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트 오브 시네마’(Taste of Cinema)에서 ‘영화 사상 가장 강렬한 연기 10’(링크)을 선정했다. 열연을 펼친 많은 배우들을 ‘강렬한’이란 한 단어로 10명 추려내기엔 다소 무리겠지만, 해당 순위를 보면 과연 순위에 선정할 만큼 오랫동안 기억될 연기임을 알 수 있다. 어떤 배우들이 ‘영화 사상 가장 강렬한’이란 타이틀을 쟁취했는지 만나보자.


10
양익준 (상훈 役)
<똥파리>(2008)

2008년 자신이 주연, 연출을 겸한 <똥파리>로 출사표를 낸 양익준이 10위에 선정됐다. 양익준이 연기한 용역 깡패 상훈은 일상이 폭력과 욕설로 점철된 인간이지만, 연희(김꽃비)를 만나면서 변화해간다.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하류인생’이란 단어가 적합한 상훈이지만 그의 과거와 기억이 하나씩 드러날 때, 관객들은 한 인간의 심연에 숨겨진 아픔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양익준은 배우로서도, 그리고 그런 인물을 관객에게 설득하는 감독으로서도 놀라운 결과를 성취했다. 순위 중 유일하게 아시아 배우라는 것도 그의 연기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똥파리

감독 양익준

출연 양익준, 김꽃비, 이환

개봉 2008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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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데니스 퀘이드 (프랭크 役)
<파 프롬 헤븐>(2002)

토드 헤인즈 감독의 <파 프롬 헤븐>은 고전적인 멜로드라마풍에 현대적인 소재를 곁들였다. 케이시(줄리안 무어)는 어느 날 남편 프랭크(데니스 퀘이드)가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영화의 중심은 프랭크의 비밀을 알게 된 케이시가 이끌지만, 데니스 퀘이드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상류층 사업가 프랭크로 등장하는 순간마다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과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 사이에서 자신을 위장할 수밖에 없는 프랭크를 통해 데니스 퀘이드의 연기 폭을 실감할 수 있다. 

파 프롬 헤븐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줄리안 무어, 데니스 퀘이드, 데니스 헤이스버트

개봉 2002 미국,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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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니콜라스 케이지 (벤 役)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6)

밴 샌더슨(니콜라스 케이지)은 술 마시다 죽어버리기 위해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알콜중독자다. 죽기로 결심했지만, 콜걸 세라(엘리자베스 슈)와 사랑에 빠진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재기의 드라마가 아니다. 서서히 허물어지다 붕괴되는, 비극적인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 영화에서 흐리멍덩한 눈빛을 한 채 거리 이곳저곳을 떠도는, 자포자기한 인간의 민낯을 드러낸다. 자기 파괴적이면서도 사랑을 갈망하는 벤을 만난다면, 진작부터 하락세인 니콜라스 케이지가 왜 아직도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감독 마이크 피기스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엘리자베스 슈

개봉 1995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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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까뜨린느 드뇌브 (캐롤 役)
<반항>(1965)

까뜨린느 드뇌브야 <세브린느>가 대표작이지만, 연기만을 놓고 보자면 <반항>도 만만치 않다. 그가 맡은 캐롤은 성적으로 결벽증에 가까운 강박증을 가졌다. 언니 헬렌은 연인과 동거까지 하지만 캐롤은 여전히 남성에게 두려움을 느낀다. 남성들에게 능욕을 당하는 악몽이 계속되면서 그는 히스테리컬한 살인마가 된다. 정신적 외상과 이성에 대한 공포, 인간 본연의 외로움을 타고난 이 캐릭터를 까뜨린느 드뇌브는 도리어 명쾌하게 표현했다.

반항

감독 로만 폴란스키

출연 까뜨린느 드뇌브, 이안 헨드리

개봉 1965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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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로라 던 (니키 役)
<인랜드 엠파이어>(2006)

<인랜드 엠파이어>에서 로라 던은 할리우드 스타 니키 역을 맡아 데이빗 린치 감독 특유의 ‘꿈의 미로’로 걸어들어갔다. 그의 정신분열적 연기는 데이빗 린치 감독 특유의 몽환적이고 복잡한 세계를 구체화한다. 사실 <인랜드 엠파이어>가 데이빗 린치 감독과 로라 던이 이웃으로 지내며 잡담하던 중 탄생한 영화다. 요컨대 로라 던은 이 영화에서 배우이자 창조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로라 던의 연기는 더욱 특별하다. 그는 꿈 자체를 직조한 듯한 <인랜드 엠파이어>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인물이자 그 악몽을 이끌어낸 표상으로 존재한다.

인랜드 엠파이어

감독 데이빗 린치

출연 로라 던, 제레미 아이언스, 저스틴 서룩스, 줄리아 오몬드

개봉 2006 미국, 폴란드,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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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비요크 (셀마 役)
<어둠 속의 댄서>(2000)

<어둠 속의 댄서>는 아들의 수술비를 위해 돈을 모으는 이주민 노동자 셀마의 이야기를 다룬다. 셀마는 이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뮤지컬을 상상하곤 한다. 비요크는 아이슬란드 출신 가수다. 뮤지컬 장면을 구현할 이방인. 그것만으로도 비요크에게 딱인 역할인데, 그의 절절한 연기는 비극과 환상이교차돼 씁쓸한 영화의 페이소스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 결과 비요크는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는데, 후에 그는 촬영 내내 계속된 트리에 감독과의 불화 때문에 연기를 은퇴한다고 밝혔다. 어쩜 이렇게 영화와 현실 모두 역설적일 수 있는지.

어둠 속의 댄서

감독 라스 폰 트리에

출연 비요크, 까뜨린느 드뇌브, 데이빗 모스, 피터 스토메어, 조엘 그레이, 카라 세이무어, 블라디카 코스틱, 쟝 마르 바, 빈센트 패터슨, 시옵한 폴론, 젤리코 이바넥, 우도 키에르

개봉 2000 덴마크, 독일, 스웨덴, 네덜란드, 미국, 영국, 핀란드, 노르웨이, 아이슬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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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니엘 데이 루이스 (대니얼 役)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명연을 언급할 때, 이 배우가 없으면 오히려 서운하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메소드 연기의 대표주자답게 어떤 인물을 맡든 그 캐릭터의 모든 요소를 꼭꼭 눌러 담는다.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석유 시추 사업가 대니얼 플레인뷰는 캐릭터 자체로는 평범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차분하고 날카로운 묘사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집중력 높은 연기가 빚은 시너지는 소름 돋는다는 단어 외에 표현할 수 없다.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전략가의 모습부터 치욕만은 어떻게든 되갚는 싸움꾼 같은 면모까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광기 어린 연기는 두고두고 봐야 할 것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폴 다노

개봉 2007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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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벤 킹슬리 (돈 役)
<섹시 비스트>(2000)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지금까지 세 작품을 내놨고, 각 영화마다 인상적인 캐릭터를 선보였다. 그 중 데뷔작 <섹시 비스트>의 돈 로건(벤 킹슬리)은 단연 압도적이다. 돈은 범죄에서 손 뗀 갤 도브(레이 윈스턴)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같이 일하자고 제의한다. 말이 좋아 제의지, 일방통행이다. ‘예쓰’라는 답을 듣기 위해 윽박지르고, 욕하고, 비꼬고, 상대를 깔아뭉갠다. 이 극단적인 캐릭터는 관객들에게 두려움과  카타르시스를 동시에 선사한다. 벤 킹슬리는 돈 로건의 캐릭터를 할머니에게서 영향받았다고 밝혔다.

섹시 비스트

감독 조나단 글래이저

출연 레이 윈스턴, 벤 킹슬리

개봉 2000 영국,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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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자벨 아자니 (안나 / 헬렌 役)
<포제션>(1981)

연기는 때로 굉장히 신비스러운 작업처럼 묘사된다. <포제션> 속 이자벨 아자니의 연기를 보면 그렇게 느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연기를 해낼 수 있었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남편이 보란 듯이 외도를 자행하는 안나, 안나와 쏙 닮았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헬렌.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이자벨 아자니가 펼친 1인 2역의 연기는 보는 사람마저 진을 빼놓는다. 그는 이 영화 촬영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포제션

감독 안드레이 줄랍스키

출연 이자벨 아자니, 샘 닐

개봉 1981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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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이빗 듈리스 (조니 役)
<네이키드>(1993)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1위로 선정된 건 <네이키드>의 데이빗 듈리스다. 성적 관계로 얽힌 군상을 그린 <네이키드>에서 데이빗 듈리스는 조니 역을 맡았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대 남성 캐릭터야 널리고 널렸지만 조니는 허무주의에 회귀하는 철학자처럼 군다. 그가 영화에서 던지는 질문들은 집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네이키드>의 스토리를 고전 서사시처럼 꾸며준다. 데이빗 듈리스는 조니를 그저 망나니로만 연기하지 않고 누추한 행색에도 특유의 품격이 있는, 그렇기 때문에 우울마저 고귀하게 느껴지는 지식인으로 그려낸다.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되는 인물은 연기하기 쉽다. 하지만 조니처럼 입체적인 사상으로 표현되는 배역은 데이빗 듈리스 같은 영리한 배우만이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키드

감독 마이크 리

출연 데이빗 듈리스, 레슬리 샤프

개봉 1993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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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