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그러나 아직 젊은 서울독립영화제

한국독립영화계가 위태롭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한 2025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에서 서울독립영화제의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영화인들은 거센 반발에 나섰다. 총 175개 단체와 7564명의 개인이 예산 전액 삭감 철회 촉구 연명에 참여했으며, 강유정 의원실 그리고 지역영화네트워크, 영화제정책모임, (사)한국독립영화협회는 ‘영화 예산 및 정책 정상화 촉구 위한 영화인 기자회견’을 개최하는 등 다각도로 영화제 정상화를 위한 투쟁을 벌였다.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전체 회의를 열어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을 의결했다. 영화제 지원 예산을 2023년도 수준으로 복원하기 위해 23억 1400만 원을 증액하고, 독립영화제 지원 예산 2억 9600만 원을 복원했다. 물론 예산안은 의결됐지만, 추후 정부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정부의 ‘독립영화 죽이기’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올해도 여전히, 굳건하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는 개최된다. 올해로 제50회를 맞은 서독제는 “오공무한대(50 to Infinity)”라는 슬로건으로 어김없이 연말을 장식할 예정이다.
서독제2024, 올해는 어떨까

한 해의 독립영화를 결산하는 서독제2024는 11월 28일(목)부터 12월 6일(금)까지 9일간 CGV압구정 일대에서 개최된다. 올해는 총 147편의 상영작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서독제2024의 개막작으로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인 박경근의 <백현진쑈 문명의 끝>이 선정되었다. <백현진쑈 문명의 끝>은 싱어송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음향 엔지니어, 화가, 설치 미술가, 비디오 아티스트, 퍼포먼스 아티스트, 배우, 시인, 연출가 등으로 활동하는 백현진이 제작을 맡고, 박경근 감독이 연출로 참여한 작품이다. <백현진쑈 문명의 끝>은 동시대 예술가의 실험적 무대를 선보이는 세종문화회관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Sync Next) 23’의 12개 공연 중 하나로 선보였던 연극의 기록 영상에서 출발했다. 영화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백현진의 불안정하고 애매모호한 내면을 연출의 핵심 요소로 사용해, 장르로 구분할 수 없는 독특한 형식으로 구성됐다.
매년 독립영화에 대한 구조적인 지원이 줄어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서독제에는 역대 최다 작품이 출품되었다. 단편 1,505편과 장편 199편, 총 1,704편의 작품이 출품된 가운데, 본선 장편경쟁 12편, 본선 단편경쟁 27편, 새로운선택 26편의 작품이 관객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서독제의 씨네플레이 로컬시네마상이란

지역영화 생태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비수도권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은 줄곧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올해는 더하다. 지역 영화 활성화를 위한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2018년부터 ‘지역 영상 생태계 기반 마련’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과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에 예산을 편성해 왔다. 그러나 2023년 12억 원 수준이던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 예산은 2024년에 이르러 전액 삭감됐다.
지역영화와 독립영화가 배타적일 수 있을까. 서독제의 ‘로컬시네마’ 부문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네이버 영화 콘텐츠 공식 파트너사 씨네플레이는 독립영화의 발전을 위해 2022년부터 서독제를 후원하고 있다. ‘로컬시네마’ 부문은 씨네플레이의 후원으로 2022년 처음 시작되어, 서울을 제외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작자들을 주목하고 격려하고자 3년간 계속되고 있다.
지역 출신 또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화인이 만든 영화, 지역 공적 자원으로 제작된 영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등으로 분류된 영화들은 예심을 거쳐 영화제에서 상영된다. 로컬시네마 부문의 상영작 중 심사를 거쳐 선정된 한 작품에는 상금과 함께 ‘씨네플레이 로컬시네마상’이 수여된다.


(왼쪽부터) 서독제2022에서 로컬시네마상을 수상한 <무릉>의 서원태 감독, 서독제2023에서 로컬시네마상을 수상한 <아무 잘못 없는>의 박찬우 감독. 사진제공=서독제
로컬시네마 부문이 신설된 첫해인 서독제2022에서는 서원태 감독의 단편영화 <무릉>이 씨네플레이 로컬시네마상을 수상했다. 서원태 감독은 충남 공주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이자 시각예술가로, 현재 국립공주대학교 영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원태 감독의 <무릉>은 그가 활동하는 지역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 구제역이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의 모순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서독제2023에서는 박찬우 감독의 <아무 잘못 없는>이 씨네플레이 로컬시네마상을 수상했다. 박찬우 감독은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영화인으로, 대구영화학교 1기 연출전공 출신이다. 대구영화학교와 같은 지역 영화학교는 그간 영진위의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의 예산으로 운영되어 왔다. 로컬시네마상을 수상한 박찬우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정부의 지역영화 예산 삭감으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서독제의 말마따나 “선택과 집중이라는 납작하고 건조한 구호 아래 수많은 가능성이 사라져”가는 시대, 올해 서독제의 로컬시네마 부문에서는 총 13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창원에서 펼쳐지는 한 청년의 기묘한 하루를 담은 <작은 하루>(김진), 포항 바닷가 풍광 속, 다른 듯 닮은 두 친구의 계절을 다룬 <환절기>(김주리), 지역 영화 워크숍 현장에서 벌어지는 대환장 대소동! <라스트씬>(황재필, 김효준),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공감 백프로 <야식금지클럽>(김은영, 전상진, 황영), 부산 중앙동, 처음부터 떠남이 정해져 있던 작업실을 담담히 기록한 <무빙 아웃>(정지영), 가만히 옆에 앉아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싶어지는 <그저 하루>(백승환),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아이들의 사정을 담은 <평행선>(정은수), 공간에 대한 각자의 추억들을 모아 조립한 <공간 속 기억>(박동규), 아무리 노력해도 안 풀리는 청춘들의 고군분투를 초 하이 텐션으로 그린 <404호의 사정>(박장희), 감독님, 배우님 ‘그’ 영화제 수상을 축하합니다! 대체 영화제가 뭐길래?! <소박>(김종진), 자의로, 타의로 가려진 원주의 유리벽, 그 안팎의 사람들을 담은 <유리벽>(박주환), 사랑하는 것을 영원히 사랑하고 싶어 결국 영화로 만들어 낸 <잔존하다>(정시연), 강릉의 한 목공소에 모이게 된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 <몽고반점>(조남현) 등은 독립영화, 지역영화를 응원하는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