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 개봉했습니다. 박찬욱 감독보다는 못할지 모르겠지만 <밀정>도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미장센이 정확히 무슨 말일까요. 오늘 ‘씨네피디아’에서는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는데 설명해보라면 어려운 미장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전적 정의부터 알아봅시다. 미장센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도 등록돼 있습니다.
미장센[프랑스어] mise-en-scène[발음 : 미장센]
명사
<연영> 무대 위에서의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
사전의 뜻풀이에 무대가 가장 먼저 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미장센이라는 말은 연극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프랑스어인 ‘mise-en-scène’을 영어로 하면 ‘Putting on Stage’가 됩니다. ‘무대에 배치하기’라는 뜻이죠. 무대에는 국어사전의 설명처럼 많은 것들이 놓일 수 있습니다. 배우, 의상, 소품, 조명 등이 있습니다. 무대를 벗어나 영화로 확장하면 세트, 로케이션도 포함해야겠죠. 연극에는 없고 영화에는 있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카메라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관객은 카메라를 볼 수 없습니다. 그 카메라의 시선으로 영화를 봅니다. 그러니 중요합니다. 미장센은 앞서 언급한 모든 요소를 통해 만들어지는 용어입니다. 한마디로 복잡합니다. 미장센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도 넓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쓰는 말이지만 딱 잘라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과거로 가보겠습니다. 목적지는 독일입니다. 독일은 프리츠 랑, F. W. 무르나우 등 표현주의 영화로 유명합니다. 이 감독들이 미장센을 발전시킨 장본인입니다. 제한된 장면 내에서 대사가 아닌 화면 구도, 인물이나 사물 배치를 이용해 연출자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다시 말하면 네모난 스크린의 한 장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감독이 정교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화면 속 인물, 소품의 배치와 조명과 카메라의 포커스까지 모든 게 의도된 것입니다. 그것이 미학적으로 훌륭할 때 미장센이 좋다고 말합니다.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의 한 장면을 보면 좀더 이해하기 쉽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빈 유리잔, 약병이 화면의 앞에 먼저 보입니다. 어둡긴 하지만 침대의 여자는 쓰려져 있는 걸로 보입니다. 화면의 윗편에는 문을 열고 막 들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뭔가 긴박한 느낌이 듭니다. 한 신 안에서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미장센이 가능했던 데는 기술의 발전이 한몫했습니다. 카메라가 발전하면서 딥포커스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화면의 윗쪽, 실제로는 뒤에 있는 피사체까지 또렷하게 초첨을 맞춰서 보여줍니다.
다시 <밀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씨네21> 1071호 ‘<밀정> 제작기’ 기사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이정출(송강호)의 변화무쌍한 얼굴은 <밀정>의 서사이자 미장센이다.” <밀정>의 김지용 촬영감독은 배우 송강호의 얼굴 그 자체를 미장센으로 보았습니다. 김지용 촬영감독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이정출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감정에 따라 조명의 위치가 제각각이다. 수심이 깊어 보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확연히 구분될 수 있도록 조명을 세팅했다. 아니, 조명 자체가 필요 없었다. 워낙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셔서. (웃음)” <밀정>의 송강호의 얼굴이 미장센이라면 <시민 케인>과는 달리 클로즈업이 자주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미장센에 대한 설명은 복잡해지기만 합니다. 그렇다면 미장센과 반대되는 개념을 살짝 소개하겠습니다. 몽타주(Montage)라는 개념입닌다. 몽타주는 편집을 통해 영화의 주제를 드러냅니다. 화면이 계속 변하는 거죠. 다른 컷들이 이어져서 하나의 의미를 만듭니다. 미장센은 한 화면 속에서 모든 게 이뤄집니다. 그래서 미장센이 훌륭한 영화는 긴 호흡이 많습니다. 롱테이크도 많고 <시민 케인>처럼 딥 포커스 기법도 많이 쓰입니다.
미장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들은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과 누벨바그 감독들의 영화를 보는 게 좋겠습니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만든 프랑스의 앙드레 바쟁은 몽타주에 대비되는 미학 개념으로 미장센을 옹호했습니다. 리얼리즘을 중시했던 그는 몽타주가 현실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특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바쟁이 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미장센은 정의내리기 어렵습니다. 독일 표현주의, 프랑스 누벨바그, 미국의 <시민 케인>의 미장센이 다 다른 성격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설명은 할 수 있겠습니다. 포인트는 제한된 한 장면입니다. 그 한 장면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메시지를 읽어내고, 주제를 파악할 수 있다면 미장센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화면이 예쁘다고 미장센이 좋은 건 아닙니다. 이번 ‘씨네피디아’도 지난주 ‘누아르’ 편처럼 명확한 설명이 되지 못했습니다만 이것만 기억하면 어떨까요. 영화를 보다가 당신의 마음에 탁 꽂히는 제한된 한 장면, 그 장면이 바로 미장센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