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오가는 동안 상이 차려졌다. ‘따뜻한 밥 한 끼’ 함께 하자는 천우희의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고향 이천에서 직접 밭을 일구는 그의 어머니가 보내온 재료로 만들어진 반찬에서 몸에 좋은 자연의 냄새, 집밥의 향기가 났다. 그 옆에서 ‘이천 쌀’로 지어진 밥알들이 고운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인터뷰 중엔 대화에 집중하느라 식욕이 뚝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라고 여겨 온 나의 믿음은 그날부로 과거형이 됐다. 젓가락을 멈추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생각했다. 아, 내가 ‘집밥’이 그리웠었구나.
-(밥 한가득 물고) ‘이천 쌀’의 장점 좀 소개해 주시죠.
=일단! 윤기가 다르고요, 아주 찰지답니다. (웃음) 토양과 물이 좋아서 그런지 확실히 쌀이 좋아요. 이천 사람들이 은근 입맛이 까다로운데, 기본 밥 자체가 맛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혹시 쌀 종류도 구분해 내는 수준인가요?
=제가 그 정도까지의 ‘만렙(최대 레벨)’은 아니랍니다. 하하하.
-영화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보여주시는데, 그 모든 게 ‘밥심’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군요.
=저, 체력 저질이에요. 촬영은 정신력으로 하죠. 평소 기력이 없어서 연기할 때만 집중해서 빡 쓰는 스타일이에요. 잔병치레가 잦아서 응급실도 자주 가는데 현장에서만큼은 몸이 아픈지, 컨디션이 어떤지, 그런 생각 자체가 안 나요.
-완전히 몰입하는군요.
=재미있어요, 현장은. 스태프들이나 감독님, 함께 연기하는 분들의 기운을 받으니까요. 현장에선 약간 취한 것처럼 지내는 것 같아요. 아픈지도 모르겠고요.
-영화마다 현장 분위기가 다르잖아요. 그 영향도 받나요?
=영향은 받는데 그 흐름을 타지는 않아요. 자칫 현장 분위기에 말리면 연기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요.
-배우 할 ‘팔자’인가 봐요. (웃음)
=얼마 전에 <버티고> 쫑파티를 했는데 조감독님이 “우희 씨! 우희 씨는 연기하려고 태어난 게 맞아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이유를 여쭸더니 “연기 안 하면 아마 몸이 아플 거예요!”라고. (일동 웃음) 내가 연기를 안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요. 다른 걸 안 해 봐서 그런 건지, 제가 평범해서 다른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세요? 많은 인터뷰에서 “난 평범하다”라고 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거.
=저, 진짜 평범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평범하다’의 기준은 뭔가요.
=글쎄요. 어떤 아티스트를 보면 독창적인 느낌이 있다거나, 성격 자체가 특별하다거나 하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고, 성격 자체도 무난해요. 그렇다고 연기력이 타고 난 것도 아니고.
그녀는 일관되게 자신이 평범해서 재미없다고 말했지만, 미안하게도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뭔가 특별해 보여야 한다’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유형의 아티스트보다, ‘꾸미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그녀가 오히려 더 특별해 보였기 때문이다. 천우희는 이후에도 여러 번 자신이 부족하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행간의 의미들을 복기하며 뒤늦게 깨달은 점. 그건 ‘버릇’이라기보다 ‘심성’에 가깝다는 확신이었다.
-누군가에겐 또 그럴 수 있죠. ‘천우희는 독창적인 연기자야’라고.
=하하하. 저는 노력형인 것 같아요. 노력을 하니까 이만큼이라도 살아가는 게 아닐지. 연기 잘하는 분들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싶고요.
-연기는 타고나야 하는 걸까요?
=그 이야기, 연기하는 친구들이나 음악하는 친구들과 종종 해요. 저희가 합의한 결론은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다. 하지만 기본적인 재능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연기는 다른 예체능에 비해서 노력으로 채울 수 있는 부분이 크죠. 기술이나 기교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지금 연기파 배우로 불리는 분들 중에서도, 데뷔 때 연기로 지탄 받은 경우가 많죠.
=그래요? 최근 TV에서 우연히 1994년 방영됐던 <서울의 달>을 봤어요. 보면서 최민식 한석규 선배님 연기에 너무 놀랐어요. ‘와~ 연기 잘하시는 분들은 저 때도 잘하셨구나.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 이랬다니까요.
-절박한 심정은 직접 겪어봐야 연기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런 말 많이 하잖아요. 경험을 많이 해봐야 연기에 도움이 된다는 말. 그 말에 저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아요. 상상으로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믿거든요. 그리고 제가 이제껏 연기한 캐릭터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워낙 많아서…(웃음)
-기구한 캐릭터들을 많이 맡았죠.
=네. 경험을 대입시켜 볼만한 캐릭터가 많지 않았어요. 많은 경우, 저의 상상력을 믿고 나아갈 수 밖에 없었죠. 그러면서 상상력의 힘을 더 믿게 된 측면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