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와 인간이 낳은
흑인 혼혈아
1973년, 코믹스 <더 툼 오브 드라큘라> 10호에서 첫 등장한 블레이드는 루크 케이지처럼 당시 유행하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영화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캐릭터이다.
베테랑 작가 마브 울프먼과 독창적인 스타일을 자랑하는 진 콜런이 만들어낸 이 캐릭터는 당시 흑인 영웅 캐릭터와 연관된 특징들을 많이 갖고 있었다.
외모는 흑인 특유의 '아프로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었고, 가죽 재킷과 카우보이 부츠를 신었다. 무기는 나무로 만들어진 뱀파이어 사냥용 투척검. <더 툼 오브 드라큘라>에 등장하던 다른 클래식한 인물들과 같이 배치하기에는 너무 튀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블레이드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외모가 아니었다. 그건 바로,
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라는 설정이었다.
블레이드의 모친은 런던 소재 사창가에서 일하고 있던 매춘부. 그녀가 이름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산통이 시작되자 의사가 왕진을 오게 되는데 그 의사가 다름 아닌 뱀파이어였던 것이다. 모친은 그에게 피를 빨리고 죽임을 당하지만, 아기는 기적적으로 태어나게 되는데 뱀파이어의 피가 섞이게 된다.
이로 인해 그는 뱀파이어의 특성인 연장된 수명, 다른 뱀파이어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 뱀파이어의 향상된 신체적 능력, 그리고 뱀파이어의 흡혈 공격에 영향을 받지 않는 능력을 갖게 된다.
1970년대 기준으로 봐서도 아동용 만화 설정으로 좀 아슬아슬한 느낌인데, 약 5년 전 스탠 리의 노력으로 만화 자체 심의 규제인 코믹스 코드가 완화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툼 오브 드라큘라>는 판매 부수가 높지는 않지만 꾸준히 팔리는 타이틀이었고, 블레이드는 독자들에게 좋은 평을 얻었다.
사실 캐릭터가 너무 개성이 강해 주인공인 드라큘라보다도 존재감이 높았기 때문에 마브 울프먼과 진 콜런은 연재 도중 약 1년 동안 블레이드를 등장시키지 않기도 했었다.
1990년대
제2의 전성기
이전 마블 히어로 소개 글에서도 종종 언급했듯이, 태생상 마블 캐릭터 중에서도 고스트 라이더, 모비우스 등과 함께 ‘어둠의 자식들’에 속하는 블레이드는 퍼니셔 등 안티히어로/어두운 캐릭터들이 다시 인기를 얻던 1990년대에 제 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미드나이트 선즈’라는 부제 하에 모비우스, 고스트 라이더, 벤전스, 나이트스토커스, 그리고 추후 넷플릭스 TV 시리즈에서 등장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는 헬스톰과 함께 미드나이트 선즈로 활동하면서 마블 코믹스의 초자연적 스토리 축을 담당하게 된다.
연재기간은 1993년~94년 정도로 매우 짧았지만 잘 팔렸고, 1990년대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스파이더맨이나 엑스맨 같은 메인스트림 캐릭터들보다 개성있고, 좀 더 성인 취향인 간행물로 기억되게 된다.
현재 코믹스 지면에서 블레이드의 활약은 2000년대를 넘어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의 전성기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엑스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보다
블레이드가 앞섰다
2008년 마블 스튜디오가 <아이언 맨>을 성공시키면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서막을 알리기 전, 그리고 폭스와 소니가 각각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을 일반 대중들도 아는 이름으로 만들기 전에, 이미 블레이드는 영화 팬들에게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1998년 여름 웨슬리 스나입스 주연, 데이빗 S. 고이어 각본으로 개봉한 <블레이드>는 지금 봐도 나쁘지 않은 현란한 액션과 장르에 충실한 스타일로 흥행에 성공하였고, 마블 역사상 처음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영화가 된다.
이전 작품들인 <퍼니셔>, <스파이더맨>, <하워드 더 덕>의 연이은 흥행 실패로 로저 코먼의 <판타스틱 포> 개봉까지 취소시켰던 마블 사에 있어 블레이드의 성공은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현재에도 그가 마블 캐릭터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블레이드>의 성공이 없었더라면 2008년의 <아이언 맨>이 없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블레이드의 영화화 판권은 2012년 뉴 라인 시네마에서 다시 마블 스튜디오로 넘어갔다. 시리즈가 지속될지, 혹은 리부트될지는 모르지만 웨슬리 스나입스가 다시 주연을 맡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만약 MCU에서 블레이드가 등장한다면 닥터 스트레인지 등과 함께 초자연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히어로들의 주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노블 번역가 최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