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일본에는 거장으로 자리 잡은 이가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중 한 명 기타노 다케시다. 앞서 말한 국내 코미디언 출신 감독들을 논할 때 자주 비교선상에 오르는 인물. 그는 1972년 비트 다케시라는 예명으로 선배였던 비트 기요시와 '투 비트'라는 코미디 콤비를 결성했다. 1975년부터 본격적으로 TV에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비트 기요시의 은퇴 후 단독 활동을 하며 <올 나잇 재팬>, <우리들은 익살족> 등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엄청난 인기를 구사했다. 코믹한 분장과 콩트를 주로 선보였으며 거침없는 독설과 뜬금없는 장난이 그의 개그 스타일. 이후 일명 '다케시 군단'이라고 불리는 후배 코미디언들을 양성하며 일본 코미디계의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처음 영화에 참여한 것은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악역 군인으로 출연하면서다. 당시 액션 사인이 떨여졌음에도 "대사를 까먹었다"고 말하는 등 매우 미숙했다고.
본격적으로 영화감독으로 변모하기 전, 기타노 다케시는 여러 차례 구설수에도 올랐다. 가장 유명한 것은 '프라이데이 습격 사건'. 기타노 다케시의 불륜을 취재하던 일본 매체 '프라이데이'가 스토킹, 협박 등 도에 넘은 행동을 하자 기타노 다케시와 그의 후배들이 프라이데이 사무실을 무단 점검하고 기자들을 폭행한 사건이다. 이외 야쿠자 연루설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렇게 쇠퇴기를 맞이한 기타노 다케시가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가 영화 연출이다. <그 남자 흉폭하다>에서 제작사와 마찰로 원래 감독이었던 후카사쿠 킨지 감독이 하차, 출연 배우였던 기타노 다케시가 대신 메가폰을 잡았다. 결과는 대성공. 덤덤한 분위기와 이에 대조되는 사실적인 폭력 묘사 등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기타노 다케시의 연출법은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이후 <소나티네>, <키즈 리턴> 등 직접 주연과 연출을 맡은 여러 영화들이 줄줄이 호평을 받았으며 1997년에 제작한 <하나-비>는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기타노 다케시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줬다. 현재까지도 그는 <아웃레이지> 시리즈 등으로 감독과 배우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코미디언 출신 감독 중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이룩한 사례.
이런 기타노 다케시의 뒤를 이어 탄탄한 입지를 쌓아가고 있는 일본의 코미디언 출신 감독으로는 마츠모토 히토시도 있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던 그는 2007년 <대일본인>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 두 번째 연출작인 <심볼>이 브뤼셀판타스틱영화제에서 은까마귀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입증했다. 기타노 다케시는 코미디언으로서의 이미지와 반대되는 분위기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마츠모토 히토시는 오히려 유머 감각을 백방 활용한 코미디 영화를 제작했다. 거기에 화려한 세트, CG 등을 활용해 묘한 판타지성을 부여했다. 최근 연출작인 <R100>도 장기를 살려 여러 영화제에 노미네이트됐으며, 2017년에는 <사랑과 거짓말>의 제작 프로듀서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