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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나만의 연기대상,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유오성

김지연기자
영화  〈친구〉(2001) 스틸컷
영화  〈친구〉(2001) 스틸컷

 

유오성은 데뷔 이래 약 30년간 ‘강한 남성성’을 대표하는 배우였다. 영화 <친구>(2001)는 물론이고 <비트>(1997) <주유소 습격사건>(1999) <챔피언>(2002) 등으로 ‘선 굵은 이미지’를 구축해 온 유오성에게 2024년이란, ‘강한 남성성’의 정의를 새로 정립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소리를 듣던 반항아가 30년이 흘러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어 복잡다단한 부성애를 표현한다는 사실은 꽤나 인상적인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9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선 굵은’ 유오성을 보며 자란 현실의 인물들이 현재는 누군가의 아버지로서 중년기를 보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유오성의 캐릭터 변천사는 지극히 현실적인 변화를 따른 것이기도 하다.

 

물론 유오성은 최근까지도 넷플릭스 <스위트홈> 시즌 2~3, 누아르 영화 <강릉>(2021)에서 그의 강렬한 이미지를 활용한 인물을 연기했으나, <웰컴투 삼달리>(JTBC, 2023~2024)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MBC, 2024)에서 그의 ‘터프한 마스크’가 활용되는 방식은 타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하 <웰컴투 삼달리>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웰컴투 삼달리〉 스틸컷. 사진제공=〈웰컴투 삼달리〉 공식홈페이지
〈웰컴투 삼달리〉 스틸컷. 사진제공=〈웰컴투 삼달리〉 공식홈페이지


올해 초 종영한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속 조상태(유오성)는 조용필(지창욱)의 아버지로, 자존심 강하고 구부정한 노인이다. 조상태는 30대 후반씩이나 된 아들의 방을 매일 청소하고, 로션을 빌린다는 핑계로 아들에게 말을 붙이며, 그러면서도 아들이 육지의 좋은 일자리로 전근을 가길 바란다. 그런데 그는 30년 전, 자신의 아내 부미자가 삼달의 엄마 고미자(김미경)와 함께 물질을 나갔다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고미자를 줄곧 원망하고 미워한다. 자신의 아들 용필이 삼달(신혜선)과 교제하는 것을 기를 쓰고 반대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 드라마의 후반부에, 조상태는 결국 삼달과 용필의 교제를 허락하는데, 그건 조상태라는 인물이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조상태는 자신이 아내를 잃은 상실감을 누군가를 향한 원망으로 대체하려던 왜곡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제야 비로소 고집 센 노인의 얼굴을 걷어낸다. “너희네, 좋아허라게. 소랑(사랑)허라게!”라며 그전까지 본 적 없는 후련한 미소를 짓는 모습은 그가 그제야 비로소 자신 내면의 모순을 인정하고 털어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스틸컷. 사진제공=〈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공식홈페이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스틸컷. 사진제공=〈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공식홈페이지

 

거칠게 묶자면 <웰컴투 삼달리>의 조상태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정두철(유오성)은 모두 나약한 아버지라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두 아버지 모두, 자식을 향한 사랑이 자신의 결핍과 합쳐져 왜곡된 부성애를 발현하는 인물이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속 유오성의 출연은 그 자체로 스포일러가 될 만큼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는데, 그가 연기한 정두철은 아들 박준태(유의태)를 위해서라면 시체 유기까지 서슴지 않는 아버지다.

 

한석규가 주연한 MBC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두 종류의 부성애가 대칭을 이루는 드라마다. 장태수(한석규)와 장하빈(채원빈), 그리고 정두철(유오성)과 박준태(유의태)의 두 쌍이 그것이다. 물론 그들의 부성애가 발현되는 방식은 매우 상이한데, 장태수는 자신의 딸이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러나 끝내 그 의심을 부정하고픈 아버지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정두철의 부성애는 ‘자신의 아들은 절대 그럴 일 없다’ ‘혹여 범죄를 저질렀을지라도 그가 잘못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맹목적인 믿음에 기인한다.

 

정두철은 자신은 폭력 전과가 있는 사람이지만, 교사인 아들만큼은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걸어야만 한다는 신념 아래 아들이 죽였을지도 모르는 송민아(한수아)의 시체를 유기한다. 정두철이 송민아의 시체를 도끼로 산산조각 내는 장면은 유오성에게서 본 모든 연기, 그리고 작년 본 모든 드라마의 씬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라고 꼽을 만하다. 그건 정두철이 사이코패스처럼 능숙하게 시체를 토막내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떨리는 손, 질끈 감은 눈, 쉴 새 없이 흐르는 식은땀과 함께 이내 울먹이며 “해야 돼, 해야 돼, 내가 해야 된다고”라는 말만 주술처럼 반복하던 정두철은, 마치 그것이 아들을 살릴 유일한 방법인 양 오열하며 시체를 처리한다.


영화  〈친구〉(2001) 스틸컷
영화  〈친구〉(2001) 스틸컷
영화  〈비트〉 스틸컷
영화  〈비트〉 스틸컷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정두철은 90년대 한국 누아르 영화 속 인물의 이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속 유오성이 연기한 정두철이라는 인물의 전사를 상상해 보자면, 유오성의 필모그래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강하고 거친 외형을 가져 청년기를 주먹으로 평정한 그들이 30년이 지나, 자신보다 소중한 자식의 과오를 마주할 땐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공교롭게도, 유오성과 함께 영화 <친구>에 출연했던 배우 장동건 역시 2024년, 영화 <보통의 가족>으로 자식의 과오 앞에 놓인 평범한 아버지를 연기했는데, 그들이 시간이 흘러 보다 다층적인 부성애를 표현한다는 사실은 시대의 변화와 맞물려 짐짓 흥미롭게 보인다. 강하고, 폭력적이고, 거칠었던 90년대의 남성성은 시간이 흘러 보다 다층적이고 입체적인 남성성으로 변화했고, 그 중심에는 배우 유오성이 있다.

 

지난해 12월 29일 발생한 안타까운 여객기 참사로 인해 2024년 연말에는 몇 시상식이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참사가 발행하기 이전인 12월 21일에 진행된 ‘SBS 연기대상’에서는 <굿파트너>의 장나라가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새해 이후로 순연된 ‘KBS 연기대상’에서는 <개소리>의 이순재가, ‘MBC 연기대상’에서는 <밤에 피는 꽃>의 이하늬,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한석규 등이 유력한 대상 후보로 점쳐지는 상태다(MBC 연기대상은 1월 5일 녹화방송한다-편집자 주). 물론 쟁쟁한 대상 후보들은 충분히 박수받아야만 하지만, 유독 작년 브라운관에서 분량에 상관없이, 뇌리에 잊히지 않는 연기를 선사한 자신만의 ‘대상 후보’가 있을 것이다. 독자들이 축하를 보내고 싶은 ‘2024 나만의 연기대상’이 있다면 언제나 댓글로 알려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