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식은 욕심이 난다고 했다. 욕심을 버려야 연기가 잘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잘 하고 싶단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넷플릭스 <멜로무비>의 주역 최우식을 만났다. 그간 <거인>(2014), <마녀>(2018), <기생충>(2019) 등 장르 영화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선보이는 동시에 tvN 예능 <윤스테이>(2021), <서진이네>(2023) 등에서 특유의 재치 있고 귀여운 매력을 드러낸 그였다. 그러던 중 필모그래피 최초의 멜로드라마인 SBS <그 해 우리는>(2021)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최우식은 멜로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넷플릭스 <멜로무비>는 그 이후 4년 만에 이나은 작가(<그 해 우리는> 작가)와 함께하는 멜로드라마다. 그에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한껏 상기된 모습으로 긴장감을 숨기지 않는 최우식이 말하는 '멜로'에 대해 들어보았다.
지난 14일 <멜로무비>가 공개되었는데요. 시청자들의 반응은 어떻게 체크하시나요?
아직 반응을 보지 않았어요. 사실 원래도 인터넷상의 반응보다는 주변 반응을 많이 물어보는 편인데, 이번에는 유난히 더 그런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찍으면서 욕심도 많았고 생각도 많았던 만큼 더 두려운가 봐요.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이쪽 일을 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특히 많이 물어보는 편이에요. 그 친구들은 정말 서슴없이 직격탄을 날리거든요. (웃음) 반면 연예계 일을 하는 친구들은 그 노고를 알고 어떤 기분으로, 어떤 상태에서 연기했는지 아니까 조금 다르죠. 어젯밤에는 이 일을 하지 않는 친구한테 연락이 왔어요.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다고, 잘 봤다고 해줘서 힘이 많이 됐죠.
이나은 작가님과는 <그 해 우리는> 이후 두 번째 작품이에요. 비슷한 작품이 될 거란 우려는 없었나요?
사실 비슷하다고 생각은 안 했어요. 같은 작가, 같은 배우가 만난다는 것에 대해 생각이 많긴 했죠. 하지만 메시지도 다르고,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두 작품 모두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라 더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 같아요.
내레이션이라는 장치가 꼭 이나은 작가님만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기생충>에도 내레이션이 있었고, 제가 그동안 내레이션이 있는 작품을 꽤 많이 했거든요. 다만 똑같은 작가, 배우라서 그 부분이 더 부각되지 않았나 싶어요.

영화평론가 역할을 맡으셨는데, 특별히 연구하신 부분이 있나요?
평론가님들의 글을 많이 찾아봤어요. 마치 답안지 같달까요? 영화를 찍고 나면 어떤 평론가분들이 뭐라고 하실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하지만 특정 평론가님을 모방한다든지 어떤 제스처를 따라 하지는 않았어요. 이 작품에서 평론가라는 설정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 하나의 매개체예요. 다시 만날 수 있는, 스파크를 붙일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죠.
그럼 보통 캐릭터를 연구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시나요?
제가 너무 단순해서 그런지, 캐릭터를 연구할 때 초반 베이스만 연구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형사는 이렇게 걷고...' 이런 식으로요. 게을러서일 수도 있지만(웃음),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해요.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신 바이 신으로 풀어나가는 거죠. 그런데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을 찍을 때는 (이)희준이 형을 보면서 '아,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촬영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텐데 감정 신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부담이 컸을 것 같아요.
네, 많이 힘들어했어요. 원래도 걱정과 고민이 많은 편인데, 스케줄표를 먼저 보면서 (감정 신의 촬영 날짜를 확인하며) '이걸 언제 찍지?' 하는 생각도 들고... 사실 걱정하고 고민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웃음) (김)재욱이 형이랑 (박)보영씨가 저 때문에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특히 형과의 꿈 장면에 가장 공을 들였다고 들었어요.
네, 대본을 읽으면서 너무 많이 울었거든요. 첫 테이크 때는 감정이 좋았는데 대사가 이상하게 나와서... 하다 보니 점차 힘들어졌어요. 모두가 기대하는 분위기라 부담도 됐고요. 다행히 실제로도 친형이랑 친한 편이어서 도움이 됐어요. 고준, 고겸처럼요. 평소에도 얘기를 많이 하고 걱정이나 고민도 나눠요. 덕분에 극 중에서도 형제간의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기가 수월했죠.
처음 <멜로무비> 대본을 받았을 때 기억나시나요?
처음 읽었을 당시, 조금 생각이 많았어요. 우울까진 아니지만 힘이 많이 드는 시기였거든요. 주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죠. 혼자 이겨내고 극복해나가고 성장해나가기도 하지만, 주변의 힘으로 극복해나가는 걸 느꼈어요. '고민도 나누면 줄어든다'라고 친형이 말해주더라고요.
이번 드라마가 지나치게 우연에 많이 기대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연이 많이 나오죠. 그래서 드라마고,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이 없으면 꿈을 꿀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순간들은,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눈만 쳐다보고 얼굴만 보고 그 사람이라는 존재만 봐도 너무 설레는 감정이 있잖아요. 정말 설렘이 가득한 순간들인 것 같아요. 드라마적으로 설렘을 보여주고 싶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멜로무비>는 연예계 대표 두부상의 조합이잖아요. 박보영 배우와의 호흡은 어떠셨나요?
'박보영' 하면 밝고 귀여운 모습이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현장에서는 걸크러시 김무비를 연기하는 것을 보면서 새로웠어요. 그동안 작고 귀여운 외모에 가녀린... 아, <힘쎈여자 도봉순>에서는 힘이 셌었죠. (웃음) 겉보기엔 가냘플 것 같지만, 현장에서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면도 있구나'하고 느꼈어요. 많이 비춰진 적이 없어서 그렇지 저런 무기도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많이 배웠습니다.
'두부상'이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웃음), '두부'를 생각해 보면 간이 세지 않고 고소한 느낌이 있는 데다 다른 음식과도 잘 어울려서 좋다고 생각해요. 제 입으로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튀지 않고 고소한 면 때문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박보영 배우와의 케미만큼 형 역할을 맡은 김재욱 배우와의 호흡도 눈에 띄었어요.
제가 상대방 눈치를 많이 보는 스타일인데, 재욱이 형과는 원래 너무 친해서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편안한 사이죠.

'고겸'이라는 캐릭터가 실제 최우식 배우를 빼닮았을 것 같다는 말이 있어요. 실제로 고겸과 비슷한가요?
이나은 작가님이 제가 어떤 연기를 할 때 편안해하고 잘 노는지 아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하와이안 피자를 안 좋아하신다고요.(극 중 고겸은 하와이안 피자를 싫어한다)
네. 그런데 얼마 전에는 하와이안 피자를 먹어보니 맛있더라고요. (웃음)

<그 해 우리는> 이후 두 번째 멜로 연기예요. 그동안 캐릭터가 강한 장르 연기를 주로 해오셨는데 멜로 연기를 해보니 좀 어떠신가요?
아직 부족한 것 같아요. 아직 시청자분들의 반응이 어떤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다음에는 더 보강해서... (웃음) 사실 그동안 로코가 많이 없었거든요. 누구한테 쫓기고 피 묻히고 죽이고 도망가고 훔치고 거짓말하고 이랬는데.(웃음) 자꾸 이런 작품이 들어와서요.
얼마 전에 팬분들이 데뷔 14년이라고 축하한다고 했는데, 새삼스럽더라고요. 아직도 모르겠고 아직도 신선하고 해볼 게 많아요.
<그 해 우리는> 때와 비교하면 어떤 성장이 있었나요?
그때는 작가님이 의도한 것보다 캐릭터를 더 내향적으로 그렸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표현할 건 확실히 표현하고, 울 건 확실히 울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번에 소통도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는 웃음이 터진 기자에 "너무 쥐어짜나요?"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동안은 현장에서 모임 주도를 잘 안 했어요. 으쌰으쌰하는 건 선배님들이 해주셨는데 이제는 제가 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출연진들끼리 여행을 가신 거예요?
아니요. 그냥 저녁 식사했어요. 아, 너무 거창하게 얘기했나? (웃음)
그동안 유독 교복을 입은 역할을 많이 하셨어요. 이미지 변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교복을 입는 게 <멜로무비>가 마지막이다 싶었는데, 지금 영화 찍는 데서도 교복을 한 번 입어요.(웃음) 동안 이미지라는 게 좋긴 한데, 저도 남자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해나갈 때가 됐죠. 실장 역할도 하고... '자꾸 고등학생 역할을 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이미지 변신을 하겠다고 유난 떨기는 싫어요. 안 맞는 옷을 입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남자다움이 꼭 근육질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니까요. 우락부락하게 하는 건 말고, 다른 남자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서요.
극 중 고겸처럼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가 있나요?
<셔터 아일랜드>(2010)요. 연기적으로 연출적으로 볼 때마다 매번 새로워요.
'연출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연출에도 욕심이 있으신가요?
언제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글도 계속 쓰고 있고요. 가족 이야기예요. 제가 썼지만 괜찮거든요.(웃음) 사실 1년 전쯤에 이 작품을 미국에 가서 연출을 한번 했어요. 아직 공개를 안 했지만, 미국 스태프분들, 배우분들과 작업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멜로 무비>를 선택하신 이유를 통해 아직 시청을 안 하신 분들에게 관람 포인트를 짚어주세요.
사람과 사람 이야기가 너무 좋았고, 거기서 오는 응원과 위로가 좋았어요. 당연히 재미있는 부분도 많고요. 어떻게 살아가고 성장하는지, 그런 이야기요. 요즘 어둡고 팍팍한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아, 최우식이 왜 이걸 선택했는지 알 것 같다'라고 느끼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