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임스 본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007>은 1953년 이언 플레밍의 원작 소설이 나온 뒤 <007 살인번호>(1962)를 시작으로 현재 60년 넘게 장수한 시리즈로, 영국 문화의 자존심이자 미디어 믹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중 하나다. 최근 ‘버라이어티’는 MGM이 아마존의 품에 안긴 이후, <007> 시리즈의 미래를 예상하는 기사를 썼다. 정리하자면, 시리즈의 판권을 소유한 EON 프로덕션의 마이클 G. 윌슨과 바버라 브로콜리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시리즈의 배급사인 MGM을 아마존이 인수하며 ‘아마존 MGM 스튜디오’가 공동 소유 형태로 <007> 시리즈를 맡게 된 것. EON 프로덕션은 브로콜리 가문이 운영하는 영화 제작사로, <007> 시리즈 제작 자체가 가업이다. 하지만 최근 마이클 G. 윌슨과 바버라 브로콜리는 입을 모아 “제작에서 한 걸음 물러나 예술과 자선 행사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거나 “훌륭한 파트너인 아마존 MGM 스튜디오가 제임스 본드의 미래를 이끌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로써 아마존은 MGM을 인수할 당시 유일하게 통제권을 전부 확보하지 못한 <007> 시리즈마저 갖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2024년 1월 말쯤 바버라 브로콜리가 뉴욕 애틀랜틱 시어터에서 열린 무대 뮤지컬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공연에 참석했다. 오랜 기간 <007> 시리즈의 프로듀서였던 그는 아마존 MGM 스튜디오의 최고 경영진 제니퍼 살케, 코트니 발렌티, 줄리 라파포트 세 사람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아마존이 2022년 MGM을 85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에 대한 논의였다. 하지만 브로콜리는 이날의 논의가 만족스럽지 못했고, 별다른 진척 사항 없이 런던의 자택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루카스필름(Lucasfilm), 마블(Marvel), DC에 필적하는 마지막 미개척 메가 브랜드로 여겨지는 <007>에 대한 아마존 회장 제프 베이조스의 욕심은 꺾이지 않았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복 남매인 바버라 브로콜리와 마이클 G. 윌슨의 크리에이티브 통제권 포기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아마존과 EON 프로덕션 모두 이 과정에 대한 자세한 논평을 거부했다. 평소 <007> 시리즈의 열광적인 팬이자 제임스 본드를 디지털 시대로 성공적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제프 베이조스의 열망이 어떤 식으로든 이 난관을 돌파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25번째 <007> 시리즈이자, 6대 제임스 본드인 다니엘 크레이그의 다섯 번째 시리즈이자 마지막 시리즈이기도 한 <007 노 타임 투 다이>(2021) 이후 새로운 후속 시리즈 제작은 긴 난항을 겪었다. 보통 제임스 본드 역의 배우가 바뀔 때마다 공백을 겪긴 했다. 티모시 달튼에서 피어스 브로스넌으로 바뀌던 <007 살인면허>(1989)와 <007 골든아이>(1995) 사이 가장 긴 6년, 피어스 브로스넌에서 다니엘 크레이그로 바뀌던 <007 어나더 데이>(2002)와 <007 카지노 로얄>(2006) 사이 4년 정도의 공백이 있었다. 그런데 올해 당장 촬영에 들어간다 해도 내년 개봉이 힘들 테니, 26번째 <007> 시리즈는 어쩌면 6년보다 더 긴 공백 이후 나오게 될 것 같다. 이처럼 공백이 길어지는 것은, 아마존 MGM 스튜디오로서도 큰 부담이다. 일단 7대 제임스 본드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동안 영연방 출신 배우들이 본드 역을 맡았던 탓에 헨리 카빌, 애런 존슨, 리처드 매든, 톰 하디 등 영국 출신 배우들이 물망에 올랐고 애런 존슨의 경우 지난해 차기 본드 제안을 받았다는 확인되지 않은 뉴스가 뜨기도 했다. 아마존이 인수하면서 그 전통이 유지될지도 미지수인데, 지난 2월에는 제프 베이조스가 자신의 SNS에 “다음 본드로 누굴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마존 MGM 스튜디오는 원작자 이안 플레밍의 스파이 소설을 기반으로 한 자산을 새로이 진화시켜야 한다는 숙명과 직면했다. 지난 몇 년간 007 유니버스 못지않게 방대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와 <스타워즈> 유니버스 같은 초대형 브랜드들이 관객의 피로를 촉발하고 흥행이 저조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다 신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루카스필름의 오랜 수장인 캐슬린 케네디도 올해 물러날 예정이기에, 아마존에서 제작하는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도 막대한 부담감을 안을 수밖에 없다. ‘버라이어티’는 그동안 바버라 브로콜리의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과도한 통제력이 현재의 제임스 본드에게 해를 끼쳤다고 분석한다. 가령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테넷>(2020) 개봉 이후 공개적으로 제임스 본드 영화 연출에 관심을 표명했다. 하지만 바버라 브로콜리는 주저 없이 ‘절대 불가’를 선언했고, 최종 편집본에 대한 권한을 포기할 수 없는 놀란은 시간 낭비하지 않고 곧장 후속작인 <오펜하이머>(2023)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약 10억 달러를 벌어들였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돌이켜 보면, 과거 스티븐 스필버그도 <미지와의 조우>(1977) 개봉 이후 제임스 본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바버라 브로콜리의 아버지인 고 앨버트 커비 브로콜리가 ‘스필버그의 경험 부족’을 이유로 들며 무산된 바 있다. 이후 스필버그가 제임스 본드의 영향을 받아 <레이더스>(1981)를 시작으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만들게 된 건 유명한 일이다. 3편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에 1대 제임스 본드인 숀 코너리를 캐스팅한 것도 원래 <007> 시리즈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놀란과 스필버그 외에도 타란티노 역시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해 <007> 시리즈를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제안들이 ‘시리즈의 전통’을 지키고자 했던 브로콜리 가문에 의해 매번 거절당했다. 이제 <007> 시리즈는 새로운 변화를 꿈꾸고 있다. 통제권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바버라 브로콜리는 “아마존과의 창의적인 연결고리를 꿈꾸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어쨌건 7대 제임스 본드부터 누가 될지 궁금하다. 제프 베조스가 무의미한 SNS 설문조사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