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 평가 받으려고 여기 온 거 같니?”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재벌집 며느리이자 ‘유니콘’ 대표이사 송가경 역으로 남심보다 여심을 저격중인 배우 전혜진. 브라운관에서 대활약 중인 그가 이번엔 스크린까지 욕심내어 관객들을 찾아왔다. 전문직을 주로 맡았던 이전과는 달리 전혜진은 영화 <비스트>에서 말 그대로 짐승과도 같은 마약 브로커 춘배 역을 맡아 완전히 반대되는 카리스마를 보여줄 예정. 이에 전혜진의 카리스마와 열연이 돋보였던 필모그래피 속 캐릭터 5개를 선정해봤다.


<더 테러 라이브> 박정민 역

‘대학로 전지현’으로 불리며 2000년대 초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그가 육아에 지쳐 배우로서 슬럼프를 앓다 다시 복귀하게 된 작품 <더 테러 라이브>. 전혜진은 경찰청 직속 대테러 팀장 박정민 역을 맡았다. 테러 협박을 생중계로 받고 있는 윤영화(하정우)에게 ‘정시 퇴근하게 해주겠다’ 설득하지만, 사실은 테러범을 잡고 자신의 실적을 올리기 위한 이기적인 인물을 연기했다. 차분하지만 날카로운 어조로 상황을 정리하고 지시 내리는 그의 모습에 ‘배우가 아닌 실제 인물을 캐스팅한 줄 알았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 이처럼 박정민 역을 찰떡같이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았지만, 사실 전혜진은 이 캐릭터를 연기하지 못할 뻔했다고. <더 테러 라이브>를 캐스팅하던 단계에서 감독이 전혜진에게 이 역할을 맡기기로 했지만 연기에 대해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던 전혜진은 “내가 아닌 다른 배우를 찾아보라”라고 말했다고 한다. 감독의 설득 끝에 박정민 역을 맡은 그는 이 영화로 대중들에게 배우 전혜진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도> 영빈 역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음에 이르게 한 왕 영조(송강호).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엇나가버린 아들, 사도세자(유아인). 그들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낸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에서 전혜진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자신의 자리를 잃어감에도 태연해야만 했던 표정 연기도 일품이지만, <사도> 속 전혜진의 베스트는 세손인 정조를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죄책감으로 ‘내가 죽인 거 아니지’라고 물으며 통곡하는 장면이다. 사실 전혜진은 <사도>를 끝으로 배우 생활을 접으려 했다고. 이준익 감독과 많은 대화를 나눈 끝에 연기를 다시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이 있지 않나. <더 테러 라이브>에 이어 <사도>까지 힘든 시간을 보낸 전혜진은 이 영화로 2015년 제36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천인숙 역

“안녕, 애들아~”. 설경구에게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선사해주고, 임시완에게 인생작을 안겨준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 <불한당>은 전혜진에게도 특별한 작품이었다. 검거하려는 마약 밀수 조직의 사무실에 앉아 무서울 거 하나 없다는 태도로 담배를 태우며 카메라 앞에 첫 등장한 천인숙 경찰 팀장은 두 남자와 극 전체를 휘어잡기에 충분했다. 재호(설경구)를 잡기 위해 자신의 부하였던 조현수(임시완)를 재호 주변으로 심어두고, 그 외의 부하들까지 전부 사지로 몰면서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인 천팀장의 강경함은 보는 이들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전혜진은 <불한당>으로 제70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아 레드카펫을 밟았으며, 이 영화로 평단과 대중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뺑반> 우계장 역

2019년 전혜진을 처음 스크린에서 볼 수 있었던 작품 <뺑반>. 경찰 내 엘리트 가운데 하나였지만, 무리한 강압수사로 인해 뺑소니 전담반으로 좌천되어 내려온 은시연(공효진). 그곳에서 은시연이 만난 건 단 두 명의 팀원이었으니. 에이스 순경 서민재(류준열)와 경찰대 수석 출신이지만 지금은 뺑소니 전담반 리더인 서부서 교통계장 우시연(전혜진)이다. 주로 전문직, 그중에서도 경찰 역할을 많이 맡아 온 전혜진이었지만 <뺑반>에서 전혜진은 그간 한국영화에서 생소했던 만삭의 여성 리더를 연기했다. 은시연을 보자마자 “경례 안 해?” 카리스마 있게 묻다가 어느새 “내가 에이스였어”라고 귀엽게 말하는 우계장은 전작에서 경찰로 등장했던 <불한당>의 천팀장의 모습과는 현저히 달랐다. 후반으로 갈수록 압도하는 우계장의 강인한 면모는 역시 전혜진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비스트>춘배 역

전혜진이 소화해낼 수 있는 캐릭터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비스트>를 보면 그에게 한계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혜진은 살인사건 용의자를 잡을 결정적 단서를 쥔 마약 브로커 춘배 역을 맡아 기존에 보여주었던 이미지와 다른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즉흥적인 살인과 이를 기억하기 위해 남기는 타투, 스모키 메이크업, 피어싱 등 보는 이를 기죽이는 외양부터 강력반 형사 한수(이성민)와 팽팽하게 맞서며 갈등을 유발하는 모습까지 남다르다. 맨몸 액션, 그 가운데서도 이성민에게 맞는 연기를 직접 소화하며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어렵게 촬영했다고. <비스트>를 연출한 이정호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전혜진 외에 (춘배 역에) 대안을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밝힌 바 있는 것처럼 그는 영화 속에서 전혜진이 아닌 춘배 그 자체였다.


씨네플레이 문선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