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밀정>을 본 관객분들에게 '엇, 저 배우는 누구지?' 혹은 '저 배우가 드디어!' 하고 시선을 끈 배우가 있습니다. 부하 직원의 뺨을 엄청난 속도로 후려치던 스냅력,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와그작 와그작 상대방을 씹어 먹을 것 같은 눈빛, 건장한 체격에 뚜렷한 이목구비, 마음 저격하는 동굴 목소리까지! 배우 '엄태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밀정>

<밀정>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뿜어낸 그. 그 중 최고는 바로 스틸컷 속 이 장면이 아닐까요? <밀정>을 보신 분이라면 고개 끄덕끄덕, 충분히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이렇게 큰 영화에서 그의 존재감이 뚜렷이 발산된 건 처음이라, 많은 분들이 배우 엄태구를 신인이라 생각하고 있으실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산! 그가 출연한 작품이 무려 38편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벌써 데뷔 10년 차를 앞두고 있는 이 배우! 당신이 몰랐던 배우 엄태구의 얼굴을 파헤쳐 보는 시간입니다. "이 사람이 여기 나왔다고?!", 깨알 같은 퍼즐을 맞추는 게 가장 재미있는 법이죠. 작은 역할부터 큰 역할까지, 영화 속에 담긴 그의 다양한 얼굴을 모아보았습니다.


STEP 1. 영화 속 깨알 같은 엄태구의 얼굴들

기담(2007) / 일본군 1역
그의 데뷔작은 2007년 제작된 공포 영화, <기담>입니다. 군 제대 이후 첫 작품이라고 해요. 그는 아키야마 소좌(김응수) 아래에 있던 일본군 역을 맡았죠. 요즘 쏟아지는 그의 인터뷰에서 빠짐없이 언급되는 영화 또한 <기담>인데요. 촬영 당시 그는 밤새 외웠던 일본어 대사 한 마디를 자꾸 틀려 여러 번 NG를 냈다고 해요. 하도 틀려서 감독님이 밥을 먹고 진행하자고 했는데, 밥을 거르면서까지 일본 군복을 입고 현장을 돌아다니며 대사를 중얼거렸다고 하네요. 지나가던 등산객이 그의 모습을 모고 무장 공비인 줄 알고 소리를 질렀다는 웃픈 일화까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 할 수 있을지 혼자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는 그. 그러나 이 작품은 배우로서 그의 오기를 자극했습니다. 제대 후 극단에 들어가려고 했던 그였지만, 영화를 좀 더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죠.

옥희의 영화(2010) / 키스왕-동급생 2역
저 위에 크레딧만 봐도 홍상수 영화다? 네 맞습니다. 2010년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에서도 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옴니버스 작품인 <옥희의 영화> 중, <키스왕>에서 동급생 2 역으로 출연하죠. 그는 젊은 남자(이선균)의 친구로 등장합니다. 우유를 마시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젊은 남자에게 '또라이야, 또라이', 중얼거리며 지나가고, 다시 마주친 그에게 '너 상 탄다며?'란 한 마디를 건네 옥희(정유미)에게 '무슨 상? 물음표 물음표?' 기분 선사하는 역할로 출연하죠.

무서운 이야기(2012) / 해와 달 - 택배/괴한1 역
늦은 밤, 어린 남매 둘만 남겨진 집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 전래동화 <해와 달>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그는 남매를 위협하는 택배/괴한1 역으로 출연합니다. 사진이 왜 이렇게 어둡냐고요? 무서워서 그의 얼굴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사진을 쓸 수 없었어요. 씨네플레이는 전체 이용가니까요~(찡긋)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 황재오 역
이 영화에도 엄태구가 나왔었다고? 네. 김수현과 이현우와 박기웅의 존재감이 반짝반짝 빛났던 이 영화에는 엄태구의 얼굴도 있었답니다. 무려 이 영화에서는 단역이 아니라 조연! 그는 이 영화에서 특수공작부대 총교관(손현주)의 오른팔, 북한 백두조 4대 조장 황재오 역을 맡았습니다.

동창생(2013) / 일진남 역
<동창생>에서 그는 일진남 역할을 맡았습니다. 잘 기억이 안 나신다고요? 리명훈(최승현)의 학교생활을 되짚어 보세요. 전학 온 리명훈에게 '옥상으로 따라와' 신고식을 하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시나요? 그는 결국 리명훈의 짝꿍 이혜인(한예리)에게 일진 행세를 하다가 엄청나게 얻어터ㅈ....(뒷말은 생략한다)

소수의견(2013) / 이승준 의경 역
이번에는 의경입니다. 그는 <소수의견>에서 시위 현장에 있었던 순박한 어린 의경, 이승준 역을 맡았죠. 큰 사건에 휘말린 어린 청년의 모습을 잘 담아내 주목을 받았습니다. 증인으로 재판장에 선 장면에서 그가 그려내는 섬세한 심리 묘사는 눈여겨볼만하죠.

<악마를 보았다> 현장 스틸, 김지운 감독

악마를 보았다(2010) / 형사4 역
단역을 이어가던 시절, 그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형사4 역을 맡았죠. 보통 단역을 하면 촬영 현장에서 형사1, 형사2 등의 호칭으로 불리곤 하는데, <악마를 보았다>에서는 처음으로 김지운 감독이 '태구야'라고 이름을 불러줘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해요. 두 사람은 <밀정>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죠.

그는 이외에도 <인사동 스캔들>, <방자전>, <심야의 FM>, <오싹한 연애>, <인간중독> 등에 얼굴을 비췄습니다. 하나하나 짚기에도 어마어마한 것!

STEP 2. 독립영화 속 존재감 뚜렷한 엄태구의 얼굴들

사진 출처. 씨네21

배우 엄태구와 감독 엄태화가 형제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제2의 류승완, 류승범 형제'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들. 동생 엄태구가 <밀정>의 훌륭한 연기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면, 형 엄태화는 기대작 <가려진 시간>의 개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형제가 이렇게 빵빵 뜨기 전까지, 그들의 기반을 다졌던 작품은 꽤 여럿이었는데요! 밑에 소개해드릴 <유숙자>, <숲>, <잉투기>, 이 세 영화의 연출은 형 엄태화, 주연은 동생 엄태구가 맡았습니다. 형제의 조합이 눈에 띄는 작품들! 이 속에서 엄태구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유숙자(2010) / 만식 역
<유숙자>에서 엄태구는 노숙자 '만식'을 연기합니다. 원래 주인공은 다른 배우가 연기하기로 했는데, 극 중에서 머리를 박박 미는 장면이 있어 거절했다고 해요. 엄태화 감독은 빈 주인공 자리를 동생에게 넘겼죠. 이렇게 감독과 배우 형제의 첫 작품, <유숙자> 탄생! <유숙자>는 독립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올랐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숲(2012) / 태식 역
호러 단편 <숲>에서 엄태구는 인적이 드문 숲에서 위기에 빠지는 남자 태식을 연기합니다. 이 작품은 제11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죠. 엄태구는 제13회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엄태화 엄태구 형제의 두각이 드러난 작품이죠.

잉투기(2013) / 태식 역
독립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 작품, <잉투기>입니다. 그의 배역명은 여기서도 태식이네요! 태식은 나이가 30줄에 다다랐으나 취업을 할 생각도 없는, 그렇다고 어떤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닌, 정말 잉여로운 청년입니다. 태식은 복수의 대상 '젖존슨'을 찾아다니다 그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키보드 워리어 잉여 폐인이었던 자신의 모습을 함께 되짚어보게 되죠. <잉투기>는 지금 이 시대 청춘의 모습을 신선한 방식으로 선명히 전달하여 화제가 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뜨고 있는 배우들이 총집합한 영화이기도 하죠. 권율, 류혜영은 물론 류준열과 박소담의 얼굴도 찾아볼 수 있답니다.

STEP 3.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엄태구의 얼굴들

차이나타운(2014) / 우곤 역
엄태구의 존재감이 확실히 인식되기 시작한 건 <차이나타운>부터가 아닐까요? 그는 차이나타운의 절대자 엄마(김혜수)의 오른팔이자 마가흥업의 첫째 '우곤'을 연기했습니다. 우곤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을 냉혈한이면서도 일영(김고은) 앞에만 서면 약해지는 남자였죠. 강렬한 페이스로 엄태구는 두 가지 매력을 지닌 우곤을 훌륭히 소화해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어린 우곤은 그가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했으나, 그 목소리에는 엄태구의 목소리를 덧입혔다고 해요.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돋보이는 영화죠.

베테랑(2015) / 이종격투 수행원 역
<베테랑> 속 이종격투 수행원 역이 엄태구였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죠? 잘 모르시겠다고요? 악역 중의 악역 조태오(유아인)에게 맞아 다리가 부러진 이종격투 수행원을 기억해보세요.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실 거예요. (
스포라 정확히 말할 순 없으나) 단역이지만 그냥 단역이 아니었던 그의 역할은 관객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밀정(2016) / 하시모토 역
스틸컷만 봐도 무서움이 스멀스멀. 순간순간의 공기를 꽉 메우는 그의 연기력은 이 영화에서 포텐을 터뜨립니다. 엄태구는 조선인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지녀 더 악랄하게 일본에 충성하는 경찰 하시모토 역을 완벽히 소화해내죠. 김지운 감독은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동물적인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한 배우'라 그를 평가했습니다. 대선배 송강호에게 맞서는 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치 밀리지 않는 힘을 보여준 그, 다음에 보여줄 얼굴은 어떨지 기대가 되네요!

다작으로 20대를 하얗게 불태운 엄태구! 앞으로 채워질 그의 필모그래피가 더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그는 최근 조용익 감독의 단편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촬영했습니다. 위에서 언급된 엄태화 감독의 신작 <가려진 시간>에도 짧게 등장하고요. <밀정>에 이어, 송강호 주연의 영화 <택시 운전사>에도 특별출연의 개념으로 짧게 얼굴을 비칠 예정이라고 하네요. 벌써부터 스케줄이 빼곡한 이 배우! 그가 그려낼 또 다른 캐릭터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