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세계 각국의 크리에이터들이 작품 제작 상황을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팬들의 피드백 또한 실시간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재에 와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작품들이 마지막으로 만들어졌던 것이 9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당시 미국 팬들에게 일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과 OVA들을 활발하게 소개하던 회사가 바로 1991년 설립된 <망가 엔터테인먼트> 라는 회사로서, 사실 ‘망가’와 ‘아니메’라는 용어가 미국인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를 제공한 회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회사는 90년대 초반, <아키라>를 수입, 배급하는 것을 기점으로 해서 이후 <공각기동대>, <수병위인풍첩>, <바이올런스 잭>, <크라잉 프리맨> 등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미국과 영국 관객들에게 수입하였다.
역시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였던만큼, <아키라> 등의 작품들은 미국 관객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화판 <아키라>는 마블 코믹스의 산하 회사인 <에픽 코믹스>를 통해 미국에 정식 출간되었는데 일본과 다른 제철 방식을 미국식으로 바꿈과 동시에, 자체 채색을 하여서 발매되었다. 이 좌우 제철 방식이 바뀐 판본은 2000년대 초반 역으로 일본에 수입되어 디럭스 판형으로 출간되었고(플라스틱 슬립케이스까지 씌워진 최고급 판형이었다) 이 판형은 다운그레이드되어 2013년 국내에도 세미콜론 출판사를 통해 발매되었다.
일본인들의 미국 문화 사랑은 종전 이후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고, 음악, 패션, 영화 등 다방면에걸쳐 있지만, 미국인들이 일본 문화에 대해서 지금처럼 관심을 보인 적은 역사상 유래가 없는 것 같다. 넷플릭스에서 <신세기 에반게리온> TV판을 2019년부터 서비스한다고 예고편이 몇 주 전 올라오자 각종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채널들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만화사적 의미와 전문가적 분석글이 우후 죽순으로 올라왔는데, 2000년대 말 신극장판이 개봉했을 때 올라오던 리뷰들과는 깊이와 분석력에서 수준이 다르다. 근 몇 년 사이에 팬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철남>은 결국 2009년 전 세계 개봉을 목표로 영어로 <철남 3: 불릿 맨>이 제작되었지만 이 작품을 보고 실망감을 금할 수 없었다. <철남>에서 느껴졌던 에너지와 낯설음이 전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엔드 크레딧에 나인 인치 네일즈의 테마곡이 삽입된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는데 감독은 수십 년 전부터 고대해오던 나인 인치 네일즈와의 협업이 드디어 이루어져서 매우 만족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