폭들을 바로 교도소에 처넣을 수 있는 위치이긴 하지만, 어쨌건 영화니까.

 

 

주성철 씨네플레이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