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극장가에서 꾸준히 관객들에게 인기몰이 중인 <코코>! 여러 호평 속에서도 에디터의 눈에 띄는 문장은 “더빙이 자막보다 더 굳”이란 말이었습니다. <코코>는 뮤지컬 배우 문서윤을 미겔로, 성우 이현(목소리 연기)과 뮤지컬 배우 정동화(노래)를 헥터로 선택해 관객들과 성우 팬들에게도 박수를 받았습니다. 디즈니와 픽사는 현지화에 워낙 꼼꼼해 더빙 성우를 고를 때도 본사의 허가를 받는 걸로 유명합니다. 이 꼼꼼한 디즈니·픽사의 귀를 만족시킨 배우는 누가 있을까요?
명실상부 최고의 ‘연예인 더빙’으로 거론되는 캐스팅입니다. <업>의 칼 프레드릭슨을 연기한 이순재입니다. 칼의 퉁명스럽고 모난 성격을 걸걸한 자신의 목소리로 소화했는데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더빙 실력에 민감한 성우 팬덤 사이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1950년대, 실사 영화도 후시 녹음이 기본이었던 시절부터 활동한 배우답게 발성과 영상의 싱크 등 빠지는 게 없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에디터도 얼떨결에 극장에서 더빙판을 관람했는데요, 이순재의 압도적인 감정 연기에 흠뻑 빠졌던 기억납니다.
<주먹왕 랄프> 랄프
정준하
<주먹왕 랄프>는 처음엔 ‘연예인 더빙?’이라고 비아냥을 들었으나 지금은 ‘레전설’로 뽑힙니다. 정준하가 랄프 역을 맡았는데요, 뮤지컬 배우부터 노래, 연기까지 갖은 활동을 다 경험한 연예인답게 최고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리치 무어 감독이 디즈니의 LA 스튜디오에 방문한 정준하를 보고 "실제 랄프라고 믿을 만큼 캐릭터가 똑같다"고 감탄했다죠! 개봉 이후 팬들 사이에선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창 ’쩌리짱’으로 불리던 정준하가 그 설움을 연기로 승화했다”는 농담도 오갔습니다. 또 바넬로피 역의 성우 소연과의 케미스트리도 좋아서 원판만큼 더빙판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요.
<노틀담의 꼽추> 에스메랄다
채시라
<노틀담의 꼽추>에 등장하는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 이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목소리를 북미에선 데미 무어가 맡았습니다. 그 영향일까요? 국내에선 채시라가 낙점됐는데요, 그 결과 데미 무어의 에스메랄다와 전혀 다른 새로운 에스메랄다가 탄생됐습니다. 데미 무어가 집시의 능청스러움을 잘 살렸다면 채시라는 당당한 여성상을 더 부각시켰습니다. 특히 파리의 재판관 프롤로와 대립하는 장면마다 성우 김병관의 낮은 목소리와 대비돼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더욱 빛났습니다.
<정글북> 모글리
정윤석
마블 영화까지 배급하다 한국 시장의 저력(!)을 알게 된 디즈니는 (CG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정글북>을 더빙판으로도 개봉했습니다. 닐 세티가 연기한 모글리는 아역배우 정윤석이 더빙을 맡았습니다. 앞선 사례들에 비하면 ‘대호평’ 수준은 아니었으나 대다수의 아역 더빙이 팬들에게 불만을 샀던 것에 비하면 호평이 훨씬 많았었죠. 모글리의 곁에서 보좌해준 다른 전문 성우 성영범, 원호섭, 시영준, 전진아, 이장원, 이현진 등과의 호흡도 상당했고요. 무엇보다 <미녀와 야수> 실사 영화 더빙판의 전조였죠!
노래는 우리에게 맡겨라!
<겨울왕국> 엘사
박혜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바로 극중 인물이 노래를 부르는 뮤지컬 방식이란 거죠! 디즈니는 그래서 성우와 노래 연기자를 따로 캐스팅하기도 합니다. <겨울왕국>의 엘사는 성우 소연과 뮤지컬 배우 박혜나의 합작품입니다. 박혜나는 처음 <겨울왕국> 제의가 들어왔을 때 ‘애니메이션 주제가’인 줄 알았다가 극중에 등장하는 곡들이라 놀랐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재밌게도 엘사의 동생 안나 역은 박지윤 성우가 맡았는데, 성악 전공자이자 과거에도 삽입곡을 불렀던 성우답게 혼자서 연기와 노래 모두 소화했습니다. 연기자들의 호연으로 ‘성우’와 ‘성우+뮤지컬 배우’라는 독특한 조합이 최고의 시너지를 빚은 애니메이션으로 등극했죠.
<모아나> 모아나 와이알리키
소향
<모아나>의 모아나도 두 명의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이번엔 뮤지컬 배우+가수 조합이란 더 파격적인 선택이었죠. 신인 뮤지컬 배우 김소연과 가수 소향이 각각 목소리 연기와 가창을 맡았는데요, 목소리 연기가 아쉽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디즈니답게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줬습니다. 거기에 모아나의 할머니 탈라 역으로 기용한 뮤지컬 배우 정영주가 엄청난 호연으로 극찬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마우이의 이장원 성우와 가수 겸 뮤지컬 배우인 이정열의 타마토아 연기까지! <겨울왕국>에 이어 또 한번 한국어 O.S.T.가 발매됐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타잔>
윤도현
1989년 <인어공주>에서 시작된 디즈니의 최전성기, 일명 ‘디즈니 르네상스’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타잔>은 윤도현을 선택했습니다. 당시에도 뮤지컬 무대에 서긴 했다지만 록 가수 이미지가 강했던 윤도현을 선택한 이유는? ‘타잔’이란 제목의 노래를 불러서! <타잔>의 음악들은 극중 인물들이 노래를 부르는 ‘뮤지컬 넘버’가 아니라 배경에 깔리는 ‘삽입곡’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록 가수 특유의 시원시원한 발성은 물론이고 ‘눈부신 아침(Two Worlds)’의 나긋나긋한 가성도 인상적이라 팬들도 호평했죠.
이후에도 자신의 노래 ‘타잔’ 덕분에 <타잔 3D>의 예고편 내레이션도 했다죠.
<뮬란>
박정현
디즈니의 현지화한 엔딩곡 중 가장 파격적이었던 곡은 '내 안의 나를'(원제 Reflection)입니다. 북미에선 <미스 사이공>의 살아있는 전설 레아 살롱가가 극중 노래를, 크리스티나 아길레나가 엔딩곡을 불렀습니다. 한국에선 뮤지컬 배우 이소정이 극중 노래를, 박정현이 엔딩곡을 불렀죠. <뮬란>이 개봉한 1998년은 박정현이 1집 앨범으로로 데뷔한(!) 해인데요, 디즈니의 엔딩곡도 부르면서 엄청난 인지도 상승을 가져왔죠. 거기에 디즈니 최초로 O.S.T.에 새로운 트랙을 넣은 <뮬란>에서 김현철 작곡가가 작곡하고 박정현이 부른 ‘영원까지 기억되도록’(영어 제목 Eternal Memory)이 아시아 버전에 공식 수록되는 영예도 안았죠.
효린 / 윤종신
이외에도 최근 들어 디즈니의 현지화 작업이 빛난 작품은 많습니다! <미녀와 야수>는 뮤지컬 영화답게 이지혜, 황만익, 황두현, 류수화 등을 전문 성우와 함께 캐스팅하면서 작품의 특색을 살렸고, <겨울왕국>의 엔딩을 장식하는 ‘렛 잇 고(Let it go)’의 보컬 버전은 가수 효린의 탁월한 가창력으로 또다른 재미를 선사했었죠. <코코> ‘리멤버 미(Remember me)’의 번안곡이자 엔딩곡인 ‘기억해줘’는 윤종신이 불렀습니다. 에디터가 짚어본, 디즈니가 검증한 배우, 가수는 여기까지! 혹시 아쉽게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 배우·가수가 있다면 댓글로 함께 공유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