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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AI 연기에 도전한 〈원더랜드〉 탕웨이, "한국에서의 사랑은 좋은 작품, 좋은 캐릭터를 만난 덕분"

김지연기자
〈원더랜드〉 캐릭터 포스터

 

아무리 배우의 개인사라지만, 이 기사에서만큼은 탕웨이 배우와 김태용 감독이 부부라는 사실을 꼭 언급해야겠다. 탕웨이 배우를 만나 <원더랜드>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원더랜드>는 마치 부부가 함께 만들어간 영화 같다는 인상을 짙게 받았기 때문이다. <원더랜드>는 김태용-탕웨이 부부가 단순히 감독과 배우로 합을 맞춘 영화를 넘어,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함께 만들어간 첫 작품이자, 결혼과 육아, 10여 년의 시간을 통해 깊어진 두 사람의 시야가 담긴 작품이다. 배우 탕웨이는 김태용 감독이 현재 “삶이 작품이 되는 과정”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탕웨이 자신도 삶이 캐릭터로, 연기로 표현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터다. 탕웨이는 마치 만추의 낙엽처럼, 시간이 갈수록 세월이 주는 경험을 내면화해 빈티지한 색을 내뿜는 배우라는 생각을 했다. 날 좋은 3일 오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원더랜드> 탕웨이 배우와 진행한 인터뷰의 전문을 옮긴다.

 


배우 탕웨이.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만추>(2011) 이후 오랜만에 김태용 감독과 한 작품으로 호흡하게 됐어요. 그때의 배우 탕웨이와, <원더랜드>를 찍은 배우 탕웨이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만추>는 2010년에 찍었는데요. 기억에 남는 것은, 제가 <만추> 촬영 전에 그리스 아테네에서 여행하고 있었거든요. 그때가 제 생일이었어요. 그때 하늘에 큰 달이 떠 있었는데, 저는 그걸 보고 울고 있었어요. 왜 울었냐면, 나는 30살이나 됐는데, 남자도 없고, 결혼도 안 해서 슬퍼서 울었어요. 그런 상황이 기억이 나요.

그때는 아무것도 없고, 나 하나밖에 없었다면, <원더랜드>를 찍을 때는 나에게 가족이 있었잖아요. 나에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 있고. 배우로서는 가정이라는 게 따뜻하고 든든하게 느껴져요. 저의 세계에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만추> 때의 김태용 감독과 <원더랜드> 때의 김태용 감독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감독님도 그간 삶이 작품이 되는 과정, 자신의 경험이나 현실에서 느낀 것들이 작품으로 실현이 되는 과정을 겪은 거 같아요. 예전에는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것만 했다면, 이제는 시간이 흘러서 또 다른 것들을 하고 싶어 하고, 변화하는 과정이에요. 그래서 감독이라는 직업에 있어서 다른 단계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 자신이 지금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을 자기만의 언어로, 영화로 표현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 비해서 탐색과 표현을 두려워하지 않고요. 아직 그 (미지의) 땅을 다 가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집니다. 다음에는 어떤 단계로 갈 것인지. 반드시 감독님이 자기만 할 수 있는 사고, 그리고 감독님의 독특한 유머 감각, 독특한 표현 방식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감독님의 지도에는 불이 다 켜지지 않았어요. 이번 영화 <원더랜드>를 보고 든 소감은, 감독님이 보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를 같이 탐색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는 겁니다.

 

배우 탕웨이.(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만추>(2011) <헤어질 결심>(2022)에 이어 세 번째로 한국 작품에 출연하게 됐어요. 탕웨이 배우는 현재 중화권 배우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인데요. 한국에서의 인기를 실감하시나요?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좋은 작품을 계속 만나니까요. 사람들이 작품을 좋아하고, 작품 속 캐릭터를 사랑해 주기 때문에 받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한국 영화도 세 번째로 출연을 하셨고, 중화권 영화, 할리우드 영화를 가리지 않고 출연을 하시는데요. 한국 작품에 출연하면서 느꼈던, 한국만의 특징이 있다면요.

 

커피차. 다른 현장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고, 한국에서만 봤어요. 심지어는 가족들이나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커피차를 보내주었어요. 그런데, 커피차가 올 때마다 메뉴가 다 달랐어요. 그래서 그 경험이 너무 특별했습니다.

 

배우 탕웨이.(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색, 계>(2007)나 <헤어질 결심> 등, 탕웨이 배우는 유난히도 작품을 고르는 안목이 좋은 배우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시절인연>(2013) 등과 같은 밝은 캐릭터도 좋지만, <만추>나 <헤어질 결심>처럼 무게감이 있는 캐릭터를 했을 때 탕웨이 배우의 매력이 더욱 빛나는 것 같아요.

 

우선, 시나리오를 ‘고른다’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게, 감독님이 저를 선택하는 거예요.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상시에 충전을 잘 시켜놓고 있는 거예요. 그래야, 어떤 시나리오가 왔을 때 나의 에너지로 결정을 할 수 있으니까요. 제일 좋은 건, 밝은 영화 하나 찍고, 어두운 거 하나 찍는 거죠.(웃음) 그런데 출연을 할 당시에는 계획을 해서 선택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바람이 있다면, 우수한 영화인들과 더욱 많은 작업을 하고 싶어요. 새로운 분들과 작업을 하면, 그분들의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으니까요. 배우는 그게 되게 중요해요. 물론 감독님들도 마찬가지예요. 감독님들이 새로운 배우들과 일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내는 것처럼, 배우들도 그런 순간들이 굉장히 좋습니다.

 

〈원더랜드〉 

 

<원더랜드>는 김태용 감독이 2016년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영상통화를 하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영화라고 들었어요. 상대방의 눈을 보고 하는 연기가 아니라, 모니터 화면을 보고 하는 연기라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요. 연기할 때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저는 영상통화가 너무 익숙해요. 왜냐하면 중국이 너무 넓으니까요. 저한테는 영상통화가 중국 내에서도, 외국에서도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영상통화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굉장히 익숙한 일이에요. 그리고, 현장에 저의 어머니 역할을 한 배우 니나 파우와 딸 ‘지아’ 역할을 맡은 배우 여가원이 항상 있어서, 호흡을 맞출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항상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연기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어떤 감정에 이입하려 할 때마다 듣는 플레이리스트가 있어요. (탕웨이는 인터뷰 중,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플레이리스트를 보여주고, 음악을 틀어서 들려주기도 했다.) 특정 정서에 들어가려고 할 때, 음악이 없을 때보다 음악을 들으면 신속하게 감정에 이입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필요할 것 같은 음악을 찾아서 들어요. 플레이리스트에는 OST도 있고, 경쾌한 음악도 있고, 클래식도 있고요.

 

그런데, <원더랜드>의 ‘바이리’는 AI 이긴 하지만, 기존 AI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이기도 해요. 바이리 역할을 연기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정(情). (AI로서) 감정을 정확히, 어떻게 합리적으로 보이도록 표현을 해야 할까를 생각했어요. 중간에 한번 바이리의 감정에 변화가 있잖아요. 당시에도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해 고민했어요. 감독님의 요청 사항은, 너무 비관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최대한 요구사항에 맞춰서 표현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이전 AI를 소재로 한 영화가 색깔로 따지면 회색에 가까웠다면, <원더랜드>는 따뜻한 색깔인 것 같아요.

 

 〈원더랜드〉 

 

<원더랜드>의 ‘바이리’처럼, 탕웨이 배우 역시 딸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딸이기도 해요. 반면, 말씀하셨다시피 AI 바이리는 슬픔의 표현을 잘 하지 않는데요. <원더랜드>를 촬영하며 너무나 감정이 이입되어 힘들었던 장면이 있으신가요.

 

너무 많아요. 사실, 많은 장면을 찍으면서 눈물이 흘렀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안된다고 하셨어요. 특히, 엄마(니나 파우)와 통화하는 장면은 울음을 참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마음이 계속 움직이는데, 막을 방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앞에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고 냉정해져야 했어요. 그래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최대한 감독님이 요구하는 대로 하려고 했어요. 배우는 감독님의 도구니까요.

 

그렇다면, 반대로 탕웨이 배우가 김태용 감독에게 의견을 낸 부분이 있으신가요?

감독님은 저의 직감을 믿는 편입니다. 저는 직감 동물이에요. 제 작곡가 친구가 있는데, 곡을 만들고 나면 꼭 저에게 들려줘요. 들려주고 ‘어때?’라고 해요. 그래서 어떨 때 보면 나는 테스트를 하는 사람 같아요. 구체적으로 의견을 낸 거는 대사예요. 인물에 이입한 후, 대사를 읽으면 되게 순조롭게 싹 읽히는 게 있고, 중간에 어떤 한 단어 때문에 딱 막힐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거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라는 식으로 말씀드립니다. 제가 첫 작품을 찍을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원더랜드〉 속 니나 파우.​

 

니나 파우는 홍콩의 베테랑 배우이자, 탕웨이 배우와 함께 <크로싱 헤네시>(2010)에 출연한 적 있는 인물인데요. 니나 파우는 <원더랜드>에 바이리의 어머니 역으로 출연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해요. 어떻게 같이 <원더랜드>에 출연하게 되셨나요.

 

니나 파우는 홍콩에서 굉장히 유명하고 훌륭한 배우예요. 이전에, <크로싱 헤네시>에서 같이 호흡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같이 촬영한 회차는 많지 않았지만, 너무나 인상에 남아서 추후에 꼭 같이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원더랜드>를 들어갈 때 감독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이번에 <원더랜드>를 본 지인들이 니나 파우 배우가 제 어머니랑 정말 닮았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그런 거 같아요. 니나 파우는 눈만 보면 감정이 다 와닿는 배우입니다. 이번에 니나 파우 배우가 한국에 무사히 들어오기까지 많은 고생을 하셨어요. 영화를 촬영할 때가 팬데믹 기간이어서, 홍콩에서 출국 허가증을 받아야 했고, 격리 기간도 길었어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도착하셨을 때는 정말 순조로웠어요.

 


*아래 문단에는 <원더랜드>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원더랜드〉

 

<원더랜드>에서 배우 공유가 연기한 ‘성준’은 '원더랜드' 속의 다른 AI들을 관리하는 AI예요. 그런데, 성준이 바이리를 대하는 태도가 참 묘해요. 두 남녀가 현실을 제쳐두고 여행을 시작하는 공간인 공항에서 처음 만났다는 점에서, 마치 <만추>의 훈(현빈)-애나(탕웨이) 관계 같기도 하고요.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이 첫 만남의 장소였던 공항에서 다시 재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고요.

 

제가 관객이라면, 마지막 공항 장면 이후에 성준과 바이리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할 것 같아요.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 두 인물이 뭔가 뒤에 더 이야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거 같거든요. 분명 AI 세계의 인물들은 슬픔도, 상처도, 눈물도, 분노도 없잖아요. 그런데, 이 두 AI들은 시스템이 어떻게 되어 있길래, 이런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 다른 단계의 AI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기자님이 <만추>를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성준과 바이리의 관계를 떠올리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원더랜드>에서 바이리가 어떤 상태인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현재 남편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성준과 바이리가 어떻게 보면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관계라고 생각을 했어요. 로맨스도 포함이고요.

 

그런 게 재밌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영화가 그다음이 어떻게 될 것인지, 보이지 않는 것들을 궁금하게 하는 그런 작용을 한 거잖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두 인물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는 한데, 정말로 어떻게 될지를 알아보려면 감독님께 여쭤보는 게 제일 정확할 거 같아요.(웃음) 저는, 마지막에 성준이 공항에 등장해서 바이리를 만나는 장면은, 사활이 걸린 상황을 잘 이겨낸 후에, 성준이 바이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성준은 AI들을 관리하는 AI니까요.

 

배우 탕웨이.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배우 탕웨이.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앞서 <원더랜드>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은 ‘원더랜드’ 서비스를 의뢰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대신, AI가 되어 ‘원더랜드’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는 하셨는데요. 탕웨이 배우가 ‘원더랜드’에 들어간다면 어떨 것 같나요.

한번 ‘원더랜드’ 속 세상에 들어가 보고 싶긴 해요. 꼭 보고 싶은 친구가 있거든요. 그 친구를 만나서 안아주고 싶고, 꿈에서만 보는 우리 외할머니를 직접 안아보고 싶어요.

 


씨네플레이 김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