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지난 20147, 류이치 사카모토는 자신이 인두암 투병 중이라는 걸 밝히며 모든 활동을 멈추고 휴지기에 들어갔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기약 없는 휴식처럼 보였다. 그러나 복귀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년 뒤인 20158, 야마다 요지 감독의 <어머니와 살면>을 시작으로 다시 일선에 서더니,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8년 만의 스튜디오 앨범 ‘Async’ 그리고, 이상일 감독의 <분노>와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 등 여러 작업들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건강을 추스르자마자 3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투병 전보다 더 부지런한 결과물들을 내놓은 셈이다.
 
물론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투병을 하고 있던 2015년 여름엔 아베 정부가 추진 중인 안보 법안 반대 시위를 위해 일본을 찾았으며(그는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원전 반대와 환경, 평화 문제에도 신경을 써왔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1999년 발표한 전위적인 오페라 <라이프>를 기점으로 보다 활발하고 직접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음악가 이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모두가 직업에 관계없이 발언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시각을 고수했기에, 현재의 소리에 주목한 그의 음악에서도 이런 올곧은 정신과 선명한 의미들이 묻어났다. 때론 난해하고 실험적이지만,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선율이란 점에서 매혹적이다.
 

스티븐 노무라 쉬블 감독과 류이치 사카모토

이번에 개봉할 스티븐 노무라 쉬블 감독의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이 공백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애초 기획은 사회적 현안에 물러서지 않던 류이치 사카모토를 통해 그의 시선과 생각들이 어떻게 예술 속에서 발현되는지 다루려 했다. 2012년 반핵 활동가로 활동하는 모습을 서두에 담던 다큐는 그러나 슬쩍 방향을 바꾼다. 그의 인두암 투병 때문이다. 이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삶의 중요한 고비에 이르렀고, 다큐는 자연스레 이 위기에 직면한 아티스트의 진짜 얼굴을 담아낸다. 거기서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태도와 철학이 드러나며 애초 의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보다 확장되고 더 깊어졌다.
 
그런 불확실성이 마치 인생이라는 듯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는 그의 변화무쌍한 과거를 조금씩 덧붙여가며 현재의 류이치 사카모토에 주목한다. 사생활이나 타인의 인터뷰, 심지어 투병 중인 상태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오롯이 그의 작품 - 음악을 어떻게 만들고, 다루는지에만 집중한다. 매일 바흐의 코랄 전주곡을 연주하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일상 속에서 소리를 채집하며, 가공하고, 자신이 듣고 싶었던 것이 뭔지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모습에서 언뜻 구도자의 태도마저 느껴진다. 스티븐 쉬블 감독은 그 과정을 묵묵히 따라가고 지켜봄으로써 아티스트가 느끼는 감정과 시선을 관객들에게도 동화되게 만든다.
 

<류이치 사카모토: 에어 싱크> (공연 실황 다큐멘터리)

개인사를 드러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류이치 사카모토라서 알려지지 않은 투병 중의 모습과 개인 앨범 ‘Async’<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영화음악 작업기가 담긴 이 영상은 음악팬들이나 영화팬들에겐 귀중하다. DJ 출신이기도 했던 이냐리투 감독은 그에게 음악을 의뢰하며 그냥 음악보다는 음악을 쌓아가는 과정을 해달라고, 소리를 사용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그의 새 앨범에도 많은 힌트가 되었다. ‘죽음에서 돌아온 자라는 부제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릴 법한 그가 공통적으로 들려준 사운드 스케이프는 삶의 다양한 소리들이었다. 빗소리, 숲의 소리, 빙하 소리, 고장 난 피아노 소리 같은.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에선 그런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의 열정과 노력을 포착한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그 외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골든 글로브와 오스카 음악상을 수상했던 그가 고백하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와의 영화음악 관련 에피소드들은 웃음을 자아내고, 그가 직접 촬영하고 소장하던 진귀한 자료들이 공개되는 지점은 자서전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감흥을 안긴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런 과거와 현재의 만남은 류이치 사카모토를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만든다. 그는 당대 동양과 서양에 모두 영향을 끼치던 세계적인 아티스트였고, 지금 역시 새로운 사운드를 찾아 여정을 멈추지 않는 혁신적인 코스모폴리탄이다. 5년이란 세월을 101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풀어내며 그의 일생을 모두 반추해내기란 어렵지만,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과 그 위엄에 대해선 충분히 끄덕이게 한다.
 
암 투병 이후 새로운 출발점 앞에 다시 선 거장의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제목으로 코다는 의미심장하다. 곡의 종결을 의미하는 동시에, 주요한 테마나 모티브를 강조하고 요약하는 역할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다큐를 통해 새 앨범과 좋아하는 감독의 사운드트랙을 아주 만족스럽게 끝냈고(새 앨범은 너무 좋아서 아무에게도 들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할 만큼이었고, 그 사운드트랙은 두 번째 오스카 후보로 오를 수 있었지만 까다로운 규정상 탈락되며 세 번째 골든 글로브 후보로 만족해야 했다), 과거 천재적인 성과에 대해서도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정리해주었다. 무엇보다 삶의 끝자락에 성큼 다가갔던 그 시간을 음악으로 채우며 견딘 그의 굳건한 의지와 성찰을 담기에 어울리는 제목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다음을 기약하게 만든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감독 스티븐 쉬블

출연 류이치 사카모토

개봉 2017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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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에이싱크

감독 스티븐 쉬블

출연 류이치 사카모토

개봉 2018 미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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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