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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없이 소규모 예산으로 디즈니·픽사 꺾은 오스카 수상작 〈플로우〉의 제작 과정 비하인드

추아영기자
오스카 트로피와 함께 있는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사진 출처 = 긴츠 질발로디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오스카 트로피와 함께 있는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 (사진 출처 = 긴츠 질발로디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라트비아 출신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플로우>가 제97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디즈니·픽사의 <인사이드 아웃2>를 꺾고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가져갔다. <플로우>의 수상은 라트비아 영화 최초의 오스카 수상작이자 380만 달러라는 다소 적은 예산으로 제작한 인디 애니메이션의 기념비적인 수상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함께 후보작이었던 <인사이드 아웃2>의 제작비가 2억 달러라는 것을 고려하면, 두 영화의 제작 규모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플로우>는 이번 아카데미 장편 애니메이션상의 후보작 중 최저 예산으로 만든 영화이기도 하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아카데미 무대에서 수상 소감으로 “이 영화가 전 세계의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오스카 트로피를 문 〈플로우〉의 고양이 (사진 출처 = 긴츠 질발로디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오스카 트로피를 문 〈플로우〉의 고양이 (사진 출처 = 긴츠 질발로디스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


대홍수가 세상을 덮친 후, 유일한 피난처가 된 낡은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한 고양이와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의 모험담을 그린 영화 <플로우>는 대사 없이 그들의 대서사시 같은 여정을 따라간다. 오로지 시각적 스토리텔링으로 서사를 전개해 나간 인디 애니메이션 <플로우>의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제작비의 50분의 1 수준
 

〈플로우〉
〈플로우〉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본래 작화부터 각본, 연출, 편집, 사운드 디자인까지 애니메이션 제작의 모든 단계를 홀로 담당해왔다. 그의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어웨이>(2019)도 1인 제작으로 완성했다. <어웨이>로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 콩트르샹 상을 수상하며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그는 두 번째 장편 영화 <플로우>에서 처음으로 팀과 협업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영화 속에서 외톨이 고양이가 다른 동물들과 만난 이후 용기를 내고 연대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처럼 질발로디스 감독이 <플로우>를 만드는 과정 또한 그에게는 배움의 연속이었다.  
 

〈플로우〉
〈플로우〉


<플로우>는 총 50명의 인원으로 만들었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참여한 인원을 제외한 핵심 인원만 추리자면 20명이라는 적은 인원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영화의 제작비인 380만 달러는 라트비아의 영화 산업 규모를 따져 보았을 때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지만, 대부분의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의 50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그는 한정된 예산을 탓하며 주저앉지 않고, 추구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무료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 3D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인 ‘블렌더’는 게임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된다. 이로 인해 영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게임을 진행하는 플레이어가 되어 게임 속 가상 현실을 체험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한다. 관객은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영화 속 고양이의 시점으로 동물들의 항해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관습적인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다
 

〈플로우〉
〈플로우〉


<플로우>는 대사 없이 오로지 이미지와 사운드로 서사를 전개해 나간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첫 번째 단편이었던 영화 <러쉬>부터 두 번째 장편 영화 <플로우>까지 줄곧 대사 없이 시각적 스토리텔링만으로 승부하는 영화를 만들어 왔다. 그는 계속해서 대사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대사는 저에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 저는 비주얼을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하고 더 흥미진진하게 느껴진다. 애니메이션은 특히나 실사영화보다 훨씬 더 세밀하게 이미지를 디자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 적합하다. 대사보다 비주얼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플로우〉
〈플로우〉

 


또 감독은 “<플로우>는 그렇게 들려줘야만 했던 이야기였다”고 덧붙였다. <플로우>는 동물 사이의 소통을 인간의 언어를 통해 들려주지 않음으로써 동물이 등장하는 여타의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섣부른 의인화를 피해 간다. 질발로디스는 여타의 애니메이션 속 동물들이 사람처럼 걷고, 말하고 행동하는 관습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실제 동물들의 습성과 울음소리를 반영했다. 감독은 귀랄 코이-갈라스(Gurwal Coïc-Gallas) 사운드 디자이너와 함께 동물의 소리를 최대한 현실과 비슷하게 담아내기 위해 많은 동물의 소리를 녹음해서 사운드를 만들었다. 그는 골든 리트리버가 꼬리를 흔드는 소리를 사실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풍속계를 이용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플로우〉
〈플로우〉

 


또 낮잠을 청하면서 한쪽 귀를 앞뒤로 움직이다가 기분 좋은 듯 골골 소리를 내는 고양이의 모습, 꼬리를 흔들며 제자리를 빙빙 도는 리트리버, 여러 잡동사니를 쟁여두는 욕심 많은 여우원숭이의 모습 등은 실제 동물들의 습성을 반영하여 동물들을 캐릭터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