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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직하고, 묵직하게... 지금 여기 필요한 이 영화 〈하얼빈〉 리뷰

이진주기자

〈하얼빈〉 포스터
〈하얼빈〉 포스터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점에서 영화 <하얼빈>의 언론 배급 시사회 및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기자 간담회 현장에는 배우 현빈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이동욱과 우민호 감독이 참여했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하얼빈>은 1909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독립군의 7일간의 여정을 그린다. 안중근(현빈)을 비롯해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공 부인(전여빈), 최재형(유재명), 이창섭(이동욱) 등은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해 하얼빈에 방문하는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를 처단하고자 하얼빈으로 향한다. 하지만 내부에서 정보가 새어 나가고 육군 소좌 모리 다쓰오(박훈)를 중심으로 한 일본군의 끈질긴 추격이 이어진다.

〈하얼빈〉
〈하얼빈〉

 

영화는 <내부자들>(2015), <남산의 부장들>(2020) 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이면을 파헤친 우민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간 악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로 사랑받은 우민호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선의를 가진 인물을 다루며 새로운 시도를 했다.

〈하얼빈〉
〈하얼빈〉

 

그는 “3년 전 이 영화를 기획했다. 처음으로 이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신 분들의 이야기에 접근하게 되면서 안중근 자서전과 독립투사들의 자료를 살펴보게 되었다. 당시 안중근 의사는 30세였다. 대부분의 독립군 역시 2-30대였다. 그렇게 젊은 분들이 헌신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어 눈시울을 붉히며 “그분들에게 굉장히 고맙고 죄송스럽다. 이 영화가 보시는 관객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가 혼란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지만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하얼빈〉 기자간담회 중 현빈(사진=호호호비치)​
〈하얼빈〉 기자간담회 중 현빈(사진=호호호비치)​

 

한편, 영화 <하얼빈>은 배우 현빈이 안중근 의사 역을 맡아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현빈은 ‘안중근’이라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데에 부담감을 느껴 여러 차례 캐스팅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우민호 감독은 “현빈의 눈빛에 쓸쓸함과 연약함, 강함이 담겨있다. 나는 그런 안중근을 원했다.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걸어가는 그런 얼굴이 현빈에게 있다고 생각했다”며 안중근 역에 현빈을 고집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현빈은 안중근을 연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며 “그분의 발자취들을 찾아보고 알아가고 연구하며 생각했다. 단 하루도 이 과정을 안 한 날이 없었다. 매일 상상하고 생각했다”고 말해 쉽지 않았던 과정을 짐작게 했다.

 

<하얼빈>은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아주 단순한 플롯에 기반한다. 영화는 114분 동안 오로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묵직하게 나아간다. 우리 모두는 안다. 안중근이 결국 하얼빈에 당도해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트릴 것임을. 역사가 그 자체로 스포일러라면 중요한 것은 영화가 이를 풀어내는 스타일이다. 우민호 감독은 대담하게도 한발 물러서는 방식을 취했다.

〈하얼빈〉
〈하얼빈〉

 

회화적인 미장센 활용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당시 독립군이 활동한 중국, 러시아 지역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배경을 회화적으로 담아냈다. 이를 위해 약 6개월에 걸쳐 한국뿐 아니라 라트비아 등지에서 촬영했고 <기생충>, <설국열차>, <곡성>의 홍경표 촬영감독이 TV에서는 프레임 구현이 되지 않는 영화 전용 카메라 ARRI ALEXA 65를 잡았다. 우민호 감독은 이에 대해 “명화를 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영상 비주얼에 심혈을 기울인 만큼 <하얼빈>은 한국 영화 최초로 IMAX 포맷에서만 감상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되었다. “OTT와의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을 고민했다”는 우민호 감독의 ‘킥(Kick)’이다. 이는 영화의 정체성에 가깝기에 관람을 고려한다면 IMAX관에서 보기를 추천한다.

 

우민호 감독의 거리 두기는 안중근을 포함한 극 중 모든 인물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그는 안중근에게서 비범함을 떼어내고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했다. 동시에 한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인에 대한 존경을 담아 그 자리를 지켜주었다. 이것은 이토 히로부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는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정복자의 모습이 아닌 지극히 정략적인 면모가 부각되며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영화 <하얼빈>에서 모든 인간은 무력하고 입체적이다.

〈하얼빈〉
〈하얼빈〉

 

우민호 감독이 선택한 이 방식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기존의 한국 영화의 성공 공식과는 상당 부분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남산의 부장들>(2020), <내부자들>(2015) 등 스타일리시한 작품으로 수차례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빠른 컷 전환, 서사의 적극적인 개입 등 그간 우민호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극적 재미를 배가시키는 그의 장기는 <하얼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연기 연출은 다소 투박해 연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이를 통해 안중근과 독립군의 삶이 그러했듯 지난한 시간을 차분히 되짚어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을 우선한다. 이 점이 <하얼빈>의 호불호를 가를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이토 히로부미 역에 릴리 프랭키를 캐스팅한 것은 단연 돋보이는 결정이다. 릴리 프랭키는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2018)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대표 배우이다. 영화 <하얼빈>의 시나리오에 반해 출연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밝히기도 한 그는 언론 배급 시사회에 앞서 기자들 앞에 서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우민호 감독은 “릴리 프랭키에게 전적으로 이토 히로부미 연기를 맡겼다”고 전했다.

 

〈하얼빈〉
〈하얼빈〉

 

​안중근과 함께 거사를 치르는 우덕순 역의 박정민, 김상현 역의 조우진, 공 부인 역의 전여빈, 최재형 역의 유재명, 이창섭 역의 이동욱 등은 서로 다른 색의 캐릭터를 완벽히 구현해 내며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한다. 이들은 주인공(안중근)에게 소비되지 않고 하얼빈 의거에서 각자의 서사를 가지며 극을 한층 풍부하게 만든다. 특히 안중근을 따르는 우덕순(박정민)과 김상현(조우진)의 케미스트리는 <하얼빈>을 보는 또 다른 재미이다. 한편, 일본군 육군 소좌 모리 다쓰오 역의 박훈은 안중근에 대한 집착으로 광기에 휩싸이는 섬찟한 연기를 잘 표현해냈다.

〈하얼빈〉 기자간담회. (왼쪽부터) 박훈, 조우진, 현빈, 우민호 감독, 전여빈, 유재명, 이동욱(사진=호호호비치)
〈하얼빈〉 기자간담회. (왼쪽부터) 박훈, 조우진, 현빈, 우민호 감독, 전여빈, 유재명, 이동욱(사진=호호호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