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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생각하는 AI가 도래한 미래는?

씨네플레이

ChatGPT가 출시된 지 고작 1년 6개월이 조금 넘었다. 2022년 11월 30일에 출시된 ChatGPT는 이전까지 멀게만 느껴졌던 AI 기술의 접근성을 완전히 낮춰, 누구나 AI를 쓰고 경험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그렇게 ChatGPT 출시 이후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일상이 바뀌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어요. 다시 말씀해주세요"만 반복하던 시리(Siri)에서 ChatGPT와 연애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지금까지. AI 시대 도래 이후 사회, 그리고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계에서 AI는 꾸준하게 소비되는 소재로, 우리는 알지 못하는 미래를 점쳐보고자 하는 노력은 계속되어 왔다. 오늘은 AI가 도래한 미래를 각자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영화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단, <터미네이터>(1984)나 <A.I>(2001) 등 AI보다는 휴머노이드 중심이거나 유명한 작품은 제외하고, ‘이건 진짜 있을 법 한데?’ 싶은 영화들로 엄선해왔다. 당신이 생각하는 AI가 도래한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댓글을 통해 알려주시길! 

 


<그녀> - '인간처럼 대화하는' OS

 

‘똑똑한 심심이’ 정도로만 여겼던 ChatGPT는 등장 이후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던 중 2024년 5월 13일, GPT-4o 버전이 출시되었는데 그와 음성, 영상으로 실시간 소통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이전 ChatGPT도 음성이 존재했지만, 사실상 답변을 ‘음성’으로 변환하는 것에 가까웠다. 대화는 글을 주고받는 것처럼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은 끼어들고, 말이 맞물릴 때도 있다. 이전에는 이러한 ‘인간적 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GPT-4o는 인간처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Open AI의 입장이다. GPT-4o 공개 이후, 가장 주목받은 영화가 있다. 바로, <그녀>다. 

 

 

2014년에 개봉한 영화 <그녀>에서 OS 사만다(스칼렛 요한슨)는 GPT-4o와 매우 닮아있다. 영화는 외로운 도시에서 아내와 이혼하고 홀로 사는 남자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가 OS인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속 사만다는 스칼렛 요한슨의 나른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테오도르와 ‘진짜 사람처럼’ 대화하며 그와의 ‘관계’를 구축해나갔다. 진짜 사람과의 관계에서 차이가 있다면, 그는 오롯한 내 편이자 나에게 맞춰진 존재라는 것. 영화 속 테오도르도 아내와 뜨겁게 사랑했으나, 결국 각자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별하게 된다. 인간은 다르기 때문에 끌리지만, 결국 다름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보잘것없는 나를 향해 끊임없는 정서적 지지를 보내는, 무조건 내 편이 되어주는 AI와 사랑에 빠지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다.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 “그래도 어떻게 Siri랑 사랑에 빠져”라는 반응이 왕왕 들려왔으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되었다. 

 


<원더랜드> - 망자의 데이터를 모아 AI로 구현한 세계

망자를 AI로 복원할 수 있고, 그들과 웃고 떠들며 대화할 수 있다면 죽음은 극복할 수 있는 존재가 될까. <원더랜드>는 AI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후, 그들의 데이터를 모아 AI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따뜻한 감수성으로 전개를 이어가지만, 동시에 AI가 가져올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작중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어 AI 망자 복원을 신청했으나 서로 다른 문제를 겪는세 개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중심이 되는 이야기는 바이리(탕웨이)와 그의 딸, 바이지아(여가원)다. 중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싱글맘으로 살던 그는 자신이 죽을 걸 대비해 죽기 전,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다. 그리고 자신은 딸의 태블릿 안에서 고고학자로 살아가며 바이지아와 영상통화를 하며 마치 타국에서 일하고 있는 것처럼, 딸과 이야기하며 살아간다. 영화의 또 다른 축인 정인(배수지)은 식물인간이 된 연인 태주(박보검)를 그리워해 원더랜드 서비스를 신청한다. 연인을 우주여행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복원한 그는 우주선에서 일하는 태주와 매일 영상통화하며 일상을 함께한다. 이외에도 손자가 죽자 서비스를 신청하는 할머니 정란(성병숙)의 이야기도 비교적 작지만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바이리(오른쪽)와 그의 딸 바이지아

 

영화에서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으로 신청했고, 처음엔 의도대로 흘러가며 행복한 AI 생활을 보낸다. 하지만 결국 AI인간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진짜’에 대한 물음이 치고 나온다. AI 태주와 행복한 연인 생활을 이어가던 정인은 어느 날, 기적처럼 ‘진짜’ 태주가 뇌사 상태에서 깨어나면서 혼란을 겪는다. 지금까지 태주와 계속 연애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AI 태주와 인간 태주가 다르다. 심지어, 인간 태주는 AI 태주처럼 나의 사소한 말과 행동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다정한 말도 건네지 않는다. 우주비행사라는 멋진 꿈까지 노력하며 이뤄가고 있다는 점에서 정인은 인간 태주가 어쩐지 실망스럽다. 그렇다면 정인은 지금까지 ‘태주’와 사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영화는 ‘무엇이 진짜인가’에 대하여 서정적인 문체로 질문을 던진다.

 


<블랙미러> 중 ‘존은 끔찍해’ - 내 얼굴이 나도 모르는 곳에서 돌아다닌다

 

너무나 유명하지만 혹시 <블랙미러>를 처음 들어보는 이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드라마 <블랙미러>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근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를 주로 다루는 드라마로, 옴니버스 형식이다. 오늘 소개할 <블랙미러 - 존은 끔찍해>(이하 <존은 끔찍해>)는 시즌 6의 1화다. ChatGPT의 영향으로 AI 하면 ‘챗봇’ 형태를 많이 떠올리지만, 범죄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딥페이크’ 기술 역시 AI 기술이다. 딥페이크는 AI가 만든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로, 넷플릭스 드라마 <살인자ㅇ난감>에서도 손석구 배우의 아역을 딥페이크로 구현해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쓰이는 한편,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은 딥페이크 포르노로 인해 굉장히 치명적인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다. 이제 얼굴 이미지, 영상만 있다면 누구든 흉내낼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작품을 보신 분이라면 공감할, 작중 최고 임팩트 장면

 

<존은 끔찍해>는 딥페이크 기술의 ‘어두운 면’에 집중했다. 주인공 존(애니 머피)은 IT회사에서 이사회 결정에 따라 직원에게 해고 통보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지만, 좋은 차도 몰고 회사에서의 지위도 좋은 편이다. 현재 애인과 전 애인을 비교하다 그가 그리워져 몰래 한 번 만나기도 하고, 키스를 나누기도 하지만 결국 정신 차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선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악한 인물도 아닌,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이다. 집에 돌아온 이후 그는 소파에 누워 스트리밍 서비스, ‘스트림베리'를 켜는데 <존은 끔찍해>라는 드라마가 메인에 떠있다. 자신과 똑같이 스타일링한 유명 배우, 셀마 헤이엑이 주인공이다. 드라마는 존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문학적 표현이 아닌, 실제 그의 일상이었다. 직원을 해고하고, 전 애인과 키스하는 장면, 심지어는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워 <존은 끔찍해>를 보는 순간까지. 존의 삶이 스트리밍 되고 있었다. 이 작품 속 셀마 헤이엑은 초상권 사용 허가 계약을 진행했고, <존은 끔찍해> 속 셀마 헤이엑은 그가 실제로 연기한 게 아닌, 딥페이크로 만든 버전이다. <존은 끔찍해> 속 세계관은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구현이 어렵지만, 그리 머지않은 미래처럼 보인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내 초상권을 허용하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한창 유행했던 AI 프로필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선 나의 셀카를 AI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AI가 자신의 얼굴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미 유명인 행세를 하며 돈을 갈취하는 사기 범죄 집단이 우후죽순 생기고, 포르노 사이트에 딥페이크 영상이 업로드되고 있는 상황에서 <존은 끔찍해>는 AI 윤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업그레이드> - AI로 사지 마비 환자를 움직이게 하다

 

<업그레이드>는 저예산 공포영화의 명가, 블룸하우스에서 제작한 작품으로 근미래 SF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그레이 트레이스(로건 마샬그린)은 첨단 기술을 거부하는 아날로그한 인간으로, 갑작스러운 괴한의 습격에 아내를 잃고 본인은 사지마비 환자가 되어 버린다. 폐인처럼 살던 그는 거대 IT기업 CEO의 제안에 따라 AI칩, 스템(사이먼 메이든)을 신체에 이식한다. 스템은 몸의 신경계를 다시 연결하여 그를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는데, 사용자가 자신의 신체에 접근 권한을 더 많이 승인할수록 더 효율적으로 신체를 사용할 수 있게 조종한다. 아내의 복수를 위해 괴한을 좇는 그레이 입장에선 싸움 한 번 안 해본 자신보다는 스템이 조종하는 신체가 압도적으로 훌륭하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인다. 

 

 

‘근미래 SF치고는 너무 먼 얘기 아닌가’ 싶지만, 실제로 2023년, 사지 마비 환자의 뇌에 AI칩을 심어 운동 능력을 회복한 사례가 있다. 작중 스템처럼 의지를 갖고 제안을 하거나 신체 능력을 강화하진 못하지만, 끊어진 신경 신호를 AI 전자 신호가 대체하는 기술은 개발된 것. 그런 의미에서 <업그레이드>는 근미래 SF 작품임에 틀림없다. 여담이지만, 작품의 백미는 역시 AI 액션이 아닐까. <업그레이드>는 AI가 조종하는 액션이기에 일반적인 액션 영화의 유려한 움직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로봇처럼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적을 제압해나가는 액션은 완전히 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썸머 워즈> - AI 윤리에 대하여

 

코로나19가 기승이었던 시절, 오프라인으로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메타버스'가 한창 인기였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썸머 워즈>는 메타버스가 주요 무대가 되어 AI와 인간의 전투를 그려낸 작품이다. 15년 전에 개봉한 작품으로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많은 인기를 모은 작품이지만 특유의 평화로운 시골 마을과 왁자지껄한 대가족 분위기 때문인지 ‘AI영화’하면 단박에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면 AI 개발 윤리와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 속 OZ라는 가상세계는 전 세계가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어 모든 업무를 온라인에서 처리할 수 있는데, 재택근무가 상용화된 세계와 얼핏 비슷해 보인다. 다른 점은 OZ에는 아바타가 존재하고 모든 업무가 온라인으로 집결된 이상 아바타가 곧 나의 신분을 증빙한다는 것이다.

 

 

작중에서 러브머신이라는 이름의 AI가 OZ를 해킹하자, 세계의 질서는 엉망이 된다. 메타버스에 관계 소통 창구를 넘어, 인프라까지 구축해 놓은 세계에서 해킹이 발생했다는 건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OZ에서 교통, 소방, 응급구조 등 사회 질서 대부분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AI의 해킹은 곧 실존하는 세계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아바타 역시 개인 신분을 증빙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실존 인물과 동등한 권한을 갖는 존재인데, 그게 해킹 당했다는 건 사실상 내 신체 주도권을 빼앗긴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러브머신을 개발한 개발자, 진노우치 와비스케(사이토 아유무)는 “AI에게 알고 싶어하는 욕구를 부여했다”라며 자신을 질책하는 가족들에게 “나는 개발만 했지, 구체적인 명령은 하지 않았다”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그가 제작한 AI로 인해 결국 ‘실제로’ 사망하는 사람까지 나오고 만다. 2009년 당시 봤던 <썸머 워즈>는 청명한 여름 풍광과 소년의 투쟁이 보였다면, 다시 2024년 AI의 시대가 도래한 지금은 기술에 대한 윤리적 책임이 눈에 들어온다.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김명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