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응?
이 영화를 7만 명이
봤다고요?
상영 첫날 스크린 수 81개로 시작해, 개봉 3주 만에 7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가 있습니다. 지난 7월 14일 개봉한 <나의 산티아고>인데요. 그게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냐고요? 이 영화 제목 처음 들어보셨다고요? 네, 그런 질문 할 수 있어요. 여름 성수기를 맞이해 극장가에 보다 다양한 블록버스터들이 줄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나의 산티아고>는 그 와중에도 꿋꿋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 더욱 눈길을 끄는 영화입니다.
800km, 42일간의 여정. 독일 최고의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데비드 스트리에소브)은 번아웃 증후군(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에 시달리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산티아고 순례 여행을 떠납니다.
자신과의 싸움이 지속되는 순례길. 다사다난한 에피소드를 겪으며, 그는 어느 순간보다 똑바로 내면을 마주하게 되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나의 산티아고>는 릴레이 GV 매진은 물론, 각종 호평의 리뷰가 쏟아져 나오며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는 영화입니다.
<데몰리션>은
6만 명 관객 동원
같은 주 개봉한 <데몰리션>도 관객 수 6만 명을 돌파했어요. 아내를 잃고 상실의 슬픔에 빠진 남자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가 그녀와의 추억이 있는 집을 부수며 자신의 인생을 분해하는 과정을 담았죠.
두 영화 모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여유도 없던 현대인들이 자신을 직접 돌아보고 마음의 병을 스스로 치유해내는 과정을 담았네요.
새로운 블록버스터가 쉴 새 없이 등장하는 여름 극장가, 조용히 관객을 끌어모은 이 영화들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개성 강한 다양성 영화의 흥행 폭발력
큼지막한 영화로 스트레스를 날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사소한 것을 툭 건드리는 영화가 더 큰 울림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다양성 영화들이 많았어요. 믿고 보는 존 카니 감독의 음악 영화 <싱 스트리트>(559,274명), 왕대륙 열풍을 부른 <나의 소녀시대>(406,189명),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에 빠질 것 같았던 <캐롤>(318,154명)까지. 스크린 점유율과 상영 점유율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현저히 적지만 우리들에게 '인생 영화'로 남을 확률은 높은 영화들이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지난 상반기, 소리 소문 없이 강했던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합니다. 여기서 당신의 인생 영화를 찾을 수 있길!
* 본 포스트의 스크린 수, 스크린 점유율, 상영 점유율은 개봉 첫 날 수치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본 투 비 블루
스크린 수 138|스크린 점유율 2.8%|상영 점유율 2.5%|관객수 91,889
<본 투 비 블루>는 청춘의 음색을 지닌 뮤지션 ‘쳇 베이커’의 암흑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폭행 사건으로 앞니가 부러져 트럼펫을 불지 못하게 된 시기부터 다시 화려하게 재기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죠. 그의 노래 제목이자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Born to be blue’는 이 영화의 모든 것을 한 번에 담아냅니다. 최고의 스타가 밑바닥에서 다시 올라오기까지, 계속되는 그의 선택과 갈등은 마치 재즈 선율처럼 뭉근하지만 선명하고 날카롭게 이야기를 메워나가죠.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이 다 하는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어마어마한 애틋함과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매력 포인트 |
퇴폐미 끝장판 에단 호크의 음악 영화
'에단 호크'가 '쳇 베이커'를 연기한 음악 영화가 나온다고? 이 한 문장만으로 매력이 차고 넘치지 않나요? 에단 호크의 인생 뇌쇄 눈빛을 보고 싶다, 하면 이 영화입니다. 뜻밖의 로맨스 폭발하는 영화라 혼자 극장에서 눈물을 훔치며 봤던 기억이 나네요...(큽) 실제 쳇 베이커의 삶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참고! <본 투 비 블루>는 쳇 베이커의 실제 이야기에 픽션이 더해져 드라마적 요소가 더욱 강조되었다고 합니다.
룸
스크린 수 316|스크린 점유율 6.1%|상영 점유율 6.2%|관객수 87,330
<룸>은 제 88회 오스카, 69회 아카데미 외 수많은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된 영화입니다. 램프 하나, 세면대 하나, 침대 하나의 작은 방에 갇힌 24살 엄마와 5살 아들. 이들은 진짜 세상으로의 탈출을 결심합니다. 넓은 세상에 나온 이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세상은 두 사람을 또다시 보이지 않는 방안에 가두려 합니다. 모성애는 물론 탈출 후 내면의 혼란까지 훌륭한 연기력으로 소화해 여우주연상을 휩쓴 브리 라슨, 그리고 그런 엄마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세상으로 나가려는 제이콥 트램블레이의 연기가 인상 깊은 영화입니다. 나를 가두고 있는 어떤 룸이든, 그 방에 작별 인사를 고하고, 고해야 하는 모든 이에게 용기를 전하는 영화죠.
매력 포인트 |
제이콥, 너 2006년생 맞아?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라 함은 당연히 '잭', ‘제이콥 트렘블레이’입니다. 작은 방 한 칸이 세상의 전부였던 5살 아이 '잭'. 세상의 시선에 마음을 닫으려는 엄마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용감한 어린 생명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몽글몽글하죠. 탈출 후 세상을 처음 마주하는 잭의 표정 자체가 이 영화의 명장면! 앞으로 이 배우가 어떤 역할로 어떤 얼굴을 보여줄지 궁금해지네요.
유스
스크린 수 65|스크린 점유율 1.2%|상영 점유율 0.8%|관객수 85,161
이탈리아의 거장,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유스>입니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연주를 부탁 받은 지휘자가 연주 목록을 논의하다가 결국 무대에 서는 것을 거절했다는 실제 사건에서 <유스>의 모티브를 얻었다는 파올로 소렌티노. 그는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에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이 영화를 탄생시켰다고 하네요. 젊지 않다고 해서 과거만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 감독. '젊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물리적 늙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계속 찬란히 빛나는 순간들에 주목해야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영화입니다.
매력 포인트 |
우아하고 고상하다!
<유스>는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인상을 주는 영화입니다. 장면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고, 영화를 이루는 구석구석에 클래식한 느낌이 살아있죠. 말만 들어도 따분하고 어렵다고요? 영화 속 반가운 얼굴들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걸요? <유스>에는 <다크 나이트>,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등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배우 마이클 케인과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에 출연해 존재감을 뽐낸 하비 케이틀, 제임스 본드의 그녀, <더 랍스터>에서 인상적 연기를 펼친 레이첼 와이즈가 출연합니다. 배우들 이름만 들어도 기대가, 기대가!
트럼보
스크린 수 299|스크린 점유율 6.4%|상영 점유율 4.7%|관객수 61,953
11개의 가짜 이름, 2번의 아카데미 수상. <트럼보>는 할리우드의 황금기였던 1943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던 천재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렇다고 개인의 삶만 조명하느냐, 그건 아니죠. 냉전 시대,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리며 영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 '매카시즘' 한가운데 시대의 부당함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내는 그의 모습은 영화를 이루는 또 하나의 기둥입니다. 매력적인 캐릭터 '트럼보'만큼 마음에 남는 건 그의 현명한 아내 '클레오 트럼보'(다이안 레인)인데요. 스펙터클한 그의 작가 생활 속, 그를 둘러싼 가족애와 동료애는 또 다른 재미와 감동으로 영화의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매력 포인트 |
이 사람이 그 사람? 비교하는 재미!
<트럼보>에는 당대 최고의 셀럽이 총출동합니다. 실존 인물들을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있죠. <트럼보>가 개봉했을 시기, 이 영화와 2주 차이로 비슷한 시기를 다룬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바로 <헤일, 시저!>인데요. 두 영화에는 같은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당시 수많은 독자를 거느리며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가십 칼럼니스트 '헤다 호퍼'. <트럼보>에서는 헬렌 미렌이, <헤일, 시저!>에서는 틸다 스윈튼이 그녀를 연기했습니다. 같은 인물을 어떻게 연기했는지,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겠네요!
브루클린
스크린 수 37|스크린 점유율 0.8%|상영 점유율 0.5%|관객수 51,106
시얼샤 로넌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라 이미 유명했던 작품 <브루클린>의 첫날 상영관 수가 고작 37개, 상영 횟수가 86회였다는 사실은 조금 놀랍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수 5만을 돌파한 이 영화! <브루클린>은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 시작하는 모든 이에게 무한 공감을 안겨줄 영화입니다. 촌뜨기였던 에일리스(시얼샤 로넌)가 뉴요커 느낌 물씬 나는 여성으로 성장하기까지. 한없이 사랑스러운 상황에서도 보는 이의 마음을 쿵, 끌어내리던 에일리스의 표정이 인상 깊은 영화죠. 성장하는 누군가라면 어느 순간 보냈고, 보내고 있는, '우리'의 한 시기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매력 포인트 |
당신의 마음에 폭죽 팡팡!
'에모리 코헨'이란 배우를 아시나요? 영화 속 이 배우의 사랑 방식이 정말 귀엽습니다. 가진 건 별로 없지만 자신이 그린 방향으로 묵묵히 전진하는 힘을 지닌 남자, 토니. 에일리스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세워가는데 있어 기댈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죠. 요즘 감정이 너무 메말랐다고요? 그럼 처방은 <브루클린>입니다. 투박하고 가식 없는 그의 사랑 방식은 아마 여러분의 마음에 폭죽을 팡팡 터뜨릴 거예요.
그 외에 주목 받은 수작들
상반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다양성 영화는 이외에도 꽤 여럿입니다. 작품의 힘으로 장기 상영을 이뤄낸 작품들도 있죠.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대되어 전 세계 시네필들의 주목을 받은 영화 <4등>은 3만 관객을 돌파했고요. 개봉 전부터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화제가 되었던 영화 <우리들>은 개봉 8주 만에 4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두 영화 모두 어른들의 마음을 콕콕 찌르는 아이들의 연기가 일품이라고 하네요. 두 영화 모두 아직 극장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호기심이 생기는 분이라면 얼른 상영시간표를 알아보시길!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