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직업을 선택하는 이유는 있다. 어떤 인물로부터의 영향이거나, 상황에 따른 결정이거나. 연기라는 예술을 행하는 배우들에게 우리는 특별한 영감과 열정의 계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그들이 연기를 결심한 이유는 별반 다르지 않다. 상처를 극복하고 싶었던 배우들부터 얼떨결에 연기를 하게 된 배우들까지. 보통의 삶에서 시작된 이들의 출발점을 짚어 봤다.


호아킨 피닉스

Joaquin Phoenix

보통의 배우 지망생들은 외로운 싸움을 할 것이다. 하지만 호아킨 피닉스는 조금 달랐다. 온 가족과 함께 시작했다. 그의 어머니는 NBC 방송국에 비서로 일했고 상사를 통해 피닉스 남매들은 배우 에이전시에 소개됐다. “부모님은 우리가 갈라지는 걸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우린 다 함께 쇼 비즈니스의 세계로 진입했다.” 여덟 살에 처음 방송 출연을 한 호아킨 피닉스와 형제들은 광고, TV 쇼에 등장해 왔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호아킨 피닉스는 시상식에 나오지 않는 등 스포트라이트를 철저히 피하던 반(反)연예인에 속했다. 그는 스스로 “연기와 사랑에 빠진 적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엔 더욱 진솔하고 꾸밈없는 아티스트의 면모가 보인다. “단지 내가 매혹된 것은 몸으로 느낀 감각이다. 그 강력한 힘을 향해 쭉 쫓아온 느낌이다.”


에밀리 블런트

Emily Blunt

에밀리 블런트는 어릴 적 심한 말더듬 때문에 고생했다. "말은 나를 구속했다. 자음 모음을 가지고 고군분투하던 나에게 말하는 것은 지옥처럼 어두웠다. 나는 무식하지 않았고 할 말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냥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출구를 찾았다. 학창시절 만난 한 교사는 블런트를 학교 연극에 참여하도록 격려했고, 그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면의 망설임을 차츰차츰 지워갔다. “바보 같은 목소리였긴 해도 당시엔 유창하게 연극에 임했다.” 비록 여전히 주기적으로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는다 말하는 그녀지만, 연기를 통해 다른 사람이 돼 보면서 그녀는 말더듬이의 자신을 잊을 수 있었다.


마이클 섀넌

Michael Shannon

마이클 섀넌은 인간을 이해하고 싶었다. 상처 입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마이클 섀넌. 그는 인간 내면의 혼란과 고통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감각을 지닌 배우다. 그가 이런 골치 아픈 역할만 골라왔던 이유는 따로 있을까?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섀넌은 말했다. “아프거나 미쳐있는, 다른 사람이 돼 보고 싶었다.” 섀넌에게 있어 무언가에 동요하고 흔들리는 캐릭터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마이클 섀넌은 이렇게 정리했다. "처음 연기를 하기 된 이유 중 하나는 삶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굴러 가는지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애쓰는지 궁금했다. 그걸 따라 해 본다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윌 스미스

Will Smith

윌 스미스는 바람을 피운 전 여자친구 때문에 연기를 하게 됐다. 젊은 시절에 겪는 트라우마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될 때가 있다. 스미스는 오늘날 자신을 슈퍼스타로 만든 트라우마를 기억한다. “열다섯 살 때 만나던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웠다. 절대 나를 속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 여자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은 날,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하물며 그 전환점은 향후 그가 자신을 캐릭터와 연관 지을 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윌 스미스는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좀 더 발견해 내려고 애썼다. 트라우마를 발판 삼아 도약하는 캐릭터의 심리 같은 것들 말이다.


크리스찬 베일

Christian Bale

크리스찬 베일은 그저 '돈' 때문에 이 일을 해야 했다. 베일은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나는 가족들에게 돈이 필요해서 연기를 시작했다. 당시 우리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다른 선택권이랄 게 딱히 없었다." 겨우 11세의 나이에 베일은 가족의 재정적인 책임을 떠안았다. 하물며 어린 그에게 벌이의 압박은 열정과 추진력에 상처가 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그건 감옥이었다”고까지 말하는 크리스찬 베일에게 연기는 운명이 아니라 애증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선택지가 없었던 과거를 통과한 그가 지금은 선택할 수 있는 배우라는 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키이라 나이틀리

Keira Knightley

키이라 나이틀리는 어릴 적부터 난독증과 싸워 왔다.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본인이 배우가 되고 싶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세 살에 에이전시를 원했고, 여섯 살에 실제로 얻었다. 하지만 그녀가 걱정하던 부모님의 마음을 돌린 결정적 계기는 난독증 때문에 얻은 결함들을 연기로 이겨내겠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대사를 읽지 않고 연기를 할 순 없다. 그녀는 읽는 행위를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로 만들었다. 게다가 우상으로 느끼던 배우 엠마 톰슨을 떠올리며 그녀처럼 해내려 애썼다. 강력한 동기 부여였다.


톰 히들스턴

Tom Hiddleston

톰 히들스턴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이튼 칼리지와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는 엘리트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십 대 때 개인적인 문제를 겪지 않은 건 아니다. 기숙학교에 있는 동안 부모님은 이혼했고, 히들스턴은 감정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정말 많이 속상했고 슬펐다. 나는 연약했으며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그러나 연기는 당시 히들스턴이 안전하게 감정을 발산할 수 있는 배출구였다. 톰 히들스턴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화음을 연주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나는 작품을 통해 여러 음정을 실험할 수 있다. 이건 굉장한 행운이다.”


팀 로스

Tim Roth

농담이 열정으로 바뀌기까지. 팀 로스의 연기 경력엔 어떤 원대한 유래가 있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을 소개하면서 그는 학창 시절의 첫 번째 뮤지컬 <드라큘라 스펙타큘라>를 떠올렸다. 그는 친구와 함께 '오디션을 망치는 거 재미있지 않을까'하는 식의 장난을 계획했다. 로스는 오디션을 엉망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결과는? 역할에 캐스팅됐다. 그러나 그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으며 무대에 올랐다. 막상 학급의 불량 학생들까지 다 같이 지켜보는 무대 위에 서자 공포가 엄습해 왔다. 무대에서 오줌을 싸고 말았고, 그 와중에도 나중에 불량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할까 겁이 났다. 하지만 지금의 팀 로스는 그날을 '연기 벌레(Acting Bug)에 물린 날'로 기억하고 있다.


엠마 스톤

Emma Stone

엠마 스톤은 어릴 적에 엄청난 불안과 공황 발작을 겪었다고 밝혔다. 불안감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치료와 글쓰기 등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연기야말로 그녀의 파괴적인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됐다. 스톤은 청소년 극장에서 즉흥 연주와 코미디를 하며 연기를 시작했다. “즉흥적으로 출석하며 즉흥적으로 연주했다. 그건 불안과 정반대의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연기와 사랑에 빠졌고, 더 이상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았다.”


채드윅 보스만

Chadwick Boseman

채드윅 보스만은 하워드 대학교 예술학사 출신이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전공했고, 연극 대본을 쓰며 연출을 꿈꾸는 학도였다. 사실 그는 배우가 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그는 '배우들과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기 위해 연기를 시작했다. 이젠 그도 누구나 인정하는 주연 배우의 자리에 올라섰으니 배우에 대한 자의식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그는 스스로를 배우로 생각하지 않았다.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로서 단지 영화 전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고 그렇게 시작해 배우가 됐다.


씨네플레이 심미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