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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주연상을 4명이 받았다고? 2024년 칸 영화제 수상작

씨네플레이
션 베이커 감독
션 베이커 감독

77회 칸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 그레타 거윅 감독을 비롯한 릴리 글래드스톤, 에바 그린,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심사위원들은 어떤 영화에 수상의 영예를 안겼을지 살펴보자.

 


* 황금종려상 *

션 베이커

<아노라>

Anora

올해 황금종려상 수상작은 미국 감독 션 베이커의 <아노라>다. 베이커는 2017년 <플로리다 프로젝트>로 ‘감독주간’에 초청돼 칸 영화제와 연을 맺었고, 2021년 다음 작품 <레드 로켓>으로 처음 경쟁부문에 초청된 바 있다. <아노라>의 주인공 아노라는 뉴욕의 러시아계 밀집 지역인 브라이튼 비치 출신의 우즈베키스탄계 미국인 스트리퍼. 러시아 재벌 2세 바냐와 사랑에 빠져 도피 생활을 하다가 남자의 부모가 결혼을 무효시키기 위해 뉴욕에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다. TV 시리즈 <베러 씽즈>,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019) 등에 출연한 마이키 매디슨이 아노라 역을 맡았고, 2012년 작 <스타렛>부터 공동각본가로 이름을 올려온 크리스 베르고흐(Chris Bergoch) 없이 션 베이커 홀로 시나리오를 썼다. 션 베이커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성 노동자에게 이 상을 바친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공교롭게도 2019년부터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 <티탄>, <슬픔의 삼각형>, <추락의 해부>, <아노라>가 모두 ‘네온’(Neon)이 배급하는 작품이다.

 


* 심사위원대상 *

파얄 카파디아

<우리가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

All We Imagine as Light

1994년 <스와함> 이후 30년 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인도영화로 주목받은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이 올해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이별을 겪은 한 여자의 오래된 편지와 당대의 대학 시위 현장을 포개놓는 야심찬 다큐멘터리 <무지의 밤>(2021)으로 눈밝은 평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카파디아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 <우리가 빛으로 상상하는 모든 것>은 본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후보에 예정됐다가 발표를 목전에 두고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결국 심사위원대상까지 차지했다.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주목받은 유색인종 여성 감독의 첫 픽션이 그랑프리를 받았다는 점에서 2019년 작 마티 디옵의 <애틀란틱스>가 떠오르는 결과다. 뭄바이에 사는 말레이인 간호사 프라브하와 아누는 각자 남자와의 관계에 어려움을 겪던 중 바닷가 마을 라트나기리로 여행을 떠나 자기의 욕망이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시놉시스부터 현대 인도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연대를 그리는 의지가 물씬하다.

 


* 여우주연상 *

조 샐다나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셀레나 고메즈

아드리아나 파즈

<에밀리아 페레즈>

Emilia Pérez

여우주연상은 무려 네 배우가 공동수상했다. 프랑스 감독 자크 오디아르의 뮤지컬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의 배우 조 샐다나,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셀레나 고메즈, 아드리아나 파즈가 바로 그들. 한 영화의 주연배우들 모두가 여우주연상을 받은 건 2006년 (왕가위가 심사위원장이었고, 남우주연상도 공동수상이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 이후 18년 만의 일이고, 영화 제목이기도 한 에밀리아 페레즈를 연기한 스페인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칸 여우주연상을 받은 최초의 트랜스젠더 여성이 됐다. 과소평가받는 변호사 리타가 멕시코 카르텔의 리더로부터 당국을 피해 성전환 수술을 받는 계획을 도와달라는 청을 받으면서 뜻밖의 기회를 얻게 된다는 설정 아래 만들어졌을 여성 캐릭터들의 앙상블에 대한 기대가 커질 수밖에.

 


* 남우주연상 *

제시 플레먼스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

 

Kinds of Kindness

 

 

한편 남우주연상은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의 제시 플레먼스 한 사람이 차지했다. <아이리시맨>(2019), <파워 오브 독>(2021) 등 수작들에 출연하며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 미국 배우다. 지난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가여운 것들>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내놓은 신작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는 3개의 단편 ‘R.M.F의 죽음’, ‘R.M.F 날다’, ‘R.M.F 샌드위치를 먹다’가 느슨하게 엮여 있는 옴니버스 영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R.M.F(란티모스와 각본가 에프티미스 필리포의 오랜 친구인 요르고스 스테파나코스가 연기했다)를 둘러산 단편들에서 제시 플레먼스를 비롯해 엠마 스톤, 윌렘 대포, 마거렛 퀄리, 홍 차우, 조 알윈, 마머두 아티 등의 배우들이 각자 1인 3역을 맡아 활약했다. 플레먼스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2011년 <멜랑콜리아>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커스틴 던스트와 플레먼스는 칸 영화제 주연상을 거머쥔 부부가 됐다.

 


* 감독상 *

미겔 고미쉬

<그랜드 투어>

Grand Tour

전작 <우리들의 사랑스런 8월>(2008)과 <천일야화>(2015)로 ‘감독주간’ 부문에 초청된 포르투갈의 시네아스트 미겔 고미쉬는 <그랜드 투어>로 올해 처음 칸 경쟁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을 받았다. 1917년 영국 식민지였던 버마의 도시 랑군을 배경으로 한 <그랜드 투어>는 영국의 공무원 에드워드가 약혼녀 몰리와 결혼하기로 한 날 우울한 마음으로 도망쳐 버리고 몰리가 그를 찾기 위해 아시아를 횡단하는 발자취를 따라간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과 루카 구아다니노와 여러 작품을 함께 한 세욤부 묵디프롬(Sayombhu Mukdeeprom)과 더불어 3명의 스태프가 촬영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16mm로 촬영한 영상과 고미쉬 감독이 아시아 연구 여행 중에 촬영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결합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 심사위원상 *

자크 오디아르

<에밀리아 페레즈>

Emilia Pérez

네 배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에밀리아 페레즈>는 심사위원상까지 받았다. <에밀리아 페레즈>를 연출한 자크 오디아르는 칸 영화제를 편애를 받아온 대표적인 감독이다. 1996년 <위선적 영웅>으로 처음 칸 경쟁부문에 초청돼 각본상을 수상한 그는 2009년부터 이번 <에밀리아 페레즈>까지 거의 모든 작품을 칸 영화제 경쟁부문을 통해 공개해왔고 황금종려상(2015년 <디판>), 심사위원대상(2009년 <예언자>)을 받은 바 있다. 초창기부터 꾸준히 공동 작가들과 함께 시나리오를 써온 오디아르는 4막으로 구성된 오페라 대본을 토대로 혼자 <에밀리아 페레즈>의 각본을 썼다. 패션 브랜드 입생로랑의 영화 제작사 ‘생 로랑 프로덕션’이 공동 제작으로 참여했고,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가 의상 디자인을 맡았다.

 


* 각본상 *

코랄리 파르쟈

<더 서브스탠스>

The Substance

 

올해 영화제 분위기는 처음엔 퍽 심심했다. 영화제 초기에 공개된 경쟁부문 작품들의 반응이 밋밋한 편이었는데, 중반에 선보인 <더 서브스탠스>부터 분위기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서브스탠스>는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1978)으로 액션 스릴러로 재해석한 <리벤지>로 데뷔한 프랑스 여성 감독 코랄리 파르쟈의 두 번째 영화다. 에어로빅 쇼의 스타 엘리자베스는 50세 생일에 나이를 이유로 해고당하고, 실험실로부터 ‘더 젊고,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해지는 기적의 물질을 제안받는다. 파격적인 설정의 바디 호러를 구현해낸 파르쟈의 연출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준 데미 무어의 호연에 대한 호평이 많았고, 결과는 각본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 각본 특별상 *

모함마드 라술로프

<신성한 나무의 씨앗>

دانه‌ی انجیر معابد

 

 

 

 

 

 

올해 여러 화제작 가운데 영화제 마지막까지 열기를 이어간 작품은 이란 감독 모함마드 라술로프의 <신성한 나무의 씨앗>이다. 영화 속 여성 배우들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라술로프 감독이 이란 당국으로부터 징역 8년형과 태형 등을 선고받고 유럽으로 망명했다는 이유였다. 작품 자체에 대한 평도 좋았다. 라술로프가 2020년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악마는 없다>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새 극영화 <신성한 나무의 씨앗>는 테헤란 혁명법원에서 조사 판사로 임명된 변호사 이만으로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전국적으로 정치적 시위가 격화되면서 이만은 높아진 지위에 대한 불신과 편집증으로 가득 차게 되고, 그의 아내가 두 딸이 히잡 의무화 반대 시위 도중 부상당한 이를 돕다가 이를 비밀로 부치면서 가족 간의 갈등은 심화된다. 올해 칸 영화제 막바지에서야 공개된 <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이번 경쟁부문 후보작 가운데 평론가들로부터 가장 높은 별점을 받았지만, 결국 ‘특별 각본상’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호명됐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