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으로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광풍을 만들었던 신카이 마코토. 오는 10월 30일 그의 신작 <날씨의 아이>가 개봉한다. 신카이 마코토를 초창기부터 주목해온 마니아도, <너의 이름은.>으로 팬이 된 관객들도 <날씨의 아이>만 기다렸을 터. 관람을 기다리고 있을 팬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의 단편들을 모아왔다.
신카이 마코토가 지금처럼 유명해지기 전, 애니메이션에 일가견 있다 자부한 사람들은 진작에 그의 싹수를 알아보았다. 1999년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로 데뷔하기 전, 그는 게임 회사 팔콤에서 일했다. 일본 RPG 게임의 터줏대감 같은 회사인데, 신카이 마코토는 이곳에서 <이스 2 이터널>과 <영웅전설 5>의 오프닝 영상을 맡았다.
그중 <이스 2 이터널>은 올드 게이머들 사이에서 늘 회자되는 오프닝인데, 텐몬의 박진감 넘치는 음악과 유려한 애니메이션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기 때문. 제작자가 신카이 마코토임을 알고 나면 그의 흔적이 눈에 띌 것이다. 특유의 맑은 하늘색과 광원의 활용, 그리고 (실제 독백은 아니지만) 독백체의 텍스트 연출 등. 이보다 서정적인 <영웅전설 5 바다의 함가> 역시 광원을 활용한 바다의 색감으로 게이머들의 눈을 호사시켜준다. 두 애니메이션 모두 명작 게임 오프닝 역할을 톡톡히 한 셈. 덕분에 게이머들은 신카이 마코토의 퇴사 이후 팔콤 사의 오프닝이 예전만 못하다고 아쉬움 섞인 불만을 털어놓기도.
데뷔 초창기, 신카이 마코토를 대표하는 수식어는 ‘1인 제작’이었다. 여성 캐릭터의 목소리와 음악을 제외하고 작품의 모든 파트를 본인이 직접 담당했기 때문. 그의 첫 애니메이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도 팔콤 사에 재직 당시 퇴근 후 틈틈이 만든 1인 제작 작품. 이 5분짜리 단편을 위해 신카이 마코토는 1년 넘게 회사일과 개인작업을 병행했다고. 이렇게 탄생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는 제12회 CG 애니메이션 콘테스트 그랑프리를 수상해 신카이 마코토에게 퇴사의 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줬다.
이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 하면 떠오른 특유의 화사함이 흑백 처리돼 도리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안겨주는 게 특징. 고양이가 화자인 컨셉에 맞춰 협소한 클로즈업 쇼트가 자주 사용된다. 속마음을 읊듯 담백한 독백은 이후 신카이 마코토 작품에 흐르는 문학적 기운의 전조 같다.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신카이 마코토가 직접 연기한 독백.
고양이 얘기가 나온 김에 한 편 더. 신카이 마코토는 고양이 덕후로 유명하다. 첫 작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의 쵸비가 아직도 그의 트위터 프로필일 정도. 일본 방송국 NHK가 협력한 단편 역시 고양이 쵸비의 이야기를 그렸다(이름만 같을 뿐, 같은 고양이는 아니다). 가족들에게 매번 꼬리를 밟히자 “인류를 멸망시키자!”고 단합한 고양이들이 밥에 홀려 계획을 미루는 모습은 소소한 웃음을 선사한다. “인간은 캔을 잘 따니까 살려두는 것”이라는 전 세계 집사들의 농담을 신카이 마코토도 공감하는 모양이다.
시골에 사는 소녀와 알바를 하는 도시의 소년. <너의 이름은.>의 프로토타입 같은 <크로스로드>는 놀랍게도 학습지 회사의 광고. 실제로 신카이 마코토는 이 광고 속 소녀 미호와 소년 쇼타에게 영감을 받아 <너의 이름은.>을 제작했다고. 이 광고 작업으로 연을 맺은 캐릭터 디자인 담당 타나카 마사요시가 <너의 이름은.> 캐릭터 디자인도 맡았다.
그래서 “캐릭터가 너무 후지다”는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의 전통(?)이 <너의 이름은.>에서 깨지기도.
해지는 바다 풍경으로 시작을 알리는 이 단편은 기껏 2분 남짓. 그럼에도 스토리와 캐릭터를 상상할 수 있는 충분한 떡밥과 시종일관 감탄하게 만드는 도시의 야경, 해변의 풍경이 여느 애니메이션 못지않게 인상적이다. 거기다 학습지 광고인만큼 신카이 마코토스럽지 않게 희망으로 가득한 엔딩까지. 광고도 신카이 마코토가 만들면 다르다는 찬사를 받았다.
<크로스로드>와 마찬가지로 광고지만 신카이 마코토식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거듭난 작품. <크로스로드>는 그나마 학습지라는 상품이 확실히 느껴지는 편인데, <누군가의 시선>은 오리지널 작품처럼 요소요소가 탄탄한데다 부동산 회사의 상품성이 확 드러나지 않아서 광고가 맞나 싶을 정도. 독립한 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며 현대적인 배경에 근미래적인 기술이 접목한 사회 묘사가 눈에 띈다.
신카이 마코토 아니랄까 봐 이번에도 고양이와 내레이션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같은 해, 그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언어의 정원>이 비가 오는 날씨를 섬세하게 묘사한 데 비해, <누군가의 시선>은 따스하면서도 쓸쓸한 해 질 녘을 담아냈으니 비교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 비록 단편이(자 광고)지만 부녀관계를 소재로 한 유일한 신카이 마코토 애니메이션이니 눈물 주의하고 즐겨보자.
마지막을 장식할 단편이라면, 그의 출세작 <별의 목소리>일 것이다. 25분짜리 단편 <별의 목소리>는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의 수상으로 신카이 마코토가 본격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에 착수한 첫 작품. 나가미네 미카코 역의 목소리와 음악을 제외하면 모든 파트를 신카이 마코토 홀로 작업했다. 메카 애니메이션 하면 의례 떠오르는 열혈이나 소년 감성이 아닌, 서정적인 분위기가 애니메이션 팬들을 압도하며 단번에 슈퍼 신인으로 도약했다. 문학적인 독백과 화려한 광원 효과가 돋보이는 풍경, 그리고 캐릭터 작화가 유독 아쉬운(ㅠㅠ) 신카이 마코토 월드의 시발점. <너의 이름은.> 이전 작품을 선호하는 팬들에겐 베스트로 꼽히기도 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