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 플레이어 원>

<빽 투 더 퓨처>, <샤이닝>, <아이언 자이언트>, <아키라>, <킹콩>, <쥬라기 공원>, <에일리언>, <토요일 밤의 열기>, <카우보이 밴자이의 모험>, <스타워즈>, <스타트렉>, <매드맥스>, <로보캅>, <슈퍼맨>, <배트맨>, <사탄의 인형>, <반지의 제왕>, <다크 크리스탈>, <닌자 거북이>, <더 플라이>, <몬티 파이튼의 성배>, <우주전쟁>, <금지된 사랑>, <터미네이터2>, <비틀쥬스>, <조찬 클럽>과 <리치몬드 연애소동>, <나이트메어>와 <13일의 금요일>, <라스트 액션 히어로>, <트론>, <하워드 덕>, <레이더스>, <A특공대>와 <배틀스타 갤럭티카>, <파이어 플라이>, 헬로 키티, <루니 툰즈>, <기동전사 건담>, <뱀파이어 헌터>, <스피드 레이서>, 조커와 할리퀸과 데스 스트로크 등 일련 DC 캐릭터들, ‘마인 크래프트’, ‘스트리트 파이터’, ‘헤일로’, ‘오버워치’, ‘모탈 컴뱃’, ‘기어즈 오브 워’, ‘슈퍼마리오’, ‘던전 앤 드래곤’, ‘스타크래프트’, ‘매스 이펙트’, ‘팩맨’, ‘F1 풀 포지션’, ‘배틀 본’, ‘듀크 뉴켐’, ‘소닉’, ‘자우스트’, ‘툼 레이더’, 매드 볼, 마이클 잭슨, 듀란 듀란 하 등등.

이 모든 것이 단 한번이라도 언급되거나 스쳐지나가는 꿈의 영화가 있다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레디 플레이어 원>이 그런 영화다. 어니스트 클라인이 쓴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80년대(영화에선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까지) 팝 컬쳐를 집대성한 덕후들을 위한 SF, 영화와 만화, 게임과 애니메이션, 음악과 장난감 등 온갖 대중문화가 잡탕찌개마냥 섞여 시종일관 흘러나오며 눈과 귀, 추억까지 매혹적으로 사로잡는다. 원작 소설은 2011년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됐고, 즉각 영화화 판권이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엄청난 저작권들 때문에 영화화되기가 험난했던 게 사실인데, 흥행의 마술사이자 영화천재, 블록버스터의 창조주로 불리는 스필버그가 연출을 맡으며 일단락됐다.

블록버스터의 창조주,
스필버그의 귀환

21세기 중반 암울한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에게 유일한 도피처는 가상현실 공간인 오아시스다.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지 가고, 모든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 놀이터는 인생을 재설계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런데 이곳을 만든 괴짜 개발자 할리데이(마크 라이런스)가 죽으며, 가상현실 속 여기저기에 숨겨놓은 이스터 에그 3개를 찾으면 오아시스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긴다. 모든 사람들이 이 보물사냥에 뛰어들게 되고, 주인공인 웨이드 와츠(타이 쉐리던)가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첫 번째 열쇠를 거머쥔다. 집단적으로 이를 노리는 대기업 IOI와 그들의 독점을 저지하려는 저항세력 간의 다툼 속에서 웨이드는 수수께끼 소녀 아르테미스(올리비아 쿡)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할리데이가 사랑했던 팝컬쳐들의 힌트를 뚫고 오아시스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선다.

스티븐 스필버그(왼쪽)와 원작 소설가 어니스트 클라인.

천하의 스필버그도 <죠스><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레디 플레이어 원>이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토로할 만큼 어려운 영화였는데, 이는 가상현실과 현실을 오가며 다양한 레퍼런스들을 시각적으로 녹여내며 게임의 흥분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연출적 특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이런 엄살(?)과 달리 여전히 자신이 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신’인지 스스로 입증했으며, <레디 플레이어 원>의 촬영을 끝내고 후반 작업하는 동안 전혀 다른 색채의 고전적인 정치드라마 <더 포스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거장다운 솜씨를 발휘하기도 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미국에서 개봉해 4일간 5300만 불이 넘는 성적을 기록했으며, 중국에선 미국보다 더 높은 6100만 불의 흥행을 올렸다. 국내에서도 비수기 시즌임에도 이미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존 윌리엄스 대신에
앨런 실베스트리와 만남

<레디 플레이어 원>은 영화음악가 존 윌리엄스가 1974년부터 스필버그 감독과 호흡을 맞춘 이래 함께 하지 못한 세 번째 영화가 되었다.(앤솔로지 영화였던 <환상특급: 극장판>까지 포함한다면 4번째다. 여기선 원작인 60년대 TV판의 음악에 참여했던 제리 골드스미스가 일괄적으로 스코어를 담당했다.) 존 윌리엄스가 참여하지 않은 첫 번째 영화는 퀸시 존스가 제작자이자 음악으로 참여해 흑인들만의 감성을 들려줬던 <컬러 퍼플>이었고, 두 번째는 존 윌리엄스의 건강 문제로 토머스 뉴먼이 대타로 섭외됐던 <스파이 브릿지>, 그리고 이번에 <더 포스트>의 스케줄과 맞물리며 86세의 고령의 존 윌리엄스가 두 작품을 동시에 진행할 수 없어 앨런 실베스트리가 투입된 바로 <레디 플레이어 원>이다. 그간 로버트 저메키스와 오랜 호흡을 맞춰왔던 앨런은 이번이 스필버그 감독과 첫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거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최적화된 음악을 펼쳐 보인다.

전반적으로 <레디 플레이어 원>의 음악적 색채는 앨런 실베스트리가 80~90년대 담당했던 패밀리 어드벤처 장르에 크게 빚지고 있다. 저메키스 감독에 스필버그 제작총지휘 딱지가 붙은 <빽 투 더 퓨처> 3부작과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를 비롯해, <협곡의 실종>이나 <새 엄마는 외계인>, <내 친구는 외계인>, <슈퍼마리오>, <리치 리치>, <마우스 헌트> 등 스펙터클한 활력과 따스한 휴머니즘을 동시에 선사하는 명징한 멜로디의 관현악 사운드는 앨런만의 전매특허로 흥미진진한 모험담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우러진다. 특히나 이번 영화 내내 강력한 존재감을 피력하는 저메키스드로리안의 등장은 직접적으로 <빽 투 더 퓨처>의 악곡을 부분 인용하며 두 영화 간의 대내외적인 연관성과 영향력을 크게 부각시킨다.
 

앨런 실베스트리 사운드의 총집편

70~9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았던 존 윌리엄스만큼이나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여러 블록버스터에서 자신만의 인장을 남기는데 성공한 앨런 실베스트리는 고전적인 팡파르와 홈드라마의 서정성을 간직한 스타일로 존 윌리엄스의 하차가 아쉽지 않을 만큼 스필버그의 가족주의적인 성향과 주제의식에 잘 녹아들며 <레디 플레이어 원>이란 작품이 가진 특성과 매력을 효과적으로 극대화시켰다. 이 영화의 음악에는 <어비스>가 가진 경이와 <빽 투 더 퓨처>의 속도감과 박진감, <포레스트 검프>의 서정성, <폴라 익스프레스>의 환희 그리고 <저지 드레드><어벤져스>의 영웅찬가 등이 모두 섞여 그간 앨런 실베스트리가 들려줬던 스타일의 집대성으로 봐도 가히 손색없다.

앨런 실베스트리

그뿐만 아니라 드로리안을 타고 후진으로 달리는 과정에서 킹콩이 등장할 때는 막스 스타이너의 <킹콩> 테마가 슬며시 흐르고, 극장 앞에서 오버룩 호텔로 이어지는 장면에선 웬디 카를로스의 불길하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묵직한 신디의 <샤이닝> 테마가 삽입돼 웃음을 유발한다. 후반의 대규모 전투에서 메카 고지라를 소환할 땐 어김없이 그 유명한 이후쿠베 아키라의 <고지라> 테마가 스코어에 녹아들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게다가 전체적인 스코어의 톤 앤 매너는 의도적으로 <빽 투 더 퓨처>의 여러 대표적인 테마들에서 유사한 진행과 오케스트레이션을 빌려와 그 시절 그 느낌의 기시감을 전달하며 독특한 오마주를 펼쳐 보인다. 추억의 환기와 과거의 복기로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은 없을 것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 메인 테마
추억을 환기시키는
강력한 수록곡들의 면면
밴 헤일런 ‘점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수록곡의 면면도 일품이다. 오프닝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건 밴 헤일런의 ‘점프’(Jump), 엔딩을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건 홀 앤 오츠의 ‘유 메이크 마이 드림스’(You Make My Dreams)이. 후반의 둠 행성에서 대규모 백병전이 펼쳐질 땐 트위스티드 시스터의 ‘유어 낫 고나 테이크 잇’(We're Not Gonna Take It)이 흘러나와 흥을 돋게 하고, 춤추러 가서는 비지스의 그 유명한 디스코 명곡 ‘스테잉 얼라이브’(Stayin' Alive)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든다. 레이싱 경기 직전에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건 조안 제트 & 더 블랙허츠가 부른 ‘아이 헤이트 마이셀프 포 러빙 유’(I Hate Myself for Loving You), 첫 번째 열쇠를 얻어 그 상금으로 아이템을 살 땐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경쾌한 록큰롤 ‘스탠드 온 잇’(Stand On It)이 그 신나는 기분을 대변한다.

홀 앤 오츠의 ‘유 메이크 마이 드림스’

할리데이의 기록보관소에 갈 때마다 흐르는 곡들도 인상적이다. 첫 번째 방문 땐 조지 마이클의 ‘페이스’(Faith), 두 번째 방문 땐 블론디의 ‘원 웨이 오어 어나더’(One Way or Another)가 삽입됐다. H(리나 웨이스)의 작업실에서 나오던 다채로운 노래들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언 자이언트>가 처음 소개될 땐 프린스의 ‘아이 워나 비 유어 러버’(I Wanna Be Your Lover), 할리데이에 대한 지식 배틀을 벌릴 땐 템테이션스의 ‘저스트 마이 이메지네이션’(Just My Imagination), 그리고 데이트에 입고 갈 옷을 고를 땐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캔트 하이드 러브’(Can't Hide Love)가 등장했다. 미래 무도장에 입장할 땐 뉴 오더의 ‘블루 먼데이’(Blue Monday), 과거 <샤이닝>의 댄스장에선 레이 노블과 그의 오케스트라와 알 보울리의 ‘미드나잇, 더 스타즈 앤 유’(Midnight, The Stars and You)가 흐른다. 초반 오아시스 세계관을 설명할 땐 티어스 포 피어스가 부른 ‘에브리바디 원츠 투 툴 더 월드’(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가 제목 그대로 그 역할 다한다.

뉴 오더의 ‘블루 먼데이’ (1988년 버전)

84분에 이르는 앨런 실베스트리의 스코어 앨범은 2장의 CD로 나눠 46일 발매될 예정이고, 저작권 상 모든 수록곡들을 다 담진 못했지만 일부라도 영화의 감흥을 전달하는 명곡들의 향연인 송 트랙 앨범은 디지털 음원으로만 미국에서 발매된다. 앨런 실베스트리는 이후 4월말에 개봉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11월에 개봉될 로버트 저메키스와 17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더 우먼 오브 마웬>을 차기작으로 대기 중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마크 라이런스, 사이먼 페그, 올리비아 쿡, 타이 쉐리던, 벤 멘델슨, T.J. 밀러

개봉 2018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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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