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은 변화무쌍한 한해였다. 당장이라도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던 남북 관계는 평창 동계올림픽이란 계기를 맞아 180도 바꿨고, 4월말 남북 정상회담을 거쳐 6월엔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도 개최됐다. 러시아 월드컵이 펼쳐져 16강엔 탈락했지만 전통의 강호 독일을 2:0으로 제압하는 파란을 연출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과 방송계에선 그간 감춰져 있던 미투 운동이 벌어졌고, 하반기엔 마이크로닷을 필두로 가족의 빚과 관련된 폭로가 줄지어 일어났다. 1월 영하 27도를 찍었던 한파는 8월 영상 40도를 넘는 폭염으로 바뀌며 역대급 극단적인 기후를 보인 한해가 되었다. 이러한 양극화 여파는 고스란히 영화계에도 반영됐다.

(왼쪽부터) <신과함께-죄와 벌>, <1987> 사운드트랙 표지

<신과 함께>는 사상 처음으로 시리즈가 ‘쌍천만 신화’를 달성했고, <1987> 역시 좋은 성적을 올렸다. 반면 기대를 모았던 <안시성>과 <공작>은 체면치례를, <협상>과 <창궐>, <물괴>와 <염력>, <인랑> 등은 처참한 실패를 기록했다. 그나마 <독전>과 <마녀>, <그것만이 내 세상>과 <완벽한 타인>, <암수살인> 등 중간급 영화들의 선전이 눈에 띄었다. 아직 하반기 대미를 장식할 빅3(<스윙키즈>, <마약왕>, <PMC: 더 벙커>)가 남아있지만, 이쯤에서 2018년 한해 국내 영화음악들을 정리해본다. 기간은 지난해처럼 2017년 12월 1일부터 2018년 11월 30일까지 개봉한 영화들을 대상으로 음원이나 CD로 공개된(싱글 제외) 국내 영화 사운드트랙에 한정했다. 지난해와 거의 비슷한 45편 정도의 한국 영화음악들을 접할 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일단 이들을 대상으로 5편을 추려 ‘2018년 한국 사운드트랙 베스트5’를 뽑아보았다. 사운드트랙이 나오지 않은 영화들은 과감히 후보에서 제외했다. 그 편이 이 리스트에 대한 형평성과 객관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 영화음악 베스트가 아닌, 한국 사운드트랙 베스트다. 시상식 후보에 올랐거나 인상적이었던 작품들, 모그의 <버닝>이나 <인랑>, 김태성의 <강철비>, 목영진의 <암수살인>, 이준오의 <리틀 포레스트>, 장영규의 <염력> 등은 사운드트랙이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이 포스트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밝혀둔다. 개인적으로도 아쉽게 생각한다. 리스트는 무순이다.

2018년 발매된 한국영화 사운드트랙 앨범들

독전
By 달파란
<독전> 사운드트랙 표지

두기봉의 <마약전쟁>을 리메이크한 이해영 감독의 <독전>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영화가 됐다. 이는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원작의 스코어를 담당한 프랑스 출신의 자비에 자모스는 1980년대 인디 락밴드 드러머 출신이자 90년대 후반부터 ‘뱅뱅’이란 이름으로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뛰어든 인물이었다. 달파란 역시 시나위와 H2O, 삐삐밴드의 베이시스트를 거쳐 90년대 말부터 테크노사운드를 시도했다. 산업화된 도시 속에서 환각을 지닌 마약이란 소재를 다루기에 스타일리쉬하고 트랜스(최면)적인 색채를 지닌 일렉트로닉을 기저에 깐 건 당연한 선택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유사점에도 둘의 스타일은 사뭇 다른 길을 걷는다. 캐릭터 간의 유기적인 관계와 특별한 설정이 국내 버전에 더해진 만큼 그 결을 살리기 위해 스트링과 피아노가 덧입혀진 셈이다. 왈츠풍의 고전적인 선율과 단조롭지만 강렬한 전자음악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중주는 독하고 매력적인 음악을 완성해냈다. <독전>이 가진 스타일의 반은 달파란의 몫이다.

<독전>
이미지 준비중
독전

감독 이해영

출연 조진웅, 류준열, 김주혁, 김성령, 박해준

개봉 2018.05.22. / 2018.07.18.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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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By 조영욱과 사운드트랙킹스
<공작> 사운드트랙 표지

실화인 ‘흑금성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는 윤종빈 감독의 <공작>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첩보정치물이었다. 누아르였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와 사극에 스파게티 웨스턴 소스를 묻혔던 <군도: 민란의 시대>에 이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조영욱과 사운드트랙킹스는 이에 걸맞는 다크하고 스릴 넘치는 스코어를 선사한다. 언제나 기본 이상의 솜씨를 들려주는 그들답게 결과물은 퍽 만족스럽다. 기타와 스트링 등 현(絃)의 미세한 떨림과 반복, 고조를 통해 장르적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고, 국가를 상징하듯 묵직하게 내리 깔리는 혼(horn)의 존재감으로 심리적 위압감과 서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마림바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과 목관부의 가녀린 방황은 경색된 남북 관계를 상징하듯 위태롭고 아슬아슬하다. 정치 관계를 다루는 지점에선 제프 빌의 <하우스 오브 카드>가, 첩보물과 휴머니즘이란 측면에선 토마스 뉴먼의 <스파이 브릿지>가 연상되는 접근법이다. 돌고 돌아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 잘 어울리는 사운드트랙일지 모른다.

<공작>
공작

감독 윤종빈

출연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개봉 20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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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궐
by 박인영
<창궐> 사운드트랙 표지

야귀가 창궐한 절대절명의 조선의 궁 안에서 나라를 차지하려는 반정세력들과도 맞서 싸워야 하는 왕세자의 활극을 다룬 김성훈 감독의 <창궐>은 그 야심만큼 성과를 내지 못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를 떠나 박인영이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대동하고 만들어낸 영화음악만큼은 근래 국내 영화에서 찾기 힘든 놀라운 완성도와 큰 스케일, 강렬한 임팩트를 안겨주는 수작이다. 대작이란 사이즈와 성격에 맞게 <창궐>의 음악은 시종일관 파워풀하고 화려하다. 가히 할리우드 스코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석적이고 스펙터클한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여기에 절묘하게 꽹과리와 퉁소, 단소 등 전통 국악기를 녹여내며 독창적인 색채마저 부여했다. 대중음악 현악 편곡과 작은 영화들을 하며 이 미칠 듯한 질주감과 박력을 그간 어떻게 참았을까 싶을 정도로 시원스레 내지르는 박인영의 음악은 영화가 해결하지 못한 쾌감과 감동을 대신 해소한다. 할리우드를 꿈꾼다는 바람이 바람만으로 끝나지 않을 게 확실하다는 징표.

<창궐>
창궐

감독 김성훈

출연 현빈, 장동건

개봉 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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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by 권현정
<소공녀> 사운드트랙 표지

새해가 되고 집세가 오르자 자신이 아는 몇 안 되는 지인들에게 돌아가며 신세를 지는 가사도우미의 엉뚱발랄한 고난기를 다룬 전고운 감독의 <소공녀>는 독립영화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광화문 시네마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음악은 <족구왕>과 <범죄의 여왕>을 함께 하며 가히 광화문 시네마의 전속(?) 영화음악가가 되어가고 있는 권현정이 맡아 사랑스럽고도 빈티지한 스코어들을 들려주고 있다. 스윙과 블루스를 곁들인 피아노와 기타 위주의 이지 리스닝 계열 소품곡들이지만, 이 정갈하고 기분 좋은 마력은 비참할 수도 있는 차가운 현실의 세상을 귀엽고 아름답게 포장해내는 솜씨를 발휘한다. 야심찬 스케일과 혁신적인 시도, 귀를 붙드는 중독성의 선율 대신, 편안한 사운드가 영화 전반을 지배하며 젊은 세대들의 애환을 위로하는 방식이야 말로 영화 <소공녀>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아등바등 현실에 매달린 채 행복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반어적이고 유쾌한 경각심을 던지는 올해 최고의 힐링 스코어.

<소공녀>
소공녀

감독 전고운

출연 이솜, 안재홍

개봉 2018.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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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많은 소녀
by 선우정아
<죄 많은 소녀>사운드트랙 표지

갑작스런 반 친구의 실종으로 졸지에 가해자가 되어버린 죄 많은 소녀. 그녀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단면을 포착해낸 김의석 감독의 놀랄만한 데뷔작 <죄 많은 소녀>의 음악은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을 통해 널리 알려진 ‘레드마우스’ 선우정아가 맡았다. 김의석 감독과는 단편 작업물인 <오늘은 내가 요리사>와 <구해줘> 등의 음악을 맡았던 인연으로 이번 장편 영화음악까지 맡게 된 셈인데, 미카 레비나 비요크를 떠올리게 만드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로 인간의 본성과 내면을 스케치하고자 한다. 독특한 음색에 어둡고 멜랑꼴리한 곡들이 많았던 터라 이런 난해한 사운드디자인적인 접근도 그리 생소하게 다가오진 않는데, 특정한 감정이나 편향된 시선이 드러나지 않게 경계를 잘 따라간 소리들이 죄의식과 트라우마, 집단 심리들을 건드리며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안타깝게도 작업한 21개의 트랙 중 추려서 8개 트랙만 공개했는데, 직접 출연해 부른 ‘왓 아 유 시잉?’(What Are You Seeing?)의 완전판이 소개돼 아쉬움을 조금 달래 준다.

<죄 많은 소녀>
죄 많은 소녀

감독 김의석

출연 전여빈, 서영화, 고원희, 이태경, 이봄, 전소니

개봉 201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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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스 / 영화음악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