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유명한 시구절처럼 4월은 정말 잔인한 달일까. 올해 4월에도 다섯 명의 영화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 밀로스 포먼, 비토리오 타비아니, R. 리 어메이, 최은희, 번 트로이어. 그들을 추모하며, 생전의 활약들을 되짚었다.


밀로스 포먼 Milos Forman
(1932.02.18 ~ 2018.04.13)

체코 출신의 거장 밀로스 포먼. 20세에 배우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몇몇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뒤 1964년 첫 픽션 <블랙 피터>를 내놓았다. 아카데미/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두 번째 영화 <금발 소녀의 사랑>(1965)과 동유럽 사회주의를 향한 통렬한 비판을 담아 모국에서 오랫동안 상영금지 당한 <소방수의 무도회>(1967)는 체코 영화의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회자된다. 1968년 체코에서 민주화운동 '프라하의 봄'이 일어나던 당시 포먼은 파리에서 첫 영어 영화 제작을 논의하고 있었고, 체코의 제작사부터 해고 당한 그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금발 소녀의 사랑>

미국에서 그의 커리어는 더욱 단단해졌다. <탈의>(1971)가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데 이어, 뮌헨 올림픽 기록영화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잭 니콜슨을 기용한 코미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5)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여우/남우주연상, 각색상 등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반전(反戰) 뮤지컬 영화 <헤어>(1979), 무성영화 시대의 전설적인 배우 제임스 캐그니의 마지막 작품 <래그타임>(1981) 등을 거쳐온 그는 모짜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질투를 그려낸 <아마데우스>(1984)로 8개의 오스카를 쓸어담는 저력을 보여줬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아마데우스>

<아마데우스>로 최전성기를 누린 포먼은 이후 <발몽>(1989), <래리 플린트>(1996), <맨 온 더 문>(1999), <고야의 유령>(2006)을 연출했다. 특히 마지막 세 영화는 각각 언론인 래리 플린트,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등 실존인물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었다. 저마다 다른 장르, 연출 스타일의 신작들을 내놓는 와중, <제2의 연인>(1986)으로 오랜만에 연기에 도전한 이래 <키핑 더 페이스>(2000), <비러브드>(2011) 등에서 크고 작은 역할로 참여하기도 했다. 2009년엔 모국 체코에서 아들 페트르와 함께 뮤지컬 <가치 있는 산책>(2009)를 연출했다.

<맨 온 더 문>

비토리오 타비아니 Vittorio Taviani
(1929.09.20 ~ 2018.04.15)

2012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비토리오 타비아니(왼쪽), 파올로 타비아니.

2살 터울의 형제 비토리아 타비아니와 파올로 타비아니는 데뷔 이래 줄곧 공동 연출 체제를 유지해왔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상징과도 같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전화의 저편>(1946)을 보고 영화라는 매체에 흠쩍 빠진 만큼, 그들의 카메라는 늘 이탈리아의 오늘을 사는 민중들의 삶을 향해 있었다. 1962년 첫 장편 극영화 <불타는 남자>를 내놓은 형제는 2~3년에 한편 꼴로 신작을 내놓으며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을 서서히 이름을 떨쳤다. 

<빠드레 빠드로네>

억압적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학으로 언어학자가 된 가비노 레다의 삶을 그린 <빠드레 빠드로네>(1977)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5년 후 동화적인 터치로 전쟁의 비극을 전한 <로렌조의 밤>(1982)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괴테의 <친화력>, 톨스토이의 <부활>, 뒤마의 <루이사 산펠리체> 등 대문호의 소설들을 영화로 옮긴 작품들로 현역으로서 꾸준한 창작력을 자랑했다. 실제 감옥의 죄수들을 섭외해 재소자들이 옥중에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연습하며 죄를 돌아보는 과정을 다룬 <시저는 죽어야 한다>(2012)로 베를린영화제 최고상을 받았다. 형 비토리오가 세상을 떠나면서, 지난해 내놓은 <레인보우: 나의 전쟁>이 형제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시저는 죽어야 한다>

R. 리 어메이 R. Lee Ermey
(1944.03.24 ~ 2018.04.15)

미국의 베트남 전쟁을 향한 스탠리 큐브릭의 서슬퍼런 비판이 담긴 <풀 메탈 자켓>(1987)을 본 이들이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배우가 있다. 바로 하트먼 상사 역의 R. 리 어메이다. 월남전에 파병된 적이 있는, 미국 해병대 항공단에서 11년간 근무한 바 있던 그는 군인/경찰 영화에 자문으로 참여하다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1979) 등에 조단역으로 참여하다가 1987년 <풀 메탈 자켓>의 하트먼 상사 역을 맡았다. 해병대 하사관 출신인 어메이에게 그 역은 더없이 적합한 역이었고,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하트먼의 정신나간 훈련법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심지어 잭 니콜슨 같은 대배우에게도) 평소 즉흥연기를 허용하지 않던 큐브릭가 어메이에게 대사를 일임했던 효과가 컸다.

<풀 메탈 자켓>

<풀 메탈 자켓>으로 본격적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그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에서 군인/경찰 역을 도맡았다. 1995년은 어메이의 전성기였다. 참여한 작품만 12개에 달했고 그 가운데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세븐>, <데드맨 워킹> 같은 명작도 있었다. 2010년 3편까지 꾸준히 <토이 스토리> 시리즈 속 녹색 군인 목소리를 맡기도 했다. 벤 스틸러, 조나 힐 등이 출연한 SF코미디 <왓치>(2012)가 마지막 영화다.

<세븐> / <토이 스토리>

최은희
(1926.11.20 ~ 2018.04.16)

최은희는 한국영화사 통틀어 가장 거대한 여성배우라 칭해도 손색이 없다. 1947년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한 최은희는 한국전쟁 당시 신상옥 감독을 만나 결혼했고, 1960년대 최고 감독으로 군림하던 신상옥과 그가 이끌던 신필름의 작품들에 출연해 팜므파탈과 현모양처를 오가는 매력을 선보이며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인기 감독/배우 부부로서 라이벌이었던 홍성기 감독/김지미 배우와 비슷한 시기에 <춘향전>을 영화화 한 작품을 발표해 압승을 거뒀던 1961년이 바로 그 정점이었다.

<지옥화> / <성춘향>

1965년엔 <민며느리>로 감독으로 데뷔해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3편의 연출작을 내놓았다. 신상옥과 이혼 뒤 그가 이사장으로 있던 안양예술학교의 교장으로 일했던 최은희는 1978년 1월 김정일의 지시로 납치돼 얼마 후 자신을 찾으러 온 신상옥 감독과 8년간 북한에서 활동했고, 미국에 망명한 뒤 1999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을 다룬 영국의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가 2016년 개봉한 바 있다. 흔한 말처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인생이었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번 트로이어 Verne Troyer
(1969.01.01 ~ 2018.04.21)

<오스틴 파워>

번 트로이어는 1994년 <베이비 데이 아웃>의 주인공 아기 배우의 스턴트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솔드 아웃>(1996), <맨 인 블랙>(1997) 등 1996년부터 3년간 11편에 작은 역할로 참여한 그는 마이크 마이어스의 스파이 코미디 <오스틴 파워>(1999)의 이블 박사의 복제인간 미니미 역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됐다. 주연이자 이야기와 캐릭터의 작자이기도 했던 마이어스는 트로이어의 연기를 보고 그가 더 큰 비중을 맡도록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트로이어는 3년 후 속편 <오스틴 파워: 골드 멤버>(2002)에서 다시 한번 미니미를 연기했고, 마이어스의 또 다른 영화 <러브 구루>(2008)에도 출연했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 속 고블린 그립훅, 테리 길리엄의 판타지 <닥터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2009)의 파르나서스의 친구 퍼시 역시 트로이어의 캐릭터였다.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씨네플레이 문동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