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기사 카테고리

Movie & Entertainment Magazine from KOREA
>인터뷰

[인터뷰]〈소주전쟁〉 이제훈 “인범처럼 돈의 가치를 가장 옳다고 믿는 사람 많아, 〈소주전쟁〉으로 소통하고 싶었다”

성찬얼기자
〈소주전쟁〉
〈소주전쟁〉

언뜻 보면 닮았다. 그러나 다르다. 5월 31일 개봉한 <소주전쟁>에서 배우 이제훈과 그가 연기한 최인범 말이다. 단순히 겉모습이 똑같아서가 아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수트를 쫙 빼입은 최인범의 멀끔한 모습은 그에게 자문을 받는 대기업 그룹의 재무이사 표종록(유해진)마저도 신뢰하게 한다. 하지만 실제 이제훈과 최인범은 완전히 다르다. 돈과 성공에만 매진해 심지어 인간적 도리마저도 외면하는 인범과 달리 이제훈은 동료나 팬이나 영화나 무엇 하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어쩌면 인범이 놓치고 있는 ‘가치’를 아는 이제훈이기에, 성공지상주의자 인범을 더욱 눈길이 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6월 2일, 서울 종로구 모처에서 만난 이제훈은 현실에서도 인범과 같은 사람이 여전히 있다고 말하며, 그런 상황을 이 영화로 소통해보고 싶은 마음에 <소주전쟁>을 선택했다 밝혔다. 영화로 소통한다니, 극장과 영화의 사랑을 가감 없이 밝혀왔던 이제훈다운 말이었다. 실화 모티브, 수많은 영어 대사, 마냥 착하거나 나쁘지 않은 인물, 무엇 하나 쉬운 것 없는 <소주전쟁>에서 유해진과 ‘연기 패권’ 대결을 보여준 이제훈을 만나 <소주전쟁>과 최인범, 그리고 배우와 영화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소주전쟁〉 이제훈 (사진제공=쇼박스)
〈소주전쟁〉 이제훈 (사진제공=쇼박스)

<소주전쟁>이 며칠 전 개봉해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소감이 궁금하다.

지난주 금요일에 개봉해서 무대인사 돌고 이렇게 인터뷰 자리를 갖는데,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관객분들의 리뷰나 평점 이런 걸 보면서 체감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봐주시고 소감이나 반응을 남겨주셨으면 좋겠다.

가족분들이랑 친지분들, 친구들, 지인들 등을 모셔서 시사회에서 보여드리고,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영화의 배경인) 1997~2003년도에 저나 제 친구들은 중학교 시절에서 갓 성인이 됐을 때다. 다들 가정마다 가계가 휘청이고 먹고사는 부분에 위기의식을 가지면서 그 시절을 겪었었던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공감이 많이 됐다,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과거의 일인데 지금 보니까 달라진 것들이 있을까? 종록(유해진)과 인범(이제훈)의 삶의 가치관을 볼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입장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이런 얘기들을 저에게 많이 해줘서 기분이 좋았다. 시나리오 읽으면서 그런 여러 가지 감정들과 어떤 인생이 맞는지, 어떤 게 나은 인생인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했다. 영화 본 분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다.

방금 말한 IMF 시절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중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일 것이다. 집에서 자영업을 했다. 쌀가게도 하고 가스배달도 하고. 음식점도 하셨다. 추어탕 전문 가게여서 제가 배달도 가고 간간이 알바 아닌 알바도 많이 했다. IMF 때 가세가 기운다는 걸 피부로 느낀 건 아버지가 새벽마다 일용직 노동자로 출근하시는 모습을 봤을 때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구나 느꼈다. 대학교도 1학년 2학기 때 등록금을 내야 해서 말씀드렸더니 대출을 알아보시는 모습을 보고 ‘이게 진짜 남의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어릴 때는 그런 부분을 보면서 제가 나름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족의 먹고사는 문제를 짊어지고 사는 가장의 입장은 무게감이 있구나 성인이 돼서 느꼈었다. 이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인범이 청한 상황과 종록을 바라보는 모습을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당시를 겪은 관객들에겐 환기가 되는, 겪지 않은 세대에겐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 않을까 싶다.

인범은 겉보기와 다르게 나름의 꿍꿍이가 있는 인물이다. 굳이 따지면 선인보다는 악인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인물을 연기하겠다 결심한 이유가 있다면.

지금 와서 당시를 반추해보자면 외국자본이 유입되며 금융시장이 열렸다. 기업들의 지배 구조도 바뀌고. 단기적으로 봤을 때 희생해야 하고 구조와 체계가 바뀌는 부분에서 국민들의 노력과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투명성과 효율성, 글로벌 경쟁력이 올라갔다고도 볼 수 있겠다. 20년이 넘은 지금, 이런 자본 시장을 봤을 때 역사 속의 경험들이 있음에도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적인 상황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여전히 팽배한 것이 답답하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를 볼 때 그 부분이 흥미로웠다.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더 관심을 가지길 바랐다. 모두가 먹고사는 부분에 불확실성을 가지고 매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소주전쟁>에서 그리는 사건 같은 사례들이) 이런 상황을 힘 빠지게 하고 노력을 앗아간다는 느낌을 줄 때가 많을 것이다. IMF 시절 대한민국은 빠르게 부채들을 갚으면서 위기를 넘어 성장했는데, 자본 시장에서의 내가 추구하는 돈의 가치를 가장 옳다고 믿는 인범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 반칙을 쓰거나 작당모의를 하거나 그런 사람들에게 응징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겪고 있는 상황을 <소주전쟁>에 빗대서 대중과 소통하고 싶었다.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소주전쟁〉 이제훈 (사진제공=쇼박스)
〈소주전쟁〉 이제훈 (사진제공=쇼박스)

그런 생각으로 이 영화를 선택했나, 아니면 시나리오를 읽고 작품을 하면서 문제의식을 키우게 됐나.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계속 들여다보게 된다. 삶을 살아가는 데 얻는 무언가를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서의 돈에 중점을 두고 살아가는 분들이 많다. 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를 들여다보고 찾아보는 과정에서 이 시나리오를 만났다. 할리우드 작품의 금융범죄 영화, 드라마, 거의 다 봤다. 이런 작품이 우리나라에도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했는데 그런 시나리오라서 흥분했다. 실화 모티브를 가진 시나리오라 흡입력이 있었다. 그 이후에 드라마(M&A 전문가로 출연한 <협상의 기술>)로도 이런 소재를 전할 수 있어서 행운아인 것 같다. 가치관과 생각을 작품으로 보여드린 거니까.

할리우드 작품으로는 어떤 것을 보았나.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2011), <빅쇼트>(2015)… 비슷하게 엮어서 드라마 <빌리언스>(2016~2023)나 <석세션>(2018~2023)을 봤다. 계승에 대한 얘기라서 지배 구조도 포함되기도 하니까. 할리우드에서도 최근엔 이런 영화가 좀 줄었지만 정말 많았었다. <월 스트리트>(1987)에서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라스)가 그런 말을 한다. “그리드 이즈 굿”(Greed is good, 탐욕은 좋은 것이다). 미국이란 나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어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IMF 전엔 외국 자본이 들어오는 것에 폐쇄적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개방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변화한 우리나라다. <소주전쟁> 같은 소재로 영화가 나올 수 있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볼지도 궁금하다.

캐릭터마다 차별점을 주는 부분이 돋보이는데, 인범은 어떻게 차별점을 주려고 했나.

인범은 국내 대학 마치고 외국 석사를 마친, 금융 쪽 애널리스트로 취직한 인물이다.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자신의 목표와 꿈을 향해 밑바닥부터 헤쳐나가는 스토리를 이면에 두고 있었다. 스타일링, 외적인 부분에서 샤프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머리색도 살짝 갈색으로 한다거나. 이번 영화에서 함께 한 스태프분들이 저랑 같이 했던 분들이어서 저한테는 편하고 익숙하다. 또 저를 잘 파악하고 계셔서 자연스럽게 저라는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함께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런 비주얼을 보여드렸는데 또 이런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는….(웃음) 팬들께선 이런 모습을 보고 포지티브(positive)한 인물이 아닌데도 비주얼적으로 좋아하신다.

최근 연기한 캐릭터에서 확실히 냉미남스러운 캐릭터가 많다. 이런 변화를 스스로도 느끼고 있는지.

딱히 생각한 적은 없다. 캐릭터의 성격, 행동들을 제가 만들어서 한다기보다 이야기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와의 앙상블로 캐릭터가 창조된다고 믿는 편이다. 이런 소재, 스토리라인, 인물의 기승전결을 통해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익숙한 모습과 외형을 탈피해서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 개인적인 욕망이 있다. 그래서 수트 입은 모습의 캐릭터들이 연달아 보이게 된 것 같다. 신기하다. 이런 모습을 필모그래피로 남길 수 있어서 만족하고 있다. 언제 또 이런 소재, 이런 모습의 액팅을 할 수 있을지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주전쟁〉
〈소주전쟁〉

얘기한 대로 인범은 포지티브와는 거리가 멀지만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설득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보여주려고 했는지

기본적으로 요즘 세대가 생각하는 가치관, 삶의 태도가 인범과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걸 영화로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믿고 사는 인생이 맞는가, 인범이 종록을 만나 일련의 변화로 선택을 하는데 옳았던 것인가, 이야기하고 싶었다. 저 스스로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다’ 이런 모티브를 가지고 살아야지만 숨 쉴 수 있고 이 일을 영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다보니까 제가 배우가 아닌 인간 이제훈으로서의 인생을 설명하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결과적으로 일이 곧 저이고 일이 삶인 것이다. 그런 걸 받아들이고 즐거움으로서, 고통이 수반되는 순간이 있어도 결과물이 보람차다면 힘듦을 딛고 일어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게 배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결과물이 단번에 보이진 않는다. 꾸준한 활동에 체력이나 정신이나 지칠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이겨내려고 하나.

이겨내는 방법은 제가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 극장에 좋은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저런 영화에 참여하고 싶다, 저런 영화 찍고 싶다, 이런 필모를 남기면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이런 생각을 하며 자극도 받고 에너지도 채운다.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다른 걸 얘기하라면, 말할 게 딱히 없다. 그렇지만 매일 영화를 볼 수도 없고, 때를 놓칠 수도 있고 못 가는 순간이 많다. 최근 본 영화가 두 달 전 <야당>이다.(웃음) 극장 가는 게 이렇게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사람이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상황이 좀 답답하고 아쉽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부분에서 제가 채워야 하고 해내야 하는 미션들이 있지 않나. 치열하게 하고 방전이 된 상태에서 집이나 숙소에 왔을 때 오늘을 복기하곤 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서. 불안하고 미숙한 부분도 있고, 잘할 수 있을지 막연함도 있었는데 오늘을 후회 없이 다 쏟아부었는지 묻는다. 그러면서 자고 일어나 다음 하루를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멀리서 보면 ‘쳇바퀴적인 삶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그 하루하루를 보내며 바느질을 하나하나 하듯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크랭크업하고 후반작업에서 완성돼가는 과정을 보고, 극장에서 관객들이나 TV로 시청자들을 만날 때 저의 작품을 보면서 행복에 젖어들고 보람과 기쁨을 한꺼번에 얻는 것 같다.

영화 없으면 삶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 것 같다.

저도 신기하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제가 상상하지 못한 세계의 이야기가 작품으로 펼쳐지니까 신기하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런 작품이 나왔네?!’ 할 때도 있어 창작자로서 생각과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한다. 혼자 끄적이기도 하고 제작자들하고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지속이 된다는 게 싫지 않은 것 같다. 저에겐 즐거운 순간이니까. 다만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시간들이, 시간이 지나서 보기 싫거나 외면하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순간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럼 제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될 것 같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소주전쟁〉 이제훈 (사진제공=쇼박스)
〈소주전쟁〉 이제훈 (사진제공=쇼박스)

이렇게 일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니 더 궁금하다. 혹시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어떻게 태어나고 싶나.

배우는 (이번 생에) 살아봤다고 친다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조금 더 재밌고 즐거운 다음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직업을 꿈꿀 것 같다. 커피를 내려서 내주는 사람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손님들이 다양한 상태나 기분으로 오실 텐데 기분 좋으면 ‘좋은 일 있으셨어요?’ 물을 수도 있고 기분 안 좋아보시시면 기분 좋아지시라고 초콜릿도 내어드릴 수 있고. (웃음) 상대방이 봤을 때 나라는 존재로 상대방이 긍정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다면 보람된 삶이 되지 않을까. (질문을 받아서) 처음으로 다음 생을 꿈꾸게 됐다.

 

 

〈소주전쟁〉 표종록 역 유해진(왼), 최인범 역 이제훈
〈소주전쟁〉 표종록 역 유해진(왼), 최인범 역 이제훈

영화를 보면 정말 소주 한 잔이 생각난다. 원래는 음주를 잘 못한다고 들었다. 반대로 유해진 배우는 소주를 좋아하는 애주가이고. 음주 장면들은 어떻게 준비했나. 실제로 소주도 먹었는지 궁금하다.

촬영할 때 저는 음주를 안 했다. (유해진) 선배님은 한두 잔 정도 즐기셨던 것 같다. 그래서 애주가와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의 갭이 두 인물(종록과 인범)에게 비치지 않았나 싶다. 촬영할 때보다 “영화에 나온 탑 소주예요” 홍보하면서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웃음) 그래서 한 예능에 나갔을 때 너무 짧은 순간에 많이 마셔서 프로그램 호스트와 ‘형 동생’하면서 헤어졌다.(웃음) 그런 술이란 매개체가 기분 좋게 해주고 빠른 시간에 가깝게 만들어줄 수 있구나 오랜만에 상기하게 됐다. 너무 좋았다. 영화에 나오는 ‘탑 소주’도 공정이 돌아가는 걸 찍기 위해 제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만든 김에 마케팅할 때 활용하자 한 것이 흥미로웠다. 새로운 패키지로 생산도 해주시고. “부드럽고 깔끔하”더라.(웃음) 정말로 맛을 비교하면서 먹은 적이 있다.

유해진형하고 (작품으로는) 처음 만났다. 전 9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 한국영화를 보고 자란 ‘한국영화 키즈’다. 그 시대를 관통한 사람으로서, 유해진이란 배우가 없는 한국영화를 나열하면 한국영화가 설명이 안된다. 언제 꼭 (작품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 기대만큼 너무 편하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삼시세끼>를 보시면 편하고 재밌게 해주지 않나. 현장에서도 그렇다. 무대인사도 그렇고. 그래서 계속 옆에 있고 싶다, 그런 감정이 드는 편한 사람이다. 이번 영화로 만난 인연이지만, 사석으로도 연락드리면서 만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작품에서도 또 만났으면 좋겠다.

영어 대사가 정말 많다. 색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다.

영어 대사도 있고 외국인 배우들이 있으니 ‘내가 할리우드 영화를 찍고 있나’ 착각할 정도였다.(웃음) 일상적인 영어 대사가 아니고 금융 관련 대사가 많아서 굉장히 어려웠다. 영어 잘하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한 번 해보라고 했었는데, 다들 버벅거리는 경우도 많았다. 영어 대사 코치를 받으면서, 매일 습득하고 다양하게 준비하면서 영어 때사 때문에 꼬이는 게 없도록 노력했다. 너무 어려웠다. 다신 할 수 있을는지는….(웃음)

이렇게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진 않았나.(일동 웃음)

그런 순간이 오면 믿기지 못한 순간이 될 것 같다. 한국 작품을 외국에서 많이 봐주시고 배우들을 사랑해주고 있다. 저도 작품을 통해 해외팬들을 만나는데,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작품에서도 그럴 수 있으면 재밌을 것 같다. 제 세계가 확장되면서 또 다른 열정이 생길 것 같다.

 

 

〈소주전쟁〉 고든 역 바이런 만
〈소주전쟁〉 고든 역 바이런 만

할리우드에서 활동 중인, 고든 역의 바이런 만 배우와도 호흡을 맞췄다. 기자간담회 때는 바이런 만 배우가 이제훈 배우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 반대의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바이런 만과 함께 한 소감이 궁금하다.

 

출연한 영화를 본 적이 있어서 저에겐 익숙한 배우였다. <소주전쟁>에 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대사 리딩이나 촬영 현장에서 연기 호흡을 맞출 때 캐릭터가 됐다고 해야 할까. 평소에는 상냥하고 차분한 분인데, 영화에서는 욕망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인범이 무언가를 이루도록 푸시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태도로 액팅을 주시니까 저도 인범으로서 몰입이 크게 됐다. 바이런 만이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쫀쫀하면서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분위기와 신들이 과연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캐릭터를 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목소리도 너무 좋고 발음도 확확 꽂히고. 보신 관객들도 느꼈겠지만, 그 연기를 눈앞에서 보는 제 입장에선 환상적이었다.

혹시 본인 스스로 한계를 느낄 만한 분야가 있을까 걱정한 적은 없나.

저는 다 해내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태도로 매 작품에서 연구하고 표현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 시점에선 제가 했던 작품을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있다. 제가 했던 캐릭터들이나 젊은 시절 모습,(웃음) 예를 들어 <건축학개론>의 스무 살에 첫사랑을 경험하는 인물, <고지전>에서 학도병으로 어리면서도 수많은 대원을 이끄는 장교로서의 모습들. 어렸을 적에 경험이 많이 없고 어리숙할 수도 있고, 그럼에도 그게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부분도 있다. 만일 과거로 가서 다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지, 상상되지 않는다. 미래의 제 나이대, 나이를 먹어서의 모습들을 상상하면서 기분 좋게 꿈꿔보고 있는 거 같다. 해보지 않은 것에 기대가 크고, 직업적, 성격적 부분, 어떤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나도 변화되고 하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고 싶다.

유해진 배우와의 만남으로 변한 부분도 있을까.

선배님이 언어유희가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싶다). 무대인사 때 인도네시아팬분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있으니까 “인도네시아 팬분들이 오셨네요, 그럼 차도네시아” 이러시고. 제가 하니까 표현이 안 사는데(웃음) 정말 너무 재밌으시다. 이런 위트로 사람들을 무장 해제 시키는 부분이 특별하시다. 저도 따라해봐야지 하는데 학습해서 되는 게 아닌 거 같다. 선배님이 가진 재능 같다. 또 자연을 사랑하고, ‘내가 뭘 할 거다’ 이런 욕심이 아니라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거 같다. 그런 마인드가 정말 멋지다.

〈소주전쟁〉 무대인사 인증샷 (왼쪽부터) 유해진, 이제훈, 이창호 (사진제공=쇼박스)​​​​​​​
〈소주전쟁〉 무대인사 인증샷 (왼쪽부터) 유해진, 이제훈, 이창호 (사진제공=쇼박스)

무대인사 때 팬 서비스가 정말 좋은 배우로 유명하다. 이렇게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그 원동력이 있다면.

(일반 관객이나 시청자는) 저를 우연찮게 작품에서 보시는 분도 있고, 이제훈이란 친구가 나왔네 하고 보시는 분들도 있다. 팬들은 제가 하는 행보를 지켜봐주시고 기대해주시고 응원해주신다. 이렇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와 만날 수 있는 순간이 매일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저에게 환호하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을 주신다. 거기에 화답하고 싶은 것 같다. 제 체신을 지킬 수 있겠지만 제 나이답지 않게 온몸의 표현으로 하트를 날리고 하는 것 같다. 이런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순간의 추억을 잘 남겨서 그분들에게 활력소가 될 수 있다면 그만큼 저에게 다른 행복은 없을 것 같다.

이제 데뷔 20년차다. 앞으로도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이번에 영화와 드라마로 금융계의 자본을 다루는 스토리와 캐릭터를 보여드렸는데 안 해본 직업도 많다. 법조인, 의사, 이런 캐릭터를 못해봐서 그 세계에 저를 투영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제가 작품을 선택할 때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요소를 보여드리는 게 필모그래피였다면 저도 모르는 세상 사람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걸 발견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 그런 특별한 것을 만나고 싶다. 열심히 잘 찾아봐야겠다.

연출가 이제훈으로서도 새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어릴 때부터 많이 꿈꿔봤다. 배우가 아니었다면 연출가로서, 프로듀서로서, 작가로서 저의 무언가를 창작하고 싶은 욕망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한다. 언젠가는 해보고 싶다. 지금은 그런 부분에 역량이 부족하고 그릇이 작다.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를 수렴해서 선택하고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감독으로서의 역할, 꿈은 꾸지만 아직은 부족하지 않나 싶다. 각본을 쓰고 감독을 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그림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샷을 생각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세계를 보여줘야 하지 않나 고찰하게 된다.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극장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소주전쟁>을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는?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집에서도 볼 수 있는데 보다가 중간에 끌 수도 있고 전화가 올 수도 있고 그렇다. 극장이란 존재가 몰입감과 집중도, 기억에 남는 순간은 다른 수단보다 더 강력하다. 자리에 앉아서 큰 스크린과 좋은 사운드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목도할 수 있고 빠져들 수 있는 곳은 극장만한 곳이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소주전쟁>에 흠뻑 취하고 나갈 때 스며드는 느낌을 받으시도록 극장에 오셔서 봐주셨으면 좋겠다.

올해 <두 번째 시그널>와 <모범택시 3>를 선보일 예정이다.

두 작품을 함께 찍고 있는 배우 입장에서 <시그널>은 10년을 기다려 만나는 작품이고 <모범택시>는 (시청자들의) 시리즈의 사랑이 증폭돼서 여기까지 온 작품이다. 이 시리즈들이 이어지는 건 다음이 기대되기에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대에 충족할 수 있는 작품이 나올 거라고 확신한다. 잘 찍어서 보여드리고 싶은 기대감이 크다. 이렇게 시리즈가 이어진 건, 어떻게 보면 감사하면서 동시에 이 캐릭터를 다시금 연기할 수 있어서 배우로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전의 스토리와 이야기를 더 업그레이드하고 그 속에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의 기대감을 가진 시청자분들이 계시니 솔직히 엄청난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후회 없이, 다들 ‘기다린 만큼 재밌었어!’라고 할 만한 것을 선사하고 싶어 매일매일 열심히 하고 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