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가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기존 인기작인 <아케인>과 <사이버펑크>의 후속편은 물론, 새로운 작품 소식도 여러 개 포함되어 있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을 공개할 예정임을 밝혔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넷플릭스 자체 팬덤 행사인 '긱드 위크 2024(Geeked Week 2024)'가 지난 9월에 개최되었는데, 행사 라이브 이벤트에서 다양한 콘텐츠들의 티저 영상과 관련 정보들을 공개했다. 연상호 감독의 <지옥> 시즌 2와 <오징어 게임> 시즌 2 등 유수의 작품들이 포진하고 있기는 하나, 여기서는 게임 관련 콘텐츠에 초점을 둔다.
1) 〈아케인〉 시즌 2
2009년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려 온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는 사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들 만큼 스토리가 탄탄한 게임이 아니었다. 캐릭터별 스토리가 짤막하게 들어가 있는 정도에, 그나마도 완전히 바꾸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세계관은 있으나 스토리는 애매했다. 그래서였는지 <아케인>은 게임 내에서는 한 번도 설명된 적 없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그려나가는 데 성공했다.

2021년 공개된 <아케인> 시즌 1은 그야말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스토리 없던 게임 원작 치고는 걸출한 스토리와 연출, 다수의 캐릭터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는 주축 서사까지.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않은 관객들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징크스&바이의 이야기는 넷플릭스 자체 제작 시리즈 중 최고점인 98%(로튼토마토 팝콘지수 기준)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비평가 점수는 만점, 메타스코어는 10점 중 9.4를 기록하는 등 전체 평균으로 생각해도 엄청난 성공작이었다.
덕분에 시즌 2를 즉시 확정할 수 있었고, 이번 행사에서는 공개일을 11월 9일로 확정하고 총 3막에 걸쳐 3화씩 공개할 예정임을 알렸다. 장장 3년 만에 돌아오는 두 번째 시즌이긴 하지만, 이제 한 달만 기다리면 필트오버와 자운을 무대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을 예정.
2) 툼레이더: 라라 크로프트의 전설
1996년에 발매된 첫 시리즈를 시작으로 거의 3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인기 시리즈, '툼 레이더'의 애니메이션이다. 라라 크로프트의 게임 내 비주얼을 쭉 보면 글로벌 비디오게임 산업의 그래픽 기술 퀄리티가 보일 정도로 오래된 시리즈인데, 첫 시작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아류작이었지만(고고학자, 고대의 미스터리한 유물 등)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의 독특한 매력에 힘입어 장기적으로 이어져 올 수 있었다.

2001년 개봉한 실사화 영화 <툼 레이더>는 게임 원작 영화로는 최초로 글로벌 1억 달러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기존 팬덤에게는 딱히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으나(원작의 라라 크로프트가 지적이고 유능한 고고학자이자 탐험가였던 데 비해 영화에서는 여전사 이미지에 포커스했기 때문) 주연배우로 안젤리나 졸리가 캐스팅된 덕을 톡톡히 본 듯하다.
2010년대에 들어 영화와 게임 모두 캐릭터 리부트를 거쳤는데,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긴 했으나 흥행에 성공하며 새로운 라라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팬데믹 이슈로 영화 속편 제작이 중단된 사이 판권이 회수됐고, 게임은 2018년 '섀도 오브 더 툼 레이더'를 마지막으로 별다른 소식이 없는 상태다. 그러는 와중 넷플릭스가 이 리부트 버전 라라를 주인공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을 내놓은 것. 아무래도 북미 취향의 작화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라라가 반가운 건 사실이다.
3) 데빌 메이 크라이 애니메이션
'데빌 메이 크라이'는 PS2 시절부터 필수 플레이 게임으로 꼽혔던 캡콤의 인기작이다. PC/콘솔/모바일 등 다양한 플랫폼으로 여러 차례 제작되었으며, 인간과 악마 혼혈인 백발의 악마 사냥꾼 단테가 이 시리즈의 상징적인 캐릭터다. 어머니와 형을 잃은 슬픈 과거를 갖고 있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하지만 걸출한 입담을 자랑하는 유쾌한 캐릭터이기도 하며 돈 버는 데는 재주가 없어 늘 가난하다. 빨간 코트와 쌍권총이 단테의 트레이드 마크.
제작을 맡은 스튜디오 미르는 <코라의 전설>을 시작으로 <볼트론: 전설의 수호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TVA판 등 다양한 작업을 해온 것으로 잘 알려진 스튜디오다. 금천구에 본사가 있는 한국 회사인데, 넷플릭스 기반 애니메이션을 주로 작업한 데다 높은 작화 퀄리티를 기반으로 북미 관객에게 더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는 듯. <위쳐: 늑대의 악몽> <도타: 용의 피> 등 넷플릭스산 게임 원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바 있다.

덕분에 퀄리티 걱정은 할 필요 없을 듯하고, 공개된 티저 영상에서는 주인공 단테가 전장을 누비며 게임 내 명대사인 'Jackpot'과 'Let's Dance'을 외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007년에 일본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이후 처음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인 만큼 반가운 소식.
4) 매직 더 개더링 애니메이션

대표적인 TCG(트레이딩 카드 게임, '유희왕'이나 '하스스톤'을 떠올리면 된다)이자 최초의 TCG인 '매직 더 개더링'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 제작될 예정이다. 2019년에 처음 계획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MCU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는 루소 형제가 각본과 연출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21년에 교체된 이래 이후 소식이 잘 없었던 차였다.
그렇게 취소된 것처럼 보였으나 이번 행사에서 제작 중임을 발표했고, <스타트렉: 피카드>에 참여한 각본가 테리 마탈라스가 콘텐츠의 총 책임자로 기용되었다고.
워낙 장대한 세계관을 갖고 있고, 1994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챕터로 이어져 왔으므로 특정한 스토리를 그려낸다기보다는 이 세계관에 입각한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다룰 것으로 보인다. 한국시장에선 다소 생소하나 30년을 이어온 전통적인 판타지 세계관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
5) 사이버펑크 후속작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매번 크게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여겨졌던 '사이버펑크 2077' 애니메이션인 <사이버펑크: 엣지러너> 후속작이다. 제목도 미정이고, 애니메이션 제작을 맡을 스튜디오도 정해지지 않았으나 일단 확실히 제작되는 것만으로도 기쁜 소식이긴 하다.
팬들의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사이버펑크: 엣지러너>의 제작사였던 스튜디오 트리거가 이번에도 참여하는 것이겠으나... 확정된 사실은 없다. 특히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는 게임의 스핀오프이기도 하지만, 트리거의 10주년 기념으로 추진된 프로젝트라서 스튜디오 수장을 비롯한 베테랑들이 참여했던 것. 설령 스튜디오 트리거가 다시 제작을 맡는데도 베테랑 제작진이 꾸려지리란 보장은 없지만... 어느 제작사에게 전권이 돌아가더라도 전작만큼 굵고 짧지만 확실한 한방을 날려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