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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넷플릭스 〈트렁크〉 공유, “‘나 당신이랑 자고 싶은 것 같아요’ 대사가 제일 힘들었다”

김지연기자

 

배우 캐스팅만으로도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렁크>가 전편 공개됐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로 굵직한 필모그래피를 보유한 서현진, 공유가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개 전부터 많은 ‘드덕’(드라마 덕후)들을 설레게 했는데, <트렁크>는 사실 미스터리 멜로라는 외피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의 결핍과 모순을 관찰하는 심리 스릴러이자 범죄 드라마다. <트렁크>는 ‘기간제 결혼’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빌려,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지기 시작한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를 그린다.

 

<트렁크>의 다양한 인간 군상 중에서도 한정원(공유)은 가장 가시적인 결핍을 품고 사는 인물이다. 한정원은 단연코 배우 공유가 지금까지 연기해 온 인물 중 가장 피폐하고, 가장 어두우며, 확실하지 않다. <트렁크>는 해석의 몫을 시청자들에게 넘기는 작품이기도 한데, 배우로서도 자신의 몫을 어떻게 다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톤이 변화하기에 어려운 도전이었을 터. 5일 오후,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배우 공유를 만나 <트렁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유. 사진제공=넷플릭스
공유. 사진제공=넷플릭스

〈트렁크〉
〈트렁크〉

 

넷플릭스 <트렁크>는 공개 전부터 두 멜로 장인, 서현진과 공유가 만난다고 해서 굉장히 많은 화제가 됐어요. 혹시 배우 본인은 ‘멜로 장인’이라는 수식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은 쪽으로 봐주시는 거니까 감사하긴 한데, 사실 부담스럽죠. 제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데, 아무래도 전작이 많은 사랑을 받았고, 거기서 보이는 면들이 크니까. 저는 스스로 보면 잘 모르겠거든요. 부끄럽죠. 사실 (서)현진 씨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원래도 배우로서 되게 좋아했고, 이번에 같이 연기해 보니까 생각보다도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는 생각을 했고요. <트렁크>라는 드라마는, 정원(공유)보다는 인지(서현진)와 서연(정윤하)이 끌고 가는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현진 씨 연기하는 걸 보니까, 자세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도 현진 씨가 연기로 꽉꽉 채워주는 느낌이 들었고, 현장에서 연기할 때도 그게 느껴져요. 되게 섬세하고 정확한 연기를 하는 배우라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어요.

 

<트렁크>는 공개된 후, 많은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고 있어요. <트렁크>는 보통 드라마와는 달리, 여백이 굉장히 많고, 건조하고, 어둡기 때문인데요. 공유 배우가 <트렁크>라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요.

대본을 볼 때부터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거라는 걸 알고 선택했어요. 저도 나름 20년 넘게 일을 해왔으니까, 대중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저도 패턴을 알잖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재미를 느끼고 호기심을 느끼는 얘기에 출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죠. 저는 언젠가부터 제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해요. 그래서 장르적인 부분은 우선순위가 아닌 것 같고요. 이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이 캐릭터가 왜 이렇게 아픈지에 대해 궁금함이 생겨야만 할 수 있는데, <트렁크>의 정원이를 처음 봤을 때 굉장히 궁금했어요. 이 아이를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 아이가 너무 딱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제가 갖고 있는 어떤 부분에 본질적으로 닿아있는 느낌,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었어요.

 

 

〈트렁크〉
〈트렁크〉

 

​<트렁크> 속 인지와 정원의 로맨스는 정말 ‘버석버석’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 작품을 했을 때와는 달리, 덜어내야 하는 감정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사람들이 바라보는 저와 제가 바라보는 저의 간극이 있어요. 사실 저는 저를 조금 건조한 사람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정원을 받아들이는 데에 이질감이나 불편함은 없었어요. 뚜렷하게 정원의 이런 면과 저의 이런 면이 같다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도 상대방이 나를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 사람을 만날 때 사람이 궁금해지고, 그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도 발전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경험들을 해봤기 때문에, 정원이가 느끼는 어떤 아픔이나 상처가 직감적으로 느껴졌어요. 인지와 정원은 둘 다 상처받고 아픈 영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른 말이긴 하나 ‘거울 치료’한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서로가 느끼는 본능적인 동병상련의 마음, 연민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트렁크〉
〈트렁크〉

정원과 인지처럼, <트렁크>에는 다양한 결핍을 품은 인물들이 등장해요. <트렁크>에서 가장 공감이 갔던 인물이라면 누구일까요?

<트렁크>의 인물들은 전체적으로 다 정상이 아니에요.(웃음) 그래도 저는 다 이해가 갔으니까 했겠죠. 그런데, 사실 인지도 본인이 사랑했던 양성애자 남자친구를 결혼이라는 제도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싶어 했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결국은 소유의 사랑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어요. 인지도 결국은 그걸 깨닫게 되어 자책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인지는 그것을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리듯이 자책하면서 살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서연은 쉬운 말로 뒤틀린 욕망의 여자인데, 후반부에 차 안에서 ‘난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살았어. 내가 갖고 싶은 건 가져야 되고, 담임 선생님을 바꾸고 싶으면 바꿀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짝꿍을 짝꿍으로 만들었어’라고 하는 부분이 서연의 캐릭터를 확실하게 정리해 주는 얘기였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제가 연기해서가 아니라, 제일 불쌍한 건 정원이에요. 인지와 서연은 그래도 주체적이에요. 본인이 판단을 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해요. 그런데 정원은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에요. 왜냐하면 그렇게 멈춰버렸어요.

〈트렁크〉
〈트렁크〉

저는 정말 <트렁크> 속 서연과 정원이 사랑하긴 했었는지가 궁금했어요. 정원과 인지가 서서히 사랑하게 되는 과정은 8화에 걸쳐서 드러나는 반면, 한때 결혼까지 했던 서연과 정원의 자세한 전사나 둘 간의 감정은 잘 드러나지 않으니까요. 배우 본인은 어떻게 해석하셨나요?

정원은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서연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사실 정원이는 정상적인 인물이 아니잖아요. 어렸을 때의 큰 트라우마를 가슴에 안고 사는 인물이고, 그런 아이가 사실 몸만 컸지 더 이상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만큼 멈춰버리고 말라버렸어요. 그런데 ‘소유의 사랑’을 믿는 서연이라는 여자가 옆에서 계속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었던 거라, 정원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게 사랑인가 보다’라고 끌려간 거 아닌가 하는 해석을 해요.

 

<트렁크>의 대사들은 유독 어렵고,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고 느껴져요. 가장 잘 풀리지 않았던 장면이 있었을까요?

많죠. 찍다가 한번은 독감에 심하게 걸린 적이 있어서, 대사를 못할 정도로 기침이 계속 나온 적이 있는데, 어찌저찌 회복이 다 되고 나서 촬영을 했던 게 “나 당신이랑 자고 싶은 것 같아요” 씬이었어요. 그래서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남아 있는데, 그 신이 어려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그간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방식의 고백이어서 정말 고민했어요. 말로 설명하긴 좀 어려운데, 제가 그 대사를 하고 나서 현진 씨가 원래 본인이 생각했던 리액션을 할 수가 없었대요. 인지의 기조라면, 더 매뉴얼대로 건조하게 했었어야 했는데 현진 씨가 실제 대본보다 조금 풀었어요. 현진 씨가 자기가 생각했던 인지의 반응은 이랬는데, 제가 이렇게 연기를 할 줄 몰랐다는 거예요. 그런데 현진 씨가 감독님에게 “정원이 그런 눈으로 이렇게 얘기하면, 저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는데, 저는 여전히 그 씬이 좀 그런데, 그때 현진 씨의 말이 힘이 됐어요.

 

 

〈트렁크〉
〈트렁크〉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작품이지만,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트렁크>를 꼭 봐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신다면요.

저는 진심으로 서현진 씨의 연기 보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현진 씨가 불친절할 수도 있는 공백을 메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진 씨의 대사나 얼굴이 개연성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음악이나 촬영, 편집이 마음에 들어요. 음악 역시 굉장히 세련되었고, 촬영감독님이 촬영 때부터 워낙 잘 해주신다고 느꼈는데 편집된 장면을 보니까 더 좋아요. 또 파편적으로 편집이 된 건 의도였거든요. 4부 정도까지 보면, 전체적인 그림이 드러나는.

 

말씀하신 것처럼 <트렁크>의 미장센이나 세트, 미술 모두 좋았어요. 가우디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정원의 집은 독특하기도 했고요. 디테일이 굉장히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한데, 의상 등의 디렉팅도 있었나요?

감독님이 처음부터 의상도 설정하셨는데, 인지는 빨간색, 서연은 파란색이에요. 작품에서 그 메타포를 많이 사용하는데 빨간 약, 파란 약 이야기도 거기서 비롯된 거고요, 의상 속에서 그들의 컬러들이 눈에 띄어요. 마지막에 서연이 정원의 집에 와서 비트 주스를 뿌리잖아요. 벽에 흩뿌려지는 빨간색을 카메라가 괜히 잡는 게 아니에요. 다시 보신다면, 그걸 찾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공유. 사진제공=넷플릭스
공유. 사진제공=넷플릭스

 

<우리들의 블루스> <괜찮아, 사랑이야> 등의 김규태 감독님과 작업하셨어요. 김규태 감독님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김규태 감독님과 처음 작업해 봤는데, 굉장히 순수하시고 심플하세요. 저는 조금 복잡한 사람이고, 김규태 감독님은 심플하신 분이라 오히려 더 괜찮았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저와 비슷한 사람이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거든요. 저는 그런 감독님을 처음 봤는데, 김 감독님은 본인이 모르겠으면 그냥 모르겠다고 얘기하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저는 오히려 그게 되게 좋게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어떤 감독님들은 이 씬에서 여기를 보면서 연기하고, 몇 발자국 걷고 그런 것을 계획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어떤 게 맞다는 건 아니지만 김규태 감독님은 굉장히 많이 열려 있어요. 여백이 많은 느낌이고, 굉장히 솔직해서 놀랐었어요. 겉과 속이 너무나 똑같으신 분이에요. 모니터 앞에서 심각하게 보는 게 아니라, 정말 시청자처럼 보다가 본인이 좋으시면 입 벌리고 웃으시고. 그래서 다음부터 감독님이 웃으면 이건 오케이구나, 해서 저는 좋았어요.

 

공유. 사진제공=넷플릭스
공유. 사진제공=넷플릭스

 

앞서 ‘멜로 장인’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럼 본인은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저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제가 지금 40대 중반인데, 제가 연기를 23년을 했더라고요. 그래서 그 과정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고, 배우 이전의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나이가 들수록. 그게 저의 연기나 작품 선택 기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이나 연기 톤을 보면, 과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넘치는 거 별로 안 좋아하고, 차라리 좀 부족한 걸 선호하는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앞서가서 과잉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경계하는 배우 같아요.

 

12월 26일에 공개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 2에도 특별출연하셨는데요. 시즌 1에 이어서 다시 <오징어 게임>에 출연하게 된 소감은요.

저는 아직 보지도 못했어요. 특별출연이라서 안 보여줘요.(웃음) 기자님들은 보셨나요? 재밌나요? <오징어 게임>이 특히 재밌었던 건, 제가 그간 했던 작품들에서는 작품 전체에 대한 생각과 저와 얽혀 있는 캐릭터들을 생각하고 전체적인 호흡을 생각해야 하는 작업이었다면, <오징어 게임>의 캐릭터는 굉장히 독자적인 캐릭터이고, 제가 해보지 않았던 빌런의 캐릭터여서 제가 자유롭게 캐릭터를 제약 없이 채울 수 있다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되게 신나게 놀면서 찍었고, 아직 안 봐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어요.

공유. 사진제공=넷플릭스
공유. 사진제공=넷플릭스

 

<트렁크>에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나오는데요. 공유 배우 본인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저는 의리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제 또래 친구들은 다 장가가고 애 키우고 살고 있는 애들이 대부분이라. 그런데 좀 어려워요. 저는 장가도 안 가보고, 애도 안 키워봐서 이런 말 하기가 조심스럽긴 한데, 사랑은 정답은 없는 것 같고,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히고설킨 건데, 작품 속에서 보이는 판타지 속의 사랑은 포장되고 미화된 부분이 많다고 봐요. 그래서 다소 어둡더라도, 굳이 꺼내기 싫고 우울한 얘기를 꺼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누군가에게는 판타지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치유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트렁크> 속의 트렁크처럼, 공유 배우 본인이 트렁크에 넣어서 버리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되게 모순적인데, 제가 가지고 있는 예민함. 그런데 제가 연기를 할 때 예민함이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시간이 가면서 느껴요. 그런데 그게 가끔 저를 갉아먹을 때가 있거든요. 모순적인데, 버리고 싶은데 버릴 수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해를 거듭하고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잘 바뀌지 않아서. 내가 이걸 버리고 싶은데, 내가 이걸 버리면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양가적으로 와요.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내가 이것을 애지중지하지도 못하고, 애매하게 그 경계에 계속 걸쳐 있는 느낌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