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달 4일 개봉을 앞둔 앤서니 첸 감독의 중국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가 한국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영화는 K팝이 울려 퍼지는 클럽, 한국 컵라면, 한글 간판 거리 등 한국 문화 요소를 곳곳에 배치해 친근함을 더한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백두산의 설경은 웅장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첸 감독은 30일 서울 마포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백두산의 첫인상에 대해 "구글맵 로드뷰를 통해 접한 백두산의 아름다움에 매료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처음에는 중국 북쪽 지방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하려 했으나, 친구의 소개로 백두산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연출한 앤서니 첸 감독 [찬란 제공]](/_next/image?url=https%3A%2F%2Fcineplay-cms.s3.amazonaws.com%2Farticle-images%2F202506%2F18822_207473_4342.jpg&w=2560&q=75)
영화의 배경은 조선족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연길 지역이다. 첸 감독은 관광 가이드 나나(저우둥위), 상하이 출신 엘리트 하오펑(류하오란), 이모의 가게에서 일하는 샤오(취추샤오) 등 세 젊은이의 불안과 성장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첸 감독은 연길과 백두산을 배경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겨울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던 첸 감독은 중국에서 가장 추운 지역을 물색했다. 그는 2021년 10월, 코로나19로 인한 3주간의 격리 기간 동안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첸 감독은 "세 주인공이 도시에서 시작해 광활한 자연에서 마무리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며 "격리 해제 다음 날 백두산에 올랐고, 그곳에서 영화의 엔딩을 확신했다"고 전했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속 한 장면 [찬란 제공]](/_next/image?url=https%3A%2F%2Fcineplay-cms.s3.amazonaws.com%2Farticle-images%2F202506%2F18822_207474_448.jpg&w=2560&q=75)
영화는 한국인의 정체성과 깊이 연결된 단군신화 또한 중요한 설정으로 활용한다. 첸 감독은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을 먹었다는 전설이 백두산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고 영화에 반영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만나면 자신을 곰의 자손이라고 이야기한다"며 "곰과 호랑이가 백두산에서 인간이 된다는 신화를 통해 감동을 전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아리랑의 가사에 백두산이 등장하는 점을 고려해 한국을 대표하는 곡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첸 감독은 조선족 가이드가 백두산을 중국 명칭인 '장백산'으로 부르자는 제안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백두산은 한국인에게 신성한 곳이며, 자신 또한 백두산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군신화가 중국 신화로 오해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첸 감독은 "개인적으로 느낀 감동을 영화에 담고 싶었을 뿐"이라며 "영화 외적인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크게 고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단군신화가 한국인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한중 역사 문제의 민감성 또한 인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첸 감독은 "무서운 호랑이가 포기할 만큼 힘든 굶주림을 곰이 참아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큰 울림을 받았다"며 "신화나 전설을 사회·정치적인 맥락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속 한 장면 [찬란 제공]](/_next/image?url=https%3A%2F%2Fcineplay-cms.s3.amazonaws.com%2Farticle-images%2F202506%2F18822_207475_4433.jpg&w=2560&q=75)
영화의 주 무대가 될 도시를 찾던 첸 감독은 백두산과 멀지 않은 연길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됐다. 그는 "연길은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며 "중국 북동부 지역 영화는 대개 범죄나 우울한 분위기를 연상시키지만, 연길은 상하이나 베이징보다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부했다"고 말했다.
국경 도시라는 지역적 특수성 또한 첸 감독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중국 사회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는 '탕핑(躺平)' 세대의 무력함과 불안을 표현하기에 연길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첸 감독은 "팬데믹 시기에 중국 청년들이 억눌렸던 감정을 분출하며 부모 세대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며 "연길은 삶의 방향을 잃은 청년들이 만나는 완벽한 장소"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경 도시라는 점이 "모호한 경계에 놓인 세 사람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영화 〈브레이킹 아이스〉 속 한 장면 [찬란 제공]](/_next/image?url=https%3A%2F%2Fcineplay-cms.s3.amazonaws.com%2Farticle-images%2F202506%2F18822_207476_451.jpg&w=2560&q=75)
〈브레이킹 아이스〉는 제76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올해 칸 영화제 초청작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첸 감독은 "감독으로서 아름답고 시적이라고 느낀 것들을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라며 "한국 관객들이 편견 없이 영화를 관람하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스토리를 따라가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