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 이후 생겨난 '블록버스터'라는 개념의, 거대 자본이 투입된 영화들은 전세계 영화 산업을 견인하는 가장 화끈한 '돈줄'이죠. 그런데 모든 투자가 그렇듯, 많은 돈이 들어가다보니 흥행에 실패하면 그만큼 엄청난 돈을 잃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영화 역사를 통틀어 가장 크게 '망한' 영화는 무엇일까. 이미 답을 알고 계시다고요? (시대별 인플레이션 변화, 북미와 해외 흥행 성적 추이 등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대입해 따져본 리스트입니다. 기준에 따라 각자 생각하는 순위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기준 참고 - 위키피디아 박스오피스 폭탄 리스트
망해서 기네스북에 오른 영화
<컷스로트 아일랜드>
할리우드의 망한 영화 리스트는 이 영화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레니 할린 감독의 <컷스로트 아일랜드>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 합작 투자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터미네이터2>, <토탈리콜>, <람보> 시리즈 등을 제작하며 흥행에서도 성공하는 개성 강한 영화를 만들어왔던 '캐롤코 픽처스'가 제작을 맡았었죠.
그런데 이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여러 문제가 있었답니다. 각본도 다시 쓰고 캐스팅도 번복하면서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것이죠. 급기야 주요 스탭을 포함해 제작진 20여명이 단체 사표를 내는 등 파행을 겪는 동안, 제작사는 늘어나는 돈을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하고 맙니다.
당시 <클리프행어> 연출 이후 약 2년이나 투자해 영화를 만들었던 레니 할린 감독은 "<컷스로트 아일랜드>가 흥행에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영화가 완성되기 이전에 이미 제작사가 파산 신청을 했고, 배급사인 MGM이 배급과 마케팅에 전념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대긴 했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덕분에(?) 당시 역대 가장 많은 손실을 입은 영화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레니 할린 감독의 아내이자 티켓파워를 자랑하고 있던 주연배우 지나 데이비스도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최악의 손실 영화 리스트' (시대별 인플레이션을 적용한 리스트)
10위 <수퍼노바>(2000)
9위 <타운 앤 컨트리>(2001)
8위 <천국의 문>(1980)
7위 <스텔스>(2005)
6위 <알라모>(2004)
5위 <파이널 판타지>(2001)
4위 <플루토 내쉬>(2002)
3위 ????
2위 <타이탄 A.E.>(2000)
1위 <컷스로트 아일랜드>(1995)
이 리스트 중에 여러분들은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있나요? 왠지 국내 관객들에게는 제목이 낯선 영화들이 많은 듯 합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정식 개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영화들이 대부분이죠. 그러니까 이 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일테고요. 아무튼 이 리스트는 인플레이션을 적용한 리스트입니다. 2012년 이후 이 분야(?) 새로운 절대강자가 등장하면서 망한 영화 리스트에 지각 변동이 생깁니다. 바로 저 리스트 3위에 올라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2000녀대 이후 손실로는 최고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 영화는 바로?
순위를 뒤바꾼 영화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
2012년까지만 해도 줄곧 <컷스로트 아일랜드>가 역사상 가장 손실을 많이 입은 영화 리스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가 만들어진 이후 리스트에 변동이 생깁니다. 바로, 이 영화가 1위 자리를 탈환한 것이죠. (정말 영광이네요.) 당시 디즈니사는 영화 제작비로만 약 2억 6천만 달러를 들이고 마케팅 비용에만 1억 달러를 쏟아부었습니다.
거의 4억 달러에 육박하는 돈을 썼던 것이죠. 하지만 흥행은 실패했고 이 영화로 인한 영화사의 총 손실액은 2억 달러에 육박한다고 하니 망해도 이렇게 망할 수 있는 건가 싶습니다.
새롭게 바뀐 역대
최악의 손실 영화 리스트
자, 그렇다면 이번에는 시대별 인플레를 고려하지 않고 최근 2000년대 이후 어떤 영화들이 가장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주었는지 살펴볼까요? 앞서 살펴본 북미 박스오피스 기준 리스트와 비교해서 봐도 좋을 것 같네요. 대체적으로 북미에서 망한 영화가 세계에서도 망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요.
10위 <팬>

- 팬
-
감독 조 라이트
출연 휴 잭맨, 가렛 헤드룬드, 루니 마라, 리바이 밀러, 아만다 사이프리드
개봉 2015 미국
조 라이트 감독의 <팬>은 우리가 잘 아는 '피터맨' 이야기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영화였습니다.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전세계 흥행 수익은 1억 2840만 달러지만 최종적으로는 9300만 달러 이상의 손해를 봤다는군요.
9위 <알라모>

- 알라모
-
감독 존 리 행콕
출연 데니스 퀘이드, 빌리 밥 손튼
개봉 2004 미국
제목도 생소한 이 영화 <알라모>는 1억 7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서 전세계 흥행 수익을 고작 2580만 달러 밖에 벌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타격이네요. 9400만 달러의 손해를 입고 영광스럽게 이 리스트 10위 안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군요.
8위 <파이널 판타지>

- 파이널 판타지
-
감독 사카구치 히로노부, 사카키바라 모토
출연 밍나 웬, 알렉 볼드윈, 빙 라메스, 스티브 부세미, 페리 길핀, 도날드 서덜랜드, 제임스 우즈, 키스 데이빗, 진 시몬즈, 맷 매켄지
개봉 2001 미국, 일본
한때 게임 팬들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었던 '파이널 판타지'의 실사판. 1억 37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만들었는데 전세계에서 8510만 달러의 수익 밖에 못 거뒀습니다.
7위 <론 레인저>

- 론 레인저
-
감독 고어 버빈스키
출연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아미 해머
개봉 2013 미국
고어 버빈스키 감독은 이제 영원히 <론 레인저>의 연출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군요. 조니 뎁의 메이크업 연기가 돋보였음에도 이 영화를 구해내지는 못했습니다. 거의 2억 5000만 달러의 무시무시한 제작비를 들이고도 영화사에 9500만 달러의 손해를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6위 <스텔스>

- 스텔스
-
감독 롭 코헨
출연 조쉬 루카스, 제시카 비엘, 제이미 폭스, 샘 쉐퍼드, 조 모튼, 에본 모스-바크라크, 리차드 록스버그
개봉 2005 미국
1억 35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였는데 7690만 달러의 수익 밖에 거두지 못한 영화입니다. 그래도 6위에 오른 게 대단하군요. 무려 9600만 달러의 손실을 안겨준 영화로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5위 <플루토 내쉬>

- 플루토 내쉬
-
감독 론 언더우드
출연 에디 머피
개봉 2002 미국
불쌍한 에디 머피. 이제는 극장가에서 거의 만날 수 없는 레전드 코미디 배우 에디 머피 주연의 <플루토 내쉬>는 1억 달러의 제작비로 전세계에서 7100만 달러의 수익 밖에 거두지 못합니다. 마케팅 비용 등등 추가로 들어간 돈이 훨씬 많을 테니까 결국 영화사에는 9600만 달러의 손해를 끼쳤다는군요.
4위 <47로닌>

- 47 로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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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칼 린쉬
출연 키아누 리브스, 사나다 히로유키, 시바사키 코우
개봉 2013 미국
키아누 리브스의 <47로닌>은 왠지 톰 크루즈의 <라스트 사무라이>와 구도가 비슷해보입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는 개봉도 못하고 VOD 시장을 떠돌고 있죠. 사나다 히로유키, 아사노 타다노부, 시바사키 코우 등 국내에서도 이름이 제법 알려진 일본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지만 만화보다 더 많과같은 이야기는 흥행 참패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1억 7500만 달러, 많게는 2억 달러가 더 넘어갔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갔지만 결국 9800만 달러의 손해를 끼쳐서 이 리스트 4위에 올랐습니다.
3위 <화성은 엄마가 필요해>

- 화성은 엄마가 필요해
-
감독 사이먼 웰스
출연 세스 그린, 댄 포글러
개봉 2011 미국
디즈니와 화성의 악연이 시작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국내에는 전혀 알려진 바 없는 이 영화 <화성은 엄마를 필요해>는 1억 5천만 달러라는 무시무시한 제작비를 들이고도 전세계에서 3900만 달러도 안 되는 최악의 흥행 수익을 거두고 맙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역대 최악의 손실 영화 리스트 3위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메달 리스트에 두 편을 올린 디즈니...) 디즈니와 화성과의 악연은 이 두 편의 영화만으로도 영화 역사에 기록될 역대급인 것이지요.
2위 <타이탄 A.E.>

- 타이탄 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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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돈 블루스, 게리 골드먼, 아트 비텔로
출연 맷 데이먼, 드류 베리모어, 빌 풀만, 네이단 레인, 톤 로크, 짐 브리어
개봉 2000 미국
맷 데이먼과 드류 베리모어의 악몽과도 같은 이 영화는 블록버스터 영화치고는 9000만 달러라는 비교적 평범한(?) 제작비를 들였지만 전세계 흥행 수익이 3680만 달러로 비교적 저렴한(?) 수익을 거두면서 최종적으로는 1억 달러의 손해를 입혔다고 전해집니다.
1위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

-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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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앤드류 스탠튼
출연 테일러 키취, 린 콜린스, 윌렘 대포, 사만다 모튼
개봉 2012 미국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은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작가가 쓴 '존 카터' 시리즈 가운데 1부 '화성의 프린세스'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디즈니와 화성의 악연에 정점을 찍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마 디즈니 간부들은 나중에 화성 여행도 안가지 않을까요? 아무튼 이 영화는 2억 637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인 다음 2억 달러의 손실을 남기고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존 카터> 속편이 과연 만들어질 수 있을지에 관한 소문이 솔솔 나오고 있군요. 이미 제작 권한은 원작자에게 반환됐지만 다른 스튜디오에서 나서면 만들어질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원작 소설은 매력적이니까요.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시리즈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들이 이 소설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영화들입니다.
가장 많은 '싫어요'를 받은 영화가 있다?
보이시나요? <고스트버스터즈> 예고편의 싫어요 개수가? 바로 백만개를 넘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유튜브 역대 가장 많은 '싫어요'를 받은 영화로 등극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은 이 영화를 싫어했을까요?
1억 44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일단 북미에서는 1억 26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여 비교적 선방을 했지만 해외 성적이 좋지 않았습니다. 아마 중국에서 개봉 못한 이유가 크지 않을까 싶은데요. 현재까지 전세계 흥행 수익은 2억 1900만 달러 정도입니다. 리부트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가 미지수네요.
큰 돈 써서 큰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드는 시도는 우리를 언제나 즐겁게 해주지만 그 시도가 이렇게 실패로 돌아갈 경우에는 만드는 이들의 마음에 큰 짐이 될 겁니다. 아무쪼록 재미있는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망한 영화들 짚어주면서 너무 훈훈하게 끝나는 것 같군요. 우리는 영화를 사랑하니까요~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