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전> 포스터

<암전>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더 재밌다. 큰 스크린과 웅장한 사운드가 있기 때문이다. 공포영화? 당연히 극장에서 봐야 더 무섭다. 컴컴한 관객석을 비추는 스크린 속 공포와 마주하는 기분은 TV나, 모니터에서 맛보기 힘들다. 극장 자체가 영화의 배경이거나 공포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더욱 더 극장에서 봐야 한다. 최근 개봉한 <암전>도 미지의 공포 영화라는 소재를 사용해 극장에서 느끼는 공포의 맛을 한층 더했다. <암전> 이외에도 극장에서 보면 더 무서운 영화들을 소개한다. 영화 속 영화 혹은 극장 자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언젠가 이 영화들을 상영하는 특별전이 열리길 모쪼록 바라본다.


<스크림 2>

<스크림 2>

‘공포 영화에 대한 공포 영화’로 인기를 모은 <스크림>. 속편 <스크림 2>에서도 이 같은 재치를 잃지 않았다. <스크림 2>는 전작 <스크림>을 영화 속 영화로 등장시켰다. 제목은 ‘스탭’(Stab)으로 바꿨다. 1편의 주인공 게일 웨더스(커트니 콕스)가 쓴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는 설정이다. <스크림 2>는 이 영화 속 영화 <스탭>을 보러 온 필(오마 엡스)과 모린(제이다 핀켓 스미스) 커플이 살해되는 장면을 오프닝으로 선택한다. 이 오프닝 시퀀스는 매우 영리하다. 첫째, 살인마가 재림했다는 공포감을 전해준다. 둘째, 전작의 성공 포인트를 잊지 않은 영리함을 보여준다. 셋째, 모린이 고스트 페이스 가면을 쓴 살인마에게 실제로 살해 당하는 모습에 관객들이 열광하는 자조적 위트를 담았다. 넷째, 고스트 페이스 가면을 쓰고 온 관객 가운데 누구라도 살인마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스크림 2>의 오프닝은 일평생 공포 외길을 걸어온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감각이 단연 돋보였다. 만약 <스크림 2>의 오프닝처럼 실제로 <스크림 2>를 보러 가면서 고스트 페이스 가면을 챙겨간 관객들이라면 후다닥 벗어야 했을 것이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는 죽음으로 치닫는, 피할 수 없는 사고를 그린다. 주인공 일행은 늘 오프닝의 대형 사고를 피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 또 다른 큰 사고를 맞이하게 된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의 클라이맥스 사건은 대형 쇼핑몰에서 일어난다. 미국 쇼핑몰에 꼭 있는 건 무엇? 극장이다. 3D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 채 폭발에 휘말린다. 그러니까 관객은 (현실 속) 극장에 앉아 (영화 속) 극장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셈인데, 굉장히 찝찝한 마음이 들 수밖에. 심지어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4>는 작품 속 영화처럼 3D로 개봉했다. 3D로 관람 중인 관객이라면 이 장면에서 한 번쯤 안경을 벗고 두리번거렸으리라. 참고로 기자는 이 영화를 4DX로 봤다.


<곤지암>

2018년에 가장 많이 회자된 영화 가운데 하나인 <곤지암>. 폐허가 된 정신 병원을 찾아간 공포체험단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1인 플랫폼 시대라는 미디어 환경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익스트림 스포츠 촬영에 쓰는 소형 카메라를 사용, 1인칭 시점을 담아내 공포감을 극대화한 것. 캄캄한 폐허의 병동을 헤매는 스크린 속 1인칭 시점은 컴컴한 관석의 관객의 시점과 일치한다. 이는 극중 인물들에게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앞뒤좌우에 다른 관객이 없다면 영화 속 홀로 남은 인물의 만들어내는 시점숏에 온몸이 얼어붙을지도 모른다. <곤지암>은 등장인물과 상황을 설명하는 초반부의 지지부진함을 덜어낸 50분짜리 감독판이 지난 7월 스크린X로 개봉한 바 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어쩐지 숨죽이게 되는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장면들.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사운드가 굉장히 중요한 영화다. 이 영화의 괴생명체는 오로지 소리를 듣고 공격하는 습성을 가졌다. 극장에서 <콰이어트 플레이스>를 보면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고 달려두는 괴생명체가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이런 독특한 설정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영화 속 인물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할 때 관객 역시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콰이어트 플레이스>는 극장에 함께 있는 관객들의 매너에 따라 다른 영화가 된다. 관객이 가득 들어찬 상영관에서 정말 모두가 숨죽인 채 영화를 본다면, 혼자 영화를 보는 것보다 함께 생존했다는 묘한 성취감이 느껴질 것이다. 반대로 상영관이 아무리 좋아도 누군가 음식을 먹거나 콜라 마시는 소리를 내면 영화에서 전달되는 긴장감이 깨지면서 김이 쫙 빠질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다른 관객들 손에 팝콘이 절반 이상 차있다면 그들의 매너에 (눈빛이나 마음 속으로) 감사를 전하자.


<오페라의 유령>

<오페라의 유령>(1925)

<오페라의 유령>의 제목을 보고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 ‘씽크 오브 미’를 뇌내 재생 중이라면, 잠깐 일시정지를 눌러두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로 유명한 <오페라의 유령>은 원래 괴담에 가깝다. 가스통 르루가 쓴 원작도 고딕 호러로 분류되는 공포 소설이다. 생각해보라. 일평생 극장 어딘가에서 숨어산 남자가 여성 배우를 납치해 앞으로 함께 하자고 약속하는 모습을. 로맨틱하다고 하기엔 다소 소름 끼치는 광경이지 않은가.

<오페라의 유령>(1925) 론 채니. 마스크 벗은 모습은 다소 혐오스러우니 궁금하면 영화를 보는 걸로.

그래서 <오페라의 유령>은 극장에서 봐야 딱 맞는 작품이다. 그것도 깔끔한 신식 멀티플렉스 극장 말고, 옛날 옛적부터 운영해온 극장이라면 스토리에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영사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갑자기 스크린을 찢고 튀어나오는 유령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페라의 유령>은 여러 번 스크린으로 재탄생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1925년 론 채니가 주연한 <오페라의 유령>이 최고 명작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시 온갖 괴상한 인물을 소화한 론 채니의 아주 무시무시한 유령 연기가 스크린에서 다시 빛을 볼 수 있다면 더없이 황홀할 것이다.

<나이트메어> 시리즈 ‘프레디’로 유명한 로버트 잉글런드도 1989년 <영원한 사랑>에서 팬텀 역을 맡았다.


<담배자국>

<담배자국>

TV 시리즈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즌 1의 8화 <담배자국>. <담배자국>은 TV 영화라 극장에서 상영된 적이 없어 여기 소개하는 게 반칙 같다. 그럼에도 소재와 연출 모두 극장에서 보면 두세 배 더 인상적이었을 영화라 소개한다. 제목 ‘담배자국’은 필름으로 영화를 상영하던 시절, 다음 롤을 돌릴 신호로 쓰던 동그란 문양을 의미한다. <파이트 클럽>에서도 해당 문양에 대한 농담이 나온다.

<파이트 클럽>. 오른쪽 상단의 동그마리가 담배자국이다.

이 담배자국이 들어간 컷을 수집하는 영사기사 커비(노먼 리더스)에게 한 영화의 프린트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는 백만장자 벨린저(우도 키에르). 영사기사는 영화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죽은 아내와 담배 자국에 대한 환상을 느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환상은 점차 영화라는 매체와 극장이란 공간을 얽힌다. 결말까지 보고 나면 ‘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면!’하고 벨린저처럼 상상하게 될 것이다.

<담배자국>


<심야영화>

<심야영화>

거실에 앉아 친구들끼리 낄낄거리며 보는 영화는 걸작보다 망작이 낫다. <심야영화> 속 인물들은 거실 대신 허름한 극장을 택했다. 공포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모인 관객들 앞에 스크린 속 살인마가 나타난다. <심야영화>의 스토리는 언뜻 보기에 구미가 당기지만 함정이 있다. 저예산 영화라서 모두가 생각하는 그런 퀄리티를 보장하지 않는다. 쓸데없이 진지한 탓에 오히려 웃음이 터질 수도 있다. 그래서<심야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된다면, B급이나 그 이하를 즐기는 공포영화 팬들에겐 꽤 축제 같을 수 있다. 마치 거실에 모인 친구들처럼 다같이 낄낄거리고 중간중간 야유도 섞으며 볼 수 있을 듯하다. 국내에 정식 소개된 바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번외편

마음 놓고 있다가 당할 때

피터 래빗을 보러왔다가

이 사람(<유전>)을 만나고

피카츄 만나려다

이런 오싹한 것(<요로나의 저주>)을 접한다면…

원래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면 놀랄 것을 봐도 괜찮고, 웃긴 것을 봐도 덤덤하다. 그렇기에 갑자기 예상하지 못하고 마주하는 공포영화 예고편이 더 무서울 수 있다. 해외에서 실제로 이런 사례가 있었다. 2018년 호주에선 <피터 래빗>을 상영하기 전 <유전> 예고편을 트는 바람에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간 가족 관객이 있었다. 2019년엔 미국의 한 극장이 <명탐정 피카츄>를 상영해야 하는데 <요로나의 저주>를 재생한 바람에 전 세계 뉴스를 타기도 했다. 무서운 것에 대비하며 좌석에 앉았을 때와 ‘피카츄’를 보러 왔다가 귀신의 얼굴을 맞이할 때. 어느 쪽이 더 깜짝 놀라고 무서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이해하리라 믿는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