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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에 충실한 〈하이파이브〉 vs. 실화 모티브 자본주의의 단면 〈소주전쟁〉, 맞대결 한국영화 단평

씨네플레이
〈하이파이브〉(왼), 〈소주전쟁〉 포스터
〈하이파이브〉(왼), 〈소주전쟁〉 포스터

오랜만에 한국영화가 맞붙는 광경. 5월 30일 영화 <하이파이브>와 <소주전쟁>이 관객들을 찾는다. <하이파이브>는 장기 이식을 받은 5명에게 초능력이 생기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소주전쟁>은 IMF 외환위기에 위기를 맞은 대기업과 이를 노리는 글로벌 투자사의 대립 구도를 가져온다. 만화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더한 영화. 이렇게 다른 영화 두 편을 같은 시기에 만날 수 있다니, 주말과 연휴를 풍성하게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어떻게 보면 진검승부, 어떻게 보면 시너지를 통한 공존에 나선 두 영화를 미리 보고 온 씨네플레이 기자들의 소감을 옮긴다.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

이진주 _ <하이파이브>, 초능력은 이용당했다.

초능력을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하이파이브>는 디즈니 플러스 <무빙>과 유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결은 전혀 다르다. <무빙>이 초능력을 개인의 사연과 정체성에 밀착된 이야기로 끌고 간다면, <하이파이브>는 그 소재를 철저히 웃음의 수단으로 삼는다. 초능력을 가진 아무개에게 장기를 이식받은 <하이파이브> 속 인물들은 본의 아니게 초능력을 갖게 되지만, 이를 삶의 전환점이나 사명처럼 받아들이지 않는다. 초능력은 그저 우연히 손에 쥔 ‘장기(長技)’ 같은 것이다. 종종 초능력으로 인해 당황스러워하는 모습도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들은 초능력을 통해 대단한 꿈을 실현하거나 세상을 구하려는 열망도 없다. 함께 장기 이식을 받은 사이비 교주 영춘(신구/박진영)이 초능력을 통해 스스로 신이 되려 할 때, 이들은 인류의 미래보다 눈앞의 친구를 더 걱정하고 거창한 명분보다 지금 옳다고 믿는 선택을 따른다. 그래서 <하이파이브>는 끝까지 유쾌할 수 있다. 웃음으로 시작해 웃음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긴장보다 기대를, 의심보다 응원을 유발한다. 119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무겁지 않게 관객의 머릿속을 비워내주며 경쾌하게 달린다.


〈소주전쟁〉
〈소주전쟁〉

추아영 _ <소주전쟁>, 유해진이 최고의 안주다!

첫맛은 밋밋한데 머금고 있으면 깊~은 맛이 올라온다. <소주전쟁>은 다소 약한 캐릭터성, 평범한 연출이 아쉬움을 남기지만, 입체적인 인물들의 궤적을 잘 그려낸 각본의 힘이 영화의 깊이를 좌우하며, 끝내 마음에 와닿는 묵직한 대사로 여운을 남긴다. 술 한잔 기울이고 나누는 대화처럼 진솔하게 말하자면, 솔직히 오락성은 부족하다. 하지만 영화는 가업 승계 구도, 구조조정, 오너 리스크 등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한국 기업 경영의 고질적인 문제를 반영해 영화의 핍진성을 끌어올린다.

<소주전쟁>은 제목 그대로 소주를 둘러싼 두 남자의 대결이다. 국보소주 기업의 재무 이사 종록(유해진)은 회사에 충성하느라 인생을 술잔에 말아먹은 보통의 중년 남성이다. 그에게는 퇴근 후 동료들과 기울이는 술 한 잔이 고독한 인생의 유일한 위안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위기에 처한 국보소주를 진심을 다해 지키려 한다. M&A 회사의 직원 인범(이제훈)은 돈에 충성한다. 그는 경영권 인수를 노리는 국보소주의 재무이사 종록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진심을 팔기도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그는 ‘선진금융기술’을 말한다. 하지만 그가 말한 선진금융기술은 고객을 상대로 정보를 얻어내서 사기를 치는 얍삽한 행위일 뿐이다. 일과 성공, 삶에 관한 가치관이 판이한 두 인물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이번 작품에서 유해진 배우의 연기를 논하지 않으면 안주 없이 깡소주를 들이키는 형국이다. 단전부터 끌어올린 감정이 그의 주름진 얼굴에 새겨져 있고, 긴장된 어깨에는 그의 지난한 삶이 앉아 있다. 인물의 애환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유해진의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부가킹즈의 흥겨움과 고달픔이 교차하는 노래가 떠오른다. 오늘도 술로 밤을 채우고, 아니 오늘도 눈물로 잔을 채우고.


〈하이파이브〉
〈하이파이브〉

김지연 _ <하이파이브>, ‘오히려 좋아’

개연성과 핍진성을 갖추고자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재미없었을 뻔했다. 그럴듯하지 않아서, 멋있지 않아서 오히려 재밌다. ‘B급인 척하는 A급 영화’라는 수식어가 딱이다. 투박한 척하지만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하이파이브>는 무리한 설정을 납득해야만 한다고 애써 우기지 않는다. 그게 영화의 매력이자,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지점이다. 영화는 ‘취향에만 맞으면’ 재밌다.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쉴 새 없이 웃음 포인트를 저격하기 위해 빼곡하고 치밀하게 설계된 대사들은 오로지 웃음을 위해서만 기능하는데, 그 때문에 웃음 코드가 맞지 않는다면 2시간의 여정이 괴로울 수도 있다. 얼핏 웹툰 원작 영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화적인 설정의 이 영화는 강형철 감독의 오리지널 각본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오로지 ‘오락’을 위해 태어난 각본은 영화의 목적을 충실하게 따르고, 거창한 세계관의 웹툰 원작이 아니라서 ‘오히려 좋다’.


〈소주전쟁〉
〈소주전쟁〉

성찬얼 _ <소주전쟁>, ‘돈찍누’의 세계에서 살아남기란

‘유쾌발랄 언더독의 반란~’ 영화일 줄 알았던 <소주전쟁>은 자본주의의 냉혹한 진면모를 드러내는, 마치 칼과 총 대신 돈을 들고 싸우는 누아르 같은 영화였다. 영화가 기대한 것과 다르다면, 보통 실망으로 귀결되기 마련이건만 <소주전쟁>은 달랐다. 그저 재벌의 일탈, 권력층의 횡포 등 피상적인 이미지에 의지한 기존 장르 영화들과 달리 <소주전쟁>은 돈, 성공, 행복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 군상으로 ‘돈찍누’(돈으로 찍어누르기) 자본주의 세계에 던져진 대한민국을 응시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성공을 위해 사는 삶도 가치 있고, 모두를 위해 사는 삶도 가치 있다. 어느 한 쪽이 맞다고 손 들어줄 수 없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동안의 생채기도 떠안은 채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오래 남는다.

다만 전체적으로 밋밋하다는 감상을 지울 수 없다. 1997년부터 200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사건은 전부 서류와 자본으로 굴러가는 일들이라 눈에 보이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깊이와는 별개로 영화의 뚜렷한 인상이 남지 않는다. 또 캐릭터들의 매력 대부분이 배우의 이미지에 의존하는 느낌이 강하다. ‘사람 좋은 유해진표 소시민’ ‘냉혈한 같지만 내심 인간적인 이제훈표 엘리트’라는 표현 이상은 없다. 그만큼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였다는 것이지만 작품 전체를 돌이켜보면 두 배우를 내세운 것치곤 시너지의 결괏값이 아쉽다고 할까. 그래도 이 영화 최대 결실이라면 손현주표 대기업 회장 석진우. 대범한 듯 치졸한, 안하무인 배은망덕의 재벌을 오직 연기만으로 이만큼 보여주는 손현주야말로 <소주전쟁> 최고의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