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와 일본. 늘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라고 말하는 만큼, 이웃나라지만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중 하나가 극장가의 모습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최초 개봉'이란 타이틀이 생길 만큼 외국영화를 빠르게 수입 개봉하는 한편, 일본은 '갈라파고스'에 비유될 만큼 해외영화 개봉이 늦고 자국영화 중심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큰 차이가 있다면, 역시 애니메이션의 위상이다. 특히 지금의 일본 극장가 순위를 보면 더욱 그렇다. 최근 흥행 10위 안에 애니메이션이 5편이나 있다.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 「나루토」 등 시대를 흔든 명작 수준이 아니면 괜히 말했다가 "그게 뭔데 *덕아" 소리 듣는 한국에선 정말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현재 일본 극장가를 흔들고 있다는 애니메이션 4편과 그 기록을 미리 만나보자.
내 이름은 코난, 장기 흥행왕이죠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

처음부터 진입장벽이 높으면 스크롤을 바로 내릴 것 같으니 일단 박스오피스에서 가장 대중적인 시리즈의 신작부터 소개한다. 「명탐정 코난」 27기 극장판 <명탐정 코난: 100만 달러의 펜타그램>는 개봉 9주차에도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 개봉은 연례행사나 다름없는데, 이번 극장판이 특히 화제가 된 건 시리즈 최초 '10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극장판 시리즈가 가면 갈수록 본편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탐정 코난」 프랜차이즈의 힘은 건재함을 증명한 셈이다.


물론 흥행과 별개로 이번 극장판도 수작은 아니라는 것이 관객들 반응이다. 추리의 비중을 높였지만 여전히 액션영화스럽다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그럼에도 주인공 코난뿐만 아니라 조력자 핫토리 헤이지(하인성), 희대의 라이벌 괴도 키드 등 인기 캐릭터가 총출동한 극장판이라 인기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1000만 관객 달성이란 대기록은 당연히 흥행 성적과도 직결되는데, 140억 엔을 돌파해 시리즈 흥행 수익 1위를 차지했다(최고 흥행작이었던 전작이 138억 엔). 국내 개봉은 7월 예정인데, 과연 한국에서도 흥행 신기록을 쓸 수 있을지 기대되는 상황. 26기 극장판 <명탐정 코난: 흑철의 어영>이 국내 개봉 당시 80만 관객을 동원해 시리즈 최고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소... 솔직히 우리도 주류라고 생각해요
<극장총집편 외톨이 THE ROCK!>

마이너스와 마이너스를 곱하면 양수가 된다고 했던가. 히키코모리 주인공에 록을 곱하자 인기 애니메이션이 됐다. 「봇치 더 록!」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외톨이 THE ROCK!>은 누구도 예상 못 한 다크호스다. '멋있어지면 친구가 생기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타를 시작한 '아싸' 고토 히토리는 천재적인 기타 연주 실력에도 여전히 아싸다. 그러다 기타리스트를 구한다는 밴드에 가입하며 '결속밴드'의 일원이 된다. 슥 보기엔 그냥 미소녀들이 나와서 인기 있는 것 같은데, 록덕후로서 팬심을 쏟아부은 작가의 정보량에 일본 밴드음악계를 들여다보는 작품이 됐다. 극중 고토 히토리가 대인기피증에 벌벌 떠는 모습은 코미디 같은데 멤버들이 합을 맞추는 과정은 잘 만든 성장물이고… 애니화하면서 수록된 '결속밴드'(극중 주인공들의 밴드) 노래들과 실제 연주를 모션캡쳐로 갈아넣은 제작진의 열정도 인기에 한몫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극장총집편 외톨이 THE ROCK!>은 개봉하자마자 왕좌에 올랐다. 제목처럼 '신작'도 아니고 '1기 총집편'임에도 단번에 관객몰이에 성공한 것. 밴드를 다루는 애니메이션이니 어떻게 보면 음악영화라서 극장에서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고, 새로운 오프닝을 선보인다고 하니 팬 입장에선 안 보는 게 바보일 테다. 국내에선 극중 결속밴드를 연기한 성우들의 공연실황 <결속밴드 라이브 -항성->가 5월 29일 개봉해 1만관객을 돌파하는 저력을 주면서 극장총집편도 개봉 추진 중이란다.
기적을 믿고 최강을 잡아라!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새로운 시대의 문>

일본 문화에 일절 관심 없는 사람에겐 가장 기이하게 느껴질 프랜차이즈,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말을 뜻하는 우마, 그리고 딸 혹은 그만큼 아끼는 여성을 뜻하는 무스메를 합친 말처럼(한국팬들은 '말딸'이라 부른다), <우마무스메>는 말을 의인화한 캐릭터를 내세운 프랜차이즈다. 여기서 놀라면 이르다. 이 캐릭터들은 전부 실제 경주마를 모티브로 한다. 그리고 그 경주마의 선수 활동까지 스토리로 녹여낸다. 마생(?)에서 1등 한 번 못한 하루 우라라나 인기 경주마의 수우승을 방해했단 이유로 평생 야유를 받았던 라이스 샤워 등이 모티브 경주마의 스토리를 잘 살린 것으로 유명하다. 게임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가 프랜차이즈의 시발점인데, 게임 자체는 캐릭터를 성장시켜 우승을 노리는 '가챠게임'이지만 각 경주마의 캐릭터성, 스토리, 경주의 속도감을 살린 연출 등으로 히트 쳤다. 이후 여러 미디어믹스로 이어졌으며 이번에 개봉한 극장판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새로운 시대의 문> 또한 그 결실이다.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새로운 시대의 문>은 클래식 삼관 레이스에서 맞붙게 된 정글 포켓, 아그네스 타키온, 맨하탄 카페, 단츠 플레임 등의 이야기를 그린다. TV 애니메이션에서 현역 경주마 모티브 캐릭터를 내세웠던 것과 달리 (2001년 활동한) 01클래식 세대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01클래식 세대의 라이벌리를 바탕으로 서로를 선의의 경쟁자로 인정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다. 게임과 TV애니메이션에서 호평받은 경주 장면들은 극장판에 걸맞은 퀄리티를 선보인다고. 신카이 마코토 또한 시리즈를 전혀 모르고 봤음에도 전율을 느꼈다고 호평했다. 인기에 힘입어 국내 개봉도 진작 확정했다. 다만 개봉 시기는 미정이어서 팬들의 기우제가 매일같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흥행을 부수고... 흥행을 만든다
<코드 기어스: 탈환의 로제 2막>

장기 집권 중인 프랜차이즈와 치고 올라오는 프랜차이즈에 이어 흥행 순위에 이름을 올린 건 <코드 기어스> 프랜차이즈의 신작 <코드 기어스: 탈환의 로제>이다. 2006년 방영한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의 대성공으로 막을 올린 <코드 기어스> 프랜차이즈는 기어스라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한 메카닉물이다. <코드 기어스: 부활의 를르슈>를 마지막으로 를르슈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장기 기획에 착수했다. 이번에 개봉한 <코드 기어스: 탈환의 로제>가 앞으로의 <코드 기어스>를 보여줄 단초가 될 예정이다.
메카닉과


<코드 기어스: 탈환의 로제>는 '를르슈 시리즈'가 나오고 다소 시간이 지난 것을 반영하듯, 전작에서 시간이 지난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 로제가 형 애쉬와 함께 '이름 없는 용병'으로 활동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그린 이번 작품은 TV애니메이션으로 방영하는 대신 극장판 4부작으로 구성해 5월부터 매달 1편씩 개봉한다. 공개 전 자신 있게 극장판으로 선회한 만큼 작화의 퀄리티나 전작과의 연계성 등 어느 부분에서 빠지는 것이 없다는 게 관객들의 반응. 호의적인 반응을 반영하듯 6월 7일 개봉한 2막도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7위에 등극했다. 국내는 별도 개봉 없이 디즈니+에서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