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년 만이다. 2006년 제작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이 국내에 정식 개봉했다. 개봉 당시 해외에서도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던 <칠드런 오브 맨>은 국내에서 개봉하지 못하고 DVD로 직행했던 영화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암울한 디스토피아 영화를 본 평론가들은 열광했다. 얼마 전 BBC가 설문조사한 ‘21세기의 위대한 영화 100편’ 가운데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평론가들은 도대체 어떤 부분에 높은 점수를 주었을까. 이번주 ‘주목! 이 영화’에 소개하기에 완벽한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을 만나보자.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 많은 SF영화들이 그렇게 예견하고 있다. 그 영화 속에서 인류는 탐욕으로 가득한 종족이다. 지구는 인류에 의해서 멸망할 예정이다. 평화로운 사회에서 사랑과 평등과 정의가 넘치는 미래를 그린 영화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 역시 잿빛 미래를 보여준다. 그곳에 새로운 생명은 없다.
<칠드런 오브 맨>은 2014년 별세한 영국의 작가 P. D. 제임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 속 미래에서 인류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지구상의 모든 여성이 임신을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인류는 멸종하고 말 것이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 역시 이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다. 영화가 시작되면 뉴스 화면이 등장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어린 18살 소년 ‘베이비 디에고’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테리아(원작자 제임스 여사가 강아지를 안고 있는 노파로 특별출연 했다)의 뉴스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이 테오(클라이브 오웬)는 무심하게 블랙커피를 사서 거리로 나선다. 테오가 커피에 위스키를 타려는 순간 카페테리아는 폭발한다. 테러가 일어난 것이다. 테러가 일상이며 평화로운 죽음을 위한 약을 합법적으로 팔고 있는 이곳은 2027년 런던이다.
영국은 그나마 정부가 기능을 상실하지 않은 지구상 유일한 국가다. 무정부 상태의 국가를 탈출한 불법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몰려들었다. 영국인들은 그들을 차별하고 박해했다. 이는 극심한 사회 갈등으로 발전했다. 이민자들을 지지하는 반정부 단체 ‘피시단’은 한때 사회운동가였던 테오를 납치한다. 테오의 전 부인 줄리안(줄리안 무어)이 리더인 피시단은 테오에게 거액을 제시하며 해안까지 갈 수 있는 통행증을 부탁한다. 이 통행증은 흑인 이민자 소녀 ‘키’(Kee)를 위한 것이다. 그녀는 임신 중이다! 인류의 미래를 키(key와 발음이 같다)가 쥐고 있다. 인류는 20여년 만에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 테오는 키를 데리고 시사만평가로 활약하던 늙은 히피 재스퍼(마이클 케인)를 찾아간다.
생명이라는 단어는 <칠드런 오브 맨>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단어다. 쿠아론 감독의 우주 재난영화 <그래비티>에서도 생명을 암시하는 장면들이 엿보인 것은 어쩌면 <그래비티> 이전에 완성한 <칠드런 오브 맨>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문제는 종교적 해석도 가능하게 한다. 치열한 전투 중 무릎을 끓고 성호(聖號)를 긋는 군인이 <칠드런 오브 맨>에 등장한다.
해외 평론가들이 <칠드런 오브 맨>에 특히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멸망을 앞둔 인류에게 다시 희망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새 생명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연상시킨다. 테오는 추측컨대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 사는 고위직 사촌을 찾아가 통행증을 부탁한다. 사촌은 인류의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있다. 거대한 다비드상 앞에서 사촌은 피에타상을 찾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한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떠안고 있는 그 조각상은 영화의 마지막에 흑인 이민자 소녀 키에 의해 비슷한 구도로 재현된다.
종교적 해석 여지보다 <칠드런 오브 맨>을 ‘기념비적 SF영화’로 만든 건 이민자, 난민 문제에 대한 언급이다. <칠드런 오브 맨>이 공개된 당시부터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이 사회 문제는 영화에서 매우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10년 전 영화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유럽의 난민 사태가 자연스레 연상되기도 한다. 테러에 대한 공포 또한 이민자, 난민 문제에서 비롯된다. <칠드런 오브 맨>은 외계인의 지구 침공 같은 상상력에 기반한 위협을 다루지 않는다. 불임, 이민자 문제 등 인류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문제를 직시한다. 지금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공포와 불안이 영화에 스며들어 있다. 블루레이를 구입한다면 부록에 있는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강의를 통해 좀더 깊은 고민을 해볼 수 있다.
생명, 종교, 난민 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는 <칠드런 오브 맨>은 결코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지루하기만 한 엄격, 진지한 예술영화는 아니다. <칠드런 오브 맨>은 경이로운 롱테이크 장면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버드맨>(2014) <그래비티>(2013) <트리 오브 라이프>(2011) 등에 참여하기 이전의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그 경이로움의 창시자다. <그래비티>부터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까지 3년 연속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 루베즈키는 영화 후반부 시가지 전투 시퀀스를 약 10여분의 롱테이크로 촬영했다. 숨을 멈추게 되는 이 긴장감의 뒤에 <칠드런 오브 맨>의 결정적 장면이 이어진다. 어쩌면 이 한 장면을 위해 <칠드런 오브 맨>이 제작됐을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딧과 함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쿠아론 감독이 남긴 희망의 메시지였을까. 모든 크레딧이 다 끝나면 “Shanti Shanti Shanti”(평화 평화 평화)라는 단어가 진짜 마지막을 장식한다. 쿠아론 감독이 새겨놓은 저 단어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지금! 평화로운 지구, 사랑, 평등, 정의가 넘치는 SF영화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