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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생 여성배우⑦: 시얼샤 로넌] MCU를 외면하고 찾은 진정한 자유

주성철편집장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

 

“이게 내 최고의 모습이면?” 문득 세계 수많은 청춘영화의 명대사들이 떠오른다.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키즈 리턴>), “그건 네 잘못이 아냐.”(<굿 윌 헌팅>) 등 영화 속 청춘들은 늘 보호받고 격려 받으며 성장한다. 그처럼 청춘영화의 명대사들이란 언제나 덕담이고, 그 누구도 말대꾸하지 않았다. 그레타 거윅 감독 <레이디 버드>(2017)의 크리스틴(시얼샤 로넌)도 썩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로부터 “난 네가 언제나 가능한 최고의 모습이길 바라”라는 얘기를 듣는다. 뭔가 화해의 무드로 전환되어야 할 마땅할 순간, 마치 ‘엄마는 내가 지금으로부터 더 성장하고 나아가길 바라면서 그런 충고를 하는지 모르겠지만’이라는 생각으로, 크리스틴은 앞서 인용한 것처럼 이게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면 어떡할 거냐고 반문한다. 지금껏 청춘영화나 성장영화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어왔던, 바로 그 덕담이라는 탈을 쓴 어른들의 잔소리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즉, 우린 시작도 안 한 게 아니라 이미 끝에 다다랐을 수도 있고, 채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어느새 내 잘못이 되어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크리스틴이라는 자신의 본명 대신 ‘레이디 버드’로 살아가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 있다.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

 

엄마와의 말다툼 끝에 달리는 차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레이디 버드, 이름만 버드(bird)일 뿐이지 차창 밖으로 날지 못해 팔이 부러진 소녀 레이디 버드, 그것이 시얼샤 로넌과의 첫 만남이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더불어 시얼샤 로넌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레이디 버드>는, 원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레이디 버드’라 부르는 고등학생 크리스틴(시얼샤 로넌)의 이야기다. 미국 동부의 고향 새크라멘토를 떠난 동부의 뉴욕으로 대학을 가는 게 목표지만, 거주지로부터 멀지 않은 주립대학이나 시립대학을 가길 바라는 어머니와의 말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학업성적을 떠나 그냥 촌스럽고 구질구질한 고향을 떠나고 싶고, 나보다 조금이라도 잘난 친구들과 사귀고 싶으며, 어떻게든 자신의 고향이 새크라멘토 구석 시골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다. 그렇게 크리스틴이라는, 남이 지어준 이름을 버리고 싶어 한다.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
〈레이디 버드〉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여성이 얼마나 적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지적하기 위해, 앨리슨 벡델 작가가 제안한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는 3가지의 최소 요건을 갖고 있다.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최소 2명 등장해야 하고, 그들은 서로 대화를 나눠야 하며, 또한 그 대화가 남성에 대한 것 이외의 다른 이야기를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즉, 벡델테스트에서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이름을 갖고 누군가로부터 호명되느냐, 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레이디 버드>는 바로 레이디 버드가 ‘크리스틴’이라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

루이사 메이 올콧의 동명 원작을 무려 7번째로 영화화한, 시얼샤 로넌과 그레타 거윅이 다시 만난, 그리고 벡델 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하는 <작은 아씨들>(2019)은 시얼샤 로넌을 통해 원작에 중요한 변형을 가한다. 일단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등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자매, 그리고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의 7년에 걸친 인연과 성장을 그리는 얼개는 변함없다. 하지만 그레타 거윅은 마치 올콧 작가에 빙의한 것처럼 둘째 조의 이야기를 강화했는데, 작가를 꿈꾸는 조에게 당시 실제 올콧 작가의 자의식이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작과 달리 출판사 사무실을 찾아가는 조의 단독 장면이 오프닝일뿐더러, 무엇보다 조는 원작과 달리 결혼을 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책이 출간되는 과정을 지켜본다. 출간 당시에는 ‘상업적 해피엔딩’을 외면할 수 없었지만, 바로 그것이 실제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올콧 작가가 원한 진짜 결말이었다. 아마도 올콧 작가가 살아서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시얼샤 로넌의 ‘조’를 보았다면 울컥했을지도 모른다.

 

〈어톤먼트〉
〈어톤먼트〉
〈한나〉
〈한나〉

 

미국과 아일랜드의 이중국적자인 1994년생 시얼샤 로넌은 12세에 출연한 <어톤먼트>(2007)에서,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의 동생 브라이오니(로몰라 가레이)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이후 <한나>(2011)에서 열여섯 살의 살인병기 소녀 캐릭터로 액션영화 원톱 캐릭터가 됐고, <브루클린>(2015)을 통해서는 본래 아일랜드 억양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또 한 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목됐다. 이후 ‘그레타 거윅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불러도 좋을 <레이디 버드>와 <작은 아씨들>을 통해 각각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2번 연달아 올랐다. 물론 수상을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브루클린> <레이디 버드> <작은 아씨들>을 통해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채 25살도 되기 전에 무려 3번이나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두 번째 배우가 됐다. 첫 번째 배우는 바로 <윈터스 본>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조이>로 3번 후보에 올라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1번 수상한 1990년생 배우 제니퍼 로렌스다.

 

〈브루클린〉
〈체실 비치에서〉
〈체실 비치에서〉

그처럼 종종 비교되는 제니퍼 로렌스가 <헝거 게임> 시리즈의 ‘캣니스’와 <엑스맨> 시리즈의 ‘미스틱’이라는 대표 캐릭터를 가진 반면, 시얼샤 로넌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가 서로 다른 캐릭터로 여러 번 영입을 시도했음에도 단 한 번도 응한 적이 없다. 여전히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시얼샤 로넌은 종종 인터뷰에서 ‘특정 캐릭터에 매몰되기보다 다양한 캐릭터를 거쳐 성인 연기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MCU의 지속적인 구애를 거절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막 성인 연기자가 되어 출연한 <브루클린>(2015)과 <체실 비치에서>(2017)는 조연이 아닌 주연이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맨부커상 후보로 오르기도 했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브루클린>(2015)은 보통 마초 누아르 장르가 점령한 것이나 다름없는 미국 아일랜드 이민자 이야기를 섬세한 멜로영화로 풀어냈고, <체실 비치에서>(2017)도 신혼여행을 떠난 두 사람 사이에 감춰진 오랜 비밀에 다가가며 시얼샤 로넌이 연기하는 플로렌스라는 한 여성의 삶 전체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영화였다. MCU의 한 캐릭터가 아니라 규모가 작더라도 자신이 모든 것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영화의 주연이 된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시얼샤 로넌은 어느덧 가장 중요한 여성배우 중 한 명이 됐다.

 

〈런던 공습〉
〈런던 공습〉
〈런던 공습〉
〈런던 공습〉

 

이제 시얼샤 로넌은 한 아이의 엄마로 우리와 만날 예정이다. 2014년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여우조연상, 각색상을 수상한 <노예 12년>의 스티브 맥퀸 감독의 신작 <런던 공습>(Blitz)이 11월 22일 Apple TV+에서 공개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런던, 리타(시얼샤 로넌)는 폭격을 피해 9살 아들 조지(엘리엇 헤퍼넌)를 시골로 대피시킨다. 그러다 가족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 조지는 집을 향한 멀고 위험한 여정에 오르고 리타는 조지를 찾아 나선다. 모험과도 같은 여정에서 조지는 엄청난 위험에 처하고, 리타는 실종된 아들을 찾아 장대한 여정에 나서게 된다. <런던 공습>의 원제이기도 ‘Blitz’는 ‘영국 대공습’의 다른 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0년에서 1941년에 거쳐 독일 공군이 영국에 가한 일련의 폭격 및 공습을 영국 측에서 일컬은 말이다. 런던은 무려 267일간 71회의 대형 폭격을 겪었다. 그 속에서 한 엄마가 애타게 아이를 찾는 영화다. 질풍노도의 20대를 보내고 다다른 지금, 시얼샤 로넌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씨네플레이 주성철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