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4페이즈가 드디어 공개됐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MCU 팬들의 갈증을 달래줄 만한 화려한 라인업이었는데, 이 중 유일한 애니메이션 플랫폼으로 공개된 것이 바로 <왓 이프…?>(What If…?)였다.
역사가 깊은 마블 코믹스인지라 한 캐릭터의 이야기에도 다양한 변주가 존재하지만, 그중에서도 <왓 이프> 시리즈는 독특하다고 할 만하다. 캐릭터의 기원을 구성하는 근간을 뒤엎고 모든 이야기를 바꿀 수 있을 만한 극명한 분기점을 다루기 때문이다.
기존의 ‘왓 이프’ 코믹스에는 갤럭투스가 엘비스 프레슬리로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아이언맨이 소련 측의 스파이가 되는 이야기, 캡틴 아메리카가 미국 대통령이 된 이야기 등 독특한 스토리들이 많다. 현재까지 총 12권의 코믹스와 200권 이상의 이슈들이 존재하는 ‘왓 이프’, 하지만 이번 코믹콘에서 공개된 라인업에는 기존 ‘왓 이프’ 시리즈에서 다루어진 적 없는 캐릭터도 다수 존재한다.
‘왓 이프’는 현재까지 총 12편의 코믹스가 발간되었으며 총 이슈는 200여 개에 이른다. MCU를 통해 일반 관객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스파이더맨은 물론이고 퍼니셔와 판타스틱 포 등 다양한 마블 캐릭터들이 색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이 중 몇 가지 이슈만 소개해 본다.
1. 아이언맨이 배신자였다면?
What If Iron Man Had Been A Traitor?
1988년에 발간된 이 이슈는 ‘아이언맨이 히어로가 아닌 빌런이었다면?’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만들어진 스토리다. MCU의 본격적인 스타트였던 <아이언맨> 시리즈의 1편에서 토니 스타크는 사업차 아프가니스탄에 방문했다가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게 되고 잉센의 도움을 받아 첫 수트인 Mk. 1을 만들어 탈출에 성공하게 되는데…
‘왓 이프’는 아이언맨이 이 납치 과정에서 히어로로서 각성하는 것이 아닌, 텐 링즈에게 결탁해 비밀리에 스파이 활동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MCU의 개국공신이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벤져스 전체에서도 엄청난 위상을 떨쳐 왔던 아이언맨이라는 캐릭터가 뒤에서는 테러조직의 일원으로 암약하고 있었다면?
물론 아이언맨의 팬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마치 코스믹 큐브 이슈에서 캡틴이 하이드라였듯이..) 다른 누구도 아닌 어벤져스의 주축 아이언맨이 사실은 아군이 아닌 적이었다는 설정이 흥미로워 보이는 것만은 사실이다.
2. 퍼니셔가 캡틴 아메리카였다면?
What If The Punisher became Captain America?
코믹콘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공개된 라인업에는 <퍼스트 어벤져>의 등장인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하울링 코만도즈의 일원인 콧수염 캐릭터 덤덤 듀건이나 슈퍼솔져 혈청 개발자인 어스킨 박사, 아르님 졸라 등인데 정작 캡틴 아메리카 본인은 리스트에 없다. 그렇다면 다른 캐릭터가 캡틴의 자리를 대체한다는 설정이 아닐까? 가정해 볼 수 있기에, 퍼니셔가 캡틴이 되는 이 이슈를 꼽아 본다.
‘퍼니셔’는 기본적으로 히어로 측의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범죄자나 악당들에게는 가차 없이 죽음을 선사하기에 대표적인 다크 히어로로 언급된다. 때문에 캡틴 아메리카라는 캐릭터로 대표되는 자유의지와 선함에는 다소 들어맞지 않을 수 있는데, 그 간극에서 오는 역발상의 잠재력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다.
스티브 로저스가 아닌 캡틴 아메리카는 코믹스에서 여러 번 제시된 바 있지만, 그중에서도 퍼니셔 버전 캡틴은 기존 퍼니셔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강렬한 충격과 더불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정말 이 코믹스를 기반으로 나올지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3. 스파이더맨이 살인자였다면?
What If Spider-Man Was A Murderer?
스파이더맨은 오랫동안 불살(不殺), 즉 범죄자라 하더라도 살인으로 처단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해 온 히어로다. 특히 MCU에서는 더더욱 선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톰 홀랜드가 연기한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스파이더맨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벌쳐를 죽음의 위기에서 구해주기까지 한다.
MCU에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았으나, 도망가는 무장강도를 그냥 놓아주었다가 결국 그 강도가 피터에겐 아버지나 다름없었던 벤 삼촌을 죽이게 된 사건은 스파이더맨 하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유명한 이야기다. 이 죄책감은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되기도 했는데, 이 사건을 역으로 뒤집은 것이 바로 ‘왓 이프’의 이 이슈다.
스파이더맨이 벤 삼촌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 강도를 살해했다면? 스파이더맨의 근간을 구성하는 사건인 이상 꽤 많은 요소들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MCU의 피터 파커라면 더더욱 그렇다.
4. 토르가 서리거인으로 자랐다면?
What if thor was raised by frost giants?
<토르> 시리즈를 통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시피, 토르는 오딘의 친아들이자 정당한 계승자였지만 로키는 그렇지 않았다. 서리거인들의 왕 라우페이의 아들이었던 로키는 서리거인치고는 지나치게 미숙아였기 때문에 버림받았고, 오딘이 로키를 주워 와 둘째 아들로 길러낸 것이었는데.
이 ‘왓 이프’의 이슈에서는 반대로, 토르가 라우페이의 입양아였다면 어땠을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오딘과 라우페이의 전쟁에서 오딘이 패배하자 아스가르드는 서리거인의 것이 되어 버린다. 이 과정에서 토르는 서리거인 쪽으로 입양되는 과정을 거쳐, 라우페이의 입양아로서 성장하게 된다.
이 이슈에서도 토르와 로키는 왕위를 놓고 내내 싸움을 겪게 되고, 로키 역시 아버지를 자기 손으로 살해하는 숙명 아닌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지만(왓 이프 이슈들이 흔히 그렇듯이..) 서리거인 버전의 토르는 꽤 인기를 얻어 피규어도 출시되었다.
MCU에서는 아스가르드가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수르트에 의해 파괴되었고, 로키도 현시점 기준으로는 사망했기 때문에 토르와 로키의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않는 이상은 서리거인 쪽 이야기는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토르 본인도 왕위를 발키리에게 넘겨주고 우주로 떠났기에 왕위를 둘러싼 이야기는 더더욱 힘들 것. 그렇기에 ‘왓 이프’에서만 다루어질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5. 어벤져스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What If The Avengers Had Never Been?
이제 MCU, 그리고 히어로 영화 전체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팀이 된 어벤져스. 솔로 무비로 시작한 각 히어로들을 한 팀으로 묶어 히어로 무비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작 중 하나가 됐다. 그런데, ‘어벤져스’라는 히어로 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왓 이프’의 이 이슈는 간단한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처참하다시피 한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1977년, ‘왓 이프’ 시리즈가 처음 선보인 해에 나왔으니 초창기 이슈라고 할 수 있지만 어벤져스라는 히어로 팀이 어쩌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들은 코믹스 <시빌 워>와 MCU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통해 제기된 적 있는 문제인데,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초월하는 존재가 흔히 있는 히어로들의 사회가 분열된다면? 싸움은 상상 이상으로 무참해지고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MCU의 기존 시나리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전제인 것은 분명하나, '왓 이프' 시리즈의 매력이 그렇듯이 도저히 벌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기에 더 매력 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어벤져스라는 팀을 구성하는 것이 영화에서는 자연스럽고 당위성 역시 있었지만, 그런 부분들이 전부 배제된다면? 가슴 아픈 이야기일지언정 한 번쯤 보고 싶은 건 사실이다.
현재 공개된 라인업은 대체로 <퍼스트 어벤져>에 등장했던 하울링 코만도스의 일원인 덤덤 듀간이나, 슈퍼솔져 혈청의 개발자인 어스킨 박사, 아르님 졸라와 더불어 <토르> 시리즈의 제인 포스터와 로키, 토르 본인을 포함해 그랜드마스터, 코르그, 수르트가 포함되어 있으며 블랙 팬서와 킬몽거 역시 라인업에 들어가 있다. 또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욘두, 테이저페이스, 크래글린 등 라바저스 멤버들과 앤트맨, 행크 핌, 호크아이, 네뷸라, 타노스 등의 캐릭터가 등장 예정이다.
이들 중 '왓 이프' 코믹스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어진 적 없는 캐릭터가 상당수라는 점, 그리고 솔로 무비에서만 등장했을 뿐 팀업 무비에서는 본격적으로 활약한 바가 없는 캐릭터들도 많다는 점, 이미 사망이 확정된 캐릭터도 다수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장르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영화에 비해 보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며, 여러 여건상 영화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재미있는 요소들을 다룰 수 있다는 점 역시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공개된 내용은 출연진 목록(이 역시 일부일 것으로 추정되나..)과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방영할 것이라는 계획뿐이고 어떤 이슈를 다루게 될 지도 알 수 없다. 때문에 ‘왓 이프’ 이외에도 ‘마블 좀비스’ 같은 다양한 챕터가 다루어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MCU는 지금까지 마블 코믹스의 원작 이슈들을 재미있는 방식으로 조합하고 보여줘 왔으니, 자유도가 훨씬 높은 ‘왓 이프’는 어떤 방식으로 선보일지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희재 / PNN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