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 할리우드의 청춘스타 위노나 라이더가 로맨틱 코미디 <데스티네이션 웨딩>(12월 13일 개봉)으로 돌아왔다. <가위손>, <청춘 스케치> 등의 영화로 1990년대 청춘의 아이콘이 되어 주었던 그녀. 커리어의 정점부터 추락과 재기까지, 그 시절의 위노나 라이더를 중심으로 그녀에 관한 20가지 사실들을 나열해 봤다.


학창 시절 짧은 머리와 왜소한 체구 때문에 자주 불량 학생들의 표적이 됐다. 약한 소년 취급을 당하던 그녀는 동급생에게 폭행을 당해 상처를 꿰맨 적도 있다. 그 뒤로는 안전을 위해 학교를 떠나 홈스쿨링을 했다.


라이더가 7살 때, 어머니는 오래된 영화관 하나를 운영했다. 어머니는 그녀가 영화를 보기 위해 학교를 결석하는 걸 허락했다.


라이더는 원래 금발이다. 그녀의 첫 메이저 영화 <루카스>에서 흑발로 염색한 것이 반응이 좋아 그 후로 계속 염색했다고 한다. 흑발이 아니었던 유일한 작품 <가위손>에서의 머리색이 그나마 라이더의 본래 머리색에 가까웠다.

<루카스>

<가위손>


문학의 열혈 독자다. F. 스콧 피츠 제럴드, 제인 오스틴, 엘더스 헉슬리, 오스카 와일드를 열심히 읽었다. 그중에서도 라이더가 가장 좋아한 책은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샐린저의 연인이었던 작가 조이스 메이나드가 샐린저의 편지를 경매에 내놓았을 때 입찰한 사람은 위노나 라이더였다.


서정적인 얼굴과 반항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가졌던 위노나 라이더. 90년대 패션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그녀의 자유분방한 스타일은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희소한 매력과 스타성으로 그녀는 자주 거장들의 뮤즈가 됐다. 컬트영화하면 빠지지 않는 <비틀쥬스>로 얼굴을 알린 이후 <가위손>, <프랑켄위니>까지, 팀 버튼 감독과는 총 세 편의 작품을 함께했다. 또 마틴 스코시즈의 <순수의 시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드라큐라>에 출연했다. 특히 <순수의 시대>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미셸 파이퍼와의 호연으로 라이더에게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유의미한 작품이었다.

<가위손> 위노나 라이더(왼쪽), 조니 뎁

<비틀쥬스>

<순수의 시대> 위노나 라이더 (왼쪽), 다니엘 데이 루이스


독립영화계 거장 짐 자무시는 그녀를 염두에 둔 캐릭터를 따로 만들기도 했다. 다섯 도시를 중심으로 한 택시 드라이버의 이야기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 <지상의 밤>. 위노나 라이더는 LA를 누비는 젊은 택시 운전사를 연기했다. 이 에피소드에서 그녀는 담배를 피우고 피우고 또 피운다. 걸크러시의 시조새 격인 배우 지나 롤랜즈와의 협업에도 흔들림 없이 당찬 라이더의 무심한 눈빛은 독보적이었다.

<지상의 밤> 지나 롤랜즈(왼쪽), 위노나 라이더


<대부> 시리즈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과의 인연이 남다르다. <대부 3>에서 매리 코르레오네 역에 내정돼 알 파치노와 부녀 연기를 펼칠 예정이었다. 어린 나이에 배우로서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던 라이더는 정신적으로 소모된 상태였다. 휴식을 취하라는 의사의 권고로 <대부 3>에서 하차했고, 그녀가 맡으려던 역할은 코폴라 감독의 딸 소피아 코폴라가 대신했다. 그런데 소피아 코폴라는 최악의 연기를 펼치고 말았다. 목각 인형처럼 뻣뻣한 연기로 뭇매를 맞았고, 영화를 망쳤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사람들은 위노나 라이더가 하차하지 않았더라면 <대부 3>의 평판은 지금보다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대부 3> 알 파치노(왼쪽), 소피아 코폴라


영화 <드라큐라>에 선 캐스팅된 위노나 라이더는 <대부 3>의 빚을 갚기 위해서였는지 감독 자리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를 추천했다. 코폴라 감독에 따르면 게리 올드만, 키아누 리브스, 안소니 홉킨스 등 캐스팅의 상당 부분이 라이더의 안목에 따른 것이라고. <드라큐라>가 1992년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21세에 불과했다. 영화는 제작 대비 다섯 배 넘는 수익을 거두며 흥행에 성공했다.

<드라큐라> 위노나 라이더(왼쪽), 게리 올드만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작은 아씨들>에 출연한 계기가 인상 깊다. 1993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했던 여아 실종사건으로 미국이 떠들썩했다. 페도필리아(소아성도착증)인 범인에게 납치당해 결국 주검으로 발견됐던 12세 소녀 폴리 클라스가 평소 <작은 아씨들> 소설을 좋아했고, 그녀를 추모하는 뜻에서 위노나 라이더는 <작은 아씨들>에 출연했다.

<작은 아씨들> 위노나 라이더(우측에서 세 번째)


<가위손>에서 투톱 주연을 했던 조니 뎁과의 교제는 익히 알려져 있다. 1989년부터 교제해 할리우드의 가장 잘 어울리는 비주얼 커플로 회자될 만큼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들은 4년간 약혼 관계였으나 결국은 헤어졌고, 조니 뎁의 팔뚝에 새겨진 ‘위노나 포에버’(Winona Forever) 문신도 ‘와이노 포에버’(Wino Forever)로 바뀌었다. '왜 영원하지 않은가'라는 의미가 된다.

조니 뎁(왼쪽), 위노나 라이더

조니 뎁의 오른쪽 팔뚝에 위노나 포에버 타투가 새겨져 있었다.


한국 관객들이 <가위손> 다음으로 위노나 라이더를 기억하는 영화는 <청춘 스케치>다. 소위 X세대라 불리던 90년대 미국 청년들의 개성적인 삶의 태도, 불안을 묘사한 영화로 호응을 받았다. 위노나 라이더는 물론 에단 호크의 ‘리즈’ 시절을 <청춘 스케치>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 이후 두 배우는 당대 청춘스타의 상징이 됐다.

<청춘 스케치> 에단 호크(왼쪽), 위노나 라이더

<청춘 스케치> (왼쪽부터) 스티브 잔, 위노나 라이더, 재닌 가로팔로, 에단 호크


<사브리나>의 리메이크영화 주연을 거절했다. 원작의 히로인 오드리 헵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고, 그 역할이 성차별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말했다. <사브리나>는 대저택의 운전기사 딸이었던 사브리나가 주인의 아들을 흠모하지만 눈길 한 번 받지 못하다가, 파리 유학을 다녀온 뒤로 주인집 형제들이 그녀에게 반한다는 줄거리였다. 한편, <사브리나>의 감독 빌리 와일더는 그녀가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사브리나> (왼쪽부터) 험프리 보가트, 오드리 헵번, 윌리엄 홀든


할리우드 스타들의 애장품을 몇 가지 소유하고 있다. 루이 암스트롱의 봉고 드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러스 탬블린의 재킷, <어느날 밤에 생긴 일> 클로데트 콜베르의 가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의 블라우스를 포함해 다양한 할리우드 의상 및 소품을 보유하고 있다. 유명 패션 블로거 타비 게빈슨은 오드리 헵번에게 빈티지 의상들을 물려 받은 위노나 라이더로부터 선물 받았던 헵번의 장갑을 공개하기도 했다.

패션 블로거 타비 게빈슨이 위노나 라이더로부터 받은 오드리 헵번 장갑을 공개했다.


12세에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이후로 물 공포증이 있다. 때문에 <에이리언 4>의 수중 촬영에서 무척 애를 먹었다.

<에이리언 4> 시고니 위버(왼쪽), 위노나 라이더(맨 오른쪽)


라이더는 대부분의 영화에서 담배와 친했다. <파이트 클럽>의 말라 싱어 역을 위해 오디션을 본 적도 있다. 라이더를 떨어뜨리고 최종 발탁된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는 <파이트 클럽>에서 연신 담배를 피우는 말라 싱어의 이미지로 관객들의 뇌리에 남았다.

<청춘 스케치> 위노나 라이더

<파이트 클럽> 헬레나 본햄 카터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출연한 <처음 만나는 자유>로 영화 기획에도 발을 들였다. 정신병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에 당시 무명이던 안젤리나 졸리의 캐스팅을 고집했던 건 위노나 라이더였다. 안젤리나 졸리의 반항기 넘치는 약물 중독자 연기는 단연 돋보였고 곧바로 스타덤에 오른다. 졸리는 그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처음 만나는 자유> 위노나 라이더

<처음 만나는 자유> 안젤리나 졸리


위노나 라이더의 평판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도벽 사건으로 커다란 변화 국면을 맞는다. 2001년 한 디자이너 샵에서 고가의 의류와 액세서리를 훔치다가 경비원에게 붙잡힌 위노나 라이더. 어이없게도 그녀는 “다음 배역을 위해 연습 중이었다”는 변명을 했다. 그녀에게서 발각된 다량의 진통제 때문에 마약 혐의도 추가됐다. 이 사건으로 대중들은 완전히 등을 돌렸고 그녀의 커리어는 곤두박질쳤다. 창백한 화장을 하고 와 법정에서 선처를 호소하던 그녀의 모습이 언론에서 크게 다뤄지고, 사람들은 더욱 비난했다. 결국 라이더는 재판에서 최고 6355달러 손해배상과 3700달러의 벌금, 3년간의 보호감찰, 480시간의 봉사 선고를 받았다.

절도 사건 당시 CCTV에 찍힌 위노나 라이더의 모습

재판장에서 선처를 호소하는 위노나 라이더


절도사건 이후로는 이렇다할 작품을 만나지 못하고 조연으로 조금씩 얼굴을 비추는 정도였다. 2010년에는 <블랙 스완>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는 그녀 필모그래피 중 아주 흥행한 영화로 꼽힌다. 뉴욕 발레단의 한물간 백조인 베스를 연기했다. 당시 그녀의 입지와 견주어봐도 절묘한 캐릭터였다.

<블랙 스완>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시즌 1>에 출연하며 성공적인 복귀를 했다. 아들을 찾아 헤매는 광적인 엄마 역할을 맡았고, 호평 받았다. 제작진들에 따르면 그녀는 <기묘한 이야기>를 찍기 전까지(혹은 지금도) 스트리밍이 무엇인지를 몰랐다고.

<기묘한 이야기 시즌 1>


씨네플레이 심미성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