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홀>

우디 앨런은 뉴욕 브루클린 출신입니다. 그는 평생 뉴요커로 살아왔죠. 주로 슬랩스틱 코미디 작품을 연출했던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1977년작 <애니 홀>부터입니다. 이 작품은 제50회 아카데미의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을 휩쓸었죠. 우디 앨런은 이 작품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우디 앨런은 <맨하탄>, <한나와 그 자매들> 등의 작품을 연출하며 거장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배경이 ‘뉴욕’이라는 점이죠.

<한나와 그 자매들>(좌), <맨하탄>(우)

<애니 홀>에서의 뉴욕은 LA 같은 서부 도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시니컬하면서도 세련미를 지닌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맨하탄>은 주인공 아이작(우디 앨런)이 늘어놓는 뉴욕에 대한 찬사로부터 시작되죠. <한나와 그 자매들>에서는 건축가 캐릭터를 등장시켜 맨하탄의 건물들을 하나의 예술로 묘사합니다. 이 외에도 그는 <맨하탄 살인사건>, <브로드웨이를 쏴라>, <라디오 데이즈> 등에서 뉴욕의 가지각색 모습들을 영화 속에 녹여내죠.

시끄럽고 산만한 도시의 정서를 담아내는 솜씨가 일품인 우디 앨런. 그는 2005년, <매치 포인트>를 시작으로 뉴욕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특정 도시만의 색을 그대로 녹여낸 영화들을 탄생시켜 늘 감탄을 부르는 그! 도시별 이야기꾼 우디 앨런이 조명한 다른 도시의 색채는 어떨까요?


매치포인트
/ 런던

<매치 포인트>는 우디 앨런의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색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뉴욕이 없고, 코미디가 없으며, 그의 장기라고 볼 수 있는 영리한 말장난 또한 없죠. 로맨스 스릴러 <매치 포인트>의 주인공 크리스(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신분상승을 위해서 무엇도 포기하지 않는 남자입니다. 보는 사람이 무서울 정도로 과감하고 저돌적이지만 운은 항상 그의 편이죠.

우디 앨런은 불륜과 범죄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크리스를 건조한 시선으로 담아냅니다. 감성보다는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인 크리스는 규격화된 건물들이 늘어선 런던의 풍경과 잘 어울리죠. 구름이 잔뜩 낀 런던의 하늘 또한 그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합니다.

<매치 포인트>는 런던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명소들까지 깨알같이 구경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영국 상류사회에 발을 딛기 위해 클로에(에밀리 모티머)와 결혼한 후 템스 강 근처로 이사 간 크리스. 그의 새 집 창밖으로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과 빅 벤이 훤히 보이죠. 영화 속에는 런던 하면 빠질 수 없는 곳, 런던 아이, 세인트 제임스 공원, 거킨 빌딩도 등장합니다. 노라(스칼렛 요한슨)와 크리스가 재회하는 곳은 런던의 핫 플레이스,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 이 정도면 런던 여행 가기 전에 이 영화를 보고 가도 문제가 없을 것 같네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 바르셀로나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의 원제는 <Vicky Cristina Barcelona>입니다. 영화는 충동적인 성격을 지닌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와 낭만보다는 이성이 앞서는 비키(레베카 홀), 두 친구가 함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떠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죠. 관객들도 여행을 하는 주인공들과 함께 바르셀로나의 명소들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영화 속에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환상적인 건축물들이 여럿 등장하죠.

영화는 4인 4색의 로맨스를 담아냅니다. 여행지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비키와 크리스티나. 둘에게 후안 안토니(하비에르 바르뎀)이 접근합니다. 그는 처음 본 이들에게 주말을 함께 보내자며 데이트 신청을 하죠. 셋이서? 네, 셋이서요. 안절부절하는 비키와 흔쾌히 승낙하는 크리스티나. 이들은 결국 그 다음날 후안의 전용기를 타고 오비에도로 떠납니다. 그리고 거기서...!

치명미 발산하며 무슨 일이든 제멋대로 구는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를 만나죠. 크리스티나는 후안과 마리아 둘을 동시에 사랑하게 됩니다. 참고로 마리아는 후안의 전처예요.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하냐고요? 우디 앨런의 세계에서는 이 이상한 스토리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요. 바르셀로나의 뜨겁고 정열적인 분위기가 장면 곳곳에 그대로 녹아있는 영화입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
/ 파리

“정말 기가 막히다! 여기 좀 봐! 세계 어디에도 이런 도시는 없어.” 우디 앨런은 아마 길(오웬 윌슨)의 입을 빌려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는 파리에서 상을 줘도 모자를 영화입니다. 파리 예찬! 파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 영화에서 모두 만나볼 수 있죠.

길(오웬 윌슨)과 아네즈(레이첼 맥아덤즈) 또한, 파리로 여행 온 커플입니다. 영화의 초반부, 길은 파리를 관광하는 아네즈를 따라 모네의 지베르니 호수, 로댕 박물관, 베르사유 궁전, 오랑주리 미술관 등을 구경하죠. 그러나 그의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습니다. 길은 그저 파리의 길거리만 걸어도 너무 좋은 것! 센 강에서 홀로 걸으며 영감을 얻길 바랄 뿐이죠.

이 영화가 아름다운 건 파리의 풍경만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라는 도시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시간 여행이라는 소스를 통해 자연스레 녹여냈죠. 1920년대로 돌아간 길이 마주하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등은 뜻밖의 웃음 포인트! 길과 이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우디 앨런이 얼마나 파리의 예술적 감수성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매직 인 더 문라이트
/ 니스

<매직 인 더 문라이트>의 배경은 1920년대 재즈 시대, 프랑스의 남부 도시 니스입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가 ‘파리’의 고전미와 낭만을 담았다면,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니스'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재즈 음악이 가득한 1920년대만의 풍미를 담아냈죠.

우디 앨런은 이 작품을 작업하기 전에 다시 그의 고향 뉴욕으로 돌아가 <블루 재스민>을 연출했습니다. <블루 재스민>은 허영으로 인해 파멸하는 한 여자를 냉소적인 시선으로 그려낸 현실적인 영화죠. <매직 인 더 문라이트>는 정반대입니다. 스탠리(콜린 퍼스)의 직업은 마술사고 소피(엠마 스톤)의 직업은 심령술사죠. 여기서부터 이 영화가 그려낼 마술 같은 로맨스가 예상되는 것 같지 않나요? 우디 앨런은 <매직 인 더 문라이트>에서 '사랑의 힘'이라는 주제를 다소 귀엽고 환상적인 방법으로 풀어나갑니다. 반짝이는 햇빛과 바다에 딱 어울리는 이야기죠!


로마 위드 러브
/ 로마

우디 앨런은 로마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로마는 도시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인 곳이며,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내기엔 너무 굉장한 곳이라고요. 영화의 시작 즈음에 등장하는 교통순경 또한 이런 이야기를 하죠. "로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기 서 있으면 모든 인생사를 볼 수 있죠." 이 말들을 고대로 옮겨온 영화가 <로마 위드 러브>입니다. 이 영화는 조금 산만해요. 로마에서 벌어지는 많은 에피소드들이 모여 있거든요. 그 속의 인물들 또한 개성이 넘칩니다. 산만해서 어지럽냐고요? 아뇨, 오히려 사랑스럽죠.

<로마 위드 러브>는 수다스럽고 경쾌합니다. 복닥복닥거리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뒤로는 콜로세움, 나보나 광장,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등 한 번에 보기 어려운 로마의 주요 명소들이 널려있죠. 우디 앨런은 관광지뿐만 아니라 좁은 골목골목까지 비춰주며 웅장함과 소박함이 함께 모인 로마만의 색을 섬세히 담아냈습니다. 여자친구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건축학도, 갑자기 유명인이 되어버린 평범한 로마 시민, 샤워 부스에서만 노래가 가능한 장의사 등 개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엉뚱한 에피소드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로마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게 될 거예요!


카페 소사이어티
/ 뉴욕, LA

<카페 소사이어티>의 배경은 뉴욕과 LA입니다. 엥? 뉴요커 우디 앨런이 다른 도시를 다룬 영화들을 보자고 하지 않았냐고요? 네, 그렇죠. <카페 소사이어티>의 배경은 뉴욕과 LA이지만, 뉴욕을 다룬 우디 앨런 기존 영화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죠.

<미드나잇 인 파리>와 <매직 인 더 문라이트>에서 처럼, <카페 소사이어티>에 등장하는 도시 뉴욕은 낭만으로 가득합니다. 온갖 시작하는 이들로 가득찬 1930년대만의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곳이죠. 꿈을 찾아 할리우드로 떠난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삼촌의 여비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그러나 보니는 잘 나가는 애인이 있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간 바비는 베로니카(블레이크 라이블리)와 결혼한 후 성공의 정점에 서게 됩니다. 그 때 다시 옛사랑 보니와 재회하게 되죠.
이 영화에서 눈여겨볼만한 점은 뉴욕과 LA, 두 도시의 등장입니다. '뉴욕'은 기존 우디 앨런의 영화 속에서는 다소 냉소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온 도시였습니다. 그에 비해 이 영화에서 그리는 1930년대의 할리우드, LA는 낭만적인 꿈과 희망에 부풀어있죠. 상반된 두 도시가 <카페 소사이어티>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할지 주목이 됩니다. 꿈과 사랑을 좇는 젊은 남녀, 바비와 보니를 연기한 제시 아이젠버그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새로운 얼굴도 기대되는 포인트 중 하나겠죠!



씨네플레이 에디터 코헤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