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시즌 극장가의 승자 <밀정>에는 음악 배치가 유독 도드라지는 구간들이 있다. 루이 암스트롱의 'When You're Smiling', 라벨의 'Boléro', 드보르작의 'Slavonic Dances'가 흐르는 순간들이다. 김지운 감독은 독특한 음악 활용에 대해 "동시대 미국에서 발생한 스윙재즈로 지구 반대편의 풍족하고 좋은 시대의 나라에서 나온  음악이지만, 반면에 우리나라는 동시대에 불행했었다. 그 시대에 그들처럼 즐기지 못했던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 음악과 당시 우리나라의 모습이 오버랩 되면 더 비극적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오늘 씨네플레이는 이처럼 아이러니한 음악 배치가 돋보이는 또 다른 사례들을 모아보았다. 어두운 상황에 밝디밝은 음악이 흐름으로써 그 순간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굿모닝, 베트남>, <볼링 포 콜럼바인>, <마다가스카>
Louis Armstrong ‘What a Wonderful World’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는 1967년 발표된 이래, 공전의 히트는 물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사용되며 현재까지도 그 오랜 생명력을 각인시키고 있다. 세상의 경이로움을 찬탄하는 제목과 가사 때문일까, 이 곡은 아이러니한 음악 사용 사례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곡이다.
아무래도 가장 인상적으로 쓰인 사례는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굿모닝, 베트남>(1987)일 것이다. 방송 검열에 항의해 사임하려는 공군 라디오 DJ 애드리안은 병사들의 열띤 지지로 다시 마이크를 잡은 뒤 첫 곡으로 ‘What a Wonderful World’를 띄운다. DJ의 활기찬 목소리와는 달리, 베트남에 주둔한 미군이 저지르는 실상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굿모닝, 베트남> 속 절묘한 활용 이후 ‘What a Wonderful World’는 보다 활발하게 영화에 인용되기 시작한다.

미국의 폐부에 대해 까발려 온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을 파고드는 <볼링 포 콜럼바인>(2002)에 이 곡을 사용했다. 다름 아닌 미국과 관련한 테러리즘의 역사를 훑는 끔찍한 푸티지들과 함께 ‘What a Wonderful World’가 흐른다. 이 노래를 어지간히 좋아하는지 무어는 바로 다음 작품 <화씨 9/11>(2004)에서는 펑크 뮤지션 조이 라몬의 버전을 사용했다.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2005)에는 비교적 귀엽게 쓰였다. 뉴욕의 동물원에서 사육되던 사자, 하마, 얼룩말, 기린이 야생 생활이 환상과 달리 잔혹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에 흐른다. ‘What a Wonderful World’는 올해 개봉한 애니메이션 <앵그리버드 더 무비>, <도리를 찾아서>, <소시지 파티>에 사용되기도 했다.


<왓치맨>
Nat King Cole ‘Unforgettable’

잭 스나이더와 DC 첫 만남인 <왓치맨>(2009)은 한밤중의 격투신으로 시작한다. 적막한 고층 빌딩 속 방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냇 킹 콜의 재즈 넘버 ‘Unforgettable’이 흐르는 가운데 펼쳐진다. 넉넉한 보컬과 현악이 어우러진 차분한 음악에도 불구하고 주먹은 벽을 뚫고, 사람은 내동댕이쳐지고, 칼부림이 재빠르게 오간다. 이토록 평화로운 ‘Unforgettable’이 깔리는 와중에 사투를 벌이는 아이러니한 형국은 핏자국의 스마일 배지가 상징하는 '왓치맨 월드'로 들어가는 효과적인 인트로였다.


<저수지의 개들>
Stealers Wheel ‘Stuck in the Middle with You’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쿠엔틴 타란티노는 첫 영화 <저수지의 개들>(1992) OST에 70년대 팝 음악을 대거 수록했다. 그 가운데 스틸러스 휠의 ‘Stuck in the Middle with You’는 타란티노가 왜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됐는지 일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미스터 블론드(마이클 매드슨)가 인질로 잡아온 경찰의 귀를 자르는 장면에서 사용된 이 곡은, 나른하고 흥겨운 곡조로 그토록 살벌한 광경을 수식한다. 유혈이 낭자한 창고를 나가면 음악도 뚝 멈추는데, 이는 창고와 그 바깥이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걸 나타내는 역할도 수행한다. ‘Stuck in the Middle with You’는 <저수지의 개들>이 처음 공개된 1992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단연 화제를 모으면서 클래식의 위치를 더욱 공고히 했다.


<시계태엽 오렌지>
Nacio Herb Brown ‘Singin' in the Rain'
   

<시계태엽 오렌지>(1971)는 이번 주제의 가장 극단적인 예일 것이다. 정확히는, 대부분의 경우처럼 영화 바깥에서 BGM으로 깔리는 방식이 아닌, 영화 속 인물이 ‘Singin' in the Rain’을 직접 노래를 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극악무도한 비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알렉스(말콤 맥도웰) 일당들은 작가 알렉산더의 집을 습격해 그를 폭행한다. 스탠리 큐브릭은 이 악랄한 무뢰한들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세레나데를 부르며, 작가를 묶어놓고 그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농락하는 장면을 소상하게 찍었다. 노래를 작곡한 나시오 허브 브라운과 <사랑을 비를 타고>(1952)에서 이걸 부른 진 켈리는 이 광경을 보고 어떤 기분에 휩싸였을까?


<좋은 친구들>
Derek and the Dominos 'Layla'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1990)은 어려서부터 마피아를 동경해온 헨리(레이 리오타)가 토미(조 페시), 지미(로버트 드 니로)와 함께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과정을 그린다. 승승장구하던 시절도 가고 헨리의 동료들이 점차 살해되는데, 스콜세지는 대사 없이 이 처참한 광경들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데렉 앤 더 도미노스의 7분짜리 대곡 ‘Layla'의 중후반을 차지하는 연주부가 이 풍경을 감싼다. 기타와 피아노 연주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쓰레기 더미에 파묻히고 고기 냉동차에 매달린 시체들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Layla'가 끝나면, 드디어 마피아가 된 토미가 그들의 총에 맞는 장면이 이어진다. 


<바닐라 스카이>
The Beach Boys ‘Good Vibrations'

음악 기자였던 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올모스트 페이머스>(2000)를 연출하면서 록 음악에 대한 사랑을 만방에 알렸다. 그는 다음 작품 <바닐라 스카이> 역시 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온갖 장르의 음악을 씹어 먹겠다는 기세로 수많은 트랙들로 빼곡하게 OST를 채웠다. 비록 OST에 실리지 않았지만, <바닐라 스카이>(2001)에서 기억에 남는 노래는 단연 비치 보이스의 ‘Good Vibrations'다. 자신이 발 딛고 선 세계가 사실 현실이 아님을 깨닫는 순간에 스며들 듯이 영화 속으로 들어오는 경쾌한 곡이다. 사랑의 기분 좋은 떨림을 담은 이 노래는 하필 사랑과 환상을 잃어버린 걸 깨닫는 순간에 흐르면서, 관객을 영화의 막바지로 데려간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