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om’은 <Actor's room> 즉, <배우의 방>을 뜻합니다. (캐릭터에 빠져 사는) 배우가 나로 돌아가는 시간을 묻고자 하는 게 이 인터뷰 기획의 핵심입니다. 배우의 얼굴 대신 그의 공간이 담깁니다. 작품 이야기보다는 배우의 생각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누가 그랬더라. 충무로에서 고난도 연기력을 요하는 20-30대 여성 캐릭터의 상당수는 천우희에게 가는 것 같다고. 그녀의 연기를 보며 생각하곤 했다. 감독들은 천우희를 만나면 그녀를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이고 싶은 자극을 받는 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또 상상했다. 그렇다면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저 에너지는 고갈돼서 바닥을 드러내야 할 텐데, 도대체 어떤 신비의 묘약을 숨겨뒀길래 매번 나타나느냐고. 이번 만남은 그에 대한 해답을 엿보는 시간이었음을 대화를 하면서 알아챘다. 그건 그녀가 초대한 공간 속에 있었으므로. 살짝 예고하자면 그건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온기이고, 어떤 정서였다.


배우들의 사인 흔적을 볼 수 있는 1층

PM 02:00. 시야를 흐리게 하는 미세먼지가 오랜만에 물러난 1월의 어느 날, 연희동에 위치한 천우희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얼핏 보면 2층 가정집인데, 들어서니 1층과 지하는 정갈한 한정식 전문점으로 개조돼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 어머니의 30년 넘는 시간의 정성이 깃든 곳이고, 그녀 오빠의 작업터이자, 그녀가 오랜 시간 머물렀던 곳이며, 조카들이 뛰어노는 가족들의 공간이다. 화장기를 거의 들이지 않고 나타난 천우희의 얼굴에서 봄을 부르는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천우희에겐 들뜨지 않는 깊은 속내와 아이 같은 천진함이 공존하는데, 그 둘이 서로를 보완하며 상대를 편하게 해 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계 대표 ‘집돌이’라면서요?

=하하하. 그래서 인터뷰 콘셉트가 공간이라고 해서 ‘어떡하지?’ 했어요. 집은 너무 단출해서 보여드릴 게 없거든요. 자주 가던 합정동 카페들을 생각해 봤는데, 제가 ‘폐점 여왕’이라고, 가는 곳마다 다 문을 닫았지 뭐예요. (일동 웃음) 제가 합정에서 8년을 살았었거든요.

-실례지만, 지금은 어디에 사세요?

=지금은 금호동이요. 햇수로 독립 5년 차 됐어요. 고민 끝에 오빠 가게를 아지트로 꼽은 건, 그래도 제가 이 공간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서예요. 선배님들도 자주 오세요. 얼마 전에도 이곳에 모여서 밥도 먹고 술도 함께 즐겼죠.

지하 벽에 걸린 꽃액자들

-이 공간은 어머니가 하시다가 지금은 오빠가 운영하고 있다고요.

=가게가 처음엔 합정동에 있었는데 2-3년 전에 이곳으로 옮겨왔어요. 옮기면서 부모님은 힘들다고 손을 떼시고, 오빠가 맡아서 하고 있죠.

-가족들을 도와 가게 일도 많이 했나요?

=그럼요. ‘전달’이라고 해서 제가 ‘전 부치기의 달인’이랍니다. 이전에는 서빙도 많이 했는데 <한공주> 이후로 주로 주방에서 일해요. “<한공주>에 나오시는 분 맞죠?” 하고 알아봐 주시는 손님들이 생겼는데, 감사하면서도 당황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저는 주방에서 전을 부치겠다!”가 된 거죠.

-아르바이트비는 받으면서 일했어요?

=아니요~! 못 받았어요. 그러니까 거의 노동이었죠, 노동. (웃음)

-고향 이천에 대한 애착이 크죠?

=스무 살 때까지 이천에서 자연과 함께 자랐어요. 이천의 정서라고 해야 하나? 자연스럽게 내 안에 스민 그 정서가 너무 좋아요. 마당에는 강아지부터 오리, 닭들이 뛰어다니곤 했죠. 이천 친구들과는 지금도 계속 만나요. 드라마 <SKY캐슬> 보면서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순수하게 커서 정말 다행이야”라고. (웃음)

-동식물을 사랑하나 봐요.

=동물, 좋아해요. 6살 된 애완견 망고가 있죠. 식물도 좋아하긴 하는데, 제가 ‘식물 킬러’예요. 제 손에만 오면 다 시들어버리는 슬픈 현상이…

이천의 정서를 머금은 따뜻한 밥상

대화가 오가는 동안 상이 차려졌다.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하자는 천우희의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고향 이천에서 직접 밭을 일구는 그의 어머니가 보내온 재료로 만들어진 반찬에서 몸에 좋은 자연의 냄새, 집밥의 향기가 났다. 그 옆에서 ‘이천 쌀’로 지어진 밥알들이 고운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인터뷰 중엔 대화에 집중하느라 식욕이 뚝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라고 여겨 온 나의 믿음은 그날부로 과거형이 됐다. 젓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생각했다. 아, 내가 ‘집밥’이 그리웠었구나.

-(밥 한가득 물고) ‘이천 쌀’의 장점 좀 소개해 주시죠.

=일단! 윤기가 다르고요, 아주 찰지답니다. (웃음) 토양과 물이 좋아서 그런지 확실히 쌀이 좋아요. 이천 사람들이 은근 입맛이 까다로운데, 기본 밥 자체가 맛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혹시 쌀 종류도 구분해 내는 수준인가요?

=제가 그 정도까지의 ‘만렙(최대 레벨)’은 아니랍니다. 하하하.

-영화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주시는데, 그 모든 게 ‘밥심’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군요.

=저, 체력 저질이에요. 촬영은 정신력으로 하죠. 평소 기력이 없어서 연기할 때만 집중해서 빡 쓰는 스타일이에요. 잔병치레가 잦아서 응급실도 자주 가는데 현장에서만큼은 몸이 아픈지, 컨디션이 어떤지, 그런 생각 자체가 안 나요.

-완전히 몰입하는군요.

=재미있어요, 현장은. 스태프들이나 감독님, 함께 연기하는 분들의 기운을 받으니까요. 현장에선 약간 취한 것처럼 지내는 것 같아요. 아픈지도 모르겠고요.

-영화마다 현장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그 영향도 받나요?

=영향은 받는데 그 흐름을 타지는 않아요. 자칫 현장 분위기에 말리면 연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배우 할 ‘팔자’인가 봐요. (웃음)

=얼마 전에 <버티고> 쫑파티를 했는데 조감독님이 “우희 씨! 우희 씨는 연기하려고 태어난 게 맞아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여쭸더니 “연기 안 하면 아마 몸이 아플 거예요!”라고. (일동 웃음) 내가 연기를 안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요. 다른 걸 안 해 봐서 그런 건지, 제가 평범해서 다른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세요? 많은 인터뷰에서 “난 평범하다”라고 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거.

=저, 진짜 평범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평범하다’의 기준은 뭔가요.

=글쎄요. 어떤 아티스트를 보면 독창적인 느낌이 있다거나, 성격 자체가 특별하다거나 하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고, 성격 자체도 무난해요. 그렇다고 연기력이 타고 난 것도 아니고.

그녀는 일관되게 자신이 평범해서 재미없다고 말했지만, 미안하게도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뭔가 특별해 보여야 한다’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유형의 아티스트보다, ‘꾸미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그녀가 오히려 더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다. 천우희는 이후에도 여러 번 자신이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행간의 의미들을 복기하며 뒤늦게 깨달은 점. 그건 ‘버릇’이라기보다 ‘심성’에 가깝다는 확신이었다.

-누군가에겐 또 그럴 수 있죠. ‘천우희는 독창적인 연기자야’라고.

=하하하. 저는 노력형인 것 같아요. 노력을 하니까 이만큼이라도 살아가는 게 아닐지. 연기 잘하는 분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싶고요.

-연기는 타고나야 하는 걸까요?

=그 이야기, 연기하는 친구들이나 음악하는 친구들과 종종 해요. 저희가 합의한 결론은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재능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연기는 다른 예체능에 비해서 노력으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이 크죠. 기술이나 기교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지금 연기파 배우로 불리는 분들 중에서도, 데뷔 때 연기로 지탄 받은 경우가 많죠.

=그래요? 최근 TV에서 우연히 1994년 방영됐던 <서울의 달>을 봤어요. 보면서 최민식 한석규 선배님 연기에 너무 놀랐어요. ‘와~ 연기 잘하시는 분들은 저 때도 잘하셨구나.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 이랬다니까요.

-절박한 심정은 직접 겪어봐야 연기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경험을 많이 해봐야 연기에 도움이 된다는 말. 그 말에 저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아요. 상상으로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믿거든요. 그리고 제가 이제껏 연기한 캐릭터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워낙 많아서…(웃음)

-기구한 캐릭터들을 많이 맡았죠.

=네. 경험을 대입시켜 볼만한 캐릭터가 많지 않았어요. 많은 경우, 저의 상상력을 믿고 나아갈 수 밖에 없었죠. 그러면서 상상력의 힘을 더 믿게 된 측면이 있어요.

주제별-시간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천우희의 과거 흔적들

이날 천우희는 핸드폰에 자신의 기록을 담은 물건들을 담아왔다. 연기 노트와 일기장, 그리고 주제별로 과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파일 첩들이었다. 그 양이 상당해 보일 뿐 아니라, 질서정연해서 나도 모르게 이렇게 외쳤다. “기록 수집가 면모가 있으시군요!”

=계획 세우다가 시간 다 보내는 사람 있죠? 그게 저예요. (웃음)

-전시해서 ‘천우희 특별전’ 열어도 되겠단 생각도 드네요.

=하하하. 사진도 연도별-작품별로 정리해둬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메모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일기도 습관이 됐죠. 가계부도 따로 쓰고요. 기록에 대한 어떤 편집증이 저에게 있나 봐요.

-요즘은 기록도 온라인에 하는 시대인데 아날로그적이네요.

=아! 클라우드에도 따로 기록을 남겨두죠.

-정리된 걸 보면 뿌듯한가요.

=(함박웃음) 뿌듯합니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도 만들었나요?

=올해부터는 안 만들기로 했어요. 버킷리스트 10개 중에 절반도 못 지키더라고요. 계획만 세우다 시간 보내지 말고, 일단 뭐든지 해보자 쪽으로 마음을 바꿨어요. 제가 살아온 방식을 조금 바꿔보려고 해요.

-일기장에는 보통 뭘 남기나요. 자기반성? 내일의 다짐?

=그날 느낀 감정의 흔적들, 고민들… 불현듯 생각나는 건 바로 메모해요. 왜, 그런 사람 있죠? 핸드폰 화면에 ‘1’이 떠 있는 걸 못 보는 사람. 바로 확인해서 없애야 하는. 제가 그래요. 메모도 밀려 있는 게 싫어서 컴퓨터에 옮겨놔요. 제가 딱히 취향이 있는 편이 아니에요. 물욕도 없고요. 그런데 이상하게 사진과 감정들은 모으게 되더라고요.

-기록들은 다시 찾아보나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봐요. 과거를 복기하면 작품을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되거든요.

-말을 수정해야겠네요. 단순한 ‘기록 수집가’가 아니라, 당신에겐 이 모든 게 연기를 위한 투자이기도 하네요.

=맞아요. 마음을 다잡게 해 주는 기록들인 거죠. 이건 ‘5년 일기장’인데 기자님에게도 추천해 드릴게요. 5년 동안의 같은 하루가 한 장에 있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작년이나 재작년에 어떻게 살았는가를 파악할 수 있죠. 과거를 보면 많은 자극을 받아요. ‘작년 오늘엔 열심히 살았네?’ 싶으면 스스로 칭찬하고, ‘이때는 조금 게을렀네?’ 하면 반성을 하게 되죠. 지금 4칸까지 채웠어요. 앞장엔 소망과 목표를 적는데, 신기하게도 썼던 게 모두 이뤄졌어요.

-오, 마법 노트군요.

=저에겐 그래요. 그래서 주변에 “여러분, 한번 써 보세요. 글의 힘이 이렇습니다!” 홍보하고 다니는데, 다들 “좋다, 좋다” 하면서 실천은 안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어떤 소망과 목표들을 썼었나요.

=여우주연상 수상, 칸국제영화제 초청 같은 것들이요.

천우희의 '연기노트'와 '5년 일기장'

“유명하지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다니…” 2014년 <한공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은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이다. 아마도 이건 청룡 역사에서 가장 겸손한 여우주연상 수상소감이지 아니었을까. 선배 황정민의 그 유명한 ‘밥상’ 수상 소감마저도 위협하는. 많은 이들이 <한공주>로 ‘배우 천우희’를 발견했고, 스크린 밖 그녀의 눈물을 통해 ‘사람 천우희’를 유추했다.

2년 후 천우희는 칸국제영화제 무대를 밟았다. 나홍진 감독과 함께 한 <곡성>을 통해서였다. <곡성>에서 그녀는 산 자인지/죽은 자인지, 악인인지/선인인지, 거짓을 말하는 것인지/진실을 내뱉는 것인지, 혹은 그 무엇도 아닌지,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스크린에 팽팽한 긴장과 서늘함을 선사했다. ‘무명’이란 이름마저도 미스터리했던. 출연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하지만 이 배우는 ‘중요한 것은 분량이 아니라 존재감’이라는, 기본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사실을 증명해 보였다.

-굵직굵직한 목표를 달성했네요. 마지막으로 쓴 목표는 뭐였나요.

=칸영화제 갔으니까 이제 할리우드 가면 좋겠다 했는데, 제가 영어 공부를 적극적으로 안 하고 있어서…(웃음) 더 큰 곳에 가서 여러 경험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미국은 캐릭터도 다양하고, 시장 규모도 크니까요. 현장 진행 시스템도 다를 텐데 배우와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떻게 디렉션을 주고받는지, 프리단계는 어떤지 많은 것들이 궁금해요.

-최근 할리우드 영화 중에 연기해 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었다면요?

=뭐가 있을까. 저, 히어로 물도 좋아요.

-디씨? 마블?

=이왕이면, 마블! 순간이동 같은 능력을 지닌 히어로면 어떨까 싶네요.

-올해엔 일단 뭐든지 해 보자, 라고 하셨는데 유튜브에 개설해 운영 중인 <천우희의 희희낙낙>(이하 <희희낙낙>)은 그런 계획의 일환인가요? 대중과 더 활발하게 소통하기 위함이란 생각도 들고요.

=<희희낙낙>은 사연이 조금 있어요. 제가 <우상>을 7개월간 찍으면서 많이 지쳤었어요. 이수진 감독님과 두 번째로 함께 하는 작품이라 감사한 마음이 컸고,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는 욕심도 있었나 봐요. 그런데 상황적으로 안 따라준 부분이 있었어요. 제 능력만큼 연기해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애도 많이 탔고요. 게다가 ‘연기 신’으로 불리는 두 분 선배님과 함께했잖아요?

-한석규, 설경구 씨요.

=네. 경력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두 분을 보면서 ‘나는 별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분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이 힘든 상황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 자체에 스스로 실망한 거죠. 저는 아무리 힘든 상황 앞에서도 이타심과 평정심으로 버티는 사람이에요. 버거울 때마다 저 스스로 잘 견딘다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그땐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바닥을 친 거죠. 심할 정도로요. 저의 그런 모습이 처음이라 주변에서 많이 당황스러워 했는데, 사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당신이었겠네요.

=네. 시기적으로 그럴 타이밍이었던 건지, 작품 때문인 건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겹쳤던 것 같아요. 그때 또 (김)주혁 선배 일을 겪으면서…그러면서 연기를 하겠다고 내 모든 걸 쏟고 있는 게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했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기였군요.

=너무 지치다 보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상>을 7개월 동안 촬영했으니, 7개월 동안 쉬어야겠어요.” 했어요. 그러면서 정말 아무도 없는 곳으로 혼자 숨어든 거죠. 그때 회사에서 “유튜브를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는데,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배우라는 직업을 너무 무거운 짐처럼 생각 하나 보다’라는 생각. 서른이 되면서 마음이 조급해진 것도 있었어요. 30대가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을 것 같다는 기대는 있는데, 마음만 조급했지 행동으로 뭔가를 옮기고 있지 않으니 불안이 저를 괴롭혔던 거죠. 제게 주어진 귀한 시간이 카운터 되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일단 해 보자. 누군가는 그걸 도대체 왜 해라고 할 수 있지만 해보자’가 된 거죠.

-해보니까 어때요?

=주변 지인들이 난리에요. 저는 배우는 작품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주의이고 지금도 그렇긴 한데, 가족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저의 진짜 모습을 편하게 보여주니까 좋아하세요.

-사실 당신은 기질적으로 ‘외로움이 있는 사람’ 같다는 인상이 있었어요.

=그런 이미지가 있죠. ‘다크’하다는.

좌식 생활을 선호하는 천우희

-그런 편견을 <희희낙낙> 보면서 많이 깨고 있어요. ‘어? 천우희에게 저런 구석이 있네? 애교도 되게 많네?’ 하면서.

=엇! 저에게 애교가 있어요?

-모르셨어요? 일상 속 말투에 애교가 묻어나오는 거. (웃음)

=하하하. 잘 모르겠어요. 처음 영상 보고 어색하고 민망하기만 했어요. 작품이나 인터뷰 때 외에는 카메라에 담긴 제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기본적인 습관이라든지 제스처 같은 것들 말이죠. “이거 정말 나가도 돼요?” 물어볼 정도였죠. 이젠 조금 편해졌어요. 3-4주에 하나씩 찍는데 이젠 그냥 놀러 가는 기분이 들어요.

-<우상>으로 이수진 감독님과 재회하면서 <한공주> 생각도 많이 났을 것 같습니다. <한공주>는 당신에게 어떻게 남아있나요?

=<한공주>는 촬영부터 개봉, 그리고 수상 사이의 시간 격차가 꽤 컸던 작품이에요. 상을 받기 전엔 내 존재는 희미했어요. 근데 상을 받고 나니까 사람들이 저를 다르게 바라봐 주기 시작했어요. 그런 반응이 저에겐 조금 씁쓸하게 다가왔어요. <한공주>에 대한 제 마음은 늘 한결같았고, 이미 의미가 큰 작품이었거든요. 시간이 많이 흘러서 덤덤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그랬던 것 같아요. 상이라는 게 중요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결과에 따라 바라보는 게 달라지는 현상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죠.

-그런데…그게 인생이죠.

=맞아요. 그땐 사회생활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더 그랬던 거죠.

-지금은요?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지~!’ 그러죠. (일동 웃음) 그런데 저 또한 그래요. 잘 모르는 영화라도 어디서 상을 받았다거나 평론가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면 ‘괜찮은가보다’ 하게 되는 게 있어요. 뭐랄까. 저에 대한 기호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지금 시대가 또 그런 것도 같고요. 자신만의 기호가 있을 것 같지만, 주변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런 것들에 휩쓸리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그러다 보면 한 번씩 ‘현타’가 와요. ‘이걸 내가 정말 좋아서 좋다고 하는 건가?’ 하는 순간이요.

-주변 분위기에 휩쓸려 변할까 봐 두렵나요.

=적어도 제가 지키고자 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저도 모르게 외면하고 될까 봐 조심하게 되는 게 있어요.

그녀는 ‘양치기 소년’이 되지 않기로 다짐한 소녀처럼 말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우상>이 궁금해져요.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만큼 남은 것도 많을 것 같아서.

=맞아요. 촬영 끝나고 어느 날 새벽에 밑도 끝도 없이 이수진 감독님에게 문자를 보냈어요. “감독님, 감독님이 제일 힘든데 제일 편해요”라고. (웃음) 그랬더니 감독님이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그런데 내겐 참 힘이 나는 말”이라고 답장을 주시더라고요. 촬영 때는 저 자신의 한계 때문에 힘들었지만, 그만큼 또 한 뼘 컸다고 생각해요. 감독님과 선배님들이 저에게 더 소중해진 부분도 있고요. <우상>은 저도 지금 너무 궁금해요.

도란도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지하 공간

삶은 때론 불공평하다. 그러나 인생은 스스로를 구하려는 자를 모른 척하지만은 않는다. 인터뷰 얼마 후 <우상>의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청 소식이 들려왔다. 베를린 한가운데에서 <우상>과 마주할 천우희를 상상했다. 그건 그녀가 자신의 과거와 만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번 성장하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또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정서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한 적이 있는지요.

=상 받은 후에 생각했어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너무 많은 이야기와 너무 많은 기대가 쏟아졌어요. 그러다 보니 안 그래야지 하면서도 귀가 얇아진 게 있었죠. 그렇게 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것 봐, 내 뜻대로 해야 했어.’ 후회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또한 제 선택이었던 거잖아요. 제가 책임져야 하는. 저는 아직 헤매는 중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없는 것과 사람들이 저에게 바라는 것들 사이에서. 달라진 지점이 있다면, 이전보다는 조금 현명해졌다는 거?

-가령 어떤 거죠?

=저는 단역부터 차근차근 밟아왔어요. 아까 말씀드렸듯 원하는 일들이 현실이 되는 순간들을 하나씩 목격해왔고요. 그러면서 ‘노력의 힘’이라는 걸 너무 믿었던 것 같아요. 흔히 말하는 스타성이라는 것도 내가 노력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그건 완전히 다른 문제더라고요. 최선을 다해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노력과 결과가 늘 비례하지는 않죠.

=네. 그에 대한 것들을 골몰하고 있을 때 전도연 선배님께서 너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어요. “우희야,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런데 어쩔 수 없다는 게 나쁜 게 아니야. 포기의 의미도 아니고.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뿐인 거야”라고 하시는데, 순간 비로소 받아들여지더라고요. 저는 사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 자체를 나약한 거로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하는 저 자신을 용납하지 않으려 했고요. 하지만 이젠 알죠.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그래서일까요. 당신 표정, 참 많이 차분해 보여요.

=지금은 약간 해탈한? (일동 웃음) 지금 굉장히 편해요. 그런데 이러다가 어느 순간 또 걱정이 기습해 오겠죠. 그땐 또 잘 넘어 볼 생각이에요.

-김혜수 배우도 좋은 조언자 중 한 명이죠? 종종 만나는 거로 알아요. 김혜수 배우가 여러 인터뷰에서 당신에 대한 애정을 비추는 것도 봤고요.

=3년 전인가. 운동을 가고 있는데 혜수 선배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그때까지 문자는 했지만, 통화하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선배님이 “지금 (엄)정화랑 둘이 있는데 너 이야기가 나왔어. 혹시 올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너무 좋아서 운동 취소하고 바로 달려갔죠. (웃음) 그때부터 두 분과의 모임이 시작됐어요. 감사하게도 저랑 놀아주시는데, 점심때 만나면 이야기가 새벽까지 이어지죠.

-기댈 수 있는 믿음직한 선배들이 있다는 건 큰 힘이죠.

=엄청난 행운이죠. 두 분은 저뿐 아니라, 이쪽에서 일하는 후배들을 굉장히 잘 챙겨주세요.

-반대로 연기 지망생 중에 당신을 롤모델로 삼는 이가 많은 거로 알아요. 당신은 하루아침에 발견된 스타가 아니죠. 아까 대화했듯 차근차근 쌓아 온 배우고요. 그래서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도 그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어요. 그런 이야길 들으면 너무 고맙기도 하고 부담도 되고 만감이 교차하죠.

-당신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 “천우희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알다가도 모를 사람? (웃음)

-알다가도 모를 사람!

-저도 제 성격을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어요. 가령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발표를 잘 못 했어요. 쑥스러움을 많이 타서. 그런데 장기자랑 시간엔 굉장히 적극적이었어요. 멍석 깔아주면 못한다고 하는데 저는 깔아주면 더 했죠. 이건 ‘쇼잉’이니까. 지금은 내가 아니니까. 그럼 마음이 됐던 것 같아요.

-연기하면서 자신을 발견해 나간 쪽인가요?

=카메라라는 매개체 앞에서는 또 다른 내가 되는 거죠. 내가 어떤 걸 표현하든 카메라는 모든 걸 포옹해줘요. 화를 내든, 미치광이가 되든, 가슴 아픈 사랑을 하든. 그래서 해방감을 느끼죠. 평소에는 ‘쫄보’면서. (웃음)

-‘쫄보’요?

=큰일에는 대범한데, 어떤 부분에서는 겁이 많아요, 제가. 그래서 알다가도 모를 사람입니다. (웃음)

-데뷔 초, 오디션 볼 땐 어땠어요? 많이들 떤다고 하던데.

=저, 굉장히 편하게 봤어요. 그러다보니 다들 속으셨던 것 같아요. ‘쟤, 뭔가 있으니 저러는 걸 거야’ 하셨던 거죠. (일동 웃음)

'식물 킬러'라는 천우희. 그녀의 손에서 기특하게 잘 자라고 있는 식물.

천우희는 무대 위에서 춤추고 싶은 사람, 춤출 무대를 제공해 줄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없다면 기어코 그녀가 먼저 무대를 만들어갈 사람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후반 작업 중인 <버티코>에선 유태오 씨와 연기했죠. 전계수 감독님 인터뷰를 보니 유태오 씨가 쉬는 시간에 하이데거 논문을 읽곤 했다는데, 촬영하면서 철학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눴나요.

=정말이요? 하이데거 논문을 몰랐어요. 그런데 태오 오빠가 참 대단한 게, 연기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자료 리서치를 많이 해요. <버티고> 단톡방에서 배우들끼리 도움이 될 만한 걸 주고받았는데 오빠가 가장 활발하게 정보를 줬죠.

-하이데거 이야기가 나온 김에 질문드리면, 하이데거는 평생 ‘존재의 의미’를 찾아 헤맨 철학자잖아요. 당신은 당신이란 존재가 왜 지금 이 시기에 여기에 있는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

=많아요.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과거(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난 주인공에게 그 곳은 황금시대지만, 그곳에서 만난 여인은 1890년대 파리를 완벽한 황금시대라고 동경하죠. 많은 사람이 그런 것 같아요. 손에 쥔 것보다, 그러지 못한 것들을 동경해요. 현실에서의 완벽한 만족이란 얼마나 어려운지.

-배우에게 만족이 있으면 행복할까요?

=음. 아니요. 그럼 발전이 없을 것 같아요. 나홍진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아티스트는 시대를 선택할 수 없다. 선택받는 것이기에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듣자마자 와, 했어요. 결국, 중요한 건 내게 주어진 환경에 나의 색을 융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같아요. 바꿀 수 없는 걸 껴안고 고민하기보다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당신은 다른 배우가 돼 있을까요?

=그렇다면 조금은 달라졌겠죠.

-지금보다 더 좋았을까요?

=아니요. 너무 많이 아는 게, 과연 좋을까요.

-공감해요. 의도한 대로 되는 게 인생이 아니니까.

=연기도 똑같아요. 저는 캐릭터와 작품 분석을 많이 하지만, 분석한 의도를 현장에 가지고 가지는 않아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현장이거든요. 내 안의 것들을 비우고 감독님 디렉션이나, 그때그때 느껴지는 감정이나, 상대방 연기에 맞춰서 해야지, 의도를 가지고 하면 오히려 엉망진창이 될 때가 많죠.

-당신에게 현명한 싸움이란 어떤 건가요?

=일단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는 거겠죠. 그리고 제가 타인에게 피해 주는 걸 정말 싫어해요. 누군가가 무례하게 하는 것 역시 참지 못하고요. 그랬을 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서로 원하는 걸 얻는 게 현명한 싸움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요.

-당신 성향상 연기와 계속 싸워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계속 싸우고 싶어요. 재능도 단련하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녀의 뒤로 ‘남자 천우희’ 인가 싶은 사람이 다가왔다. 미소마저 꼭 닮은 사람. 눈썰미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단박에 알아채리라. ‘아, 우희 씨 오빠구나!’ 양해를 구하고 천우희 오빠에게 잠시 질문을 던졌다. “동생은 어떤 사람인가요?”

(*천우희 오빠와 함께 한 대화는 2부에서 공개됩니다.)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