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은 야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돈이, 자본이 법인 세상에서도 먹느냐 먹히느냐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5월 30일 개봉한 <소주전쟁>이 바로 그런 대립을 담았다. 1997년 대한민국을 덮친 외환위기에서 기업을 지키려는 재무이사와 기업을 삼키려는 글로벌 투자사 직원의 만남은 단순히 알력 다툼을 넘어 현대 사회의 성공과 그 가치를 묻는다. 5월 29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한 시사회와 기자가담회에서 만난 <소주전쟁>. 감상과 배우들의 말말말을 전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에서 주류계를 평정한 ‘국보소주’마저 휘청인다. 기업 회생을 위해 국보소주는 글로벌 투자사 솔퀸에 자문을 구하고, 이 과정에서 그룹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은 솔퀸의 애널리스트 인범(이제훈)과 가까워진다. 하지만 인범은 사실 대한민국의 위기에 매각할 기업을 집어삼켜야 한다는 이유로 그중 1순위 국보소주에 접근한 것. 회사를 살려보려는 종록과 국보소주에 자문을 주는 동시에 암암리에 계획을 진행하는 인범. 두 사람은 경영권을 지키려는 석진우 회장(손현주), 국보소주를 본격적으로 집어삼키려는 솔퀸의 홍콩 지사장 고든(바이런 만), 유능한 법무법인 변호사 구영모(최영준)가 얽힌 국보소주의 기로 앞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소주’전쟁, 그리고 소주‘전쟁’


소주와 전쟁. 서로가 생소한 이 단어의 조합은 영화 <소주전쟁>가 말하려는 핵심 정서와 메시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영화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주류 ‘소주’를 꽉 쥐고 있는 기업을 둘러싼 경제적·법적 ‘전쟁’을 다루며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영화는 소주라는 소재를 꿋꿋하게 챙겼다. 왜냐하면 소주라는 주류가 한국 사회 속 ‘사람 간의 관계’와 그 중요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종록과 인범은 “소주 한잔하자”라는 인사를, 소주 한 잔(이라 쓰고 얼큰히 취)하는 자리를 자주 주고받는다.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술자리를 가지면서 둘의 관계가 쌓인다. 두 인물이 가지는 ‘소주 한 잔’의 시간은 두 사람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기에, 둘의 갈등이 관객에게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 계기가 된다.
반면 ‘전쟁’은 비단 종록과 인범, 국보소주와 솔퀸 등 서로 목표하는 것이 다른 개체들의 갈등을 짚어내는 단어이자, 개개인의 삶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충돌을 담는다. (비록 석진우 회장의 경영권 때문이지만) 어떻게든 회사를 유지하려는 국보소주와 차익을 위해 회사를 삼키려는 솔퀸, 그리고 이들을 대표하는 종록과 인범의 대립이 영화 표면적인 갈등 구조라면 그 아래엔 어떻게 성공할 것인지 혹은 어떤 것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가 핵심 메시지로 기능하고 있다. 내가 고생하더라도 직원들이 거리로 내쫓기는 것을 막으려는 종록과 오직 나의 성공과 연봉만을 위해 돌진하는 인범은 우리 시대가 제시하는 성공이 이토록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 사람은 각자가 생각하는 ‘성공’이 옳다는 식으로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성공 또한 도덕적 무결은 아닌 것을 알고 있다. 두 인물의 이런 내면의 갈등은 관객들에게 성공이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그 성공을 어디까지 감내하며 거둘 것인가 넌지시 묻는다.

겉으로 드러나는 자극적인 요소가 없는 만큼, 이 영화에 반드시 필요한 건 관객을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배우의 존재감이다. 이런 막중한 임무를 띤 주요 출연진 이제훈, 유해진, 손현주, 최영준, 바이런 만 등은 맡은 바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유해진과 이제훈이 친구 같은 동상이몽, 서로를 비추는 대칭으로 이야기를 이끌면 석진우 회장 역을 맡은 손현주가 종록에게 딜레마를 안기며 이야기에 무게를 더한다. 국보소주의 법적 자문을 맡은 법무법인의 변호사 구영모 역을 맡은 최영준과 솔퀸 홍콩 지사의 고든 역을 맡은 바이런 만이 (작중 양주로 대변되는) 인범의 성공욕을 더욱 자극한다. 이들의 모습에서 이들의 연기력은 <소주전쟁>이 제시하는 메시지에 깊이를 더하고 이 ‘돈으로 싸우는 누아르’의 무드를 조성해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다만 <소주전쟁>은 그 모든 장점에 비해 큰 단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인물들이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이 피상적이란 점이다. 1997년부터 2000년대 초를 그리는 영화는 영화 초반부, 종록과 인범의 관계가 몇몇 대화와 몽타주로만 쌓아 올린다. 이후 기업 간 갈등이 깊어지는 과정에서 둘 간의 관계가 더 복합적으로 그려지긴 하나, 그 지점 전까지는 두 사람의 신뢰가 그저 캐릭터의 성격과 배우의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또 영화가 경제 사건을 다뤄 금융 용어를 쏟아내는 한편 영어 대사를 옮긴 자막도 많아 보는 이에 따라 집중력이 흐트러질 가능성도 적잖아 보인다.
할리우드에서도 보기 드문, 한국 영화 제작 시스템에서 많은 것 배웠다.

이번 <소주전쟁>으로 한국영화에 첫 출연한 할리우드 배우 바이런 만은 한국영화 촬영장의 독특한 시스템에 놀랐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 촬영 전 받은 전체 스토리보드, 현장에서 편집해 촬영 종료 후 리뷰하는 시스템은 할리우드에서도 보기 드물다며 <소주전쟁>을 촬영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말했다. 모든 배우들이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고 신중하게 내용과 감정을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촬영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바이런 만은 “두 번째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한 마음이라고.
(손현주) 형한테 몸 좀 사리면서 하라고 했다


석진우 회장을 맡은 손현주는 유해진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는 “동료이자 친구이자 가끔 만나는 사이” 유해진을 <소주전쟁>으로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어떤 배우의 말대로 밥숟갈만 얹어서 간 것 같다”고 그의 연기력을 언급했다. 그가 “다른 작품에서도 다시 만나고 싶다. 아마 유해진 씨도 그럴 것이다”라고 진심을 전하자 유해진은 “무조건 그럼요 하지, 여기서 아닙니다, 그럴 생각은 없다”고 받아쳐 현장을 웃음으로 채웠다. 유해진은 이번 작품에서 손현주와 형동생 사이가 됐다면서 다만 손현주의 건강을 걱정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장면을 찍는 과정에서 손현주가 열연을 펼치다 손이 엄청 부을 만큼 부상을 입었다며 “형에게 몸 좀 사려가면서 해달라고 했다. 후배 입장에서 저렇게 요령을 안 피우는구나 (감탄한) 기억이 난다”고 그의 열정을 치켜세웠다. 손현주는 “오늘 영화를 보니 (그 장면이) 잘렸더라”라고 내심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가 “그 장면이 있었다면 유해진 씨가 가려졌을 것이다. 편집 잘했구나 싶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유해진 씨 말을 잘 들어서 몸 사리면서 준비하겠다”는 신인배우스러운 소감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경제지 열심히 읽고 당시 사건들 찾아봐… 그 무게감 느끼면서 준비

이제훈은 글로벌 투자사의 직원을 맡은 만큼 배역을 준비하며 공부를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금융 쪽 지식이 풍부한 캐릭터라서 뉴스와 경제지를 읽었고, IMF 시절 사건이 모티브였기에 해당 사건 외에도 당시 일어난 수많은 일을 찾아보며 실제로 일어난 일들의 무게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또 많은 대사를 영어로 소화해야 했는데, 그래서 영어 대사 코칭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녹음한 것을 외우듯이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에서 그와 연기를 주고받은 바이런 만은 이제훈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는 배우인지 보고 놀랐다며, 모든 장면을 그렇게 꼼꼼히 준비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 회상했다. 특히 이제훈의 영어 연기에 “내 영어보다 낫다”며 농담 반 진담 반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