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내가 첫 번째 <데드풀>(2016)을 높이 평가하거나 좋아하느냐. 그건 아니다. 나에게 이 영화는 ‘나는 농담한다!’를 끊임없이 외치는 이류 코미디언이 두 시간 동안 억지로 쥐어짠 농담 같았다. 최근 만들어지는 슈퍼히어로영화들 대부분(아마 <로건>(2017) 정도가 여기서 예외일 것이다)이 갇히고 마는 어정쩡하고 숨막히는 기성품의 영역이 있는데, <데드풀>도 여기서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했다. 종종 이 영화는 A급 블록버스터의 틀을 뒤집어쓴 중저예산 슈퍼히어로 패러디물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전성기 ZAZ 사단(데이비드, 제리 주커 형제와 짐 에이브러햄의 이름에서 따온 애칭)의 재치나 무정부주의를 갖춘 것도 아닌 그냥 그런.
그랬으니 <데드풀2>에 아무런 기대가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정작 시사회에서 보니 이 영화는 나쁘지 않았다. 엄청 좋지는 않았지만 괜찮았다. 아마 내가 심술을 잔뜩 뒤집어쓰고 보지 않았다면 더 즐겼을 것이다. 일단 슈퍼히어로 기원담의 지루한 의무방어가 없었다. 내가 질색하는 ‘냉장고 속의 죽은 여자’ 클리셰로 시작되긴 했지만 시간여행자 케이블이 등장했고 코미디이니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든 해결 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농담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지만, 케이블과 파이어피스트의 이야기는 의외로 무게감이 있었다. 영화는 정말로 뚱뚱하고 폭력적인 한 어린아이의 영혼을 구하는 데에 진지했고, 이 진지함은 저질스러운 농담으로도 완전히 덮이지 않았다. 나는 시사회가 끝나자 SNS에 이 영화가 1편보다 나았다고 썼고 그걸 본 잡지사 사람들에게 끌려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영화의 칭찬을 더 해볼까. 미안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나는 <데드풀2>의 농담이 1편에서 이어지는 무례함과 정치적 이슈를 어떻게 결합해 균형을 잡으려 했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나는 이 영화의 농담들을 조금 더 관대하게 해석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보라색 투톤 염색을 한 유키오는 할리우드의 동양인 여성 캐릭터들 묘사에 대한 교묘한 풍자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왜 그렇게 애를 쓰며 이를 이해해주어야 하는가? 팬질하는 아이돌도 아닌데? 아무리 노력하며 봐도 <데드풀2>는 안전지대에 있는 부유한 이성애자 백인 남자들의 한가한 농담이고 이들의 여유만만함을 자비롭게 이해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이 영화의 액션 신을 찍기 위해 억지로 끌려나왔다가 안전 부재로 사망한 흑인 여성 레이서 조이 해리스를,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음에도 끝까지 위즐 역에서 밀려나지 않은 T. J. 밀러를, 불법촬영 성 편파수사를 규탄하러 혜화동에 모인 여성 시위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데드풀을 비롯한 영화 속 슈퍼히어로로 분장하고 기어나온 일베 패거리들을 생각한다. <데드풀2>의 농담이 웃기냐고? 이들을 잊을 정도로 웃기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