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뤽 베송 제작’이라는 문구를 포스터에서 본 적 있나. 뤽 베송 감독이 직접 연출을 맡지 않고 제작진에 이름을 올려도 그의 이름이 포스터에 등장하곤 한다. 8월 28일 개봉한 <안나>는 뤽 베송 감독의 연출작이다. 당연하다는듯 <안나>의 포스터에는 ‘뤽 베송의 하드코어 킬링 액션’이라는 문구가 삽입됐다. 궁금해졌다. 언제부터일까. 그가 액션영화의 대가 혹은 장인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시점 말이다. 뤽 베송의 액션 연대기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여기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니키타>(1990)

<니키타>

뤽 베송 액션의 출발점은 <니키타>가 아닐까 한다. <레옹> 아니냐고? 아니다. <니키타>가 뤽 베송 액션의 본격 시작이다. 데뷔작 <마지막 전투>나 <서브웨이> 등에서도 액션 요소를 찾을 수 있겠지만 <니키타>에 와서 뤽 베송 스타일이 완성되기 시작했다. 특히 홍콩 누아르를 연상시키는 주방 총격 시퀀스는 <니키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며 뤽 베송의 스타일리시한 액션의 시발점이다. <니키타> 이후 뤽 베송 감독은 이른바 여전사를 활용하는 데 능한 감독으로 취급된다. <니키타>의 성공으로 할리우드에서는 <니나>라는 리메이크 영화를 제작했다. <니키타>의 영향력은 꽤 여전해 보인다.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악녀>, <마녀> 등도 <니키타>의 그늘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니키타를 연기한 안느 파릴로드는 당시 뤽 베송의 아내였다.


<레옹>(1994)

<레옹>

뤽 베송의 대표작이 뭘까. 살짝 고민된다. 누군가는 <그랑블루>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제5원소>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만약 <레옹>이라고 답한다면 모범 답안에 가까울 것이다. <레옹>을 단순한 액션영화라고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느끼는 감동은 화끈한 액션 신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건 <레옹>이 액션 역시 감각적인 음악과 함께 뤽 베송 스타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 <니키타>의 여성 킬러에 이어 권총을 든 소녀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뤽 베송 액션 연대기에서 의미를 더한다. 참고로 <레옹>을 제작할 당시 뤽 베송 감독은 안느 파릴로드와 이혼한 뒤 마이웬 르베스코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17살이다.


<제5원소>(1997)

<제5원소>

<제5원소>는 액션영화일까 SF영화일까. 사실 둘 다 해당된다.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제5원소>는 <니키타>에 비하면 액션 요소는 적은 편이다. 역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으로 밀라 요보비치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뤽 베송 감독은 꾸준히 여전사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있다. 참고로 밀라 요보비치는 당시 뤽 베송이 아내였다. 뤽 베송 감독과 이혼한 밀라 요보비치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통해 진정한 여전사로 거듭났다.


<택시>(1998)

<택시>

액션영화는 여러 갈래가 있다. <택시>는 카체이싱, 자동차 액션영화로 분류할 수 있겠다. <택시>는 뤽 베송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아니다. 그는 제작자로 참여했고 크게 흥행했다. 이때 이후 ‘뤽 베송 제작’이라는 문구가 국내에 수입되는 영화의 포스터에 들어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택시> 시리즈는 5편까지 제작됐고 리메이크 영화 <택시: 더 맥시멈>도 나왔다. 참고로 <택시>는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기 전 마리옹 꼬띠아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트랜스포터>(2002)

<트랜스포터>

<택시>의 성공은 <트랜스포터>로 이어졌다. <트랜스포터> 역시 감독이 아닌 각본가이자 제작자 뤽 베송의 영화다. 뤽 베송은 제이슨 스타뎀과 원규 감독을 기용했다. 뤽 베송을 포함한 세 사람의 조합은 <트랜스포터>를 자동차 기반 액션영화의 새 장을 연 영화로 만들었다. <트랜스포터>는 <택시>에서 진일보한 액션영화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트랜스포터>는 1999년 뤽 베송이 공동 창립한 영화사 유로코프에서 제작한 영화다. 이후 소개할 거의 모든 영화가 이 영화사에서 제작됐다.


<13구역>(2004)

<13구역>

제작자 뤽 베송의 도전은 계속된다. <13구역>은 당시 생소했던 파쿠르를 영화에 접목시킨 액션영화다. 파쿠르의 창시자인 데이빗 벨이 직접 주연을 맡았다. <13구역>은 건물 사이를 아크로바틱하게 넘나드는 액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액션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테이큰>(2008)

<테이큰>

“아이 돈 노 후 유 아…” <테이큰>을 본 관객들은 이 대사를 ‘자동재생’할 수 있을 것이다. 중년의 리암 니슨을 액션 배우로 만들어준 <테이큰> 역시 각본가 및 제작자 뤽 베송의 영화다. 감독은 <트랜스포터>의 피에르 모렐이 맡았다. 어쩌면 뤽 베송보다 모렐 감독의 역할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테이큰>의 포스터에서는 뤽 베송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여기 소개하는 이유는 흥행 때문이다. <테이큰>은 뤽 베송이 제작한 가운데 북미시장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영화다.


<루시>(2014)

<루시>

뤽 베송이 직접 연출을 맡은 <루시>는 최민식이 출연한 영화로 기억에 남는다. 다만 지금 중요한 배우는 최민식이 아니라 스칼렛 요한슨이다. <루시>는 <니키타>에서 시작된 뤽 베송 액션 계보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여전사 캐릭터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스칼렛 요한슨이 여전사 캐릭터 루시를 연기했다. 뤽 베송은 <루시> 이전에 조 샐다나가 출연한 <콜롬비아나>라는 영화에도 각본, 제작으로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2017)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

많은 평론가들이 등을 돌린 영화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를 언급하고 싶다. <제5원소>를 앞서 소개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은 <제5원소> 계열의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발레리안: 천 개 행성의 도시>는 <제5원소>처럼 액션 요소가 크게 부각된다. 반면 액션 장르의 짜릿함이 있는 영화는 아니다. 화려한 비주얼의 스펙터클이 더 야심찬 작품이다.


<안나> 촬영현장의 뤽 베송.

뤽 베송 액션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그가 연출하고 제작한 몇몇 작품들을 살펴봤다. 정리하면 이렇다. (지난해 성추행과 관련된 여러 논란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뤽 베송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액션영화를 여러 편 만들었다. SF 요소를 가미한 액션영화를 만들었다. 최근에는 제작자로서 더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액션영화의 대가 혹은 장인으로 인식하게 된 시기는 언제일까. 개인적으로는 <트랜스포터>가 기점인 듯하다. <레옹>과 <제5원소>로 대중 인지도가 확 높아진 이후 뤽 베송은 <택시>를 제작하며 승승장구 했다. 바로 그 다음 행보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트랜스포터>가 나올 때까지 말이다. 네이버 영화에 등록된 <트랜스포터> 포스터에는 ‘뤽 베송 제작군단 2003 스피드 혁명’이라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안나>를 보려고 하거나 본 관객이라면 <니키타>와 비교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