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 특급살인>의 에르큘 포와로, 역대 배우와 그들의 콧수염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는 몇 명의 탐정들이 등장하는데 ‘에르큘 포와로’와 ‘미스 마플’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그중에서도 <오리엔트 특급살인>에 등장하는 포와로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각별한 애정을 쏟은 캐릭터인데요. ‘영국에서 가장 멋진 콧수염’이라고 묘사되는 포와로는 장편에서만 32번, 단편에서는 6번이나 등장하지요.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포와로는 케네스 브래너가 맡았습니다. 과거 어떤 영화 속 포와로보다 굵고 화려한 수염을 자랑하는데요. 우리에겐 <토르: 천둥의 신> 감독으로 익숙하지만, 사실 영국 로열 드라마 아카데미 출신으로 영국문학에 정통한 감독입니다. <헨리 5세>의 감독, 주연, 각본을 맡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각본상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영화인생을 시작했고 이후에도 <헛소동>, <햄릿>, <프랑켄슈타인> 등 영국 클래식 소설들을 주로 영화로 만들어왔습니다.

1974년에도 ‘Murder on the Orient Express’를 원작으로 한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여기에서의 포와로는 알버트 피니가 맡았습니다. 끝이 약간 올라간 형태의 검은색 핸들바(handlebar) 콧수염으로 등장한 그는 이 역할로 1975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우리에게는 ‘본’ 시리즈의 ‘알버트 허쉬’ 박사, <밀러스 크로싱>에서 조직의 보스 ‘리오’ 등으로 유명한 배우입니다.

<오리엔트 특급살인>은 2001년 작품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거구의 배우 알프레드 몰리나가 포와로 역을 맡았습니다. <스파이더맨 2>에서 닥터 옥토퍼스나 <프리다>의 디에고 리베라 등으로 낯익은 배우인데요. 포와로 하면 보통 키가 작고 깐깐한 결벽증 괴짜로 묘사됩니다만, 듬직한 외모에 풍성한 모발 그리고 중후하고 느릿하게 말하는 포와로는 얼른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포와로를 연기한 적은 없지만, 포와로 역으로 가장 익숙한 배우는 바로 피터 유스티노프입니다. 영화 <나일 살인 사건>, <백주의 악마>, <13인의 만찬>, <사해 살인 사건>, <3막 살인> 등에서 포와로 역을 맡았습니다. <쿼바디스>에서 네로 황제 역할이 대표적입니다만, 포와로 탐정의 이미지가 강해서 <찰리 팬과 드래곤 퀸의 저주>에서도 명탐정 찰리 챈 역을 맡았습니다.

포와로 역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콧수염 형태도 그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데요. <나일 살인 사건>(1978)에서는 끝을 한껏 말아 올린 형태를 보여줬고 후반 작품으로 가면서 머리와 함께 희끗희끗해진 콧수염은 좀 더 단정하고 기본적인 형태에 가까워집니다.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된 <아가사 크리스티: 명탐정 포와로>( Agatha Christie's Poirot)의 주연은 데이빗 서쳇이었습니다. 영국 ITV에서 제작되어 1989년부터 2013년까지 이어진 장수 프로그램으로 모두 70개의 에피소드가 방영되었습니다. 간결한 카이젤 스타일의 콧수염과 작은 키 그리고 대머리에 가까운 머리 스타일이 어찌 보면 가장 소설에 가까운 외모의 포와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04년 NHK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애거사 크리스티의 명탐정 포와로와 마플>에는 후덕한 외모의 포와로가 등장합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는 아가사 크리스티가 사랑하는 또 하나의 탐정 ‘마플’이 함께했지요.

1965년작 영화 <알파벳 머더스>(The Alphabet Murders)에도 포와로와 마플이 같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여기에서의 포와로는 토니 랜덜이 맡았습니다. MGM 소속의 스타답게 훤칠하고 시원시원한 외모의 토니 랜덜은 얇고 가벼운 콧수염(Pencil Mustache)으로 등장했습니다.
 
다양한 포와로들을 만나봤는데요. 케네스 브레너의 포와로는 또 어떤 매력일지 궁금해집니다.

씨네플레이 객원 에디터 안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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