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감독, 정우성, 주지훈, 곽도원 주연의 <아수라>가 개봉했다. 60%가 넘는 사전 예매율을 보이며 관심을 받고 있는 기대작이다. 개봉 첫날에만 47만 관객을 동원, 흥행 성적만으로는 올해 <부산행>과 <검사외전>의 뒤를 잇는 규모의 흥행세다. 마침 개천절 연휴인데다 비 소식까지 겹쳐 개봉 첫 주말 성적을 200만 돌파까지도 조심스레 내다보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별점 폭탄
네이버 <아수라> 관객 평점

이상하게도 관람객 사이에서 (흥행과는 별개로)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분위기다. 여타의 수많은 한국산 범죄 영화와 차이점이 없어 피로하다는 반응도 있고, 역시 연기력 탄탄한 배우들이 우격다짐 하는 쾌감을 보는 재미가 좋다는 평도 있다. 상대적으로 남성 관객들의 선호도가 높다고는 하지만 여자들이 싫어할 요소가 많은 영화라고 단정짓기에도 무리가 있다. 그럼 <신세계>를 향한 여성 관객들의 지지는 무엇이었단 말인가. 그래서 <아수라>의 어떤 점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고, 또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지 영화를 둘러싼 이슈들을 정리해봤다. 


또 조폭 영화야?

맞다. 조폭 영화다.
한국 영화 가운데 조폭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피바다를 만들어 놓은 영화들이 흥행 우세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조폭마누라>처럼 조폭과 코미디를 접목한 명절 특수 영화가 휘어잡던 시절이 있었고, 따지고 보면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는 고딩 조폭 이야기, <비열한 거리>는 현직 조폭 이야기,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조폭으로 변해가는 이야기, <신세계>는 조폭이 계급 세탁하는 이야기, <차이나타운>은 여성 조폭 이야기 등으로 거칠게 그 계보를 이어붙일 수 있겠다. 그러니까 <아는여자>의 장진 감독도 깡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거룩한 계보>를 찍던 한국 영화계의 '거룩한 계보'를 잇는 영화인 것이다.   

허나 양상은 달라졌다.
일단 <아수라>는 깡패같은 것들이 주인공일 뿐, 깡패가 주인공은 아니다. 별 차이는 없다. 불법을 일삼는 비리 형사 한도경(정우성), 출세에 눈이 멀어 폭력을 일삼는 지독한 검사 김차인(곽도원), 재개발 욕망을 잡아먹으며 권력을 누리려는 탐욕스러운 안남시의 '민선 시장' 박성배(황정민), 권력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돈맛을 알아가는 전직 형사 문선모(주지훈) 모두 조폭 논리로 살아가는 나쁜 놈들이니까. 갖고 싶으면 뺏고, 거슬리면 죽여버리는 족속들이다. 그럴싸하게 신분만 달라졌을 뿐.

조폭 생태계를 다르게 파고든다.
나쁜 놈을 좇다가 더 나쁜 놈이 되고마는 지옥같은 접전을 벌이는 영화의 계보도 있었다. 최호 감독의 <사생결단>, 동명이인인 김성수 감독의 <야수>,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 등등. 하지만 <아수라>는 엄밀히 말해 양 극단의 악과 악이 부딪쳐 끝까지 내달리는 영화와는 구도가 다르다.

<아수라>의 비리 경찰 박도경은 조폭 생태계 가장 밑바닥에서 기생하는 인물이다. 그는 지금 누구와 대립할 처지가 못 된다. 지금이야 적당하게 비리도 저지르고 민선 시장의 온갖 지저분한 뒷치닥거리를 도맡아 한다고는 하지만 언제 내버려질지 모르는 두려움을 안고 버티는 인물이다. <아수라>는 거칠지만 의리도 있고 적당하게 간지도 나는 '어깨'가 허세부리는 영화와는 다르다. 평점 폭탄으로 표현하는 관객의 '피로도'는 낯설음의 다른 말일 수 있다. 


또 이 배우야?

'피로도'를 인정하자.
범죄 스릴러 영화들이 한국영화판 주류를 이루다 보니, 웬만한 연기력을 인정받은 남자 배우들이 맡는 역할이 대부분 조폭, 형사, 검사 셋 중 하나는 반드시 거쳐가게 되어 있다.

김차인 검사는 그를 연기하는 베우 곽도원이 자신의 배우 커리어를 시작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맡았던 조범석 검사와 아주 흡사하다. 동일인물이라고 거짓말 해도 속아넘어갈 것 같다. 황정민은 또 어떤가. <베테랑>, <부당거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사생결단>에서 형사를, <달콤한 인생>, <신세계>, <남자가 사랑할때>에서 건달을 연기한 그는 (<댄싱퀸>의 시장 후보를 거쳐) <아수라>에서 권력 비리 꼭대기의 악덕 시장 박성배를 연기하는데 이전 영화 속 캐릭터를 다 합쳐 놓은 느낌이다. 겉모습만 그저 시장일 뿐. 하다 못해 조연으로 등장하는 정만식 같은 배우들도 이전 영화에서 맡았던 캐릭터와 별반 차이가 없다. 그래서 관객들이 지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쩔 수 없는 '피로도'는 인정하자.


연기가 이상해?

인정하기 어렵다.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만큼은 쉬이 수긍하기 어렵다. 특히 배우 정우성에 대한 몇몇 단평은 더욱 그렇다. 잔인한 장면이 많고 다들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배우들이 뿜어내는 미묘한 연기 톤을 무시할 수 없다.  캐릭터가 진부한가? 그것도 아니다. 정우성이 연기하는 형사 도경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비루한 남자다.

<아수라>의 첫 장면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사건을 비롯해서 그가 처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마다 정우성의 얼굴 근육은 그 어떤 영화에서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좁은 골목길에 갇혀 빠져 나올 수 없는 상황의 감정을 다른 어떤 영화에서보다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그와 다른 굵직굵직한 연기를 선보이는 주지훈, 황정민, 곽도원 모두를 잡아먹을 정도다. 전작에서 종종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발성도 이번 영화에서는 확실하게 달라졌다. 김성수 감독은 <비트>의 민과 <태양은 없다>의 도철이 갖고 있던 이십대 청춘 스타의 아우라를 이번 영화에서 되살려냈다. 

결말이 매끈하지 않다?

역시 동의하기 어렵다.
하지만 올드 패션은 인정하자.
최근 한국 사회 시스템을 비판하는 몇몇 범죄 영화들은 결말에 이르면 악을 뚜렷하게 단죄하는 설정을 집어넣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처벌을 영화가 대신 내려준다. 예를 들면 비리 동영상 유포 같은 것들 말이다. <아수라>에는 그런 처벌, 황급한 결말이 없다. 그래서 더욱 허무한 결말이라 느낄 수밖에 없다. 스포일러로 해석하지 마시길.

영화의 전체 분위기, 정서적으로나 촬영, 프로덕션 디자인, 로케이션 등 모든 비주얼 면에서 <아수라>는 과거 홍콩 누아르 영화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귓가를 자극하는 파괴적인 총성과 관객의 시선과 배우의 미모를 동시에 피로 뒤덮어 버리는 잔혹한 하드보일드 세계 말이다. <아수라>의 지향점이 세련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존과는 다른 범죄 영화를 만들고자 했던 김성수 감독과 배우들의 성과는 이후 한국형 범죄 누아르 영화의 양상을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 것이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